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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붕전설-바둑애호가 김영성과 잉창치②

신년특집 김종서의 '이붕전설(李鵬傳說)' 연재

2009-01-25 오후 6:11:00 입력 / 2009-04-02 오후 1:59:52 수정

지난 연초에 세계바둑계의 4강 라이벌전을 유니크한 구성으로 조명한 특집 [기왕사신기]의 김종서 작가가 기축 년 설날을 맞아 다시 한 번 타이젬 회원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이붕전설]이다. 지난해에 억대바둑판 소송사건으로 새삼스럽게 바둑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름, 고(故) 김영성 한국기원 이사의 삶과 바둑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설 연휴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될 [이붕전설]을 통해 우리 바둑계를 뒤숭숭하게 흔들었던 바둑판 사건의 전모와 배경, 그리고 바둑계에 무한한 사랑을 바쳤으나 아스라이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고마운 은인(恩人)한 사람의 존재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1월 24일 : 제1화 - 이붕 선생을 아십니까?
1월 25일 : 제2화 - 바둑애호가 김영성과 잉창치
1월 26일 : 제3화 - 바둑판이 말을 하다
1월 27일 : 제4화 - 仙과 俗의 경계에서





프로는 가문의 영광, 스폰서는 신의 축복

바둑의 역사는 수천 년이라고 합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바둑이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고수들의 승부 혼과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면 고수들만큼이나 후원자들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은 에도 시대에 절대권력자 쇼군이 바둑을 후원해서 4대 바둑가문이 경쟁을 통해 기도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중국도 황실에서 바둑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에 전설의 고수들이 명멸하곤 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바둑을 잡기로 인식해 시대의 전면에 떠오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바둑은 두어졌고 주 무대는 대개 부호들의 사랑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객(棋客)들은 언제라도 부호들의 집을 찾아가 바둑을 두면서 끼니 걱정을 덜 수 있었습니다. 후원의 형식은 중국, 일본에 비해 소박했지만 어쨌든 그런 방식으로라도 존재했기에 우리 바둑이 오늘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아닐까요?

현대바둑에도 후원자의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후원자가 없다면 프로기사들의 공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난 해 굵직한 프로기전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져 바둑계가 위축되었습니다. 새해 들어 BC카드 배 창설이 발표되자 바둑 팬들이 얼마나 반가워했습니까? 아무튼 바둑계를 지탱하는 세 가지 요소는 프로기사들의 열정, 바둑 팬들의 관심, 후원자들의 진정성 가득한 지원이라고 봅니다.

지구촌을 통틀어 바둑 최고의 후원자를 손꼽으라면 많은 분들이 대만의 재벌 잉창치 씨를 엄지로 택하겠지요. 그 분은 세상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잉창치 배 바둑대회를 통해 마치 지금도 생존해 있는 것처럼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름 석 자는 바둑이 존재하는 한 영원하지 않을까요?


▲ 고령의 우칭위엔 선생은 잉씨배가 열리면 깊은 관심을 보이며 검토실에 친히 왕래를 한다.

세상을 뜨면서 혹시나 후손들이 바둑을 외면할까 싶어 잉창치 바둑기금을 마련해 대못질을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4년마다 100만 불 규모의 잉창치 배 바둑올림픽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현존하는 세계대회에서 기업이나 상품명이 아니고 사람의 이름을 딴 대회는 잉씨배가 유일합니다.

기업들은 홍보효과를 철저하게 산술적으로 계산해 바둑대회를 후원하지만 진정으로 바둑을 사랑하는 애호가는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 애호가의 진정성이 바둑을 풍요롭게 해주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바둑의 스폰서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재력도 든든해야 하고 마니아 기질이 충만해야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잉창치 씨의 존재는 바둑계에 독보적입니다.

잉씨배에 출전해 명예를 얻고 상금을 획득한 각국의 프로기사들이야 당연히 영웅이지만 그처럼 영웅들에게 판을 만들어 준 잉창치 씨의 영광이야말로 훨씬 찬란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프로는 가문의 영광이고 스폰서는 신의 축복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조어를 패러디해봅니다.

잉씨배에 비할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후원자의 이름을 딴 바둑대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이붕배 어린이 바둑대회를 기억하실 겁니다. 어디 이붕 배를 잉씨 배에 비교하느냐 코웃음칠 분들도 있겠지만 이 두 대회와 후원자들의 관계를 인수분해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붕과 잉창치는 갑과 을의 관계였다

1987년 이붕 김영성 선생은 삼원섬유 제행모 과장(현재 대표이사)을 대동하고 타이페이(臺北)를 방문했습니다. 사업 파트너인 대만의 이화양모라는 회사를 찾은 거지요. 이화양모는 호주로부터 양모를 가져와 가공하는 회사입니다. 삼원섬유는 이화양모로부터 1차 가공된 제품을 수입해 실을 뽑습니다. 그러니까 삼원은 이화양모 측에서 볼 때 대접해야 할 바이어였던 거죠. 그 이화양모의 소유주가 바로 잉창치 씨였습니다.

