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대소의 대국을 경험했던 백전노장도 이른바 ‘큰판’ 앞에서는 초조하고 긴장하기 마련인가 보다. 일생에 한두 번 올까 말까한 빅대국에서는 그들도 인간인지라 초조와 불안 그리고 공포로 점철된다.
 ▲ 서봉수 9단. | 서봉수와 물수건
1993년 응씨배 결승 마지막 5국의 광경이다. 순국산, 만년 2인자 서봉수는 예상을 뒤엎고 승승장구하며 일본의 거장 오다케히데오와 결승에서 만난다. 우승상금이 물경 40만 달러. 그러니까 당시 환율로 3억원이 넘는 거금이었다. 지금과는 환율에서 차이가 있지만, 당시의 돈이 더 값어치 있었다. 분명 당시엔 3억으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2채쯤 살 수 있었다.
당시에도 동양증권배 후지쓰배 등 세계대회가 있긴 했으나 어찌 응씨배만큼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으랴. 더욱이 서봉수는 89년 후지쓰배에서 4강에 올라본 후 처음으로 큰 무대에 올라갔으니, 제 아무리 야전사령관 특무상사라고 해도 초강심장으로 이 한판을 치러야 했다. 당시 국내의 전 타이틀을 따내야 그 정도 액수가 될까 말까한 수준.
서봉수는 대국 때 얼굴에 유불리가 나타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국개시가 임박했는데 수많은 취재진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착수가 되길 기다리는 시점에 서봉수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착석해 있었지만 물수건으로 얼굴을 연신 가리고 닦아내길 수십 차례. 정확하게 수십 차례였다.
그러니 도저히 얼굴을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흥분되어 있었다. 긴장한 서봉수의 얼굴이 마치 옻이 오른 사람처럼 붉어졌다. 필자도 그 순간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서봉수도 저렇게 전율할 만큼 3억원이 큰 돈인가?’
반면 오다케는 거장답게 어깨를 의자에 젖힌 상태로 껄껄 웃어대고 있었다. 마치 ‘어이, 서선생! 그만 하고 어여 두시지?’라고 비아냥대듯이. 3억이라고 해봐야 일본 국내타이틀도 그 이상 가는 것이 있을 정도이니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서봉수는 당시 거의 5분 정도를 물수건으로 달구어진 그의 얼굴을 가리며 착수를 하지 못했다. 어찌 돈 뿐이겠는가. 일생일대의 승부가 된 그 한판에 서봉수는 밀려드는 긴장감에 도저히 달아오르는 얼굴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긴장된 자신의 얼굴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취한 행동이었다.
뿐만 아니다. 5국이 위기의 국면을 맞이하다 막판 오다케의 착각으로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서봉수는 ‘왔다’ 싶었던지 대망의 곳을 놓으려고 몇 번이나 착륙을 하려다가, 이륙을 했다. ‘아니야. 좀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지. 마지막 찬스야.’ 하면서 이착륙을 겸하기를 십 여 차례.
그 모습을 상상해보라. 마치 단수와 같은 뻔한 곳이 있다. 거기를 두면 끝이 난다. 3억여원이 들어온다. 그 순간 돌이 어찌 흔들리지 않을쏜가. 화룡점정의 순간을 앞두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 순간의 전율. 정말이지 심여차례에 걸쳐서 둘까 말까 이륙과 착륙을 번갈아 했다. 오히려 목을 쭉 빼며 상대의 처분에 생사여탈권을 빼앗긴 오다케가 한마디 한다.
"서선생. 괴로워. 빨리 결정해."
▲ 린하이펑 9단. | 린하이펑의 부채신공
1992년 동양증권배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6세 이창호는 대만의 거장 린하이펑과 결승전을 가졌다. 부자지간의 나이 차이보다 더 나는 세대간의 대결이요, 세기의 대결. 당시 KBS는 생중계로 전국을 바둑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도 삼성화재배 등 빅승부는 생중계를 하지만 당시처럼 전국적 화제를 모은 대국은 없었고 앞으로도 드물 것이라 보여진다. 순전히 이창호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바둑을 잘 모르는 팬들도 ‘아니, 저 꼬마가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고?’하면서 TV 앞에 모여들었다.
KBS는 정상 업무가 안 될 정도로 바둑팬들의 전화로 인해 고충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상당수는 이창호가 언제부터 바둑을 배웠는지, IQ가 얼마인지 등 이창호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바둑이 종반으로 접어들자 전화를 걸어온 팬들의 질문이 전부 항의로 바뀌어 담당자들이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어린 이창호 앞에 앉은 태산 같은 덩치의 린하이펑이 부채를 딱딱거리며 이창호의 수읽기를 방해한다는 것이 그 내용.
