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젬게임

세계바둑사

미녀 삼총사와 파리를 찾다

윤영선· 한해원· 이하진 사범과 한국대사배 참가

2010-02-12 오후 2:23:55 입력 / 2010-02-13 오후 3:09:52 수정

1. 파리 도착
2006년 새 집행부로 새롭게 출발하는 프랑스바둑연맹은 한국대사배에 참가하러 오는 한국 미녀삼총사와 나를 맞는 준비로 바빴다. 숙소는 소피텔(Sofitel, Bercy) 호텔, 와인셀라(Wine cellar) 식당에서 환영만찬과 각자 교통비까지 준비하는 등 빈 틈이 없었다.

남자 기사들만 갔으면 이런 대우를 했을까? 만약 여자라 이런 대우를 한다면 그 덕은 내가 보고 있는 건가? ^^ 나는 프로기사 한해원, 이하진 사범과 같이 벨기에서 테제베(KTX 같은 고속열차)로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프랑스 바둑연맹 한국담당 갸랑(Paul Galan)씨를 비롯 프랑스 한인 챔피언 장석현씨 등 7~8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윤영선 사범은 먼저 파리에 도착하여 다른 일을 보고 직접 호텔로 오겠다고 했다.


▲ 파리 북역에 도착한 우리 일행


마중 나온 사람들의 차를 분승해서 타고 우리는 숙소로 갔다. 호텔에 도착하니까 영선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짐만 풀고 프랑스 바둑협회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 식사는 지하 포도주 저장소(Cellar)인 분위기 있는 식당 특석에 예약이 되어 있다. 프랑스 측에서 10여명이 나와 식사하면서 우리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당시에는 여자기사들 영어가 서툴렀는데도 그들 주변에선 웃음꽃이 자주 핀다. 이러면서 밤 12시가 다 되어 간다. 내가 여자 사범들에게 “촌놈들이 파리에 오면 에펠탑 전자 쇼는 봐야지” 하며 장시간의 저녁 식사를 끝맺었다. 우리는 나와서 그 근처 야시장을 거쳐 에펠탑 근처로 갔다. 매 시간 정각마다 하는 전자 쇼를 보기 위해 자정인 12시에 가서 약 10분간 에펠탑이 번쩍이는 빛을 쏘는 쇼를 본 후 우리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 왔다.


▲ 전자 쇼를 하는 중 / 에펠탑


2. 한국 대사배
우리가 이번에 유럽에 온 목적은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는 ‘한국 대사배’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가 주관하는 아마추어 국제대회에 오는 각 나라의 대표 선발전을 한국 대사배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바둑의 홍보도 되고 현지 바둑계와 유대를 강화할 기회도 된다. 그래서 타당성 조사를 끝낸 후 2003년부터 수 십 개국을 상대로 협상을 해 왔다. 그 결과 현재 약 10여 개 국가에서 한국대사배를 치르고 있다.

이번에 우리가 참가하는 주(駐) 프랑스 한국 대사배는 마침 한국대사관이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문화행사가 준비 중에 있어 그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거기에다가 프랑스 정부도 2006년을 ‘한국의 해’로 정했다. 나는 파리에 있는 한국문화원 원장 모철민 원장과 프랑스 바둑연맹의 국제담당 갤랑씨와 주로 교신을 했다.

이번 우리의 방문을 위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바둑협회가 대사배 일정을 일주일 간격으로 3 주 동안 매 주말마다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는 세 나라 대사배가 끝난 후에 아직 대사배를 치르지 않고 있는 영국에도 들려 대사배 개최 확정작업을 하고 런던과 옥스포드 대학에서 바둑 보급도 하기로 스케줄이 짜여 있다.

우리가 한국대사배를 열기 시작하니까 독일에서는 그 동안 중단했던 일본대사배가 부활해서 다시 개최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사배를 열기 위해 관계기관과 사전에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해 합의를 본 후 실행에 들어 갔다.