잉창치 씨는 중국 대륙의 닝보 출신으로 장제스 총통의 심복이었는데 국공내전에 패배하면서 대만으로 쫒겨올 때 엄청난 돈 가방을 챙겨왔다고 합니다. 그런 재력을 바탕으로 섬유산업을 일으키고 훗날 금융으로 진출해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으게 됐습니다.

재력이야 잉씨가 훨씬 풍요로웠을 테지만 어쨌거나 바이어 입장에서 대만을 찾은 이붕 선생을 잉씨는 극진히 영접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업 파트너였으나 사실 두 사람은 한국과 대만의 대표적인 바둑 마니아이자 후원자로서 각별한 관계였습니다. 잉씨는 한국의 친구들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청했지요.


▲ 이붕 선생(왼쪽)과 잉창치 선생(왼쪽에서 두번째) 모습이 보인다.

견고한 철문이 이중 삼중으로 설치된 대저택의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거실에는 대형 호피가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붕 선생과 잉씨는 의례적인 인사를 생략하고 대뜸 바둑판 앞에 마주 앉았습니다. 기력을 묻지 않고 연장자인 잉씨가 백을 잡았다네요. 그리고 두 분은 신중하게 바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 승부는 잉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추리에 따르면 아마 5단 실력의 이붕 선생이 살짝 승부를 연출했을 거라고 합니다. 이붕 선생은 승부보다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정겨운 조작대국(^^)의 고수라고 하니까요. 통도사 반야암의 스님과 대국할 때도 언제나 이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잉창치 씨는 연신 싱글벙글 입 꼬리가 귀에 붙어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네요. 그리고 그 밤에 두 분은 세계바둑계를 진흥시킬 방법에 관해 오래 대화를 나눴을 겁니다. 두 분 모두 우칭위안과 린하이펑을 좋아해서 모두 만나면 의욕적으로 바둑의 큰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기호가 비슷하고 선의(善意)가 충만한 애호가들이 만나면 뭐든지 화끈하게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요.

그 만남이 있은 뒤 이듬해 1988년에 마침내 100만 불 짜리 잉씨배 바둑대회가 탄행하게 됩니다. 우승상금 40만 불은 당시 세계 최고의 테니스 대회였던 윔블던 테니스대회보다 높게 책정하자고 잉씨가 호기를 부려 그리 됐다고 합니다. 그와 똑 같은 1988년 이붕 선생도 부산에서 이붕 배 어린이 바둑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시점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봅니다.

잉창치 씨가 원대한 대작을 그렸다면 이붕 선생은 소박한 밑그림을 같은 시기에 그렸던 겁니다. 이 대목에서 두 분의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 나타납니다. 아무튼 지금 두 분 모두 이 세상에 없지만 그들의 기업은 아직까지 양모원료를 거래하는 사업파트너로 활발하게 교류 중입니다. 대만의 양모회사는 현재 대륙의 닝보로 옮겨갔구요. 그 회사의 대표 잉밍하오 씨는 잉씨 바둑기금을 운영하는 후계자입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붕 선생과 잉창치 씨가 사업을 통해 교분을 쌓고 바둑애호가 기질을 투합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필자는 주시하고 싶습니다.


▲ 제5회 잉씨배 심판장으로 나선 우칭위엔 선생(가운데)과 우선생 뒤로 잉밍하오 선생이 대국에 앞서 기념찰영을 하고 있는 모습. 우칭위엔 선생은 초대 대회부터 지금까지 잉씨배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며 항상 참가해 왔다.



외강내강(外强內剛) 잉창치 VS 외유내강(外柔內剛) 이붕

잉창치 씨는 세계대회 창설을 계기로 바둑애호가 차원을 넘어 바둑의 권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잉씨 바둑 룰을 만들어 보급하고 중국 상하이에 대규모 바둑용품 공장을 만들어 세계 바둑시장을 석권하려는 야망을 품었지요. 아울러 상하이에 잉창치 위기학교를 만들어 중국의 꿈나무를 육성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합니다. 바둑계에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워낙 고집이 세서 독불장군의 이미지도 보여줍니다.


▲ 제1회 잉씨배에서 만난 (왼쪽부터) 조훈현, 이붕 선생, 조치훈. 조훈현과 조치훈은 당시 마음을 터놓고 많은 이야기를 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기질은 1988년 제1회 잉씨배 선수 초청에서 중국 출신 기사들을 우대하고 한국에 단 한 장의 티켓만 보내는 편파적 시례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또 대만바둑계에도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었는데 프로기사들이 바둑에 매진하지 않고 게임에 빠져있다는 소식을 듣고 후원을 전면중단해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어쨌거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거물 스폰서가 자신의 의지를 구현하고 싶은 욕망쯤은 애교로 봐줄만 합니다. 잉씨는 자신이 만든 대회에서 같은 중국인인 녜웨이핑이 우승컵을 들어 올려 줄 것을 염원했겠지만 엉뚱하게 한국대표 조훈현이 바둑황제로 등극했고 그 뒤로 내리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가 배턴을 이어버렸지요.

