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세계에서 유일한 바둑 디자이너 ②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CLUB A7 홍시범 씨의 두 번째 이야기
2009-12-14 오후 1:54:18 입력 / 2009-12-14 오후 4:11:15 수정
S#1. 술잔에 흘린 눈물 KTX 시발점이자 종착역인 행신 역 앞 갈매기살 구이 집. 맛깔스럽게 익어가는 고기와 따끈한 밥을 앞에 두고 그는 좀처럼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냥 술잔을 채우고 비우고만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독한 놈인데 이상하게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감정이 자꾸 북받치네요." 무려 네 시간째 우리는 연탄 화덕 석쇠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우리의 대화가 너무 진지했던 까닭에 식당 주인이 계속 음료수와 안주거리를 서비스하면서 장시간 인터뷰를 권장해주었다. 홍시범 씨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듣고 싶었다. "가난한 것은 비극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을 견디지 못하는 게 비극인 거죠. 홍 감독님은 충분히 고난을 견뎌냈고 아들을 바둑의 장인으로 키워냈으며 그에 만족하지 않고 바둑대회 디스플레이어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고 있지 않습니까? 바둑계에서 자신의 고난은 악착같이 참아내고 타인의 불편을 돌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고맙습니다. 그리 표현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가볍네요."
그가 드라마틱한 성장기의 비밀에 관해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제주도 함덕. 소년 홍시범의 부친은 함덕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였다. 할아버지가 그 동네에서 가장 부자였다고 했다.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원장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홍시범을 낳았으니 출생 환경은 남부럽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산후통을 앓으면서 아편을 복용했고 아버지도 함께 중독이 돼 조금씩 인간의 생기를 잃어갔다. 뭐가 잘못됐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부모들이 집을 나갔고 그 후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홍시범의 나이 일곱 살 때였다. 소년은 여동생의 손을 잡고 백리를 걸어 부모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제주시 여순경의 눈에 뜨여 세화리 홍익보육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보육원에서 자라며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로는 최고 인텔리 계층이었던 의사 아버지의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아 그런지 공부를 아주 잘했다. 1등을 하고 백 점을 맞은 정도가 아니라 초등학교 6년 전 과목을 통틀어 한 두 문제를 틀렸을 정도였다. 보육원에서 특별히 읽을 책이 없어 교과서를 달달 외웠으니 시험지에 답을 쓰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워낙 우등생인지라 보육원 선배들도 홍시범을 괴롭히지 않았다. 다만 지나치게 영리한 소년에게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고민이었다. "그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요. 꿈이고 뭐고 하루하루 견디는 게 힘들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지옥 같은 소년기를 풀어놓으면서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을 이야기할 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 했다. 잡초처럼 자란 그는 역시 자신에게는 한없이 모질면서 가족에게는 약한 사나이였다.
S#2. 내 청춘과 바꾼 아들, 홍맑은샘 아들은 맑은 샘이요, 딸은 맑은 비로 이름 지었다. 성이 넓을 홍(洪)이므로 넓고 맑은 샘에서 물이 솟아 시내로 흐르고 강이 되어 바다에 닿은 뒤 다시 하늘로 증발해 비로 내리는 대자연의 순환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름처럼 아이들은 맑고 밝게 잘 자라주었다. 경제적인 형편만 괜찮았더라면 맑은샘과 맑은비 모두 마음 고생시키지 않고 원하는 공부를 여유롭게 시켰을 텐데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야하는 가난한 아빠는 비장의 가정교육을 창안해냈다. 맑은샘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되 딱 10 곡만 연주할 수 있도록 과외를 끊었으며, 맑은비에게는 보고 싶은 만화를 사주고 연필을 깎아준 거였다.
바둑 수업도 독특했다. 또래의 경쟁자들처럼 학원이나 도장을 보낼 수 없었기에 3연성과 화점-외목-날일 자 걸침으로 이어지는 홍맑은샘 전용 포석을 집중적으로 갈고 닦았다. "맑은샘이 바둑 두기 싫어하면 무작정 손목을 잡고 정릉에서 구리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어요. 우리에게는 그저 악착같은 승부 혼과 강인한 체력이 밑천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PC통신 시절 플레이361에서 프로.아마 연승대항전이 벌어졌을 때 맑은샘은 특유의 포석으로 가공할 기록을 남겼다. 당시 프로 1장으로 출전한 안관욱 사범이 아마 대표들을 1장부터 5장까지 내리 꺾고 기염을 토했다. 맑은샘은 아마 6장으로 나서 안 사범의 연승행진을 막았고 이후 7연승으로 프로들을 연파해버렸다. 2002년 프로 아마 대항전에서 맑은샘은 당시 세계최강인 이창호를 상대로 19수 째 암수를 구사해 완벽하게 판을 밀어버렸다. 복기를 하면서 이창호 국수는 19수를 지목하며 물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받아야 하니?" 당대 최고수가 새까만 후배에게 암수의 대응 법을 진지하게 물었다. 역시 이창호는 그릇이 크고 진솔한 위인임을 알 수 있는 대목.
