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사
국가대항전의 낭만과 추억
호주 - 뉴질랜드 국가대항전 회상
2009-09-14 오전 9:39:51 입력 / 2009-09-16 오후 3:50:04 수정
뉴질랜드는 혐오동물인 뱀과 쥐가 없는 나라다. 환경이 깨끗하고 날지 못하는 새가 많다. 뉴질랜드는 10세기쯤 폴리네시안(Polynesian) 중 마오리(Maori)족이 하와이쪽에서 카누를 타고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자기네 나라 이름을 “흰 구름이 기다란 나라(Aotearoa)”라고 불렀다. 1840년 백인이 마오리 족과 와이탕이(Waitangi) 조약을 체결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나라 면적이 한반도보다 남한의 반만큼이나 더 큰데 2009년 현재 인구가 430만 명이다. 이 중 백인이 78%, 마오리가 14.6%다. 북 섬에 인구의 75%가 살지만 경치는 남 섬이 훨씬 좋다. 마오리 노래 ‘Pokarekare ana’는 우리나라에 ‘연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래 듣기 집사람이 1975년 오클랜드 대학원에 다닐 때 뉴질랜드의 한국인은 대사관 직원까지 합해 20명 정도였다. 지금은 교민이 3만 여명이 살고 있다. 유학생도 1만 5000명 정도가 있다. 이 나라 바둑인구는 10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호주와 가까워서 나도 그곳 바둑계와 관련이 많다.
뉴질랜드에는 천적이 없어 새들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 중 키위(Kiwi)는 뉴질랜드의 심볼이다. 뉴질랜드 사람을 ‘키위’라고도 부른다. 바둑대회 중 내가 “우리 중 키위가 몇 명이냐?”고 물어보면 NZ사람들이 다 손을 든다. 또 대표적 과일 이름도 키위다. 내가 어릴 때 미제 구두약 겉에 있는 주둥이가 긴 새 같은 동물 그림이 있었다. 그 게 이상해서 우리 아버지에게 물어본 기억이 난다. 그 게 키위였다. 그러나 내 관심을 더 끄는 새는 모아(Moa)다.
세계에서 가장 큰 폴리네시아 박물관이라고 하는 오클랜드 박물관에 갔을 때다. 유리관 안에 있는 엄청나게 큰 새를 보고 놀라서 가 봤더니 이름이 모아(Moa)다. 평균 키가 3.7미터에 무게가 230kg쯤 됐다고 적혀 있다. 다리 길이만 해도 내 키 보다 크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새였는데 멸종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키위(NZ 사람)에게 들은 얘긴데, 마오리 남자가 성년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이 놈을 한 마리 잡아와야 했다고 한다. 그래야 온 마을이 잔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약 100년 전쯤 다 잡아 먹어 멸종을 시켰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 누가 숲에서 모아를 봤다고 해서 수색대와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찾았으나 못 찾고 만 사건이 있었다. 호주에서 모아가 멸종이 안 됐을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듣고 나도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박물관에 박제만 있지만 혹시 앞으로는 DNA로 복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
1. 호주 – 뉴질랜드 국가대항전 1980년 호주-뉴질랜드 양국은 정기 국가대항전을 갖기로 합의를 본다. 격년제, Home & Away, 4명씩 풀 리그로 총 16 국, 주최측 룰(Rule)을 따르고, 네 명이 합한 단수(段數)는 양측이 2단 이상 차이가 안 나게 하고 주최국 바둑인 집에서 숙식을 제공한다는 조건이었다. 1) 제 1차 전 1981년 내가 호주 팀 주장으로 팀을 짰는데 한인 강자들은 생계형 이민자들이라 갈 사람이 없었다. 항공료의 반을 바둑협회가 지불하는 조건인데도 지원자가 없다. 할 수 없이 방학이라 시간이 많은 캔베라 국립대 회원들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우리 팀은 시드니에서 합류한 후 뉴질랜드로 갔다. 4일간 격전 끝에 첫 국가대항전은 비기는 걸로 끝났다. 대회가 끝나고 바둑캠프를 오클랜드 서북쪽 어느 해안으로 갔는데 모래 색이 까맣다. 그런데 모든 게 너무 깨끗하다. 바위마다 홍합(Mussel)으로 완전히 덮여 있는데 아무도 안 따먹는다. 뉴질랜드 홍합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나도 호주에서 홍합은 주로 뉴질랜드 산을 사 먹는다. 우리는 그들과 바둑만 둘뿐 아니라 그들 안내로 관광도 하고 피크닉도 갔다. 많은 대화를 통해 양국 바둑인들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컴퓨터 전문가 레이(Ray Tomes)의 집에서 묵었는데 특히 중, 고생인 그의 두 아들과 친해졌다. 탁구도 치고 같이 놀아 주니까 내 옆에 많이 따라 다닌다.