1)한국대사 배 목적:
- 한국바둑의 세계화
- 한국바둑인 세계무대진출(취업과 보급)
- 해외바둑전파: 올림픽종목 만들기 위한 노력
- 재외한인동포사회와의 친목
- 재외한인 2,3세 바둑교육을 통한 한국문화교육
- 재외한인사회와 현지바둑협회의 유대관계조성
- 바둑에 대한 한국 외교관들의 새로운 인식

2) 각 기관의 역할

a. 한국대사관
- 대사 컵 및 부상 제공
- 대사의 축사(개회사, 폐회사)
- 대회 다과
- 한국 프로기사 및 방문단 지원과 현지 바둑협회와 협력
- 홍보

b. 현지(프랑스) 바둑협회
- 대회 조직 및 운영
- 홍보
- 대회 장소 제공
- 한국 방문단 숙소 및 식사, 관광 등 담당
- 한국 프로, 아마기사 장기 체류를 통한 바둑보급 및 취업 안내
- 재외한인회와 연계하여 활동, 친목
- 한국바둑계와 관계 강화

c 한국아마바둑협회(대한 아마 바둑협회 KABA)
- 세계 바둑대회(국무총리배)에 대사배 우승자 초청
- 한상대교수 한국 바둑팀 대사배 파견 협조
- 국제 바둑보급사 파견
- 재외한인 2, 3세 바둑교육을 통한 한국문화 전파

d. 한국기원
- 프로기사 파견 (윤영선, 한해원, 이하진 사범)

다음 날 한국대사배 개막식이 오후 1시다. 우리는 그 동안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무슈장(장석현)이 돕겠다고 해서 오전 9시부터 그의 안내로 시내를 돌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한국에서 집 사람이 나에게 국제전화로 난리다. 행사에 나가기 전에 구두 한 켤레 사라는 내용이다.

우리 일행은 운동화만 신고 여행하고 있었다. 나는 한복에 운동화라 더욱 가관이었다. 할 수 없이 안드레라고 하는 구두점에 가서 나와 해원이가 구두를 한 켤레씩 샀다. 내 구두 가격은 약 10만원이었다.

구두점에서 나와서 우리는 몽마르트 언덕에 들렸다. 옛날에 이 곳은 높은 지대라 가난한 예술가와 학생들이 주로 살았다. 문호 빅토르 위고(레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 저자), 음악가 푸치니(이 곳이 오페라 라보헴의 무대가 된다), 외에도 미술가들이 특히 많이 살았다. 이 곳에 살았던 화가만 해도 고호(Vincent van Gogh), 모딜리아니(Modigliani), 모네(Claude Monet), 달리(Salvador Dalí), 피카소(Pablo Picasso), 등 미술사에 큰 획을 근 거장이 많다.

우리는 거리 화가들, 기념품 점을 돌아 본 후 그 옆에 있는 사크뢰커 성당에 갔다가 행사장으로 가는 도중 오페라하우에 들렸다.


▲ 윤영선 사범과 무슈 장(장석현) /몽마르트언덕


▲ 사크뢰커 성당(Basilica of the Sacré Cœur)/ 몽마르트 언덕(Montmartre- 130 미터)꼭대기에 있다.


▲ 오페라하우스 앞 이하진 사범/ 한해원 사범

우리가 대회 장소인 한국문화원에 도착하니까 주철기 대사를 비롯 대사관, 문화원 직원이 주말인데도 총 출동 되었다. 프랑스 바둑인도 많이 와 있어 북적 인다. 참가자 수를 물어 보니까 80 명이 넘는다고 한다. 주 대사는 우승자에게 특상을 마련 하는 등 준비를 열심히 했다.

개회사에서 주 대사가 불어로 연설을 한다. 불어를 못 하는 나는 부러웠다. 프랑스는 자기네 나라 말에 대한 자존심 때문인지 독일이나 네덜란드에 비해 영어 수준은 낮은 편이다. 내가 대회 창설자로 영어로 인사말을 하는데 농담을 해도 웃는 사람이 몇 안 된다.

