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2 오후 6:14:02 입력 / 2011-02-02 오후 8:52:23 수정
타이젬은 바둑지도를 그리기 위해 후원자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설 연휴를 맞이해 바둑을 아껴 다양한 형태로 바둑계에 기여하고 참여하는 인물들을 매일 소개하고자 한다.
2월 2일(수) -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 2월 3일(목) - (주)알룩스 백정훈 회장 2월 4일(금) -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
S#1. 틈새시장의 흥행작, 지지옥션배
'아가씨와 건달들'은 세계적인 장수 뮤지컬이다. 이 제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바둑대회가 있다. 45세 이상의 노장 기사들과 여류기사들이 겨루는 지지옥션배. 시니어 VS 여류 연승전 방식의 지지옥션배 바둑대회가 지난해까지 4회째를 맞이했는데 시청률 고공행진과 더불어 바둑 팬들의 눈길을 끌면서 투자대비 최고의 흥행대회로 떠오르고 있다. 초일류기사들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건 스타들을 기용하지 않은 저예산영화쯤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어떻게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대회의 성공요인은 '일단 재미있다'는 점이다. 4회에 양측 출전자들이 치열하게 겨루다 마지막에 주장끼리 최종전을 치르게 됐고 여류 주장 박지은9단이 조훈현 9단에게 승리하면서 역대 전적 2:2로 균형을 이루었다.
▲ 여류팀 박지은과 시니어팀 조훈현의 대국 모습.
최근 여류기사들의 기량이 상비군 훈련을 통해 급성장하면서 이제는 정말 지지옥션배의 향방을 점칠 수 없게 되었다. 젊은 강자들이 먹이사슬의 상위를 독점하면서 바둑뉴스 또한 정상급 기사들에게 쏠리는 현상은 당연하다. 너무 당연하므로 다소 질리는 것도 사실이다. 바둑계 레드카펫의 찬란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한 켠에 비켜 서있는 노장기사들과 여류기사들을 무대로 불러내 짜릿한 감동과 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한 지지옥션배는 그런 점에서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기전이다. 틈새시장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걸 보여준 작품인 것이다. 그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한 프로듀서가 바로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이다.
이제는 바둑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 지지옥션- 용산구 청파동에서 원효로로 이어지는 큰길에 지지옥션 빌딩이 서있다. 7층 회장실은 아담했다. 벽에 만화 그림과 이런 저런 자료와 수치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사업가의 공간이라기보다 작가나 만화가의 작업실에 가까웠다. 필자가 명함을 건넸더니 '작가'라는 타이틀에 반색하며 인사대신 대뜸 주문부터 던진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훌쩍 건너뛰어 좋았다. 강명주 회장의 철학은 '사업도 바둑도 작품처럼!'이다. 재미있고 치열하고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지옥션배가 왜 재미있는지 스폰서의 캐릭터에서 짐작이 간다. 64세의 은발신사이면서도 눈매에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강 회장. 유쾌하고 도발적이다. 아직도 뭔가 재미있는 일이 어디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청년의 모습이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바둑대회에 회사 이름을 걸어놓고 바둑이 잘되기를 비는 선의(善意)가 그저 넉넉해 보인다.
"지지옥션의 연매출은 100억 안팎입니다. 바둑대회를 유지하려면 매출액 대비 2%를 감수해야지요. 다른 스폰서들은 기업홍보를 목적으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지옥션은 홍보 효과보다 작품을 만들어 발표한다는 기분으로 대회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다. 바둑대회 후원이 작품발표라니.
▲ 2008년 제2기 우승을 차지한 시니어팀에게 시상을 하고 있는 강명주 회장.
"좋은 소설이나 그림은 사람들의 영혼을 기름지게 합니다. 재미있는 바둑대회 역시 바둑 팬들에 활력을 주지요. 그래서 저는 지지옥션 배를 통해 긍정의 기운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시니어 기사들이나 여류기사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받는다면 더욱 좋구요."
- 그런 작품 활동이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하지요. 해마다 운영의 묘를 더해가며 더욱 알차고 흥미롭게 키워가야죠. 바둑대회 후원은 바둑 팬들과의 약속입니다. 일시적인 기분풀이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과의 약속이므로 대폭 확장하지는 못할지언정 사정에 의해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죠. 대기업처럼 큰 호텔 연회석장을 빌려 대회장으로 쓰진 못하더라도 지지옥션 가평연수원 등을 활용해 불필요한 낭비 없이 알뜰하게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의 바둑사랑은 실제적이다. 그냥 애호가 수준이 아니라 좋아하는 만큼 바둑에 되돌려주고 싶어 하는 순정이 가득하다. 구로구에 지지옥션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 있는데 그곳에 바둑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올해부터는 송예슬 양이 바둑강사로 어린이들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기원 이사로 활동하면서 재계 인사들에게 바둑 후원을 권유하고 재미있는 바둑을 위해 끊임없이 자극의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강명주 회장의 포부가 신선하게 들린다.
지지옥션은 부동산 경매와 공매 정보를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회사다.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와 분석을 통해 회원들의 입찰경쟁력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법원과 은행경매를 통해 이뤄지는 제도권 부동산 경매 공매가 한 해 100만 건에 달하는데 지지옥션은 그 방대한 정보를 체계 있게 정리해 수요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이다. 개인회원이 10만을 넘고, 120여명의 직원들이 하루에 열권씩 정보지를 출간하고 있다.
