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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바(P)-만능 스포츠 맨

국산바(P)-만능 스포츠 맨

2008-10-09 오전 10:17:57 입력


▲ 필자와 함께 산에 오르고 있는 유창혁, 이창호.


해마다 10월 3일 개천절이면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태백산에서는 배달바둑 한마당 축제가 열리고 부대 행사로는 천제단 대국이 열린다. 올해로 벌써 8번째를 맞이했고 이곳에서 대국한 기사들이 태백산의 정기를 받아 성적을 낸다고 한다.

나는 4년 전 이미 천제단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리포터로 출발하게 돼 무척 기뻤다. 분당에서 Y PD와 함께 3시간 반 동안을 달린 끝에 차에서 내리자 태백시 바둑 관계자 일행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도착하고 30분쯤 지나자 천제단 대국자인 이창호, 유창혁 두 기사와 다른 젊은 기사들도 합류했다. 주최측의 배려가 담긴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에 처음 보는 여자분 두 명이 들어왔다. 포항에서 올라온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인 듯한 그녀들은 바둑계의 슈퍼스타를 만나 너무 기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새로 개장한 O2 리조트라는 숙소는 깨끗하고 넓어 지내기가 편했다. 옆방에 자리를 잡은 젊은 기사가 공기 좋고 조용한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싱글벙글 좋아하니 그가 바로 국산바(P)다.

이튿날 아침 식사는 뷔페로 갔다. 태백시 기자가 “산에 올라갈 사람들은 든든하게 드세요.”라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O2 리조트의 기념 식수 행사였다. 두 그루의 나무에는 이창호, 유창혁 두 기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나무의 수명은 천 년이나 된다고 했다. 나무 주위에는 골프장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다. 이 곳 행사를 마무리하고 오전 10시에 배달바둑 한마당 축제 개회식이 있어서 두 기사 외에 다른 초대 받은 기사들도 차례로 나가서 인사를 했다.


드디어 입산! 예년에는 산 중턱까지 차로 이동한 이후 40분 정도만 오르면 됐지만 올해는 그 코스 중간에 위치한 절에 행사가 있어 어쩔수 없이 2시간 코스로 가야만 했다. 발이 빠르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젊은 기사들은 토끼처럼 재빠르게 올라가고 나이 든 기사들은 거북이처럼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갔다. 오랜만의 등산이라 숨을 헐떡이면서 천제단까지 800m 쯤 남았을 때 국산바(P) 기사가 벌써 내려오면서 “서두르면 천제단 제사를 볼 수 있을 것 같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 걸음으로 하산한다.

잠시 후 천제단에 도착하니 제사 지내는 광경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제사에 참여한 이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했고 여학생들은 머리에 흰 모자를 쓰고 흰 옷을 입은 모습이 햇빛에 반사돼 눈이 부셨다. 제사가 끝나자 기다리던 천제단 대국이 시작됐다. 등산객들도 이 대국에 관심이 많은지 저마다 가져온 카메라로 셔터를 눌러댔다. 대국자들은 등산객들에게 빙 둘러싸여 시작한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구경꾼들의 환호하는 소리가 종국을 암시해 주었다. 결과는 유창혁의 백 3집 반 승이었다.


▲ 유창혁(왼쪽)과 이창호가 대국을 시작하고 있다.


국산바(P)는 2004년 11월에 첫 9단 대국을 두었으니 만 4년 가까이 된 셈이다. 전적은 915전 499승 416패로 승률은 54.5%다. 아주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기보를 살펴보면 어느 기사를 만나더라도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지는 않는다. 몇 달 전 그가 중국의 RealizeIII와의 대국에서 연패를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지금까지 RealizeIII와 31승 27패(승률 53.4%)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산바(P)는 원래 국산바둑(P)으로 지으려 했지만 글자 수 제한으로 둑자가 잘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프로 식별 P가 달려 있는 아이디들은 모두 세 글자다. 국산바(P)는 입단 전부터 출중한 기재로 소문났지만 입단 대회마다 번번히 미끌어져 스승의 애를 태운 끝에 비교적 늦깎이로 입단했다.

그는 바둑 말고도 못 하는 것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왠만한 종목에는 그가 다 들어가 있으니 타고난 운동신경은 부모님께 받은 큰 선물일 것이다. 또한 이번 산행에서 보여준 그의 주력은 다람쥐를 연상시킬 만큼 빨랐다.