하루는 양국 선수 전체가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바로 옆에 어시장(魚市場-Sea Food Market)이 보인다. 나는 내 손바닥 보다 더 큰 전복(Abalone) 두 마리를 샀다. 우리 돈으로 1000 원이 조금 넘었다. 근처에 있는 ‘Fish & Chips’에서 이걸 알맞게 튀겨 식당으로 가져와 소금에 찍어 먹었다. 너무 맛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해서 보니까 바둑인들이 전부 얼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본다. 한 사람이 나에게 “마오리가 전복을 먹는 다는 얘길 들었는데 한국인이 먹는 걸 몰랐다”고 한다. 또 한 명은 “꼭 고무를 씹어먹고 있는 것 같다’ 며 웃는다. 내가 “먹어 보겠느냐”고 했더니 다 사양한다. “이 좋은 맛을 모르다니, 쯧쯧.”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호주 정육점에서는 쇠고기 갈비가 무료였다. 갈비 한 짝을 사는데, 손질 해 주는 값 2불만 주면 되었다. 갈비 파티가 돈이 전혀 안 들 때였다. NZ 전복 껍질은 무늬가 화려해서 장식품으로 많이 쓰인다.
장소 : 오클랜드. NZ 룰(중국식) NZ 선수 : G Parmenter, R Tomes, R Talbot, J Blair 호주선수 : 한상대, J Chen, N Smythe, B Holliday 결과 : 8 대 8 무승부 2) 제 2차 전 1983년 2차전은 시드니에서 열렸다. 뉴질랜드에서 5명이 왔다. 한 명은 후보선수다. 나는 캔베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집에 뉴질랜드 선수를 묵게 할 수가 없었다. AGA회장인 네블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에 강자가 훨씬 많았으나 양팀의 단수(段數)를 맞추기 위해 약자들을 섞어서 팀을 짜고 나니까 힘을 못쓰겠다. 국가대항전 결과는 1차전처럼 또 비겼다. 비공식이었으나 시드니 교민들이 뉴질랜드 선수들과 대국을 많이 하면서 한국 ‘힘바둑’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인 중 내 연배의 김정일 3단은 서양인이면 누구에게나 호선으로 두어 전부 만방으로 이겼다. 그 중에 5단도 몇 명 있었다. 서양인들은 김 3단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강한 3단일 것”이라며 혀를 내 둘렀다. 그 김 3단도 한국인 속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뉴질랜드 선수들은 거의가 시드니엘 와봤다고 한다. 시드니가 그들에게 자기네 도시처럼 익숙하다. 시드니는 오세아니아의 뉴욕 같은 도시다. 뉴질랜드 선수들이 호주 TV드라마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 놀랐다. 또 대부분이 친구나 친척들이 시드니에 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때 시드니에 뉴질랜드 인이 80만 명이나 살고 있었다. 당시 370만 명의 뉴질랜드 인구를 생각해 보면 높은 비율이다. 시드니가 오클랜드 다음으로 두 번째 큰 NZ 도시다. 그러나 뉴질랜드에도 폴리네시아 섬에서 온 사람들이 80만이나 산다고 한다. 오클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폴리네시아 도시다. 바둑 피크닉은 시드니 북부 해안지대가 한눈에 보이는 웨스트 헤드 전망대(West Head Lookout)로 갔다.