1차 대전 무렵까지는 불어가 국제어였다. 지금도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네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영어는 장사꾼이 쓰는 언어이고, 이탈리아어는 소리 지르기 좋아 싸울 때 좋고, 독일어는 인간끼리 쓰기에는 좀 뭐하니까 개하고 의사소통 할 때 알맞고, 불어가 인간용 언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이탈리아 사람이 “독일어는 전쟁용이고 불어는 호모들이 사용하는 말이고 이탈리아어가 인간이 쓰기 좋은 언어다” 라고 한다. 이 말을 독일인에게 했더니 “그 사람들이 그러더냐" 하고 그냥 웃는다.

▲ 대회장으로 쓰인 파리 한국문화원

▲ 왼쪽부터 한해원, 윤영선, 주철기 대사, 필자, 이하진

▲ 개막식 청중석

최강자 16명으로 구성된 ‘수퍼그룹’ 멤버는 개막식에서 한 명씩 소개 된다. 이들은 프랑스에선 영웅들이다. 이 중에서 챔피언이 나온다. 한국 교민 바둑 강자가 여러 명 나왔으나 수퍼 그룹에서 바둑을 안 둔다. 프랑스 대표가 되려면 그 나라 여권 소지자라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내가 영선이, 해원이, 하진이를 한 명씩 간단한 배경과 함께 소개 할 때 프랑스 바둑 인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영한다.

개회식이 끝난 후 주최 측이 오늘은 저녁까지 계속 대국만 할 테니까 우리에게 관광을 하고 저녁 식사까지 먹고 오라고 권한다. 우리는 시내에 나가 노트르담 사원을 보고 다시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저녁 7시 이후에는 대국 장으로 와서 지도기를 두었다. 이 날은 여류기사 3명과 아마추어인 나까지 4명이 나서서 지도기를 두었다.

▲ 대사배에 온 한국인들에게 다면기 지도 중인 윤영선 사범

▲ 한해원 사범 다면기

저녁은 한국 바둑인들이 우리를 소르본느 대학촌에 데려가서 퐁듀를 대접했다. 그들은 장석현 5단, 이송렬 5단, 이경우 4단, 주태환 4단, 이원재 3단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퐁듀 전문 집은 ‘치즈접시’란 뜻을 가진 아씨에뜨 프로마쥐 (Assiette aux fromages)란 식당이다.

음식점에 들어서니까 치즈 냄새가 진동한다. 퐁듀(Fondue)는 치즈를 녹여 와인을 탄 후 빵을 찍어 먹는 음식이다. 감자와 치즈만 녹여 먹는 것을 하크레트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술에 약한 해원이가 퐁듀 몇 조각 먹더니 취해서 얼떨떨해 한다. 얘기 중에 그들은 불경기라 암울한 ‘IMF’ 때 바둑인들이 모여 바둑두고, 퐁듀 먹고, 한잔하고, 노래방가고 하면서 우정이 더욱 돈독해 졌다고 한다. 바둑이 불경기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역할을 해주었다며 웃는다.

▲ 관광버스로 파리를 돌고 있다. /노트르담 사원

대회 이튿날. 주최측에서 오늘은 오후 5시가 지나서 대회장에 와 달라고 한다. 해원이와 하진이가 유럽에 처음이라고 했더니 꼭 필요할 때 빼고는 최대로 우리에게 자유시간을 주려고 하는 배려가 느껴진다. 이 금쪽 같은 시간을 어떻게 쓸까 하고 망설이는데 하진이 고모부가 안내를 맡겠다고 한다. 하진이 고모부는 프랑스에 유학 왔다가 프랑스에 살게 된 케이스. 파리에서 18년을 살았다고 한다.

