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
실명(實名)보다 가면(假面)
팬들의 관심 증폭된 새로운 지평 연 바둑잔치
2007-04-02 오후 7:40:44 입력 / 2007-04-02 오후 7:55:43 수정
TV가 있던 옆집에 과자 한 봉지 사들고 박치기왕 김일과 태권장사 천규덕을 보러 가던 시절을 기억한다면 어울릴까. 그때는 꼭 어린 맘을 흥분시켰던 가면을 쓴 레슬러가 있었다. 성인이 된 다음 게임의 구도를 우리와 적으로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면 레슬러는 기만과 부정의 상징이었다.
타이젬에서는 가면의 전사가 실명의 전사를 이겼다. 타이젬 특별기획 '세계최강 모험대결'에서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 초절정 고수 3인으로 이루어진 '드림팀'이 0대3으로 한·중·일 선발 '인기스타팀'에게 완패했다. 3월 27일 조훈현-spiderman1(일본), 29일 이창호-GoldHammer(중국), 31일 유창혁-구렛나루걸(한국)의 대결에서 였다. 2~3년전 만 해도 ID와 프로정상의 실명대결은 꿈이었다. 프로들이 인터넷 접속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천하의 이창호라도 잠시만 방심하면 패배를 기록하게 될 정도로 수많은 프로들이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타이젬에서 기획한 것이 바로 '세계최강 모험대결'이다.
온라인 바둑은 원래 가면무도회이다. 따라서 이번 매치는 드림팀의 탐험대결인셈이다. 조헌현, 이창호, 유창혁 등 세계타이틀 개수만 38개(조-11개, 이-21개, 유-6개)를 합작한 한국의 자존심. 타이틀 개수로는 역대 한국랭킹 1, 2, 4위의 기록이지만, 진로배와 농심배 등 국가대항 단체전에서의 기록은 빠져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역대 랭킹 1~3위까지 출전했다고 봐야 한다. 온라인 고수와 실명 최절정고수가 맞닥뜨린 이번 매치는 탁월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실명으로 지도대국을 두는 이는 종종 있지만, 절정최고수가 자기 이름을 버젓이 내어놓고 '부담어린'일전을 벌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역시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이 대기사인 것이 증명되는 대목.
좀 더 강한 기사를 선발하기 위해 자국에서 응원하는 유저들을 자국선수를 뽑았다. 이를 테면 한국기사는 한국의 9단 가운데 가장 잘 둔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뽑고 일본 9단 중에서는 일본유저들이 선택을 했다. 그래서 빅3 드림팀과 인기스타팀이 벌이는 사상 초유의 3인조 태그매치가 열리게 된 것이다. 가장 강자가 많은 한국의 경우 ‘내안의神’이 20%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으나, 출전을 거절해서 2위인 ‘구렛나루걸’이 뽑혔다. 중국과 일본은 30%의 지지로 각각 'spiderman1', 'GoldHammer'가 선정되었다. 3명의 주자라고는 하지만 한중일의 인터넷 최고수가 선정된 것이나 진배없다. 일본에서는 이미 요다노리모토, 고바야시고이치, 류시훈, 김수준, 다카오신지 등이 타이젬을 즐기고 있고, 중국에서는 구리, 쿵제, 창하오, 뤄시허, 네웨이핑, 왕시 등 거의 모든 프로가 다들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서능욱, 조한승, 이재웅, 강동윤 등은 마니아 수준. 한국프로들의 전언에 따르면 타이젬에서 바둑을 즐기는 프로들이 100명을 상회하고 ID 숫자로도 300개는 상회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기스타팀의 구성원은 물론 프로일 것이다. 인터넷 바둑을 즐기는 것으로 보아 젊은 프로.
빅3 드림팀이 3전 전패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이다. 대국 전 기획을 맡은 타이젬의 모 인사를 만났다. 그는 종합전적 1:2로 ‘인기스타팀’이 이겼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드림팀을 응원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타이젬의 흥행을 위해서는 ‘타이젬 9단’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오히려 0:3으로 끝날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런 극단적인 스코어를 예상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상3인의 실력을 과소평가한다는 뜻으로 비춰지기에 ‘위험부담’이 따르는 발설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터넷환경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대부분 0:3은 아니라고 해도 인기스타팀이 이길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왜일까? 실명 3인과 가면 3인은 대결은 드림팀의 입장에서는 불공정하다. 드림팀은 자신의 전력을 드러내놓은 대국이요, 인기스타팀은 적을 아는 대신 나를 알려주지 않은 ‘이득’이 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놓고서는 이겨도 본전이라는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조훈현은 대국에 앞서 “상대가 누구인지 가르쳐 줘야지 싸울 것 아냐?”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또한 온라인바둑에서는 드림팀이 ‘애송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고수끼리의 바둑이란 것은 상대방의 호흡하나 돌 소리 하나까지도 기합이 실려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 아닐까? 어차피 ‘프로’끼리의 대결에서 굵은 모양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고, 미세한 부분까지 들어가야 하는 승부이리라.
이번 승부는 그러한 무형의 요인이 삭제된 상태에서 두어졌다는 것이다. 즉, 인기스타팀은 면전에서 고수의 전율을 몹시 느껴야 정상인데, 이번 매치에서는 그러한 기량 이외의 것은 전혀 없는 ‘진공상태’에서 바둑판에만 집중하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쿵제, 왕시 등 정상급 기사들이었다. 이번에 선발된 ID도 최강일 것이다. 더욱이 조훈현, 유창혁 등이 한풀 꺾인 것을 감안한다면 인기스타팀의 상승세가 예상된다.” 타이젬 터줏대감 서능욱 9단은 대국 이전에 이미 이번 결과를 예견한 바 있다. 인터넷 바둑을 즐기지 않는 정상 3인과 인터넷 바둑을 무수히 즐기는 젊은 프로 3인이 붙었다고 하면 간단해진다.
바야흐로 인터넷 바둑시대이다. 고수들의 대국이 동시에 비 오듯 벌어지는 형국이라고 해도 정상기사와 팬들의 만남은 획기적이었다. 실명과 가면의 대결인 만큼 익명을 요구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명으로 등장하는 대국은 찾기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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