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 한 지역에 멧돼지가 내려와서 밭의 감자를 다 캐먹고 달아나 농민들의 주름살을 키우더니 이번에는 한강변에도 출몰해 당국은 긴급히 포수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멧돼지가 서울 도심까지 나타난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은 경기도 광주 소재의 남한산성이나 심지어 강원도에서 산 능선을 타고 멧돼지가 이동해 서울까지 도달했을 가능성도 내놓고 있다.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이일범 교수 말에 의하면 “모계 생활을 하는 멧돼지 무리에서 간간이 수컷이 독립생활을 위해 무리를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멧돼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랑이·표범·스라소니 같은 천적이 사라짐에 따라서 개체수가 늘어나자 새 먹잇감과 서식지를 찾아나서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맹수들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1910년에 대한제국을 강제로 침탈한 일본은 곧 한반도 전역에 포고령을 내려 맹수를 포획하기에 이르렀다. 명목상으로는 치안을 위해 그러했겠지만 그것보다도 근본적인 이유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들을 없앰으로써 민족혼의 말살을 도모한 것이었다.
위의 맹수들 중에서 표범은 식육목 고양이과의 포유류다. 몸에 점이 많아 ‘돈점박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통 단독 생활을 하며 낮에는 숲 속이나 나무그늘에서 쉬다가 밤이면 사냥을 시작한다. 유연하고 날렵한 몸을 지닌 표범은 주로 영양·사슴·소와 원숭이·개 등도 습격하고 그 밖에 새와 파충류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쓰러뜨린 먹이는 나무 위에 끌어올려 두고, 다 먹을 때까지 그곳을 찾아 온다. 표범은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힘이 세고 나무타기의 명수이며 헤엄을 잘 친다.
이번에 소개할 9단은 표범과 흡사한 습성을 지녔는데 바로 ‘안부산’이다. 그는 작년(2007년) 추석 연휴가 끝난 며칠 후 타이젬 9단으로 들어와 367전 242승 120패 5무를 기록했다. 타이젬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면 전승 9단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안부산은 7단에서 14연승을 달리다가 중국의 knightly(당시 7단이었지만 현재는 강 9단)에게 패해 전승 9단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그는 타이젬의 많은 강타자들과 두는 것을 전혀 두렵지 않게 여기는 바람에,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갔다 오듯 8단을 방문한 것이 총 두차례.
‘안부산’은 어떤 의미로 지었을까? 혹시 안산과 부산에 적(籍)을 두고 있어 이것을 동기로 만든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보았다.
안부산의 기풍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의 맹장(猛將) tdqm과 두었던(2008년 2월 8일 21시) 대국은 그의 기풍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바둑은 초반부터 전투의 불이 붙었다. 안부산은 고수들 바둑에서 가끔 등장하는 전자(田字) 행마로써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했다.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요석이 잡히자, 중국 기사는 처절한 수읽기로 계속 강수를 날리면서 국면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태였다.
쌍방간에 심열(心熱)을 쏟으면서 반상은 마치 대형 할인 매장에서 영업시간이 끝날 때쯤 판매원이 떨이를 외치면 사방에서 밀려드는 인파처럼 어지럽게 바둑돌이 놓여있는 혼돈 그 자체였다. 이때 tdqm의 강펀치가 작렬하면서 안부산은 적군에게 둘러쌓여 대마를 수습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살면 우세하지만 잡히면 바로 천길만길의 아득한 절벽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안부산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게 해주는 수가 나왔다.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 듯한 절묘한 응수타진 한 수는 그가 명인의 기량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 수로써 그는 영화 ‘빠삐용’에서 남미 프랑스령(領)의 악명 높은 기아나 형무소를 탈출해 자유를 찾은 빠삐용처럼 사지(死地)를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금상첨화(錦上添花)로 팻감이 많은 복을 누리면서 정극인이 지었던 ‘상춘곡(賞春曲)’의 봄나들이 가듯 부담스러운 패도 꽃놀이패로 바꿔가며 의기양양(意氣揚揚)한 개선장군이 됐다.
