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화사한 주변인(周邊人)
청아모 여름 MT에 참가한 멤버들의 직업을 살펴봤다.
바둑사이트 기자, 바둑TV해설자, 바투게이머, 바둑도장 사범,
바둑교실 운영, 여성바둑연맹 임원, 바둑학과 학생 등등 거의 모든 멤버들이 바둑과 맺어져 있었다.
직업을 갖지 않은 친구는
아직도 입단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바둑대회 우승자를 살펴보면 청아모 멤버들이
수두룩하다.
바둑계의 꽃은 프로다.
모든 시스템이 프로 위주로 돌아간다. 활짝 개화하지 못한 꽃봉오리는 열매를 맺기
어렵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프로 입단을 꿈꾸다 뜻을 이루지 못한 준걸들이 바둑계의 주변인으로 서성거리며 얼마나 많은
욕구불만의 나날을 보냈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이창호의 등장으로 일어난 바둑 붐 이후 많은 영재들이 바둑을 배웠고,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다 바쳐 올인했다. 그만큼 물이
좋았고, 경쟁이 치열했다. 그때부터 한국기원 연구생들의 실력은 몇 눈금 상승했고 프로기사들이 맞상대하기 꺼려할 정도로
강해졌다.
문제는 그토록 강한 지망생들 전원이 입단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원생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때 시작해 고교생 때
과정을 끝낸다.
그 사이 입단하면 다행이지만 탈락하면 엄청난 상실감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신예 프로기사들이 그렇듯
탈락한 멤버들도 어려서부터 바둑에만 매달려 왔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전공을 찾기 힘들고 교우관계 또한 바둑 친구로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2007년 장애인 바둑대회 지도다면기. |
“그래서 청아모 모임의 결속력이 강한 편인가 봐요. 어려부터 알고 지냈고, 또 서로 동질의 아픔을 겪었으니까 연대감을 가질
수밖에요.”
다시 그들에게 꿈에 관해 물어본다. 모두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글쎄요. 어떻게든 입단하는 거겠죠.”
“해외바둑 보급사로 나가 한국바둑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세미프로라는 자격도
만들어서 후학들 가르치는데 어떤 명분이라도 주어졌으면 해요.”
“이제 스포츠로 방향을 잡았으니 아마추어로도 할 일이 많지
않을까요?”
“바둑소설이나 영화를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 중 마지막 대답에 귀가 솔깃해진다.
청아공명이란 친구다. 아이디가 암시하듯 꾀주머니깨나 쥐고 있을 청년이다.
“오호, 콘텐츠에 관심이 있나봐요?”
“네, 제가 바둑에 입문한 이후 가장 감격스러웠던 일이 문예공모전에 바둑을 소재로
출품했는데 당선됐었을 때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큰 승부가 걸린 바둑 한 판보다도 문예공모전 당선이 훨씬 기뻤다면 그의 성향은 아무래도 그 쪽을 지향하는 것 아닐까? 경쟁이
만만치 않은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면 필력도 프로 급이라는 이야긴데 바둑을 조금 이해하는 작가보다 문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바둑 인이
바둑 콘텐츠를 창조하는데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 2003 길거리 지도다면기에 참가한 청아모. |
청년 아마추어 기사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재능이 통통 튀고 두뇌 회전이 빠른 친구들, 어쩐지
화사해보였다.
그들의 품고 있는 미지의 역량이 과연 우리 바둑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터.
S#2. 통렬하고 유쾌한 복수
“작가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통렬하고 유쾌한 복수는 바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월간 바둑 9월호에 실린
작가 이외수 선생의 한 마디다.
작가를 수 없이 절망케 하고 좌절시킨 이 삭막한 세상에 대해 그는 그렇게 복수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기서 ‘복수’는 글자 그대로 복수가 아니라 화해이며 선물이다.
나를 아프게 한 세상이 미운 게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해 성장시킨 세상이 고마운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세상을 이루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자극으로 이 세상을 더욱
깨끗이 닦는 것이 보답이리라.
청년 아마추어 기사들에게 권하고 싶은 메시지다.
 ▲ 2004년 1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타이젬에서 김용재 씨 돕기 지도대국을 펼친
청아모. |
언젠가 청아모 회원들이 시각장애인 애기가 김용재 씨의 애틋한 사연을 듣고 조훈현 국수와의 친선대국을 성사시킨 적
있었다.
한때 연구생 출신으로 프로 입단 직전까지 갔다가 병마에 시달려 청각과 시각장애를 갖게 된 김용재 씨를 돕기 위해 청아모
회원들이 타이젬에서 유료 지도대국을 가졌는데 많은 유저들이 흔쾌히 참여해 무려 740만원의 성금이 모아졌었으며, 조 국수는 김용재
씨를 자신의 주치의 병원에 소개해 치료를 돕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청아모는 전국장애인바둑대회가 열릴 때마다 자원봉사를 하고 각종 아마추어 바둑대회에 도우미 역할을 맡아
한다.
프로기사라면 정식 초청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지만 청아모 회원들은 스스럼없이 어떤 자리라도 바둑 팬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의지만 있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바람처럼 자유롭게 바둑이 있는 곳에 날아가 바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승부도 멋지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기리(棋理)의 비밀을 알려주는 일도 유쾌한 복수는 아닐까?
 ▲ 2007년 충정로에서 열린 청아모 일일기원. |
S#3. 어디에 있어도 그대가 중심이길
“입단결정국에서 한 수를 실수해서 친구에게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한국기원을 나오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빈 것 같더군요. 집이
부산이라 경부선 열차 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어디쯤인가 왔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논산이더라구요. 여수 가는 전라선 티켓을 끊은 거예요.
그 충격은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차수권 6단의 고백이다.
또 K6단은 최종 국에서 패배하고 사흘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또 누군가는 최종
국을 두다가 점심시간에 명동성당을 찾아가 기도를 했다고 하며, 누군가는 세상을 접을 생각도 품었으며, 누군가는 산으로 올라가 며칠
동안 이슬을 맞고 노숙했다고 한다.
사법고시보다 어렵다는 입단의 관문으로 인해 좌절한 젊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다른 길을 찾을 때 과연 잃어버린 청춘의
광채를 보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는 지금 제 일에 만족합니다. 프로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제 실력으로 프로에 가도 좋은 성적은 내지 못 했을 거 같아요.
바둑 행정 일을 맡아 하면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거든요. 그분들이 적어도 바둑이
전제되는 한 사범으로 대우해주잖아요. 젊은 나이에 일반적인 회사에 들어갔으면 아직도 새까만 신입사원일 텐데 그런 대접 받기
힘들죠.”
청아노을 8단은 그렇게 대답한다.
그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청아모 멤버들이 바둑판 앞에서는 사범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 특권은 바로 청소년기 전부를 바둑에 바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렇지. 바둑의 궁극이 꼭 승부만은 아니지 싶다.
보급도 중요하고 행정도 필요하고 콘텐츠도 절실하고, 바둑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
어떤 일이라도 자신이 확신을 가진다면 그 안에 해답이 있는 법.
청아모 멤버들 모두가 한국바둑의 실한 밀알로 싹을 틔우길
기도한다.
☞ [청아모 外傳] 아마바둑의 별자리에서 1박 2일① 바로가기
 ▲ 2009 여름 청아모 여름엠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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