장소 : 시드니 - 호주 룰(일본식) NZ선수 : G Parmenter, R Tomes, J Blair, M Unwin 호주선수 : 한상대, J Power, C Davies, N Smythe 결과 : 8 - 8 비김 3) 제 3차 전 1985년 해프닝 한 토막. 나는 뉴질랜드에 가기 위해 내가 사는 캔버라에서 300km떨어진 시드니 국제공항으로 왔다. 당시 인구 35만의 캔베라는 국제공항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수도이다. 시드니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카운터 아가씨가 날보고 여권을 잘못 가져왔다고 한다. 보니까 시효가 지난 구 여권이다. 내가 집사람에게 짐을 싸라고 했을 때 서랍 속 여권 중 위에 있는 것은 구 여권이니까 조심하라는 얘기를 해야 했는데, 깜박했다. 이 비행기를 놓치면 나는 뉴질랜드에 가지 못하고 1회전에 호주 주장이 기권패 하는 상황이 나온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카운터에게 “누구와 얘기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공항 매니저와 얘기해 보라”고 한다. 나는 2층 매니저 사무실로 뛰어가 매니저에게 “내가 호주 바둑(Go) 챔피언인데 오늘 뉴질랜드에 못 가면 호주가 진다”고 했더니 매니저가 반가워 하며 자기는 핸디가 12라고 한다. 내가 ‘Golf’가 아니라 ‘Go’라며 보드게임이라고 바둑을 간단히 소개했다. “이건 지적인 두뇌 게임이라 대학 중심으로 두어진다”고 했다. 그가 “내 아들도 대학생”이라며 뽐낸다. 그가 “바둑은 처음 들어본다”면서도 내 상황에 동정적이다. 뉴질랜드와 관계기관에 전화를 해 보더니 나에게 “잘 뛰느냐”고 묻는다. 내가 “잘 뛴다”고 하자 무전기로 활주로로 나가고 있는 비행기에 연락하여 “호주의 명예가 걸린 일로 한 사람이 더 타야 한다”며 비행기를 세운다. 나와 그는 아스팔트 위를 한참 뛰어서 달렸다. 500미터는 확실히 넘는 거리였다. 매일 조깅을 한다는 덩치가 큰 그가 내 가방을 들고 뛰었다. 우리가 뛰어가는데 비행기에서 사다리가 내려온다. 나는 매니저에게 “너무 고맙다(Thank you too much!)”고 인사하고 비행기로 올라갔다. 내가 땀 범벅이 되어서 들어서니까 기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 때문에 지연이 됐는데 왜 박수를 치지?” 어리둥절했으나 나는 웃으며 절을 했다. 3시간 반 만에 뉴질랜드 남 섬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공항에 도착하니까 내 이름이 방송에 나온다. 입국심사관에게 가니까 나를 그냥 통과시켜 준다. 나는 여권 없이도 국경을 통과한 희귀한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공항에 뉴질랜드 바둑인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차에 태우고 국가대항전이 열리는 해머스프링 온천 관광호텔로 이동한다. 내 방에서 조금 쉬었다가 전야제행사 시간이 되어 볼룸으로 내려 갔다. 서양인들 리셉션은 각종 드링크와 오더보(비스켓 위에 올리브나 해산물을 조금 넣는 안주 감)가 있고 주로 서서 대화를 많이 한다. 순서는 양국 선수단 소개와 피크닉 프로그램 안내 정도였다.
이번 국가 대항전은 남 섬의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해머스프링(Hammer spring)에서 열렸다. 주변 경치가 환상적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인데 유황 수에 게르마늄 포함 량이 많다고 자랑한다. 주최측에서 그 곳 관광호텔을 숙소로 잡는 등 최선을 다 한다. 호텔 무도장(Ball Room)을 빌려서 대국장으로 쓰고 있다. 바둑은 하루에 한 판만 둔다. 한 사람 당 제한 시간이 3 시간씩이다. 거기에다 초 읽기 1분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끌 수가 있다. 하수가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한 없이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는 답답해서 몸이 뒤틀린다. 호주 팀엔 내가 넉 점 접는 멜본의 필립 힝스턴과 캔베라의 스티븐 라이가 있어서 우리 팀 전력이 약했다. 둘 다 지금은 교수지만 그 때는 박사코스 학생이었다. 당시 뉴질랜드 선수 중 친절한 청년 콜린(Colin Grierson)이 나에게 자기 차(Laser Ford 1.5)를 이용하라고 열쇠를 주어서 가끔 그 차를 몰고 주위를 돌아 다녔다.
