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젬게임

기획기사

'유창혁 1천승' 늑장보도 유감

18개월지나 뒤늦게 공식발표-바둑관인 모두의 성의부족

2007-08-20 오전 11:18:24 입력 / 2007-08-20 오전 11:30:04 수정

기록은 영원히 기록될 소중한 것
스포츠신문 기자들의 얘기를 빌면, 화요일 자 기사를 채우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월요일마다 프로야구의 휴식일이기 때문에 화요일 자에 보도될 내용이 별로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더욱이 요즘 같은 불규칙한 우기가 계속되면 프로야구도 예정에 없던 휴식일이 많아지니까 더더욱 곤란할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번 우기에는 미국에서 날아든 배리본즈의 개인통산 최다홈런기록 카운트다운 덕택에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한 가지 화제가 뜨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다려먹고 아껴먹는’ 방법이야 기자들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 한국 프로야구 홈페이지. 선수들의 기록을 한눈에 볼수 있다.

야구는 기록의 경기라고 한다. 기록이 있으면 그 기록이 언제 달성될 것인가 맘을 졸여가며 팬들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그것을 또 토픽으로 만드는 언론의 능력도 무시 못 한다. ‘홈에서 기록이 달성될까.’ ‘투수가 좋은 공으로 승부할 것인가.’ 등등의 화제를 뿌리며 팬들도 덩달아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작년 한화이글스 송진우의 개인통산 200승 기록이나, 두어 달 전 삼성라이온스 양준혁의 개인통산 2000안타 기록은 26년을 살아온 한국야구계의 불멸의 기록들이다. 그 기록이 상당기간 동안 언론에 회자가 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유창혁은 축하받을 권리가 있다
‘일지매’ 유창혁이 통산 1000승을 이미 달성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타이젬 팬클럽 회원들과의 조촐한 ‘사후’ 축하파티 뉴스를 보면서 필자도 알게 되었다. 2006년 1월20일 1000번째 승리한 것이니 무려 18개월이나 늦게 보도된 것이다.

“거의 1년 반 이상 지났는데, 이제 와서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좀 쑥스럽다. 1000승은 시간만 지나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기록이다. 별 것 아니다.” 유창혁은 개인으로서는 더 없이 영광스러운 이 기록이 18개월이나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축하인사를 받는 사실도 쑥스러워했단다. 하기야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과연 ‘1000승’은 시간만 지나면 아무나 달성하는 것일까. 결코 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은 못된다.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에 이어 바둑계로서는 4번째 거둔 금자탑이라고 한다. 7월말 기준으로 조훈현(1734승), 서봉수(1419승), 이창호(1348승)에 이어 유창혁이 1058승을 기록해, 50여년 한국바둑사에서 오직 4명만이 밟아본 미증유의 경지이다.


▲ 유창혁 9단.

84년부터 쌓아온 1000승의 아련한 추억
유창혁의 1000승중에는 소중한 추억들이 많이도 들어있다. 유창혁은 조훈현, 이창호의 ‘낀 세대’로써 잠시도 자신이 시대를 주도하진 못했다. 그러나 화끈한 공격풍의 개성 있는 행마로 인기 만점의 기사로 자리매김했다. 총 24번의 우승 기록 중에 무려 6차례의 세계대회 우승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1년 동안 고작 하나의 타이틀만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큰물’인 세계대회에서는 잘도 싸우는 기린아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 이상으로 큰 승부에서는 성적을 내곤 하는 기사였다. 지금은 제집 드나들 듯 한국기사가 우승하곤 하는 후지쯔배도 애초에는 철옹성이었다. 5회 대회까지는 일본의 전유물이었으며 유독 한국이 우승을 못하는 ‘눈물고개’였다. 그 ‘후지쯔봉’을 처음으로 정복한 이가 유창혁이다.

