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카이 바둑 텔레비젼에서 제5회 동양종합금융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 녹화가 있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던 나는 여의도에 가는 버스 안에서 이날 녹화할 오프닝과 기보를 외우다 보니 차는 어느덧 국회 의사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녹화 시간은 오후 두 시부터 시작이지만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러나, 앞의 녹화가 늦게 시작돼 다섯 시쯤에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첫 편을 끝낸 방송 관계자들이 부조정실에서 나오는 순간 오늘의 주인공 우정과♡는 왠지 몸 상태가 피곤해 보인다.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점심 메뉴로 부대찌게 주문이 끝나자 맞은 편에 위치한 우정과♡가 내게 묻는다. “그런데, 누구신가요?” 따르던 물을 마시면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아무개라 하고요. 타이젬에서 9단 분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정색을 하며 내게 다시 묻는다. “그런데, 제 아이디는 왜 올려주지 않습니까? 의외의 물음에 당황한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원래는 3월쯤에 올리려고 했지만 유저수첩에서 다루는 바람에 차일피일 미루게 됐네요.”
점심을 마치고 포만감으로 느릿느릿 걷고 있는 데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돌린 우정과♡가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나는 돼지바를 먹으면서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장고를 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정과♡와 카메라를 보고 사이좋게 앉았다. 오프닝에서 몇 차례 NG가 나고 준결승전의 하이라이트에 다다르자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손길은 쉴 틈이 없었다. 평소 타이젬 대국실에서 초속기 대국을 즐기던 것처럼 대마 사활이 걸린 장면에서도 컴퓨터처럼 빠른 수읽기를 보여주며 스튜디오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우정과♡는 타이젬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거 라이브 바둑 시절부터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는 대기실에 9단들이 없을 경우 7단들과 종종 두 점 접바둑을 두어서 프로의 접바둑을 궁금해하는 이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승단 규정이 바뀌어 호선과 정선만 승강급 대국으로 인정하므로 그의 접바둑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우정과♡는 2002년 9월에 40전 전승으로 9단이 됐다. 그의 9단 총 전적은 2458전 1779승 679패로 승률이 72.4%다. 그는 소금처럼 짠 인천 당구 400이지만 8단으로 내려가 반성 당구를 친 적은 없다. 그의 기보를 찾아보니 30연승과 31연승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지금처럼 중국세가 강하면 힘든 일이겠지만 그래도 보통 기록은 아닌 듯 하다. 그의 기보에는 관전자가 1200명을 돌파하기도 했던 추억의 아이디 바둑조폭, 열시미와의 사활 대국, 제 1회 동양생명배 타이젬 바둑 오픈의 우승자 속기약해, 현란한 공격을 보여준 구렛나루걸, 몇 개월의 휴식기를 거쳐 다시 돌아온 중국의 강자 hua, 여전히 속기를 자랑하는 4k_grubby와의 혈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정과♡가 입단할 당시의 인터뷰를 월간지에서 옮겨 본다.
기자: ‘접바둑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접바둑을 잘 둔다고 들었습니다. 우정: 그렇지는 않아요. 도장에서 아이들과 접바둑을 둘 때 상대의 대마를 잡는 것을 보고 붙여 준 별명 같습니다. 약한 상대를 만나면 괜히 대마를 잡아보고 싶은 충동이 들긴 하죠.
기자: 입단대회 준비는 어떻게 했습니까? 우정: 주로 프로 기보를 많이 놓아봅니다. 얼마 전 성적이 나빠서 일본 슈에이(秀榮) 명인의 바둑을 많이 봤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없지는 않지만 수읽기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그의 기량에 경의를 표합니다.
기자: 자신의 기풍은 어떻습니까? 우정: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는 철저하게 실리를 중시합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세력을 쌓다가 번번이 졌거든요.
