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사
거꾸로 가는 나라 호주 ①
한상대 교수의 해외 바둑계 탐방
2009-08-13 오후 9:25:19 입력 / 2009-09-03 오전 11:47:59 수정
호주는 독립된 대륙으로 혼자 진화하여 동식물이 우리와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와는 가장 이질적 대륙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와 거꾸로 가는 게 너무 많다. 계절이 거꾸로 가고 장마철이 겨울에 있다. 사람이 만든 것도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고 전기 스위치도 내리면 켜지고 올리면 꺼진다. 호주는 남한의 78배 이상 크지만 인구는 약 2000만이다. 자연이 아름답고 오염이 전혀 없다. 나라의 별명은 “Lucky country”. 이런 나라에서도 바둑을 둔다. 바둑인구는 3000명 정도. 1. 초기 호주에 바둑을 제일 먼저 소개한 사람은 그래이(Geoffrey Gray)로 당시 그는 시드니대학 수학과 교수였다. 1934년에 독일인 라스커가 ‘바둑 입문서(An Elementary Book on Go)’를 미국에서 출간했는데 그래이는 그 책으로 공부하였다. 1950년대 그래이가 고등학생을 위한 수학참고서를 썼는데 그 책이 히트를 쳐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는 대학교수직을 조기 사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바둑에 전념했다. 그 때 그래이에게서 바둑을 배운 플래토(Kurt Flatau)는 호주 체스챔피언이었다. 플래토가 시드니 체스클럽 한 모퉁이에 최초의 바둑클럽을 열고 바둑을 가르쳤다. 1960년대 시드니 대학생 스마이스와 파워가 그곳에서 바둑을 배웠다. 초대 시드니클럽 회장은 그래이 박사가 맡았다.
내가 1975년에 시드니에서 그래이를 만났을 때 그는 50대 후반이었고 바둑은 2단으로 나에게 4점 놓고도 잘 안 되는 수준이었다. 플래토 4단은 나에게 3점으로 두었다. 미국 프린스톤 대학에서 수학박사를 획득하고 돌아온 스마이스 (Neville Smythe)가 그의 지도교수 폭스(Ralph Fox)로 부터 바둑을 연마하고 4단이 되어 돌아와 가세했다. 폭스 교수는 프린스톤 대학에 미국 최초의 바둑 클럽을 만든 인물이다. 한편 일본에서 8년 간 체류하며 일본학을 전공한 파워(John Power)도 일본 5단이 되어 돌아왔다. 다른 동양학교수 포터(Don Potter) 4단과 포인튼 교수까지 합해 지식인 중심 호주 바둑계가 형성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 이민자가 늘면서 이들 화초 바둑은 한국의 힘 바둑 앞에서 맥 없이 무너진다. 특히 파워 교수는 필자와 며칠 사이에 바둑을 50판쯤 두어 전패를 하자 “내가 앞으로 10년은 호주 챔피언을 할 줄 생각했는데 한국인들이 이민 온다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앞으로 내가 10년은 바둑 공부만 해야 당신을 따라 잡을까 말까 한데 나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 며 호주대회에 출전을 안 하기 시작했다. 그는 호주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바둑 필자로 돌아 섰다. 일본에 가서 ‘바둑세계(Go World)’ 란 영어 바둑잡지를 내고 현존 영어바둑서적 중 최고로 꼽히는 그의 필생의 걸작 ‘무적 슈사쿠(秀策-Invincible Shusaku)’를 집필한다. 내가 “그 책이 나오는데 나도 한 몫 했다” 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
호주 바둑협회가 결성된 것은 1978년이었다. 1979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릴 제 1회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에 호주대표를 뽑기 위해 시드니에서 제1회 호주바둑챔피언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 중 정기총회를 열고 호주바둑협회(AGA)가 탄생했다. 캔베라 국립대 수학과 과장인 스마이스 교수가 초대회장에 취임했다. 초대 호주챔피언은 내가 되고 일본 아마강자 마쯔다가 나를 반 집으로 누르고 오픈챔피언에 올랐다. 이 대회에 한국에서 기원 1급이었다고 자처하는 아마 5단 동포 바둑인 2~30명이 대거 출전하여 상위권을 휩쓸며 앞으로 한국세가 호주 바둑계를 석권할 것을 예고했다. 이 당시 호주 최고수 20명을 뽑으라면 그 중 15명은 한국인이었다. 지금은 중국이 그렇다. 일본기원이 호주바둑협회 창립에 적극 협조했다. 이 무렵 일본은 전 세계 여러 나라가 바둑협회를 설립하는 데에 인력과 재정을 지원했다. 호주에도 프로기사 2 명이 바둑세트 30조쯤을 선물로 들고 와서 도왔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공로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힘들여 만든 각국의 협회와 세계아마추어대회를 우리나라 국무총리배가 똑같이 흉내 내고 이용만 하면서 세계대회를 개최하는 걸 일본이 좋아할 이유가 없다. 나는 우리가 선발한 국가끼리 단체전을 개최할 것을 지금도 주장한다. 어차피 세계대회의 성적에는 관심이 없는 바둑 하수국가들의 선수와 단장을 한국에 공짜 여행을 시켜준다고 해서 그 나라 바둑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도보급은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 무렵 호주 주요 도시에 바둑 클럽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스마이스 교수가 수도 캔베라(Canberra)에 클럽을 창설했고 한국과 일본대사관 직원들이 중심 멤버가 되었다. 빅토리아 주에서는 변호사 햇필드(Bruce Hatfield) 2단이 멜본(Melbourne) 클럽을 설립하고 나는 사범이 되었다. 퀸즈랜드에서는 회계사 레버릿(Bill Leverett) 초단이 브리스베인 클럽을 만들었다. 뉴사우스 웨일즈에서는 20대 젊은 공무원 데이비스(Clive Davis) 3단이 시드니(Sydney) 클럽을 재 정비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 가서야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에는 영국인 컴퓨터 강사 배이트(Jim Bates) 5단이 애들레이드(Adelaide) 클럽을 열었고, 타스마니아 주 호바트(Hobart)에서는 의사 에반스(David Evans) 초단이 클럽을 열고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에 들어 와서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 퍼스(Perth)에 컴퓨터 전문가 클레이(Paul Clay) 초단이 한국교민 중심으로 클럽을 개설해 드디어 호주 주요도시 전체에 바둑 클럽이 생겼다.