또한 6번의 세계대회 우승 중에는 동갑내기 일본의 라이벌 요다노리모토와의 1996년 응씨배도 뺄 수 없다. 하오리하카마를 입은 요다와 생활한복을 입고 등장한 유창혁의 건곤일척의 승부를 잊을 수 없다. 이창호가 지금보다 완벽한 철옹성을 자랑할 때에도 ‘강심장’ 유창혁과의 승부에서는 이기지 못했던 기억은 지금은 차라리 추억이다.

4대천왕 중에서 유창혁만 홀대?
유창혁 1000승은 그의 팬클럽에서 2년 전에 이미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확한 집계에서 혼선이 있었다는 후문이고 보면, 일개의 팬클럽으로서는 공식적인 집계를 내기는 뭣한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팬클럽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 순간부터, 대기록 달성의 순간이 다가오는 줄 감지하고 있어야 할 주무관청 한국기원의 불찰이 크다.


▲ 유창혁 홈페이지에 올라온 1000승 예고 글.

기록달성 후 18개월 뒤에서야 뒤늦게 은근슬쩍 모 일간지에 흘려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세계대회 우승 6회를 자랑하는 유창혁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1승 1승에는 그토록 목말라 하면서 개인의 역사이자 한국바둑의 큰 금자탑이 될 대기록에 대해서는 이리도 어설프게 대하는가.

이창호의 경우는 ‘1000승 초읽기에 들어간 이창호 9단’이라는 보도 자료까지 한국기원에서 날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만 26세에 1000승을 달성했고, 앞서 달성한 선배기사보다는 짧은 기간, 그리고 승률도 엄청 뛰어났다는 뉴스거리가 있기는 했다. 혹시 유창혁이 ‘화려한 무관’으로 지낸 지 오래라서 기록 관리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경사스런 일은 한국기원이 먼저 파악을 해서 미리미리 방송 신문 잡지에 드러내 놓고 경축해주어야 할진대, 1000승을 달성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안달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바둑의 홍보가 예전만 못하여 바둑인들이 얘를 태우는 와중에 ‘꺼리’도 제대로 찾지도 못하는 실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수작업으로 헤아리던 열정
94년 서봉수가 세계바둑계사상 최초로 1000승을 돌파한 때를 기억하는가. 제 입으로 말하기엔 머쓱하지만, 그 ‘특종’은 필자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결론적으로는 그 기록도 잘못 집계가 되었고, 1000승 뉴스 이후 한국기원에서 제대로 카운트하게 되었다.

물론 ‘제대로 된’ 카운트도 사실 제대로인지 알 수는 없다. 기록이라는 것이 원초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일 수는 있으나 그것을 공식기록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느 종목에서나 있을 수 있는 오류이다. (또한 당시에는 조훈현이 일본에서 활동했던 6년간 118승이 빠져있어서, 당시 서봉수가 세계최초라고는 했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는 있다.)

조훈현과 서봉수의 양웅시대에 타이틀은 조훈현이 많이 차지했으나 서봉수의 대국 수가 더 많다는 것에 착안했다. 그래서 서봉수의 승리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지루한 수작업을 통해서 서봉수의 1000승을 파헤치는 데 얼마나 많은 오류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을까.

지금처럼 전산시스템도 없었던 때였다. 오히려 열정과 호기심뿐이었다. 85년 연감부터 발행이 되었으니 실제 서봉수의 입단 이후부터 상당기간 동안 빠져있었다. 그러나 신대륙을 발견한 양, 너무 기쁜 나머지 밤 세워 헤아리고 또 헤어렸다.

당시 필자는 한국기원을 퇴사한 자연인이었다. 오랜 수작업을 통해 처음으로 1000승이란 존재를 알리게 했던 그 기억은 글을 쓰는 지금도 새롭다. 생전 바둑 때문에 취재를 오지 않던 방송국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취재차 한국기원 대국장을 방문했다. 부담감 탓이었는지, 서봉수가 1000승을 남겨놓고 아마도 5차례 연속으로 패한 기억도 있다.

