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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에서 일어난 기적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 2003년 두 명의 회원으로 바둑역사 시작

2011-02-06 오전 10:25:47 입력 / 2011-02-07 오전 11:31:55 수정

키프로스(Cyprus)

뜻밖의 일이다. 바둑인구가 100 여명 밖에 안 되는 지중해의 섬 나라 키프로스에서 나에게 한국사범을 받겠다는 연락이왔다. 나는 키프로스는 불안한 나라라는 인식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첫째가 시칠리(Sicily)이고 둘째가 사르디냐(Sardinia)이다. 둘 다 이탈리아 섬이다. 제주도 보다 다섯배 정도 큰 키프로스의 역사는 아주 복잡하다. 인류는 만년이 넘게 살아 왔고 8200년 전부터 역사가 시작했다. 키프로스를 영어로는 사이프러스라고 한다.

▲아폴로신전 리마솔(Limassol) 근처

1) 두 명이 시작한 바둑역사
사이프러스 바둑협회는 2003년 현 회장 디미트리스와 총무 니콜라스 단 두 명의 회원으로 시작했다. 이 섬 나라의 바둑역사를 보기 위해 먼저 이 두 명이 바둑을 어떻게 배웠나 알아본다.

니콜라스는 미국 유학생 시절 바둑을 배웠다. 로체스터 대학(RIT)에 '빈 하늘(Empty Sky Go Club)' 이라는 바둑 클럽이 있었다. 그는 같은과 친구 안내로 클럽에 찾아간다. 니콜라스는 곧 바둑에 매료된다. 그와 바둑은 궁합이 잘 맞았다. 첫 날부터 6~7 시간 바둑을 두었는데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니콜라스는 “유학시절 바둑을 배울 수 있었던 일은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디미트리스와 기타/대국 중인 디미트리스/니콜라스

디미트리스는 14세 생일 날 친척 어른이 자석바둑판을 선물로 주었다. 거기에는 게임룰이 적힌 작은 종이 한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읽으며 친구들과 두었다. 그러나 그는 계가방법을 몰랐고, 게다가 작은 종이에는 어떻게 게임을 끝내는 지가 안 적혀 있었다. 물어 볼 사람도 없었던 환경에 그는 흥미를 잃고 바둑을 그만 둔다.

그러다가 인터넷 시대가 오고 1998년 그는 컴퓨터를 갖게 된다. 그는 제일 먼저 바둑을 찾았고, 곧 바둑사이트를 발견하고 뛸듯이 기뻤다. 우선 그는 일본에서 발행하는 영어 바둑책을 주문했고, 그 후 3~4년 동안 인터넷 바둑에만 몰두한다.

그는 인터넷 바둑으로 4급까지 올라갔지만 실제로 바둑판 위에서는 한 판도 못 두어 봤다. 그가 진짜 바둑판으로 처음 두어 본 건 모스크바에 여행가서였다. 그는 러시아 바둑협회에 전화로 연락했다. 그는 마침내 이고르 그리쉰(Igor Grishin) 바둑교실에 찾아가서 이고르와 대국을 한다. “전설적 인물 이고르와 바둑을 둔 건 내 일생의 영광이다” 디미트리스는 말한다.

여기서 이고르를 잠깐 소개한다. 그는 원래 컴퓨터 전문가다. 그는 모스크바 바둑협회장이며 어린이 바둑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제자 중 러시아 신예 강자가 많다. 자기가 스폰서가 되어서 바둑대회도 몇개 개최했다. 그는 기행(奇行-棋行)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날개위에서 바둑을 두고 비행기 안에서 바둑사진전을 연 장면만 여기에 소개한다.

▲비행기 날개위에서 대국

▲비행기 내 바둑사진전

귀국한 디미트리스는 바둑 둘 사람이 없어 키프로스엔 자기 하나만 바둑을 둘 줄 아는 상태로 몇 년이 흐른다. 2003년에 마침내 니콜라스 루소가 그에게 연락해 온다. 그가 미국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다. 그들은 만나서 키프로스에 바둑을 전파하기로 의기투합한다. 그들은 먼저 키프로스 바둑협회를 창립한다. 그 후 그들의 노력으로 바둑인구가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지금 100 여명의 회원들이 기력향상과 친목을 위해 서로 만나고 있다.

키프로스 바둑협회는 2005년에 유럽연맹(EGF)에 가입하고 2006년에는 국제연맹(IGF)에 가입한다. 키프로스는 일본세계대회와 한국국무총리 배에도 참가하고 있다. 2009년 국무총리배에서 자기네 선수(Fellas 3급)가 2승 7패(56위)를 했는데 2승 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글이 바둑협회 사이트에 실리기도 했다.

▲부야칸이라는 대상들의 숙소(호텔과 비슷함) 1572년에 오토만제국에 의해 세워졌다.

