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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아마선수권

참관기/중국과의 피말리는 반집승②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 참관기

2008-06-04 오후 3:27:44 입력 / 2008-06-04 오후 4:10:59 수정

하성봉 아마7단이 5월 28일부터 31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29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8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성봉 아마7단과 동행한 대한바둑협회 유나현 씨가 참관기를 전했다. [정리-정연주]

 


[5월 29일]
3라운드는 국무총리배, 아시아바둑선수권대회에 남자 개인전 태국선수로 두 번이나 한국에 왔던 Ruechagorn이다. 3라운드 상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첫날 저녁에 만났던 태국의 빠오라는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언니 태국 선수랑 한국 선수랑 다음에 바둑 둬요.”라며 서툰 한국어로 말한다. 표정이 어둡다. 동양3국과 만나는 외국선수들은 저승사자를 만난 듯 두기도 전에 벌벌 떤다.

3라운드 역시 불계승으로 끝났다. 4라운드를 기다리면서 다음 라운드는 중국일 것 같다고 말하자 “언젠가는 붙을 것이니까 상관없어. 아침에는 컨디션이 별로라 안 붙었으면 좋겠지만…” 이라고 말하며 담담한 표정이다. 4라운드에서 일본은 우승 후보에게 좀 센 상대를 붙인 사례가 많다고 해서 중국일 것이라 이야기 했다. 예상과는 달리 4라운드의 상대는 일본이었다. 쉽지 않은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10집 반을 이겼다.


대회는 8라운드지만 이제부터라고 말한다. 점점 만만치 않은 상대들을 만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일본을 이기자 여기저기서 인터뷰가 이어지며 취재 열기가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 대회를 하면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오지 않는다. 물론 홍보가 미흡하다는 것도 느끼고 있지만, 취재도 없이 책상 앞에서 쓰는 것 보다 취재 열기까지도 전해주는 것을 바둑팬들이 원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까웠다.

저녁에는 아마 국수전의 주최측인 동아일보사의 이민희 국장님이 그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격려한다. 단장인 유병호 9단, 이민희 국장님과 그는 바둑계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유병호 9단에게 “세미프로제도에 대한 사범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듣고 싶습니다.”라고 묻자 “입단을 못한 연구생들이 많아 나도 안타깝지만 이 제도는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어.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공조해서 잘 풀어나가 해. 한쪽만 밀고 나간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라고 말씀하신다.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이 있는 한조몬으로 가는 길에 그가 “내일은 5라운드는 중국일 것 같아. 오전 대국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꼭 그럴 것 같은 기분이야.” 라고 이야기 한다.



[5월 30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에게 전화를 한다. 다른 호텔이기 때문에 전화를 걸어 바꿔달라고 하자 잠에서 막 깬 듯한 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린다.
“일어났어?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는 게 어때?”라고 묻자 “그래, 어제 거기 괜찮아 보이더라.”한다. 조금 이른 시간에 만나 미리 봐두었던 일본식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다시 일본기원으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대국장으로 들어가 대진표를 확인한다. ‘앗! 중국이다!’ 돌아와서 하국수에게 “중국이야. 잘 할 수 있지?”, “그럼” 웃으며 말한다. 웃는 그를 보니 예감이 좋다. 하지만 결승이나 다름 없는 중국과의 대국이다. 대국이 시작 되었고 예민한 성격인 나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의 바둑을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나만의 이해 방법이 있다. 한 시간여 지났을까? 갑자기 그의 귀가 빨개진다. 형세가 불리해진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병호 9단에게 형세를 물었는데, 형세가 나빠졌다고 하신다. 그는 형세가 불리해지면 귀가 빨개지는 습관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의 고사에 이적의 수라는 것이 생각난다. 중국 통역을 맡은 리팅의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보니, 형세가 역전 됐음을 말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범님, 성봉이 귀가 돌아왔어요. 다시 역전된 것 같아요.”라고 하자 유병호 9단이 “허~ 성봉이가 좋아졌네. 그런 걸 또 어떻게 알았어?” 하신다. “아마국수전 결승 전에서도 성봉이 귀가 빨개졌다 다시 돌아왔는데 이겼거든요.”
대화가 오가는 사이 대국은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그는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계가를 계속한다. 귀도 빨개졌다 돌아왔다 반복한다. 형세가 미세한 모양이다. 가슴이 두근댄다. 많은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대국중인 두 선수를 둘러쌌다.

계가가 시작 되었다. 두 선수는 계가를 하고 있는데 대회 진행자가 다가오자 그는 계가를 멈췄다. 중국과 계가법이 달라서 진행자가 대신 해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진행자가 버벅대자 오다케 9단이 본인들이 계가를 하게끔 하라고 지시한다.