기자: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둑은 무엇입니까? 우정: 남과 다른 바둑을 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나중에 제 바둑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우정과♡의 기풍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리에 밝고 민감하다. 둘째, 수근대사전(일본 기원 발행)을 보는 것처럼 타개 능력이 비범하다. 셋째, 포석감각이 좋고 수읽기가 빠르며 행마가 유연하다. 넷째, 끝내기가 강하고 복잡한 실전 사활도 잘 푼다. 다섯째, 가끔 많은 이익을 보려 하다가 역습을 당해 팬들을 안타깝게 한다. 여섯째, 20초 보다는 30초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처음에 소개했던 녹화방송이 끝나고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 바둑리그에서 전문기사 J가 군에 가면 대타로 출전하지 않을까요?” 사실은 그가 대타로 출전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걷던 걸음을 멈춘 그는 “랭킹 순위로 뽑기 때문에 다른 기사가 올라갈 겁니다. 저는 랭킹이 밀려서 힘들어요.” 올해 바둑리그에서 탈락해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지만 그의 차분한 대답에는 반드시 내년에 바둑리그에 들어가 큰 활약을 보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다음은 제 5회 동양생명배 한·중·일 세계바둑오픈에서 우승했던 중국의 강자 LORDRINGS와의 대국으로 우정과♡가 흑이다.
| | | 흑1로 달릴 때 백2로 붙여서 흑의 실리와 백의 두터움으로 요즘 유행하는 정석이다. 백이 선수를 잡아 좌상귀를 굳히자 흑이 바로 삭감에 들어갔다. 백22로 이은 것은 팻감을 주지 않기 위한 수이다. |  | | | | | | 만약 백1로 호구를 치면 흑4로 되젖히는 변화가 문제이다. 흑22로 패를 거는 수단이 있다. 이때 흑24가 절호의 팻감으로 흑이 쉽게 타개한다. 따라서 실전에 그냥 이은 것은 지금의 그림을 꺼린 것으로 흑4는 조이사제 대결에서 당시 이창호 9단이 시도한 신수였다. |  | | | | | 흑1로 꼬부리고 나올 때 백2로 밀고 흑3으로 달아나 어려운 전투지만 흑13까지 타협했다. 흑은 상변에 큰 모양을 만들었고 백도 귀를 두텁게 제압하고 우변의 큰 자리를 차지해 쌍방 불만이 없어 보인다. 참고로 흑11은 모양의 급소다. |  | | | | | 흑1은 대세점이다. 백2는 절호의 삭감수. 흑5로 기대기 공격을 시도할 때 백6으로 달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흑9는 침착한 수였다. 역전형의 기풍이라면 백10의 곳에 모자를 씌워 백을 공격하겠지만 대신에 하변의 흑11 큰 자리를 차지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백도 12로 붙여 몸싸움을 걸어온다. 흑도 13으로 젖혀 기세가 충돌했다. 흑19로 이었을 때 백은 20으로 참았으면 무난했다. 흑도 21로 귀를 지키는 정도이다. |  | | | | | 백1로 귀를 단수치자 흑도 2를 선수하고 흑4로 들여다 보면서 우변 백에게 넘어갈 것을 강요했다. 백도 기세로 5로 끊어 백13까지 흑은 우변의 백 석 점을 잡았고 백은 우하귀 흑 다섯 점을 잡았다. 이 바꿔치기는 흑이 좋았던 것 같다. 흑14는 우변의 '가'를 막는 것이 역끝내기로 큰 자리였다. |  | | | | | 백은 즉시 우변 눈목자 끝내기를 결행했어야 했다. 역끝내기 10집은 후수 20집에 달하는 것으로 흑의 실수를 잡을 기회였다. 참고로 백3으로 단수를 칠 때 흑은 백5자리로 반발할 수가 없다. 또한 백3은 백9로 후퇴하는 것과 한 집 차이가 난다. 하변은 흑이 '가'에 두더라도 백이 '나'에 뛰어드는 수가 있어 우변보다 급한 곳은 아니었다. 실전에서는 하변에서 백이 손따라 두는 바람에 우변을 흑이 막아 흑이 승기를 계속 이어갔다. |  | | | | | 2004년 7월부터 방영했던 16부작 KBS 미니시리즈 ‘풀하우스’는 아시아의 유명배우로 설정된 이영재(비 분)와 평범한 한 여자 한지은(송혜교 분)을 통해 과연 사랑이란 계약하고 이행할 수 있는 거래의 한 부분인가를 조명하고 가족이 무엇인지도 이야기 한 드라마다. 드라마 속의 풀하우스는 수채화처럼 근사한 배경 속에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인천시 옹진군 북도면 시도에 세운 세트장이다.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드라마 풀하우스처럼 근사하고 은은하며 아기자기한 우정과♡의 바둑을 보니 문득 머릿속에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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