한인 바둑인의 대부분이 유학생 배경을 갖고 있다. 현재 파리의 한국인 1만명 중 8천 명쯤은 유학생 출신이라고 한다. 신기한 일은 하진이가 고모부와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는데 신통하게도 많이 닮았다. 내가 하진이에게 “네 아버지라고 해도 사람들이 다 믿겠다” 고 했더니 옆에서들 고개를 끄덕인다.

▲ 우승자 말레크 6단/ 챔피언 말레크를 두 점 접어 주고 이긴 이하진 사범

▲ 두 점 대국 /환후이 2단의 복기해설

시상식 후에 약속대로 우승자 말레크에게 하진이가 두 점 특별 지도 대국을 했다. 무대 위에서 둘이 두고 있으면 한 사람이 옆 자석 판에 수순을 옮기고 해설은 중국 프로인 환후이 2단이 맡았다. 환후이 2단이 중반에 우세를 잡은 하진이의 완승 국이라고 평하며 하진이가 “강하다”고 한다. 이 동안에도 영선이와 해원이는 지도 다면기를 두느라고 바쁘다.

특별 대국이 끝난 후 나와 프랑스 바둑협회 간부 7~8명이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금년에 새로 선출된 집행부로 의욕이 넘쳤다. 회장 살몽(Emeric SALMON)과 부회장 시모노(Cyril SIMONOT)가 다 젊다. 그들은 세계 최강의 한국 바둑계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싶어했다.

환후이 2단이 파리에서 세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협회가 월급제로 고용한다고 한다. 목적은 약 30명의 어린이 유망주를 뽑아 그들에게 바둑을 매일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1년 후에는 그 중에서 10명만 추려내 다시 1년을 훈련하여 전부 아마6단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나에게 “2~3년 후에는 유럽 바둑계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파리 사흘 째. 원래는 오늘이 파리를 관광하는 날로 잡혔는데 지난 사흘간 우리가 워낙 많이 돌아 다녀서 오늘은 박물관만 보기로 했다. 루불과 오르세이가 우리의 목표이다. 나는 영국행 기차표를 끊으러 무슈장과 역으로 가면서 해원이와 하진이만 루불 앞에 떨어뜨렸다.

12시 반에 주철기 대사가 우리 일행을 '사모'라는 한국 식당에 초대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다. 주대사와 점심을 한 후 우리는 샹제리제(Champs-Élysées) 거리로 나왔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말로만 듣던 샹제리제를 걷는데 추위쯤은 문제가 되질 않았다. 중간에 윌슨대통령,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차드 버튼, 에디트 삐아프 등이 출입했다는 ‘푸케 카페’가 보이길래 들어 가렸더니 안에 자리가 없다고 한다. 개선문 앞까지 걸어갔다가 커피 한잔 한 후에 주차장 쪽으로 다시 돌아 왔다.

▲ 샹젤리제의 밤

하진이가 오늘은 자기 사촌인 고모부 딸이 자기와 동갑내기인데 같이 지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샹제리제에서 고모부네로 하진이를 보냈다. 나와 해원이만 남아 무슈장과 라데팡스(La Defence) 신 도시 쪽에 갔다. 개선문 두 배 만한 라데팡스 ‘그랑 아치’ 문 사이로 멀리 샹제리제와 개선문이 일직선으로 보인다. 파리에서 현대식 건물은 이 곳과 몽 파르나스 정도에서만 볼 수 있다.

▲ 개선문 두 배 만한 그란대 아치 문(Grande Arche)

▲ 파리의 신도시 라데팡스

저녁에 한국 바둑인들과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들도 모처럼 한국에서 온 바둑 사절단이 반가운가 보다. 그들과 합세하여 우리는 바토-무슈(Bateaux-Mouches) 에서 세느강변 유람선(La Seine River Cruise)을 탔다. 밤에 보는 파리 야경은 환상적이다. 바둑 회원 중 전문 관광 가이드가 있어 우리에게 부지런히 설명을 해 준다.

