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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한상훈을 말한다

LG배 결승 올라 이세돌과 대결

2007-11-19 오전 10:12:52 입력 / 2007-11-20 오전 9:34:16 수정

추웠던 작년 겨울-입단까지 모진 매에 단련되다
흔히 상식선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는 이를 두고 우리는 ‘괴물’이라는 ‘찬사 아닌 찬사’를 보낸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유난히 괴물이 많았다. 영화 ‘괴물’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프로야구에서는 느닷없이 나타난 ‘괴물’ 한화의 류현진은 한국의 에이스로서 급성장했다. 타점 높은 강타로 프로배구 코트를 휘저었던 삼성화재의 용병 레안드로도 ‘괴물’로 불렸다.

필자는 한상훈에 대해 여태 언급한 적이 없다. LG배, 삼성화재배에서 선전하여 8강까지 갔을 때도 그랬다. 초단이 성적을 내는 것은 이미 일반화가 된 사실이고, 세계대회의 수준이 국내대회 보다 현저히 낫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변은 8강, 4강까지는 이어지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번 한상훈의 이변은 결승까지 상륙해있다. 이세돌, 이창호, 박영훈, 조한승, 박정상 등은 물론이요, 무명 자객들이 즐비한 국내기전에서 우승하는 것이 결코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바둑계에도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LG배 준결승전 모습. 한상훈 초단은 온소진 4단을 물리치고 초단으로서 최초로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지난주 벌어진 LG배에서 초단 신분으로서 일약 결승에 점프한 진기록의 사나이 한상훈은 88년 서울 생이다. 중1때 부터 입단대회를 15번 참가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것이 못 된다. 프로가 된 사람치고 10번쯤 도전 안 해 본 사람은 또 그 누구던가. 그 보다는 본선리그에만 10번째 올라갔다는 사실이 더욱 눈물겨운 이력.

사실 한상훈은 작년에 이미 ‘연구생 정년’ 18세를 넘겨버렸다. 그러나 한국기원에서는 그의 기재를 애석하게 생각하여 1년간 퇴출 유예를 결정했다. 만약 닫혀가던 입단 철문 앞에서 ‘열려라 참깨’를 끝내 기억해 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퇴출 연구생과 세계대회 결승진출자의 갭이 이토록 근소한 것인지, 갑자기 소름이 ‘쫘악’ 끼친다.

제2의 이창호냐 이세돌이냐?
입단한지 정확히 61일 만에 출전했던 LG배가 평생 기억에 남을 듯하다. 첫 판에서 류시훈을 이긴 것은 뉴스가 안 된다. 16강전에서 중국 1위 구리의 대마를 도륙하고 쾌승을 거둔다. 아마도 이 한판에서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번 원정에서 류징·온소진을 이기며 초단의 신분으로 결승까지 점프한다.

사실 구리를 이길 때 중국 단장인 왕루난은 “구리가 한국의 초단에게 져 많이 놀랐다. 한상훈은 평범한 기사가 아니며 그의 실력도 초단이 아니다.”며 혀를 내둘렀다. 또 중국 국가대표 감독인 마샤오춘도 삼성화재배에서 자신에게 일격을 가한 한상훈에게 “뭐, 저런 초단이 다 있는가?”하면서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을 지은 것도 유명한 일화.


▲ LG배 8강전에서 구리 9단과 대국을 펼치고 있는 한상훈 초단.

“노력파이다. 끈기 있고 줄기차게 노력한다. 오히려 입단을 한 다음 공부량이 줄어든다고 울상이다. 기풍은 이창호를 닮았다.” (스승 김원)
서너달 전에만 해도 이러한 평가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다. 혹자는 이세돌처럼 파이터 기질이 엿보인다고 한다. 실리 지향적이고 공격과 타개에 상당히 능수능란한 바둑. 수읽기에서 엄청난 파워를 자랑한다.

정작 한상훈은 좋아하는 기사도 이세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창호도 인격적으로도 실력으로도 많이 닮고 싶단다. 좋아하는 기사가 ‘이세돌이냐 이창호냐’는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장점으로는 이미 대성하기엔 모자라는 시절이라는 것.

따라서 부분적인 전투도 뛰어나지만 경우에 따른 임기응변이 일류기사로 가는 첩경. 이 부분을 한상훈은 제대로 갖추었다는 주위의 평가이다. 잔 수를 잘 보고 세밀하고 정밀한 수읽기가 뒷받침되는 임기응변이 이세돌의 특성이라면 용기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물과 같이 전체적인 흐름을 타는 능력은 이창호의 특성이다.

한상훈은 아직 골격이 갖추어진 기사가 아니며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저력’이란 부분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일례로 온소진과의 LG배 4강전에서는 중반 한 때 뒤지고 있었지만 정교한 끝내기로 뒤집는 저력을 발휘했다.