바둑 피크닉은 아서령(嶺 Arthur’s Pass)이라는 곳엘 갔는데 차로 한 시간 이상 달려서 갔다. 남 섬의 가운데를 질러 흐르는 산맥을 동서로 넘는 고개다. 해발 천 미터쯤 되는 이 곳에는 마을도 있다. 공기가 냉랭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까 빙하호수(Glacier)들이 보인다. 너무 아름답다. 이 산맥의 최고봉은 쿡 산(Mt. Cook 3,764미터)을 비롯해 3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27군데나 된다. 산 맥이 너무 높아서 태평양에서 불어 오는 수분(Moisture)이 다 걸려 동쪽으로 못 넘어 간다. 그래서 남 섬의 동쪽은 벌거벗은 황량한 광야가 계속되고 서쪽 해안은 정글을 방불케 하는 숲이 계속된다. 산맥 양 쪽의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비교하며 자동차 여행하는 맛이 색다르다. 이 바둑 광들이 경치 좋은 여기까지 바둑 세트를 들고 와 바둑을 둔다.
장소 : NZ 남 섬 해머 스프링 온천 - 뉴질랜드 룰 NZ 선수단 : B Phease, R Tomes, C Grierson, D Coughlin 호주선수단 : 한상대, G Parker, P Hingston, S Reye 결과 : 10대 6 뉴질랜드 승 나는 이 국가 대항전이 끝나고 혼자 남아 뉴질랜드 남 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개최되는 뉴질랜드 바둑대회에 출전한다. 한국에 있는 내 동생이 친구 한 명과 1주일 후에 호주에 도착한다고 국제전화가 왔다. 내가 “이왕이면 뉴질랜드로 와서 나와 자동차로 경치 좋은 NZ 남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 호주로 가자”고 했더니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반긴다. 내가 대회에서 우승을 하자 뉴질랜드에선 외국인 우승이 없었던 까닭에 처음으로 오픈 챔피언 타이틀을 만들었다. 시상식에 우승 트로피 증정은 뉴질랜드 총독, 부상 증정은 일본대사가 하는 등 격이 꽤 높다. 바둑인 가족까지 동원되어 내가 상을 받을 때 수 백 명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부상으로 받은 바둑 판은 뉴질랜드에만 있는 카오리(Kaori) 나무로 만든 건데 3~4천 년을 자란다고 한다. 초기엔 이 나무 하나만 자르면 배 한 척을 만든다고 하고 집은 여러 채 짓는다고 하여 무차별로 벌목을 했다. 요즘은 보호 대상이라고 한다. 미국 켈리포니아에 사는 ‘Red Tree’가 4천 년을 산다. 우리나라엔 양평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만 천 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시상식이 막 끝나자 내 동생이 친구와 들어선다. 내가 “내 시상식 봤니?” 하니까 “조금 전 박수 소리가 형이 트로피 받는 거였어?” 한다. 간발의 차이로 내가 트로피 받는 걸 놓쳤다. 동생이 “그런데 형, 왜 그렇게 수척해 졌어?” 한다. 내가 “여기서 2 주 동안 김치를 못 먹어서 그렇다. 오죽하면 내가 전화 번호부에 한국 성(性) 비슷한 집에 전화를 30군데 넘어 걸었겠니? 그런데 다 중국인이었다. 이 도시엔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고기와 빵은 이젠 질려서 목구멍으로 안 넘어 간다” 했더니 “당장 수퍼에 가서 재료를 사면 내가 김치를 만들게” 한다. 내가 외국에 오래 살면서도 입 맛은 현지화가 안 되어 있다.
