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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이름은 조치훈!

12일부터 기성전 도전기 막 올라 - 3번째 일인자 도전

2008-01-12 오후 3:51:23 입력 / 2008-01-14 오전 10:50:03 수정

1980년 초까지 새벽 6시 라디오뉴스를 자주 애청했다. 그 시절 귀를 쫑긋 세우며 필자의 가슴을 뛰게 만든 소식이 있다. 오직 뜨거운 가슴으로 한국혼(魂)을 일깨운 조치훈과 3000안타의 주인공 야구선수 장훈이었다. 특히 조치훈의 경우 명인전에서 우승했을 당시 톱뉴스로 올라오던 기억이 지금도 전율이다. IMF시절, 우리를 신명나게 만들었던 박찬호와 박세리의 낭보와 비견될 정도.

필자가 중년이 되었음에도, 조치훈은 아직도 식지 않은 가슴으로 일본1위 기성전에 다시금 도전한다는 소식이다. 제32기 기성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조치훈이 장쉬에게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관문 야마시타게이고만 젖히면 8년 만에 7번기의 패자(覇者)가 된다.


50대의 나이에 화려한 현역
조치훈의 나이를 잊은 투혼은 끝이 없다. 올해만 해도 3월에 NHK속기전에서 우승한 다음, 11월 십단전을 방어해 내며 통산 71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로부터 두 달 만에 기성에 도전하게 된 것. 그가 1981년에 획득했고 낙마한 다음 94년도에 또다시 획득했던 그 기성 말이다.

그는 40대가 판치던 70년대 바둑계에서 30대도 아닌 20대에(정확히는 19세) 열도를 정복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을 정복했다는 것은 세계를 정복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40대 타이틀홀더가 한 명도 없는 21세기에도 유일하게 50대의 화려한 현역 조치훈.

물론 시절은 바뀌었다. 그가 20대 때는 일본 바둑계가 세계바둑계와 동일시되었던 때이고, 그가 50대인 지금은 변방국에 가까운 시절이다. 따라서 변방에서 제후가 된다는 것은 대국 황제의 눈으로 볼 때는 일개의 성을 주름잡는 왕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두는 조치훈이라면 다르다. 동렬의 조훈현, 서봉수, 고바야시, 섭위평 등이 모조리 뒷전으로 나가앉은 시절에 아직도 자식뻘 되는 절정의 고수들과 도전기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만해도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질 않은가.

그와 승부를 펼쳤던 시대를 달리한 영웅
그가 상대한 승부사만 해도 일본바둑계의 등장인물을 거의 다 꺼내 와야 할 것이다. 1975년 19세의 나이로 "대마킬러' 가토마사오에게 도전하여 프로10걸전을 우승했다. 1980년에는 그 유명한 '두 번 착수 무승부'를 연출하기도 하며 오다케히데오에게 명인을 가져왔다.

1981년에는 잘나가던 다케미야에게 '당신이 지향하는 것은 우주류가 아니고 허무류'임을 일깨워주었고, 1983년에는 1년에 4판만 둔다는 '노호' 후지사와슈코에게 기성을 빼앗았다. 고바야시에게는 '3패 후 4연승'의 신화를 보여주었다. 

또 그보다 후배인 왕리청, 요다노리모토, 장쉬, 야마시타게이고, 하네나오키 등 에게도 바둑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을 '늙은 생강'의 회초리로 일깨워주었다.



▲ 야마시타게이고와 펼친 십단전 번기승부.(출처 - www.sankei.co.jp/igo)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눈물겹도록 자랑스럽다
그를 아직도 일본인이라고 착각하는 일부 바둑 팬들의 시선에 가장 마음 아파한다. 일본인과 결혼하여 50년 동안 일본의 물과 쌀을 먹고 있지만 그는 엄연한 뜨거운 피가 흐르는 한국인이다. 귀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수년전 삼성화재배 관계 차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호텔로비에서 관계자를 보자마자 소주부터 찾던 사람이다. 덧붙이길 자신의 가방에도 팩소주가 있지만, 그걸 아껴 먹으려고 한다고 했다.

학생시절이던 1980년 어느 날. 필자는 부산 김해공항에서 형인 조상연과 고 김수영이 그를 영접하러 나온 모습을 우연히 목도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음날 부산KBS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기에 TV를 켰다. 부푼 기대와는 달리 그에게서 한마디를 듣는 과정은 몹시 힘들었다. 마치 한국에서 1년도 채 살지 못한 외국인의 언변이었다. 근 20년을 바깥에서 산 사람이 어이 고국 말이 유창하겠는가.

