기획기사
지금은 속기시대?
기전의 70%가 속기로 진행
2007-03-02 오후 12:04:09 입력 / 2007-03-02 오전 11:59:39 수정
| ˚ 프로기전 70%가 속기전 - 국제경쟁력 저하 우려
TV방송이나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프로기전이 제한시간을 앞당기자는 논리에 힘이 잔뜩 실려 있다. 필자도 제한시간은 짧아져야 한다는 쪽이다. 그러나 한쪽으로 힘이 실려도 너무 실린 나머지, 지금은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는 속기추세를 마뜩잖게 생각하고 있다. '공은 둥글다'는 의외성을 가져다주는 의미에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속기가 우선시되어, 바둑의 고유한 색채까지 잊어버리지 않을지 우려되는 측변도 있다. 요즘은 고뇌하는 프로가 아름답다는 말도 타임머신을 타고서야 들을 수 있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 왜 속기가 대세인가? TV와 인터넷이 주요 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너무 속기화 되어간다. 그러다 보니 실력보다는 운에 의해, 은근한 수읽기보다는 감각에 의한 수읽기로 바둑이 흘러간다. 게다가 요즘 바둑은 스포츠라는 명분도 크게 얻고 있으니, 아무래도 국내전도 포커스를 속기에 맞춘 모양이다. 현재 우리 기사들이 참여하는 국내외 대회 치고 제한시간이 3시간을 초과하는 기전은 아예 없다. 일본에는 아직 이틀거리 8시간 바둑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다른 기전도 5시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 바둑이 스포츠의 영역이 아니라 예도의 영역이다. 반면 한국은 스포츠로 방향을 잡으면서 기전이 속기전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지금 치러지는 국내대회를 살펴보면 제한시간이 2~3시간 정도의 본격기전은 GS칼텍스배, 왕위전, 명인전, 국수전, 기성전, 여류국수전 등 6개뿐이다.(표 참조) 그 나머지는 모조리 속기전이다. 19개 기전 중에 TV방송이 관계하는 것은 13개로 무려 70%를 차지하고 있다.(본격기전도 3시간이면 많이 단축된 것이다.)
˚ 속기는 시대적 조류? 물론 바둑이 스포츠의 범주에 든 상태에서, 팬이 '원하는'대로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해도 후회는 남는 법이므로 그 후회 부분은 평소 연마한 실력으로 메워야 한다. 그러나 바둑가에서는 프로기전 수의 70%가 속기전이라는 것은 좀 심하다고 여기는 분위기이다. 진득한 수읽기의 매력보다는 속사포 총잡이의 등장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요즘 프로의 기보해설을 보노라면, 해프닝에 가까운 수많은 실수들이 난무하여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잦다. 역전 재역전은 물론이고 재재역전도 허다하다. 승부를 논하는 입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결과보다는 수준 높은 과정을 보고싶은 팬의 입장에서는 약간 당황스럽다. 바둑은 사고의 집합체이며 고도의 판단이 요구되는 경기이다. 30억짜리 바둑리그, 5억짜리 왕중왕전 등 매머드 기전이 모조리 속기이고 기존의 전통적인 기전까지 속기의 위세에 눌려있다. 과거 속기전은 정규기전으로 인정해주지도 않던 '그 시절'과는 사뭇 다른 형편이다.
˚초속기 기전이 70%는 분명 문제 제한시간이 점점 단축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번개 불에 콩 구워먹는' 수준으로 속사포 경쟁이 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팬이 TV를 시청하는 것과 대국시간이 짧아지는 것은 인과관계가 없다. 제한시간 3시간짜리 도전기를 펼친다고 가정하면, 시작할 때와 점심시간 언저리 즈음에, 그리고 오후 적당한 시간에 보여준다든지 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또한 아예 오후 2시 정도에 시작하여서 끝날 때까지 보여준다든지, 아니면 대국개시를 오후 3시 경에 시작하여 충분히 팬들이 편하게 보게 하든지, 여러가지 기법이 있을 수 있다. 축구경기가 2시간, 야구경기가 통상 3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속기가 아니면 팬들이 지겨워한다.'는 점을 명분으로 삼기에는 왠지 부족해 보인다. 굳이 TV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일선의 말을 옮기면 바둑방송은 생방송이 훨씬 편하다고 한다. 생방송은 방송실수에 대한 모험은 있지만, 바둑은 '조용히' 경기를 하는 특성상 크게 모험이랄 것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방송 기법으로 커버한다면 굳이 지금처럼 '거의' 전 대국을 속기로 치르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단서가 될 수 있을까? 해설의 관점에서 보아도 녹화가 생방송보다 더 좋은 점이 있다고 한다. 바둑의 경우는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따라서 도전기 이상의 중요한 시합이 아니라면, 여유를 가지고 친절하게 해설 해주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생중계이기 때문에 두는 속도도 따라가기 힘들다는 명분으로 해설의 정확도는 뒷전으로 밀려있는 현실이다. 지나친 속기는 바둑의 깊이를 자꾸만 얄팍하게 만들 뿐이다. '팬을 모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에도 동의하지만, 바둑이 이렇게 이벤트성으로 흐트러지는 것은 용납되기 힘들다. 혹시 의외성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속기전을 만든 것이라면 그것도 옳은 방식은 못 된다. 시간에 쫒겨 우물쭈물하는 프로기사를 보고 싶어서 바둑의 정체성마저 뒤흔드는 편의주의이기 때문이다. ˚ 세계대회 경쟁력을 위해서도 속기편행은 지양 프로기전에서 속기전은 어디까지나 이벤트성이어야 한다. 정규기전을 능가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상금을 대폭 밀어주는 것은 프로들에게 속기에 전념하라는 권장이 되고 만다. 바둑의 대중화도 좋지만 심도 있는 바둑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바둑은 없어지고 흥행만 남았다고들 말한다. 프로기전 70%가 속기라는 현실은 아무리 봐도 어색한 것은 현실이다. 속기가 흥행이 된다는 논리도 사실은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정말 흥행이 잘 될까? 지난해 모 사이트에서 진행된 제한시간에대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3시간 정도가 적당하다는 다수 팬의 의견이 있었다. 물론 참여한 숫자가 적어서 바둑 팬의 대변이라고 하기에는 뭣한 구석은 있지만 '속기는 대세'라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사실은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모름지기 프로는 프로다운 바둑을 구사해야 한다. 프로의 대국을 관정하는 것은 그들의 수읽기 능력을 인정하고 진지한 태도를 배우고 싶어서이다. 이에 실수토성이의 '승부가르기 바둑'이 대세로 굳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속기를 잘 두는 기사가 시간 많은 바둑도 잘 둔다. 그러나 국내에서 온통 이렇게 '콩 볶기' 경쟁만 하다가 제한시간 3시간인 세계대회의 경쟁력도 떨어질지 몰라서 하는 우려이다. 혹시 요즘 한국의 세계대회 성적이 신통치 않은 것과 국내기전의 70%가 속기전인 것이 연관이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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