바둑인 전부의 자아비판 필요할 듯
그 뒤 한국기원의 전산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어느 정도는 기록가지고 애를 먹는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빛바랜 ‘장부’를 수작업으로 뒤지는 시절보다 전산시스템의 ‘엔터키’ 한번이 더 힘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추억이 있는 필자가 이번 유창혁의 1000승 기록을 놓쳤다고 하니 버럭 화가 난다.

이번 파동은 한국기원 뿐 아니라 바둑언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도 반성해야 한다. 바둑이라는 단일 종목으로 바둑TV, 스카이바둑TV 등 2개의 TV채널이 있고, 인터넷 바둑사이트도 활황세를 누리고 있는 시대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바둑우호세력인 신문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하여 한 명의 ‘기자’만이라도 성의를 가졌다면 이러한 자괴심이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바둑계는 하루 종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의 홍수 속에 산다. 많은 사이트를 보아도 대부분이 ‘누가 이겼다 졌다’식의 ‘보도자료’만 있을 뿐, 깊이 있는 뉴스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넓이에만 관심이 있지 깊이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팬들의 볼거리 읽을거리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기록, 정보 공개하여 팬이 직접 감시하게 해야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를 보면,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그 팀에서 친 안타 수는 역대 몇 위에 해당하는 지 훤하게 알 수 있다. 뉴스는 이런 정보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리플A 선수라든지 멕시칸리그의 선수조차도 손쉽게 열람이 가능하다.


▲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타율, 홈런, 타점 기록이 생생하게 나와있다.

바둑은 이러한 기록을 한국기원에서 모두 관리하고 있다.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면 모조리 공개하는 것이 낫다. 적재적소에 꺼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오픈하여 누구든지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또 다른 기록누락의 사태도 막을 수 있다.

성의 있는 사람이 먼저 공개된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 잘못된 정보를 바른 정보라고 알고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고치면 될 것이니까. 정보 공개는 인터넷시대에 그리 큰일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야 이러한 필생의 기록도 놓치는 일이 없어진다.

오히려 정보의 공개 속에서 많은 고급뉴스가 양산되고 바둑의 관심은 높아만 갈 것이다. 따라서 성의 있는 팬들과 기존의 ‘전문가’가 비로소 대등해지게 되고, 그래야만 기존의 전문가도 더욱 양질의 칼럼으로 무장해서 다시 팬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바둑이 진정한 스포츠가 되기 위한 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기사는 죽어서 기록을 남긴다. 과연 어느 기사가 통산 1000승을 올렸는데도, 이렇게 조용하게 넘긴 적이 있을지 반문해 본다. 심지어 일본기사의 1000승도 그날 바로 인터넷뉴스에 오르던 우리의 관례를 감안하면 유창혁 1000승은 너무 조용히 지나간 것 같아 애석한 맘이 든다.

바둑은 개인경기이기 때문에 변화가 더디다. 한 명이 절대자가 되면 오랜 세월을 독주하는 속성이 있다. 그러기에 누적된 승리 기록을 제대로 챙겨준다면 개인적으로나 바둑계적으로 얼마나 좋은 화제 거리가 될까. 자고로 자기부터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남이 나를 존경하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다.

기록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태도로는 바둑역사를 논할 수 없다. 늦었지만 1000승의 금자탑을 세운 4명에게 기념패라도 증정하여 그들이 세운 기록을 우리 모두가 격려해주는 기회가 꼭 있었으면 한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관련기사

SNS 간편로그인

(주)컴투스타이젬    대표이사:이승기    사업자등록번호:211-86-95324    사업자정보확인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315 파이낸셜뉴스빌딩 4층

제호: 타이젬    등록번호: 서울 아04168    등록(발행) 일자: 2016.10.4

발행인: 이승기    편집인: 정연주    청소년보호책임자: 장성계

전화: 1661-9699 (상담시간:10:00-18:00)    FAX : 070-7159-2001    이메일보내기

COPYRIGHTⓒ Com2uS TYGE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 타이젬 일본
  • 타이젬 중국
  • 타이젬 미국
  • 타이젬 대만

2019 인공지능대상 수상

등급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