▲ 필자와 인터뷰 중인 강명주 회장.
"1983년 계약경제일보를 창간해서 지금까지 28년 됐네요. 그 동안 적자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크게 들어갈 비용이 없는 일이거든요. 또 우리 회사 직원들이 경매를 잘 활용해 대부분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오너로서 그 점이 뿌듯합니다."
계약경제일보 그 앞머리 두 글자를 딴 이름이 바로 '지지(GG)'라고 한다. 강 회장의 직함은 현재 지지옥션이 아니라 '지지투자운용' 회장이다. 경매 제공을 넘어 투자전문회사를 만든 것이다.
-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고려대학교에 다닐 때 신문사 편집간사로 활동했습니다. 만평도 그리고 글도 썼는데 군사독재시절이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투옥도 경험하면서 치열하게 매스미디어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신문사에 기자로 들어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제 스타일이 워낙 자유분방한 쪽이라 창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정보를 파는 신문이면 승부가 날 것 같더라구요."
▲ 지지옥션에서 발행 중인 정보지.
그는 그렇게 빈손으로 계약경제일보를 창간하고 정보를 팔아 지금의 지지옥션을 만들어냈다. 대학신문사의 짧은 경험이 아직도 강 회장의 나이테에는 굵고 짙게 새겨져있는 듯싶었다. 그는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지지옥션 홈페이지에 만평을 그리고 있다. 500회를 넘겼으니 엄청난 기록이다.
그림 한 컷을 부탁했더니 그 자리에서 쓱쓱 그려낸다. 투박하고 단순한 붓놀림이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화풍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눈빛이 반짝이고 입술이 꿈틀거린다. 천진난만한 동심이 얼굴에 번진다.
"저는요. 바둑과 그림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둑TV를 틀어놓고 만화를 그릴 때입니다."
그 광경이 절로 그려진다. 저런 창의력과 지적호기심,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두가 오늘의 성취를 가져왔으리라.
S#3. 바둑만 생각하면 살맛이 난다
그는 1943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홀어니 술하에서 찢어지게 가난해 공부를 제대로 할 형편이 아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했고 고학하면서 영락상고를 다녔다.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업을 소홀히 해 성적이 바닥을 기었는데 교장선생님이 대학진학을 권유했다. 교장은 학생 강명주의 두뇌가 비상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자 강한 성취동기가 생겼고 죽어라 공부해 명문 고려대학교에 들어갔다. 고대 앞에서 자취를 하며 다녔는데 복잡한 사정으로 학교를 오래 다녀야했다. 그때까지도 바둑은 둘 여유가 없었다. 다만 눈썰미가 있어 5급쯤 두는 정도였다. 학교신문사의 인연으로 인근 경희대학교 신방과에 다니는 여대생을 만나 사귀게 되었다. 사랑으로 이어져 결혼을 결심했는데 여자친구 어머님이 그의 자취방에 방문했다가 천정이 젖고 얼어붙은 것을 보고 기겁해 결사반대했다. 도저히 이뤄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사랑이 뜻밖에도 바둑으로 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의 집에 그가 찾아갔을 때 그녀의 부친이 느닷없이 물어왔다.
"자네 혹시 바둑은 둘 줄 아나?"
▲ 지난 28일 비씨카드배 프로암대회에 참석한 강명주 회장. 세계랭킹 1위 중국 콩지에와 바둑을 두고 있다. 아마5단 실력의 강회장은 보통 프로기사들에게 4점을 놓고 바둑을 두는데 콩지에에게는 5점에 도전하고 있다.
소설 같은 이야기다. 둘 줄 안다고 했더니 부친이 바둑판을 내왔다. 희한하게도 부친의 기력이 6급이었다. 한 치수 강한 그가 맘먹은 대로 판을 짤 수 있었다. 저녁 식사가 차려지기 전까지 세 판을 두었는데 부친의 표정이 아주 부드러워졌다.
"바둑 두는 사람치고 못된 놈 없어. 내 딸 맡길 테니까 둘이 잘 해봐라."
원 세상에! 이런 부친이 어디 있을까? 강명주 회장의 결혼스토리는 바둑계에 유명하다. 이때부터 바둑이 그의 가슴에 꽂혔다.
▲ 비씨카드 장형덕 사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강명주 회장.
"소설 같지만 실화입니다. 제 인생에 바둑이 운명처럼 얽혀 있었던 겁니다."
천하제일 가는 고수가 아니면 어떠한가? 바둑은 이처럼 하수의 삶에도 운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법이다.
"바둑 때문에 정말 살맛납니다. 바둑을 통해 좋은 분들 많이 만났고 뭔가 좋은 일 만들어보자고 머리를 모을 때면 신이 납니다."
그의 그런 에너지가 긍정의 파장을 일으킨다. 지지옥션 배 준우승 팀에게도 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기도산업 박장희 대표가 거들었다. 바람을 일으킨 이 뿌듯하고 함께 타는 이 즐겁고 지켜보는 이 또한 유쾌하니 윈윈 아닌가? 올해 제5회 지지옥션 배는 필자도 쫒아가 재미에 기름을 붓는 참관기를 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