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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自由를 던진다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 우승자 송홍석 스토리

2010-06-03 오후 12:01:35 입력 / 2010-06-03 오후 3:23:34 수정





S#1. 아마 랭킹 1위가 던진 뜻밖의 선언


“바둑에 입문한 이상 프로기사가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지만 아마추어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바둑 보급을 위해서라면 아마추어 신분이 홀가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31회 세계 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대표로 출전해 8전 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한 송홍석 아마 7단은 귀국 후 타이젬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선언했다.
한때 세계대회 우승자에게는 프로입단의 혜택이 주어졌고 지금도 일반인 입단대회 16강 자동진출의 티켓이 주어지는데 그런 프리미엄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6월의 첫날 월드컵 공원에서 송홍석 아마7단을 만났다.
깔끔한 정장에 바람머리를 한 그는 세계제패 축하인사를 받는데 익숙한 듯 여유가 넘쳐보였다.
작년에 아마 국수에 등극했고, 전주에서 열린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랭킹 1위를 달리는 기대주였기에 프로 입단의 열망이 그 누구보다 크지 않을까 싶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입단 준비를 해야죠?
“아뇨. 아마추어로서도 충분히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혹시 프로 진출과정에서 아픈 사연이 있거나 좁은 입단 문호에 환멸을 느낀 것은 아닐까?

공원의 호숫가 나무그늘에 함께 앉아 가슴을 열어보기로 했다.



-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원생 시절을 끝내고 나오면서 진지하게 바둑계의 지형을 탐색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웠기 때문에 저 같은 바둑청년들은 세상의 넓이와 삶의 가치를 알기 이전에 바둑이 숙명으로 다가와 무조건 바둑을 두어야 하고 또 바둑을 전해야 하는 전령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궁극의 목적은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죠. 그래야 승부를 통해 상금을 획득하고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가만 보면 세계기전이나 국내 타이틀의 경우 정상급 기사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더군요. 과거에는 신문에 기보가 연재되면서 불특정 다수의 바둑 팬들에게 타이틀전의 바둑 내용이 전달되는 형식으로 보급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좀 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명예와 상금을 놓고 겨루는 정상권 등정의 기회는 제가 아니라도 이미 누군가 역할을 맡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죠. 정상에 대한 도전도 매력적이지만 바둑 저변을 확장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겸손하고 진지한 고백이지만 어쩐지 승부를 포기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묻는 이는 자꾸만 아쉽다.

- 아마추어라는 신분은 말 그대로 아마추어라서 바둑을 보급하는데 쉽지 않을 텐데요?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에서 활동하시는 선배님들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대로 기업체와 학교 쪽으로 활동무대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프로기사라면 다소 운신에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같은 아마추어 신분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잖습니까?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 모릅니다만 꾸준히 그 길을 개척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 선택도 의미 있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겠지요.”



송홍석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세계대회 우승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그는 곧장 자신의 꿈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 6월 13일 용산고등학교 동문 바둑대회에 자원 등판해 배팅투수 역할을 맡았다.
세계챔피언이 참석하는 바둑잔치는 당연히 풍성할 것이다.