'아니, 얘 앞에서 저게 무슨 비겁한 행위인가. 바둑엔 반칙패가 왜 없나?'
'바둑은 신사게임인 줄 알았는데 영 거북하다. 심판은 도대체 뭐하는 건가?'
사실 담당자들이 워낙 항의 전화에 홍역을 치렀음인지 당시 해설을 맡은 노영하 김수영 등에게 중간 중간에 시청자들에게 '부채신공에 대해 해명을 해주라고 했으나 항의전화는 끊이질 않았다.
린하이펑은 대국 중에 수읽기를 하면서 부채를 딱딱거리는 것이 버릇이었다. 자식보다 어린 아이들 앞에 두고 세계정상을 다투어야 하고, 바둑이 또 좋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다. 그보다 이창호가 바위같이 정좌하고 대국하는 것에 비해 링하이펑은 ‘가벼움의 극치’를 달린 것과 관계가 있다.
린하이평의 부채신공이 대국에 방해가 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정작 이창호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상대이므로 실제로 대국을 진행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바둑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귀에 린하이펑의 부채소리가 거슬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 부채는 우리 합죽선과 달라 손안에 찰싹 달라붙는 쥘부채라는 것이다. 부채살을 접으면 합죽선처럼 뭉툭하지 않고 양쪽 껍질 대나무살이 딱딱하여 린하이펑처럼 소리를 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따라서 일본 부채는 우리처럼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보다는 손에 잡히는 장난감처럼 액세서리의 성향도 강하다.
16세 꼬마와 마주 앉은 40대 후반의 린하이펑이 꼬마가 던지는 승부수에 아찔아찔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부채소리는 잦아지고 빨리 우리 편이 이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시청자들이 린하이펑이 ‘애를 데리고 정신 헷갈리게 한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부채소리가 실제로 들어보면 그렇게 크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바둑인들 사이에 부채소리는 그냥 잔잔한 클래식 음악 정도로 인식한다. 그러나 당시는 생방송 관계로 바둑판 아래에 착수하는 소리를 잡으려고 소형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어 부채소리까지 크게 잡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다시 밝히자면 당시 이창호는 아무런 미동도 않았고 그 부채소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3대2로 우승을 차지했음을 밝힌다. 혹시 당시에 항의전화를 했던 팬들이 있다면 기우였음을 재차 알려드린다.
 ▲ 조치훈 9단. | 조치훈의 자학
1994년 일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일 속기정상을 가리는 이벤트가 있었다. 당시 MBC제왕전의 우승자와 일본의 TV도쿄의 우승자가 만나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벤트 속기전을 치르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대표는 조치훈이었고 한국의 대표는 이창호였다. 그때까지 두 사람의 전적은 1승1패. 아직은 이창호가 조치훈에게는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 대세였고 속기전인 만큼 그래도 비슷하게 버텨주었으면 하는 바람 정도가 당시의 분위기였다.
MBC 스튜디오에서 윤기현의 해설로 녹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방송대국의 경우 녹화라고 해서 생방송과 달라질 것은 없다. 대국자는 어차피 생방송처럼 대국을 하고 그 프로를 나중에 방송할 뿐이다. 다른 프로처럼 바둑은 편집을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 바둑은 대국 도중 때 아닌 ‘컷!’이 등장하고 편집이 필요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방송사고 탓이었다.
한창 분위기가 고조된 중반, 조치훈은 무슨 실수를 크게 한 듯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이런 멍청한 놈’이라고 자신을 학대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스튜디오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며 마치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하나 떨어지게 할 만큼 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조명이 깨졌나?'
담당 PD, 카메라맨 할 것 없이 전부 귀에 둘렀던 헤드폰을 벗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조명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것이 더 이상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순간 대국실에서 기록을 맡고 있던 정대상 9단이 일행을 향해 조치훈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조치훈의 머리 쥐어박기가 얼마나 강력한 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카메라 기자들이 프로의 대국장을 찾으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한다. 사진을 생동감 있게 찍을라치면 활동성이 가미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대국장에는 돌을 갖다 놓는 일만 반복되므로 그렇게 신명나는 포즈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라는 포즈가 나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특히 바둑을 모르는 카메라 기자들은 애를 태운다.
그런 면에서 조치훈은 몹시 프로다운 기사. 그가 카메라맨을 의식하여 포즈를 취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베테랑’답게 거리낌 없이 포즈를 취해주기 때문이다. 조치훈이 등장하는 사진 속에서 그의 머리가 가지런히 드러난 사진은 극히 드물다.
그는 언제나 손이 머리카락을 향해 있고 그러다 보니 비교적 장발인 그의 머리는 늘 쑥대밭으로 변해 있다. 그는 사실 대국장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머리가 늘 '번개 맞은' 형태로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