2. 한국계 활약 초기 호주 바둑계는 나의 독무대였다. 나는 총 15번 호주대회에 나가 12번을 우승했다. 외국인에게도 개방된 오픈 챔피언 자리에는 8번 올랐다. 세계대회는 두 번 계속 못 나간다는 규정 때문에 6번 출전했다. 그러는 동안에 한국과 중국에서 강자들이 속속 이민 와서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는 1980년대 중반에 이민 온 성균관대 선수 출신의 지보근과 연구생 출신 문춘식이 있다. 1993년을 마지막으로 나는 호주대회에 더 이상 출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보근의 독주시대가 시작되었다. 지보근은 호주동아 기자로 일하면서 기타도 잘 쳤다. 그러나 아깝게도 그는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하직한다. 지보근만 중국강자 왕우비를 가끔 꺾을 수 있었다. 문춘식은 한번 우승한 뒤 공부에만 전념해 시드니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된다. 한국인 중에는 지보근, 임의재, 신명길 3명이 라이벌이었으나 임의재마저 지병을 얻어 10여년 전에 한국으로 가 버리자 한국인 강자는 신명길 7단 혼자 남게 되었다. 20년 전에 멜본서 시드니로 거처를 옮긴 신명길 7단은 한 동안 바둑보다 사업에 전념하여 성공한다. 그는 현재 시드니에 일식식당 10개와 중국 항주기원 6층 식당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식당경영은 부인에게 맡기고 그의 본업인 건설업에 올인하고 있다. 내가 호주에 가면 그가 건설하는 아파트 단지나 상가를 보여 주곤 한다. 부부가 고급 벤츠를 몰고 다니고 바둑계를 많이 돕고 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중국계가 휩쓰는 속에서 한국바둑의 존재를 알리느라고 바둑대회만은 계속 출전하고 있다.
바둑협회 참여도도 한국인이 높다. 1978년 이래 호주 바둑협회 이사직을 계속 맡아 온 내가 1993년에는 회장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그러나 3년 후 한국으로 영주귀국하기 위해 사임한다. 나의 회장취임은 한국인이 외국에 이민 가서 그 나라 문화단체의 총수가 된 최초의 사례로 회자(膾炙)되었다. 이후 호주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인 공학박사 진양일 4단이 2002년부터 부회장으로 있다가 2004년에는 회장이 된다. 한국인이 처음으로 회장이 된 내 경우도 특별한 일인데 호주에선 한 명이 더 회장을 역임하게 된다. 매년 200명쯤이 참가하는 정기총회에 20여 년 동안 한국인은 나와 진 박사 두 명만 참석해 왔다. 다른 한국인들은 영어로 하는 회의라 잘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 후 2006년에는 신명길 7단이 AGA 부회장을 맡는다. 한국세가 호주에서는 유달리 극성을 부렸다. 다른 나라는 캐나다에서 치과의사며 ‘입단연가’ 작가인 고(故) 홍성화 5단이 부회장을 맡았던 일이 있다. 나와 진 박사가 호주에서 공부를 했고 홍박사도 캐나다에서 공부를 해서 현지인들과 문화격차가 적었던 공통점이 있다.
역대 호주 오픈 챔피언(AGA Open Champions)
*호주 오픈챔피언도 30년 동안 한국인이 19회나 우승을 한다. 이 중에는 원로 강자 허윤씨 이름도 보이고 중앙일보 관전필자 박치문씨도 보인다. 1994년 이후에는 1인자 왕우비(王宇飛)가 지병으로 안 나타나고 몇 년 후 지보근도 타계하자 중국계 2인자였던 곽이명(郭以明)이 호주 1인자로 올라 선다. 특히 2000년부터 호주대회는 중국인이 휩쓸고 한국인 우승은 2006년 신명길 7단 한 번뿐이었다. 2005년에는 멜본의 1인자 13세 중국소년 첸이 우승을 한다. 2008년에는 호주인으로 첫 프로기사가 탄생한다. 브리스베인에서 태어난 중국계 혼혈 14세 소녀 미싱엄(Joanne Missingham)이 대만에서 바둑훈련을 받고 중국에 가서 여류 프로기사로 입단했다. 1970~80년대 호주를 주름 잡던 한국 바둑인들은 다 연로해 지고 그나마 취미도 바둑에서 골프로 바꾼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2세들에게는 바둑을 안 가르친다. 중국이민자는 자꾸 늘어나고 바둑인구도 그 만큼 늘고 있다. 조금씩 들어 오는 한국 이민자 중에는 바둑 인구가 거의 없다. 젊은 사람들이 바둑을 못 두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서양 국가면 거의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호주 바둑지도자들은 순수 호주 백인 중에 강자가 나타나길 기대하고 있다.
한상대(전 시드니 대학 교수, 호주바둑협회(AGA) 회장) (sdhahn@gmail.com) 017)276-5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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