동료들에게 “포석이 약하다.”라는 지적을 받았던 그가 수많은 타이젬의 강호의 고수들과 한판 한판의 겨루기를 통해 상대방의 장점을 흡수해 자신의 내공으로 쌓아 이제는 더 이상 포석이 약하지 않은 듯 하다. 그의 유일한 단점을 한가지 꼽으라면 국면이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시간패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부산에게 베팅할 때에는 이점을 참고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소문에 의하면 한국 바둑계는 30살만 넘어도 성적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요사이 주류(主流)라고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다. 일본의 두 기사를 예로 들어보겠다.
사까다에이오(坂田榮男)는 1920년에 태어났는데 1963년에 ‘본인방(本因坊)’과 ‘명인(名人)’이라는 최고 상금의 두 기전에서 우승하며 기계의 일인자로 우뚝 섰다. 이듬해 1964년에는 타이틀전을 무려 일곱 차례를 치러 공식기전 30승2패, 승률 93.75%를 기록해 무적의 사까다로 명성이 자자했다. 참고로 이창호의 최고 승률은 1988년 75승 10패, 승률 88.24%다.
후지사와슈코(藤澤秀行)는 1925년에 처음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는 한국 바둑팬들에게 조훈현의 사부로 잘 알려져 있다. 후지사와는 1992년 제 40기 왕좌전(王座戰)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고바야시고이찌(小林光一)에게 3대2로 승리해 67세 최고령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가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상금 1위의 기성전(棋聖戰)에서 6기 연속 우승한 기록보다 더 위대한 불멸의 기록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후지사와의 바둑에 관한 열정은 바둑을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까지도 감동을 주었다.
다음은 위에서 설명했던 tdqm과의 실전 대국이다.
| | | 백이 상변을 갈라쳐 초반부터 힘겨루기가 한참이다. 흑19로 씌운것이 좋은 감각이었다. 여기에서 백은 상변 백 두점을 버리고 두었으면 간명했던것 같다. |  | | | | | | 백이 상변 한점을 움직이면서 복잡한 전투의 시작이다. 백8로 두었을때 흑9,11은 꼭 익혀둘만한 좋은 수법이다. 흑13의 한점을 사석으로 이용해 바깥으로 나가는것도 행마의 기본요령이라 하겠다. 흑33까지는 언뜻봐서 상변의 흑의 실리가 큰것 같다. |  | | | | | 흑은 상변의 가일수를 하기 전에 좌변의 백의 모양에 약점을 남겨두었는데 이러한 점이 프로와 아마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별것 아닌 듯 하지만 이런 점들이 때로는 승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백이 좌하귀를 선점해서 국면은 누가 유리한지 알 수 없게 됐다. 백20은 백26으로 뻗으면 무난하지만 주위의 백이 강하므로 실전처럼 강하게 두는것이 기세다. 백28로 일선으로 넘어가면서 흑 다섯점의 안위가 걱정인 시점에서 흑29라는 날카로운 응수타진이 등장했다. 백에게 '가'와 '나'를 묻고 있는 수로서 실타래처럼 얽힌 국면의 돌파구다. |  | | | | | 백1로 이으며 버티고 싶지만 흑의 교묘한 움직임으로 인해 백이 촉촉수다. |  | | | | | 흑1로 붙이면서 흑의 교묘한 타개가 눈부시다. 백은 곳곳에 약점이 있어서 흑을 잡기가 힘들다. 큰 패가 난 장면에서 백36을 둔것은 좌하 백의 안정을 위해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변 흑과 어려운 수싸움이 붙었다. 흑57까지 중앙의 백도 아직 완생은 아니어서 여전히 국면은 전투의 연속이다. |  | | | | | 우하귀 전투에서 흑1이 백 모양의 급소다. 백은 좌하귀를 버리는 대신 우하귀를 살리지만 급한곳이 많다. 중앙 백을 살리는 사이 흑29로 안정을 해서는 사실상 승패는 결정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투로 일관한 기세 넘치는 바둑인 가운데 좌변의 응수타진 한 수가 날카로웠고 이후에도 흑은 백의 강수를 잘 받아넘겨 승리했다. |  | | | | |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그의 바둑에 관한 열정은 타이젬에 불청객처럼 나타났다. 올 한해 그의 부활을 지켜보는 것도 바둑인의 한 사람으로서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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