유람선 관광 후에 우리는 파리에서 유일하게 항상 여는 바둑 카페 '레스코'에 가 보기로 했다. 퐁피두센터 근처에 있는 레스코(Lescot)가에 있는 레스코호텔의 1층과 2층 카페가 파리 바둑인들의 아지트이다. 밤 11시가 되었는데도 10여명이 바둑을 두고 있다가 우리를 반긴다. 그들은 우리 일행 전체에게 차와 맥주를 대접하고 바둑 얘기 꽃을 한참 피웠다. 우리는 파리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보냈다. 호텔로 돌아오니 하진이가 벌써 와 있다.


3. 프랑스 바둑 약사(略史) 2 편

1982년에 처음으로 랭킹위원회에 의해 프랑스 바둑인 랭크를 정리한 팜플렛(RFG)이 발표되었다. 여기에 5단에서 1급까지 37 명이 등록되었다. 9월에는 스트라스보그(Strasbourg)에 있는 상 에티엔느(St-Etienne)이란 고등학교에 페네슈(Albert Fenech)가 바둑클럽을 만든다. 지금도 프랑스 내 학교에서는 가장 오래된 클럽으로 그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1983년 3월에 나는 조훈현에게 전관왕을 내 주고 무관이 된 서봉수를 동행하고 유럽을 한달 반 정도 돌았다. 파리에 와서 임갑선생을 만나려고 애를 썼으나 한인식당, 한인회장 등이 연락처를 모른다. 프랑스바둑연맹도 번호부에 나와 있질 않았다.

이 해에 프랑스 바둑연맹은 본격적으로 바둑을 보급하는데 나선다. 그 동안 몇 차례 개인적으로 주관했던 여름 바둑캠프를 바둑연맹이 인수하여 정식으로 연맹행사로 공식화 했다. 이 해 마인드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체스, 브리지, 드라웃츠(Draughts), 타로(Taro), 스크래블(Scrable)과 함께 바둑이 등록된다. 같은 해에 첫 파리 명인전이 일본교민회의 지원으로 개최 되었다.

나와 친한 고려대 은희천 교수(타이젬 7단)는 자기가 교환교수로 파리에 있을 때 ‘파리명인’에 올랐던 걸 아직도 자랑한다. 나도 그를 ‘파리명인’으로 자주 칭한다. ‘파리명인전’이 24회가 되는 2006년 11월 셋째 주일에는 140명이 세 조로 나뉘어 대회를 치렀다.

우리가 파리에 갔을 때 전년 파리대회에서 한국 아마추어 강자 황인성과 조석빈은 중국 프로 출신 환후이를 이겼다. 내가 환후이에게 “어떻게 하다가 아마추어한테 그 것도 두 명에게 졌느냐?” 하니까 환후이가 머리를 파 묻고 마구 저으며 “I am sorry”만 연발하더니 나에게 “다음대회에서는 그 두 명에게 꼭 이기겠다”라고 약속한다. 그는 약속대로 2006년 파리대회에서는 그 두 명을 이긴다.

▲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Concorde, l'obélisque) 과거 길로틴 처형장이었다

1984에는 랭킹제도가 컴퓨터화 되었다. 7월에는 그르노블(Grenoble)바둑클럽이 알프스의 상 삐에르(St Pierre)와 샤르트뢰즈(Chartreuse)에서 두 주간에 걸친 바둑캠프를 주최한다. 프랑스 챔피언 전이 오픈대회로 외국인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결과 프랑스 거주 한국인 양 5단이 앙드레 무사를 이기고 첫 오픈 챔피언이 되었다.

1985년부터는 각 지역별 리그가 시작된다. 청소년 대회도 5가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스트라스보그에서 타이틀 3개를 가져간다. 프랑스 챔피언은 20세의 동줴(Frédéric Donzet)가 앙드레 무사를 물리치고 챔피언에 오른다. 무사는 10년간 6차례나 우승을 한다.