결과적으로 잉창치 씨는 한국바둑을 세계 전면에 부상하게 만들어 준 은인이 되었습니다. 올해 벌어질 제6회 대회도 벌써 이창호와 최철한이 결승에 올라 우승을 예약해버렸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입니까?


▲ 제1회 잉씨배 결승에서 만난 조훈현과 녜웨이핑. 당시 이붕 선생은 대국장에 가 조훈현의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잉창치 씨가 그처럼 외강내강의 파워를 유감없이 떨친 데 비해 이붕 선생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바둑계에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은인(恩人)이자 은인(隱人)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합니다.

선생은 한국기원 이사로 30년 가까이 참여하면서 보이지 않게 프로기사들을 후원했습니다. 그 어떤 프로기사라도 부산에서 만나면 반드시 거마비를 챙겨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프로기사들을 욕되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붕 선생은 한국기원 이사로서, 부산바둑협회를 맡고 있는 리더로서 부산을 찾은 프로들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표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붕 어린이 바둑대회가 부산에서 열리자 프로기사들 20~30 명이 내려가 발 벗고 행사를 도왔다고 합니다. 일찍이 아마추어 대회 그것도 어린이 바둑대회에 그처럼 많은 프로기사들이 참여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회관계자들에 의하면 이붕 선생은 그 모든 프로기사들을 일일이 챙겨 인사했습니다. 선생의 양복 상의 속주머니에 빳빳한 지폐를 담은 봉투가 수십 개 탄창처럼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프로들에게는 좀 민망한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선생이 준비한 봉투들은 제각각 두께가 달랐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선생이 판단하는 격(格)에 따라 거마비의 액수가 달랐던 거지요. 봉투에 지폐를 담을 때도 본인이 직접 헤아렸다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속도가 빨랐습니다. 적은 돈도 아니고 액수도 다른데 거의 기계처럼 신속하게 봉투를 채웠다는 겁니다.


▲ 이붕 선생이 후원하던 이붕배.


“아니, 어떻게 그리 뭉텅뭉텅 집어 넣습니까?”
하도 기가 막혀서 누군가 묻자 선생이 씨익 웃으며 비결을 밝혔습니다.

“일련번호만 확인하면 되잖아?”
그랬습니다. 선생은 지폐 다발을 턱 한 손으로 쥐고 일련번호를 헤아려 몇 십 장 단위를 턱턱 구분했던 겁니다. 다소 통속적으로 돈 이야기를 했지만 이 비하인드 스토리에 선생의 마음이 비쳐지는 듯싶어 조심스럽게 전합니다. 이붕 선생은 그렇게 어린이 바둑대회를 만들어 오랫동안 후원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이름을 걸지 않았습니다. 후원금도 철저하게 삼원섬유와 관계하지 않고 당신의 사비로 충당했지요.

월간 바둑 지에 회사 광고를 실을 법도 한데 단 한 차례도 광고를 실은 적은 없습니다. 선생은 철저하게 바둑애호가로서 바둑만 바라본 것입니다. 선생은 월간 바둑 지를 몇 백 권씩 정기적으로 구입해 부산의 기업인들이나 바둑교실에 기증했습니다. 바둑행사 같은 곳에 한국기원의 출판물들이 전시되면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왕창 구입해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화끈한 스폰서 잉창치 씨도 좋지만 은근한 이붕 선생 스타일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토록 은근했기에 잉창치 씨처럼 강렬한 후광을 떨치지 못했지만 이붕 선생의 이름은 지금이라도 우리 바둑 팬들이 즐겨 부르고 선생의 뜻을 되살려야 온당하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선생의 사후에 바둑판 소송으로 욕될 이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둑판 사건을 단순한 분쟁으로 비하할 게 아니라 그로 인해 공기처럼 사라질 뻔했던 한국바둑계의 은인 한 사람 이붕 김영성 선생을 다시 추모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마워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렇다면 정말 의미 있는 사건이지요.

선생은 아주 늦게 결혼했습니다. 기업가로서 분주하게 활동했고 주말은 거의 전부 바둑과 산에 투자했으므로 가정에 할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어린이 바둑을 이끌어 온 주성면 원장과 김철중 원장 같은 바둑인들은 이붕 선생이 끔찍하게 어린이들을 좋아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언젠가 일요일 날 부산 서부지회와 동부지회가 동시에 바둑대회를 열었지요. 그리 큰 대회가 아닌데도 김영성 본부장님은 어김없이 찾아와 어린이들을 격려해주었습니다. 아침에 서부지회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오후에 동부지회에서 시상식을 치뤘습니다. 그날 어린이들을 위해 대회용 계시기 100개를 흔쾌히 기증하셨지요.”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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