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2 오후 12:00:14 입력 / 2011-01-02 오후 1:06:01 수정
S#1. 일출의 서광을 나눌까요?
바다는 차갑고 개펄은 꽁꽁 얼어버린 새해 첫날. 서해 간월도를 찾았습니다. 간월도(看月島)는 달을 바라보는 섬이고 서해는 일몰을 보기 좋지만 그 곳의 일출도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타이젬 카메라와 바둑인들이 함께 찾아간 현장이니 여러분께서도 화면으로 함께 해돋이의 벅찬 희망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간월암
밀물에 섬이 되고 썰물에 뭍과 손을 잡는 간월암. 그래서 더 애틋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는 명소입니다. 섬은 무너지고 깎이면서 세월을 인내합니다. 그렇게 견디는 것이 어찌 섬뿐일까요? 우리네 삶도 바람과 파도에 침식되고 풍화되며 흘러갑니다.
▲ 해를 보는 바둑인들.
서광사 템플스테이 2기 참가자들이 새벽 먼 길을 달려와 간월암 언덕에 섰습니다. 송년 철야 바둑대회를 마치고 온 까닭에 부스스합니다만 새해 첫 아침을 맞는 이들의 표정은 한없이 맑습니다. 태양은 날마다 저곳에서 떠오르지요. 오늘이라고 해서 뭐 햇살이 각별하겠습니까? 그러나 각별함은 우리들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입니다.
누군가 참 오랫동안 일출의 햇살을 응시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언제 이처럼 무언가를 깊숙이 바라볼 수 있을까요? 아아, 정말 올해는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저 하늘에 절대자가 있다면 이 언덕의 소망을 꼭 굽어 살펴주길 기원합니다.
▲ 하늘로 날아가는 등
간월암 상공에 연등이 떠올라 둥둥 날아갑니다. 연등 안에 누군가의 절실한 새해 소원이 적혀 있습니다.
▲ 다니엘라.
바둑을 배우러 독일에서 건너온 다니엘라 양도 새해 템플스테이에 참가했습니다. 그녀에게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빙그레 웃기만 하더군요. 아마 바둑과 사랑의 완성을 빌었으리라 유추해봅니다.
S#2. 진실은 우리들의 가슴을 울린다
서산으로 가는 길은 눈부셨습니다. 산백 수백 천지백이라고 했던가요? 백설로 온 산하가 덮여 있었습니다. 마치 장롱 속의 이불 호청을 뜯고 부드러운 솜을 펼쳐 놓은 것 같았지요.
연말연시의 일정이 결코 쉽지 않은데도 서광사 새해맞이 템플스테이에 30명의 참가자들이 모였습니다. 모두 복장을 갖춰 입고 법당에 모여 몸도 풀고 인사도 나눕니다.
그리고 불을 끈 상태에서 차례차례 촛불을 이어 밝힌 다음 눈을 감고 순서대로 마음속의 소원을 발표합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이들이라 대부분 한국 바둑의 발전과 개인적으로 기력증진의 소망을 털어 놓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한 소년의 목소리가 법당을 울리며 참가자 모두를 전율하게 합니다.
“올해 제 부모님들께서 이혼했습니다. 새해에 두 분이 다시 합쳐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아, 소년의 소망이 어찌나 절실한지 서른 개의 촛불이 일제히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던 필자도 렌즈를 닫고 벽에 기대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 소년의 진솔한 발표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 25점을 깐 소년
병인년에서 신묘년으로 넘어가며 본격적으로 철야 대국이 진행됩니다. 스물 다섯 점을 깔고 반상을 바라보는 소년. 이 아이가 촛불 축원에서 우리를 울렸던 주인공입니다. 바둑돌을 여기 와 처음 만져본다고 했습니다. 소년이 왜 바둑과 관계없는 소원을 말했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 대국 전경.
제2기 각수삼매 바둑대회가 열립니다. 해돋이를 보러 갈 때까지 스위스룰에 따라 밤새워 바둑을 두게 됩니다.
▲ 대국모습
타이젬 연재소설 [낭만기객] 이벤트에 당첨된 애독자 두 분 freewind 4단, 류슈6단은 타이젬의 초청으로 참가했지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칫수는 타이젬 기력에 좌우됩니다. 왜냐하면 참가자 대다수가 타이젬 아이디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 박성균 사범.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박성균 사범은 한쪽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칩니다. 한때 그가 가르쳤던 안산의 바둑특성화학교 청석초등학교의 제자들을 만나 감회가 또 달랐다고 합니다.
▲ 필자와 스님.
필자와 서운스님의 한판. 헤어스타일이 상반되지요? 이런 바둑은 기량 이전에 기 싸움이 중요합니다.
새해 첫날이니 아침은 떡국으로 채웠습니다.
얼어붙은 정월의 바다에 신묘년 해가 솟구칩니다. 모두 잠들어있을 시각에 바둑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마음의 연등을 하늘로 띄워 보냅니다.
우리를 울린 소년의 이름은 해성(海星). 바다의 별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서해 해돋이가 좀 더 아이에게는 의미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해성아. 와보니 어떻든?” “너무 좋아요. 바둑이 너무 재미있어요. 꼭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바둑 두는 아저씨들이 너무 너무 좋아요.”
멋도 모르고 친구 따라 절에 왔는데, 시키는 대로 소원을 말했을 뿐인데- 진솔하고 천진난만한 아이가 너무 대견스러워 동기생 아저씨들이 해성이를 유난히 아껴 보듬고 토닥거려 주었나봅니다.
“아저씨도 네 소원을 듣고 울었단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아니, 너무 잘했어.” “고맙습니다.” “네 이야기를 글로 써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얼굴이 나오는 거라.” “써주세요. 아버지가 보셨으면 정말 좋겠어요.”
당찬 소년의 표정을 읽고 조심스럽게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그렇게 템플스테이가 한 소년을 바둑의 세계로 안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