▲ 1987년 유럽대회가 열린 그레노블(Grenoble)

1987년에는 성인 바둑클럽 45군데, 청소년 클럽 15군데에 회원이 500명이 등록한다. 프랑스 바둑연맹은 유럽대회를 그레노블로 유치한다. 1988 년 (36-15 ELISE*GO, the FFG)이란 바둑 서버를 만든다. 이 해에 제 43회 혼인보(本人坊) 대국의 첫 판이 파리에서 열린다.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오다케 히데오 9단에게 승리한다. 이 때 일본 프로기사들이 따라와 다면기 등 행사를 많이 하고 돌아간다.

1991년 처음으로 유망 청소년을 뽑아 협회 지원으로 일본에 바둑유학을 보낸다. 1993 년 1년 반 동안 일본기원 원생(연구생)을 지내다가 돌아온 말레크가 앙드레 무사를 물리치고 새로운 프랑스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그 때 선발된 청소년 선수가 이번 대사배에서 우승한 마렠(Farid Ben Malek) 6단이다. 2월에 프랑스 바둑연맹은 청소년 교육기관으로 정부로부터 인정 받는다.

1994은 인터넷 시대가 열린다. 프랑스 바둑인의 연락처와 기초 정보가 ‘fr-go’에 입력된다. 1995년에 쟝 오쌍로(Jean Hossenlopp)와 프랑소와 미제생(François Mizessyn)이 프랑스 바둑 룰을 정리 발표한다. 이 룰은 미국 룰에 영향을 받아 중국식 계가법을 채택한다.

1995년 6년간 준우승에 머물렀던 삐에르 꼴메(Pierre Colmez) 6단이 세아이유(J.F Séailles)를 무찌르고 마침내 챔피언이 되어 한을 푼다. 95-96년에는 리옹대학 교수 티에리 에스코피에(Thierry Escoffier)가 모든 넷티즌이 사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연다.

이 해 쌍힐라(Sanhilhac)에서 열린 바둑캠프는 일본 프로기사 사이조 8단을 초청하여 그의 헌신적인 가르침은 인기를 끈다. 1997년에는 41회 유럽대회(EGC)가 마르세이유에서 열렸다. 800명이 참가하고 매인 토너먼트에 590명이 경쟁한다. 프랑스 거주 일본 프로기사 와타루 6단은 다케미야 9단의 ‘우주류’를 책으로 출판하여 이 대회에서 선을 보인다.

1998년 프랑스 바둑협회 등록자가 1000명이 된다. 프랑스에 바둑 둘 줄 아는 사람이 약 1만 명이 된다는 얘기다. 새로 회장이 된 베르나르드 뒤봐(Bernard Dubois)는 정부에 바둑에 대한 연구를 요청한다. 99년 1월에는 일본 기성전 첫 대국이 파리에서 두어졌다. 이 해에 루 바니에(Luc Vannier)는 스위스 로빈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대국자를 결정하는 전 유럽 바둑인의 순위를 넣은 프로그램 ‘고따(Gotha)를 만들었다. (2000년부터는 다음 편에 계속……)

TYGEM / 한상대 교수

관련기사

SNS 간편로그인

(주)컴투스타이젬    대표이사:이승기    사업자등록번호:211-86-95324    사업자정보확인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315 파이낸셜뉴스빌딩 4층

제호: 타이젬    등록번호: 서울 아04168    등록(발행) 일자: 2016.10.4

발행인: 이승기    편집인: 정연주    청소년보호책임자: 장성계

전화: 1661-9699 (상담시간:10:00-18:00)    FAX : 070-7159-2001    이메일보내기

COPYRIGHTⓒ Com2uS TYGE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 타이젬 일본
  • 타이젬 중국
  • 타이젬 미국
  • 타이젬 대만

2019 인공지능대상 수상

등급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