4) 제 4차전 1987 호주 캔베라 - 일본 룰 NZ 팀 : R Tomes, D Coughlin, C Grierson, A Guerin 호주 팀 : J Chen, C Davies, S Reye, J Trevethick 결과 : 13 – 3 뉴질랜드 승 5) 제 5차전 1992 5차전은 1989년 뉴질랜드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항공료 반을 지불하는 조건이 없어져서 그랬는지 호주 팀이 결성이 안 되어 취소 된다. 5차전도 92년에 와서야 시드니에서 열린다. 이 번 NZ 팀은 피스 부부 중 부인인 유콩이 주장이다. 내가 보기엔 부부가 실력이 비슷하다. 나와 친한 콜린과 데이빗을 우리 집에 묵게 했다. 컴퓨터 전문가인 그들은 우리 집에 1주일간 묵으면서 우리 가족과 친해 진다. 자기네가 부속을 사와서 고장 난 내 컴퓨터를 고쳐주고 백업까지 해준다. 특히 우리 아들 옆 방에 묵으면서 아이와 많이 친해 진다. 우리 아들 놈이 좋아할 만한 농담을 계속해 주어서 아래층에서 오람이가 웃는 소리가 항상 들린다. 호주 팀은 나와 강찬수 5단의 전승에 힘 입어 이 번엔 압승을 한다. 피크닉은 시드니에서 1 시간 가량 떨어진 불루 마운튼(Blue Mountains)으로 갔다. 다음 날 11시에 60 km 떨어진 카툼바(Katoomba) 전망대 앞에서 모이기로 하고 제 각기 알아서 찾아 오라고 했다. 그런데 수 십 명 중 지각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서양인의 시간엄수(Punctuality)는 알아 주어야 한다(호주 2. 데본 베일리 샌드위치 사건 참조)
호주 시드니 - 일본 룰 NZ 팀 : Y Phease, B Phease, C Grierson, D Milne 호주 팀 : 한상대, 강찬수, J Bates, N Smythe 결과 : 11 – 5 호주 승 6) 제 6차전 1993년 데 여기는 자연도시이다. 캔버라는 산 속에 있는데 여기는 바닷가에 있다. 골목 안에는 흥미를 끄는 작은 가게와 음식점, 카페들이 보인다. 북 섬 끝 자락에 있어 건너 편이 남 섬이다. NZ 수도로 자리를 잘 잡았다. 이번 국가 대항전이 끝나면 일본 바둑인 2~30 명이 뉴질랜드 관광을 마치고 그 날에 맞추어 도착한다. 그리고 곧 “3국 친선 교류전”이 행사로 잡혀 있다. 웰링턴 북쪽 외곽지대에는 마오리 족과 남 태평양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살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뉴질랜드 선수단 2장이 한국 이름이다. 조금 후 누가 “한교수님 안녕하세요?” 해서 보니까 어디서 본 얼굴이다. 내가 얼른 기억을 못하는 거 같으니까 그가 “몇 년 전 교수님이 방학 중 한국기원에 오셨을 때 제가 찾아 뵙고 호주 쪽으로 진출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바둑도 한 판 두고요” 한다. 그러니까 기억이 난다. 내가 “그럼, 혹시 음악 한다는?” 하니까 “맞습니다. 여기서도 밴드를 조직해서 음악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다. 그리고 보니까 오세아니아의 두 국가 선수 8 명 중 3명이나 한국인이다. 후보까지 4 명이 모였다. 이 무렵 강인준씨는 NZ 챔피언을 몇 차례 했으나 시민권이 아직 없어 세계대회 대표로는 몇 년 후에나 출전한다. 이 무렵까지가 오세아니아 주에서 ‘한국 바둑의 전성기’ 였다.
장소 : 웰링턴 - 뉴질랜드 룰 93년을 마지막으로 양 국간 “국가 대항전”은 중단 되었다. 95~96년에 호주에서 개최 되어야 하는데 호주 측 주동이었던 내가 한국으로 가 버리고 “Home & Away”가 생각 보다 쉽지 않아서였다. 특히 약체 NZ가 호주를 꺾자 목적의식을 잃은 것도 한 몫을 했다. 양국의 강자들이 다 중국인으로 대체 된 것도 문제다. 국가 대항전이 중국인끼리 경쟁이 될 테니까. 지금은 대회가 없어졌으나 두 나라가 서로 오가며 국가 대항전을 했던 10여 년은 우리 인생의 황금기(Golden age)였다. 그 동안 우리가 휩싸였던 열정과 흥분은 우리에게 “찬란했던 젊은 날의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쌓은 “우정의 약발”은 아직도 그 효력이 듣고 있다. 요즘 세대에게도 그런 낭만을 경험할 날이 올 수 있을까? (NZ 2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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