계가가 다시 시작되었다. 패가 났었기 때문에 사석이 많다. 중국 선수의 손에서 마지막 사석이 떨어졌다. 사석이 많아서 인지 그와 중국 선수의 집이 다 메워졌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남은 사석이 쥐어져있다. 이제 그의 손에 승부가 달려있다.
멀리서 보아서 사석이 몇 개인지 세어지지 않는다. “나나!” 진행자가 외친다. 7개라는 일본어. 반집승이었다. 주변에 있던 선수와 관계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친다. 전율이 느껴진다.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던 중국 단장인 왕루난 감독도 일어나며, 중국 선수에게 패배를 인정하는지 물어본다. 중국 선수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4시간여의 바둑이 끝나고, 그는 좀 지쳐 보인다.

“성봉아! 수고했어. 오늘은 도시락 말고 나가서 먹자. 뭐 먹고 싶어?”라고 묻자 “간단히 라면 먹자. 시간도 없고….” 우리는 라면을 먹으러 근처로 항했다.

6라운드 시작이 5분 남았다. 점점 좁혀지고 있다. 5승자는 3명. 한국의 하성봉 아마7단, 아르헨티나의 Fernando AGUILAR 그리고 헝가리의 Pal BALOGH다. 6라운드 상대자는 헝가리 선수다. 한 시간여 자났을까? 그가 검토실에 나타나 있다. 물론 하성봉 아마7단의 승! 내일은 아르헨티나 선수와 둔다. 아르헨티나 선수는 프로세계대회에 남미대표로 자주 출전하는 남미에서 알아주는 최고수이다. 또한 엄청난 장고를 두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국수를 믿는다. ‘이제 누가 하성봉을 이길 수 있으랴!'


여기에 온 건 놀러온 것이 아니다. 대회를 참관하고, 대한바둑협회에서 주관하는 국무총리배 세계 아마바둑선수권 대회나 아시아 바둑선수권대회를 보다 나은 대회로 만들기 위함이다. 대회장 이 곳 저 곳을 둘러보았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대회 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것은 3가지 정도이다.
첫번째는 대국이 끝나면 선수가 원할 때 선수2명과 일본의 프로기사 그리고 통역이 앉아서 복기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에 대회에서 볼 수 없는 언제 봐도 가장 부럽고 또 부러운 장면이다.
두번째는 많은 수의 스탭이다. 수가 많다고 해서 좋은 대회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를 배려하고, 선수의 입장에서 많은 것들을 지원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대회를 진행하는 나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마지막은 협찬사에 대한 충분한 광고 효과이다. 일단 많은 기자들이 취재한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곳곳에 붙어 있는 일본항공의 광고 포스터나 오토데스크라는 회사의 엑스베너가 눈에 띈다. 큰 홍보 효과는 아닐지 몰라도, 협찬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된다. 대한바둑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번 국무총리배 세계아마선수권대회에 이런 것들을 어떻게 접목해 나아갈지 돌아가서 잘 고민해 봐야겠다.



오늘 바둑은 끝났다. “나 홍도장에 가서 복기해 보고 싶어.”라며 그가 말한다. 호주대표인 라파엘 신씨와 우리는 홍도장으로 향했다. 도장에는 리그전이 있어 홍선생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하국수는 복기는 미뤄놓고 도장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과 바둑을 둔다. 나 역시 도장 원장님과 13줄 바둑판에서 한 판 둔다.


저녁식사로 라파엘 신씨가 맛있는 밥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다같이 아사쿠사에 있는 한 복어 요리집에 갔다. “성봉이 덕분에 맛있고 좋은 것만 먹고 다니는 것 같아” 그도 오늘 복어 사시미를 처음 먹어본다며 신이 난 듯하다. 복어 사시미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한국에 돌아가도 그 맛이 나는 복어집이 있을까?
라파엘 신씨가 “성봉아. 호주로 와. 바둑하는 사람들은 뭐든 마음만 먹으면 최고가 될 수 있어”라며 그를 자극한다.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 마음을 굳히기 어려운 것이지. 기존에 있는 것들을 잃는다고 해서 두려워하면 그것은 힘들어.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면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기쁨이 더 클거야”라며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우린 자리를 옮겨 일본기원이 있는 이치가야로 돌아간다. 작년에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에 일본 선수로 참가했던 나가요를 만나기 위해서다. 나가요는 현재 요코하마에서 도장을 하고 있는데, 원생이 2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나가요는 연구생 출신 친구와 함께 왔다. 나가요가 자신이 만든 것이라면서 투명한 9줄 바둑판과 투명한 바둑알을 나에게 선물한다. 일본은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9줄 바둑판으로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며 설명해 준다.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또 아쉬움을 달랜다.

호텔로 돌아와 하국수에게 전화를 걸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며 “내일이 마지막이다. 긴장 늦추지 말고, 잘하자~”
중국과의 피 말리는 승부, 그리고 복어 사시미 만찬, 몸은 힘든 하루였지만 기분 좋게 하루를 마감한다.

TYGEM / 대한바둑협회 유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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