분당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유창혁 기사와 같이 왔다. 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국산바(P)는 어떤 게임을 하더라도 한도액을 넘어서지 않을 만큼 자기 절제가 뛰어나고 기사들끼리 이따금씩 즐기는 포커 실력도 상당한 고수에요.”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순간 이윤희씨가 썼던 ‘포커, 알면 이길 수 있다!’에서 포커 게임을 제일 잘하는 직업 1위는 프로기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보드 게임을 비롯해 머리로 싸우는 각종 게임에서 발군의 힘을 발휘한다.

몇 달 전 생방송이 끝나고 해설을 맡은 국산바(P)와 가벼운 술자리가 있었다. 그는 바둑 두고 해설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리고, 틈틈이 운동하러 다니며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그가 가끔은 부럽다.

왠만하면 말을 아끼는 그도 대국에서 패했을 때 대화 창에 민망한 글이 올라오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한다. 비록 바로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아쉽다.

이제 국산바(P)의 기풍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실리에 민감하고 정통 행마를 추구한다.
둘째, 난전을 즐기지는 않지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는 않는다.
셋째, 기세를 중시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
넷째, 형세판단이 밝고 침착하다.


다음은 뇌전검룡과 둔 대국으로 국산바(P)가 흑을 잡았다.

참고도1

초반은 우변 흑 실리와 상변 백 모양의 대결이다. 좌상귀 백2로 쌍점을 섰을 때 흑3은 백10으로 받아주기를 바란 수다. 실전은 백4로 반발해 왔다. 축이 불리한 흑은 축머리로 하변에 들여다 보았지만 백6의 단수가 적시의 안타로 다시 축은 흑이 불리하다. 어쩔수 없이 흑9로 비켜갈 수 밖에 없어 백20까지 상변에서 흑백간에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참고도2

흑1부터 패싸움이 시작됐다. 백4로 찔렀을 때 흑5로 매듭을 만든 이후 흑7로 패를 키워 간것이 재미있는 수단이었다. 백26까지 흑은 좌중앙에서 손해패를 써가면서 상변을 초토화했지만 백은 우변 흑의 보고를 무참히 깨뜨리면서 바꿔치기가 일어났다.아직은 형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참고도3

흑1로 단수를 친다. '앗! 축이 불리한 곳에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백8 빈삼각으로 달아나면서 치열한 접전의 연속이다. 흑9는 축머리라서 백10은 불가피하다. 결국 흑23까지 살았고 선수를 잡은 백이 두터움의 급소인 하변을 밀어갔다. 이 수로 좌변을 지키면 무사하지만 흑도 24자리를 막는 것이 백에게는 아프다. 흑25로 좌변에 침투하면서 다시 격렬한 소용돌이가 일어날 조짐이다.


참고도4

백1로 달아나자 흑2로 씌워 좌하귀 백 한 점을 공격해왔다. 좌하귀를 버리는 것은 크기 때문에 백도 11까지 살았다. 흑12는 중급자들이 꼭 배워둘 만한 중앙 행마의 요령이다. 백21로 끊는 강수를 동원했을 때 흑22로 코붙인것이 맥점 이었다. 흑32까지 아직 갈길이 멀다.


참고도5

백5로 끝내기를 할때 흑6으로 가르면서 국면이 복잡하게 됐다. 백15로 단수를 칠때 흑16으로 반발했다. 흑36까지의 바꿔치기는 전체적으로 흑의 집이 많다. 여기서 흑이 우세를 확립했다.


참고도6

흑1로 받는 것은 백10까지 하변 흑의 요석이 잡힌다. 실전은 상변에서 우상귀와 연관된 대마 패가 발생했지만 백은 불행히도 팻감이 부족했다. 중반 축머리를 둘러싸고 펼친 공방전과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접전의 연속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난전 가운데 승기를 잡은 국산바(P)의 순발력이 돋보이는 한 판이었다.


국산바(P)는 제 5회 동양종합금융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에서 월간 시드를 받아 32강으로 직행한 이후 16강까지 진출했다. 그가 계속 정진해 다음 대회에서는 조금 더 나은 성적을 올리고 오프 대회에서도 결승 무대까지 오르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누구처럼 예쁜 딸이 있다면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불러 줄 것 같다.

TYGEM / 북악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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