그렇게 아마바둑계의 대표적인 승부사로 우뚝 선 맑은샘은 자그마치 27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2002년 맑은샘은 공식상금으로 3,750만원을 획득했다. 당시 프로기사 상금순위 랭킹 10위보다 더 많은 상금을 벌어들인 것이다. 그때부터 맑은샘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다보니 빈번하게 대회에 출전하기가 민망해졌다.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라 하기에도 좀 애매한 존재. 이른바 박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맑은샘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장의 사범으로 진로를 개척했다. 홍맑은샘 도장은 문을 연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일본에서 가장 바둑을 잘 가르치는 곳으로 정평이 났고 마침내 올해 일본기원 입단시험을 치르는 참가자들 중 거의 절반을 배출할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실전적 교육과 가족애가 홍 도장의 노하우였다. 공부를 하다가 피자를 시켜 같이 먹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몇 정류장 나갔다가 내려서 도장까지 다섯 시간 넘게 걸어오는 극기 훈련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런 방식은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어 학부형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고 했다. "아버지 몇 년 기다려 보세요. 일본에서 최고수가 나올 겁니다." 승부사 홍맑은샘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승부를 하고 있다. 일본이면 어떠랴? 기타니와 세고에 선생의 지도를 받은 한국의 프로기사들이 결국 세계를 제패했듯이 한국인 사부를 둔 일본의 걸출한 기사가 바둑 사를 다시 써도 나쁘지 않으리라.
S#3. 다시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 "어떻게 보면 맑은샘이는 아들이지만 저에게 스승이고 선배입니다. 내 청춘을 아들과 바꿨다고 표현했지만 지금 제가 바둑대회 진행을 업으로 삼으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잖습니까? 30여 년 동안 지하공장에서 단순반복 작업으로 세월을 보냈던 홍시범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게 아들 덕분이거든요. 그리고 새롭게 출발한 지 3년 됐기에 제 나이를 세 살이라 말씀드린 겁니다. 아직 어리니까 부단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바둑대회를 열심히 디자인할 생각입니다." 홍시범 씨가 강조하는 CLUB A7 정신은 간단명료하다. '전쟁이 터져도 우리가 준비하는 바둑대회는 흔들림 없이 진행될 것이다.' 바둑대회 현장에서 홍시범 씨를 관찰해 본 분들은 아시리라. 그는 바둑대회 자체를 한 판의 승부로 생각하는 또 다른 형태의 프로라는 것을.
"앞으로 어떤 대회를 연출해보고 싶으세요?" "청계천 전체를 따라 바둑판을 도열시켜놓고 세계바둑대회를 진행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제 고향인 제주도 보육원을 찾아가 정기적으로 바둑을 가르쳐주고 싶구요. 비록 저를 세상에 버린 고향이지만 함덕해수욕장에 여름바둑캠프를 열어보고 싶습니다. 고향과 부모님들께 홍시범이 바둑과 함께 다시 돌아왔노라 보여드리고 싶은 치기에서 비롯된 소망입니다만......그렇게라도 해야 가슴이 좀 후련해질 것 같습니다." 그는 아이디어가 전류처럼 흐르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 아마 멀지 않아 그런 꿈들은 틀림없이 현실로 상영될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바둑디자이너 ① 바로가기 - 타이젬 인물포커스 보너스 홍시범 씨가 타이젬 회원님들의 성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일본 유명기사 8인의 휘호가 새겨진 부채입니다.
어제 1편 기사를 읽고 격려 메시지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 중에 필자가 한 분을 선정했습니다. dreamto 3급 : 무지개는 스스로의 영롱함보다 배면의 어둠으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이창호와 이세돌이 있기엔 그늘진 데서 묵묵히 제몫을 하는 희생과 헌신이 있다. 능력을 펼치게 해준 바탕을 기억하길. 이분께 8인 부채와 정회원 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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