호방하고 명랑한 성격-집요한 낭만파

성격적으로는 이세돌이나 구리를 닮은듯 시원시원하고 호방하다. 절제된 감정으로 언제든지 겸손함을 자랑하는 이창호 스타일은 분명 아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처럼 대단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막다른 골목 마지막 찬스에서도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집요한 낭만파이다.

“고1때부터 입단대회 나갈 때 마다 자신은 있었다.” 강심장이라는 사실도 장점이다. 대 기사와 만날 때도 떨리지 않는다든지 자신감이 언제든지 충만하다는 것은 그에겐 큰 장점이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입단 당시로 돌아가 보면 얼마나 낙관적인지 알 수 있다. 자기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좋다.

“대국시 자세가 중요하다. 나도 손 따라 두곤 하는데 자신이 생각한 뒤에 두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실수 없이 두려고 한다. 포석이 조금 약한 편이다. 목표는 우승이다. 떨리거나 긴장되지는 않는다.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일단 즐기고 있다.”

한상훈이 그간 큰 시합 후에 밝힌 그의 감상들이다. 중심이 잡혀있는 청년이다. 그에게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후회하지 않는 바둑을 두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스릴을 즐기며 주변에서 주목하면 더 힘이 솟는 스타 기질도 다분하다.


▲ 삼성화재배 16강전에서 이창호 9단과 대국을 펼치고 있는 한상훈 초단.

냉정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이창호가 최강기사라고 할 때는 이겨줄 때 꼭 이겨주어서 그렇다고, 이세돌이 최강기사라고 할 때는 큰 시합 중요한 시합은 어김없이 낚아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상훈을 우리의 기대주라고 표하는 데는 일단 LG배, 삼성화재배 등 세계대회에서의 성적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상훈의 성적표를 뒤적여보면 허한 점이 발견된다. 먼저 입단 후 3~4월 두 달간은 17승2패를 기록하며 초고속 상승세를 탔다. 조한승을 꺾은 것이 가장 큰 이력이다.

5~7월 14승 9패로 양호한 전적이지만 약간은 숨고르기 장세에 들어간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는 윤준상 조한승에게 2패를 당한 것은 물론, 백홍석, 안조영, 목진석, 김지석 등 ‘대등하리라’ 판단되는 상위랭커에게는 모두 패했다. 다만 박영훈에게 왕위전 4강에서 이긴 것이 눈에 띈다.

8월 이후 지금까지 10승 5패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바로 LG배에서 결승에 점프한 것이 대단한 성과인데, 사실 박영훈, 안조영, 조한승에게 거푸 패했으며 이창호에게 삼성화재배에서 이긴 것이 상위랭커에게 유일하게 이긴 것이다.

종합해보면, 구리, 이창호, 박영훈, 조한승을 이겨봤다는 점은 물론 크다. 그러나 입단 이후 홍민표, 박정상, 박영훈, 안조영, 백홍석, 김지석, 윤준상, 목진석, 김주호 등이 한상훈에게 모두 패점을 안았다는 것은 그의 앞길이 결코 탄탄대로가 아님을 시사한다. 위에 거명한 기사는 한국바둑계의 기린아들로 20위권 기사이다.

왕위전 4강에서 꺾었던 박영훈에게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는 패했다. 왕위전 8강에서 꺾었던 조한승에게는 그 뒤 두 번 거푸 패했다. 아직은 한상훈의 전력을 모르기 때문에 거목들이 나가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일각의 판단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해 겨울은 따뜻했노라
랭킹1위 이세돌은 명인전, GS칼텍스배, 물가정보배, 바둑왕전, 입신최강전, 도요타덴소배, TV아시아선수권 등 7관왕이다. 국수전과 삼성화재배 LG배를 석권할 경우 10관왕도 가능한 상황이다. 최근 이세돌의 용맹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거의 매판마다 상대의 대마가 휘청거릴 정도의 위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수많은 대국을 앞에 두고도 컨디션이 좋을 때 대국이 많은 것도 복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한상훈은 지구를 한손으로 들어버리려는 골리앗 이세돌과 일생일대의 대회전을 남겨놓고 있다. 수면 위의 느긋한 모습과 달리 수면 아래에서의 고통은 길었다. ‘남아 20세면 세상을 평정한다.’는 남이 장군의 말씀처럼 20세의 청년 한상훈은 이참에 확실히 올라서야 한다.

주위의 달콤한 칭찬을 이제는 잊고 작년 겨울을 생각하라. 그리하여 아직도 한국기원 5층 옥탑방에서 주말마다 ‘퇴출’을 걱정하면서 불안한 경쟁을 하는 10대 후반 연구생에게 희망이 되어라. 그가 철권 이세돌과의 승부에 마치 입단결정국처럼 사력을 다 해야 하는 이유이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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