조치훈을 또 생각한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굳이 장시간 인터뷰를 꼭 한국어로 하는 이유야 말고 당당한 한국인임을 과시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아니었겠냐고. 어쩌면 그 당시 고국으로 오는 짧은 비행기 안에서도 인터뷰연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로배에서 국가대항전이 펼쳐질 때 한국대표로 나서고 싶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1993년 이창호와 동양증권배 우승을 다투던 1993년의 제주. 김인, 조훈현과 함께한 자리에서 그는 말석이라도 좋으니 한국대표로 뽑아달라고 애원한 적이 있다.

동석한 필자는,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촉촉해진 그의 눈이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활약한다면 3~4위를 다툴 것이라는 솔직한 고백을 덧붙였다. 따라서 태극기를 달고서 단 한번이라도 싸워보고 싶다는 애절한 소원을 말했다. 당시 한국바둑계는 '4인방시대'였다.

그가 도대체 이렇게 질기게 끈질기게 정상을 향한 도전의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단 바둑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구도정신이 탁월하다. 또한 어쩌면 일본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정작 한국인이라고 기대고 싶어도 받아주지 않는 어정쩡한 분위기도 그를 정신적으로 강하게 만들었다.

"나는 부산이 고향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라 그런지 이곳에 오면 마음이 아주 좋다…. 온천도 매일 가고 좋다."(제6회 농심배에서 조치훈의 인터뷰 중)


▲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대 조치훈 9단의 본인방전 대국 사진.(출처 - 월간바둑 1992년 9월호)

7번기의 제왕
"당신은 왜 7번기에서는 특출한 힘을 쓰는 것이야?" 과거 연패 후 연승을 기록했던 본인방전에서 그 자존심 강한 고바야시고이치가 조치훈에게 질린다는 투로 내뱉은 말이다.

그는 7번기의 제왕이다. 기성·명인·본인방전에 37번을 출전하여 29승8패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기성전에 11회 출전하여 8승3패(7번승부의 전체시리즈의 성적임). 명인전에 12회 출전해서는 9승 3패. 본인방전에는 14회 출전하여 12승2패의 만화 같은 성적을 내었다. 필시 3대기전이라면 초일류기사가 도전해왔을 터인데 말이다.

조치훈은 현재 타이틀 획득 71회로 일본바둑 사상 최다 개인통산 타이틀 획득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에 29회가 일본 3대 타이틀 획득이다.

8년 만의 화려한 휴가
현재 일본 바둑계를 주도하고 있는 장쉬·다카오신지·야마시타게이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본 7대 타이틀인 십단전을 보유하고 있는 조치훈은 2008년에도 기록갱신의 행마를 계속 이어나갈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7번기이고 1위 기성전이라면 그에게는 아무런 통계가 들어맞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정신력만 소용 있을 뿐이다. 혹자는 일본 바둑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 가지고는 불충분하다. 일본이 쇠잔해졌다고 하면 그 떢을 조치훈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 같이 활약하던 고바야시, 왕리청, 왕밍완이 쇠잔해졌고 한참 후배인 요다노리모토까지 쇠잔해진 지금이다.

그가 가진 DNA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조치훈이 1998년 본인방 10연패를 달성했을 때 "이젠 일본 최강이 세계 최강이 아니기에 결코 기쁘지 않다"는 논지의 인터뷰를 기억한다. 아울러 "이겼을 때의 기쁨보다 졌을 때의 고통이 더 크다."고 했다.

한번 기세가 꺾인 상태에서도 터미네이터같은 생명력을 보이는 것이 강점이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이긴다. 90년대 본인방도전기에서 고바야시고이치와의 3년에 걸친 연패 후 연승을 기억하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작년 45기 십단전도 전기에서 야마시타는 조치훈의 하나 남은 타이틀을 뺏으러 왔다. 그러나 2:2인 상황에서 버릇처럼 조치훈은 막판의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재작년 44기 십단전 도전기에서도 조치훈에게 3:1로 고배를 마셨던 야마시타는 기성·왕좌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랭킹 1위. 이번 브라질 상파울로에서(1국) 벌어지는 기성전시리즈는 일본 일인자 쟁패전이다. 만약 조치훈이 이긴다면 기성과 십단을 보유한 명실공이 일인자가 될 것이며 야마시타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는 응원한다. 趙는 우리들의 영웅이므로
'내 이름은 튜니티'라는 영화가 있었다. '10·26'이 일어난 해에 수입되었던 코믹서부극으로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어서 속편이 3편까지 이어졌다. 1980년에 명인을 따냈고 1983년에 기성마저 따냈던 '조치훈 영화'는 또다시 간판을 올린다. 영화 제목은 무엇이 적당할까. 필자는 이렇게 정했다. '아직도 내 이름은 조치훈'.

"오랜만에 기성전 결승에 올라 큰 바둑을 둘 수 있어서 좋다. 야마시타에게는 요즘 조금 성적이 좋아지고 있다. 재미있는 승부를 하고 싶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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