S#2. 길몽과 악몽

“바둑 두는 꿈을 참 많이 꾸었습니다. 꿈에서 신의 한 수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꿈속이지만 정말 환상의 묘수를 두어 상대가 혀를 내두르고 제가 다시 봐도 바둑 사에 길이 남을 좋은 수라고 생각했는데 꿈에서 깨고 나면 아무리 복기를 해도 그 수를 찾지 못 합니다. 도대체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아마 바둑청년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꿈을 꾸었으리라.
송홍석은 바둑 꿈을 자주 꾼다고 했다.
이 번 중국 항저우 세계대회에 가는 날도 비행기를 놓치는 꿈을 꾸었다.
이전에도 종종 바둑대회에 가야 하는데 여러 가지 장애로 바둑을 두지 못하는 꿈을 꾸었다.
승부의 부담이 대뇌피질을 누르는 강박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는 프로들과 바둑을 두고 복기하는 꿈을 꾸었다.
분위기로 봐서 자신이 프로가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꿈이었는데 나름대로 길몽으로 보고 이번에는 꼭 입단을 예감했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1988년 생인 송홍석은 꼬마 시절에 지나치게 활동적이어서 부모들이 정서안정을 위해 바둑을 가르쳤다.
8살에 권갑룡 도장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바둑수업을 하기 시작했고 10살 때 원생이 되었다.
15살때부터 일반인 입단대회에 6번 도전했으나 번번이 아슬아슬하게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입단도전 5차 시기 때는 입단 결정국에서 김지석 프로에게 반집을 지고 3위에 머물렀다.
나이가 차서 원생 울타리를 나와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했는데 아마 국수전을 비롯해 6회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세계대회 2관왕이 되었다.
작년에는 아마추어 7단 클럽이 선정한 MVP가 되어 보검을 받기도 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시니어 선배님들께서 저를 불러 큰 상을 주더군요. 그 자리에서 아마추어 기사로서 커다란 긍지를 느꼈습니다. 물론 프로기사들도 연말에 바둑문화상이라는 행사가 있지만 그 자리는 역시 성적을 내는 별들의 잔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마추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치르는 시상식은 바둑과 관계되는 모든 이들이 허심탄회하게 어울리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라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선배님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몇 곱절 노력해서 갚을 생각입니다.”

바둑 이외에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는 송홍석.
그러므로 앞으로도 바둑을 놓을 수 없다고 했다.
보급을 위해서라도 더욱 공부에 정진해서 실력을 키우겠다고 말한다.

“누구와 두어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일 뿐이지만 한국 아마추어를 대표하는 기사로서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S#3. 정통파 투수 송홍석


이야기를 나눌수록 송홍석은 참 반듯한 청년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세도 바르고 생각도 바르다.
투수로 비유한다면 정통 우완 강속구 구질을 보유한 듯싶다.
워낙 눈에 보이는 직구라서 가끔 타자들에게 타점을 허용하지만 그래도 변화구 습득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매력적이다.
프로야구에 드래프트되어도 당장 선발 감으로 손색없는 자원이지만 스스로 아마잔류를 선언한 판단도 당당한 기백으로 여겨진다.

-운동을 잘할 것 같은데요?
“하하. 그런가요? 그런데 사실은 저......왼팔 하나만 성하고 온전한 곳이 없습니다.”

헉,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어려서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디스크 세 개가 붙어서 신경을 짓누르고 있는 증세지요. 그 바람에 두 다리 길이도 다르고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습니다.”

그가 인터뷰를 마칠 무렵 조심스럽게 그런 고백을 해왔다.
느낌대로 인물 크로키를 해가던 필자의 머리가 하얗게 비워진다.
바둑에 재능이 넘치는 한 청년의 행보가 다소 흐트러진 원인이 혹시 건강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휴, 그건 핑계에 불과하죠. 사실 부실한 허리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요인조차 극복해야 진정한 승부사겠지요.”

집요하게 증세를 묻자 그가 손을 저어 피한다.
서로 가슴을 열기로 합의했기에 이야기한 거지만 건강문제와 아마 잔류 선언은 전혀 별개라고 강조한다.
뭔가 가슴이 먹먹하지만 그런 회피조차 정갈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월드컵 공원을 나오는 길에 송홍석의 표정은 개운해보였다.
바둑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길을 확실하게 제시했으니 이제 뒤돌아보지 않고 뛰겠다고 했다.
앞으로 계속 강력한 원생출신 아마추어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므로 아무 랭킹 1위를 언제까지 지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설정한 네비게이션의 방향을 따라 기업체와 지역, 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바둑을 보급하겠다는 송홍석의 꿈은 6월 초순의 신록처럼 싱그럽게 다가온다.
송홍석. 이제 자유를 던지라!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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