키프로스 공화국(Republic of Cyprus)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을 연결하는 요충지이다. 알렉산더 대왕, 사자왕 리챠드가 정복자로 이 섬에 머문 기록이 있다. 이집트, 미케네, 페니키아, 페르시아, 로마가 모두 키프로스를 정복했지만 3600년 전쯤 그리스의 미케네가 정복하면서 그리스 주민들이 이주해 와서 살게 된다. 그 때부터 주민들은 그리스를 조국으로 생각한다. 현재도 섬 전체 인구 115만 명 중 77%가 그리스계다. 45년 경에는 사도바울과 바르나바가 이 곳에서 기독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1570년부터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아오면서 터키 인구가 유입된다. 이 때 오스 만제국은 저항세력을 2만명이나 학살한다. 1차 세계대전에 터키가 독일 편에 서자 영국이 이 섬을 점령한다. 1925년에 영국 식민지가 되자 그리스계가 영국에 대 항하는 게릴라 전을 펼친다. 민족주의자 마르카리오스(Markarios) 대주교가 1958 년 키프로스 독립군을 조직하자 키프로스는 그리스계와 터키계로 나뉜다. 1960년 키프로스는 독립하고 마르카리오스는 초대 대통령이 된다. 다음 해 영연방에 가 입한다.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은 서로 상이한 문화적 배경 때문에 갈등이 깊어 진다.

1974년 그리스가 섬의 단독 지배를 노골화하는 구데타를 시도하자 터키는 터키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섬의 37%를 점령한다. 지금도 터키군 3만 5000여 명이 북키프로스에 주둔 중이다. 유엔은 두 지역 사이에 완충 지대를 설정해 놓고 있다. 니코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수도가 된다. 터키는 이 때 미국과 나토의 지원을 몰래 받았다. 이 사건 이후에도 분쟁은 계속 이어 지고 있다.

키프로스는 수 많은 나라의 지배를 당하고 영향을 받은 탓에 여러 문명의 유물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키프로스는 해마다 24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키프로스는 1인당 소득 3만불 정도로 선진경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인이 많은 이 곳의 미스 키프로스 이야세미도우(Klelia Yiasemidou)가 2010 미스 유니버스가 된다.

▲마르카리오스 대주교(초대 대통령) /2010 미스 유니버스

1983년 터키계는 북쪽지방을 그들의 지역으로 선포하고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을 건설한다. UN은 이를 불법이라며 인정 안 한다. 터키 한 나라만 그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그 이후 그리스와 터키계는 싸움을 이어왔고 EU공동가입도 성사되지 않다가 2004년 그리스 쪽만 EU에 가입한다. 2005년 터키계는 알리 탈라트(Mehmet Ali Talat)를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그는 키프로스의 통일을 공약으로 내 세웠다.

▲크리스토피아스(Dimitris Christofias) 키프로스 대통령부부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부부

바둑회 임원
회장: 디미트리스 레기노스(Dimitris Regginos)
부회장: 아기리스 펠라스(Argyris Fellas)
총무: 니콜라스 루소(Nicholas Roussos)
재무: 마리레나 크리스토피도(Marilena Christofidou)
이사: 마리오스 코도니아스(Marios Koudounias)
이사: 파나이오티스 파파도플러스(Panayiotis Papadopoulos)총무

특히 니콜라스는 영어를 잘해 자기네 이야기를 빨리 나에게 이멜로 보내준다. 그가 최근 ‘기적’을 경험했다며 보내온 글.

“우리가 시내 옥타나 카페에서 매주 토요일에 모여서 바둑을 둘 때다. 한 무더기 사람이 카페로 걸어들어왔는데 그들 얼굴에‘우리는 바둑을 두러 왔다'라고 쓰여 있다. 그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들의 얼굴 표정을 똑같이 읽었다. 이건 기적이 아닌가? 아니면 바둑중독자끼리는 서로 알아 보도록 표시가 되어 있는 건가? 한 무더기의 외국 바둑인이 우리 클럽을 찾아왔을 때 우리는 신통하게도 그들이 말하기도 전에 알아 보았다. 이런 기쁜 일이 자주 일어 났으면 한다”.


▲옥타나 카페

▲
유럽 제일의 바둑선생 사샤가 방문하여 키프로스 1인자 디미트리스에게 지도대국 중

사샤(Alexandre Dinerchtein)의 방문
2010년 가장 큰 사건은 프로기사 사샤 3단의 방문이다. 유럽팸피언을 7번이나 지낸 그는 한국에서 프로가 되었고 한국식 연구생제도로 바둑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와서 강의와 지도다면기를 두었는데 성적은 4승 3패였다. 키프로스는 자기네 바둑 실력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사샤 온라인 강의: http://breakfast.go4go.net
연구생 리그: http://www.insei-league.com)

키프로스 바둑협회는 2007년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비정치적 색깔의 바둑대회를 열어 그리스와 터키가 화해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아이디어다. 그들은 그리스와 터키 양국 선수들을 다 초청했지만 그리스 선수 한 명만 참가하는 바람에 결국 대회가 무산된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시도할 예정이다. 우리도 남북한 친선바둑대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가며 하는 건 어떨까? 내가 평양에 갔을 때 북한선수들도“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습니다”고 했다.

▲거리 보급

특별 바둑 보급행사는 적어도 1년에 한번은 한다. 길 거리와 학교가 주 대상이다. 매년 10월에 일본대사관과 니코시아대학이 공동주최하는 ‘일본주간’에 일본의 전통게임으로 바둑이 소개되고 있다. 이 곳 일간지에 바둑이 크게 소개된 적도 있다. 요즘 중국유학생 수가 늘면서 그 중 바둑두는 학생을 찾는 광고를 내고 있다. (目前我们正在塞浦路斯招募围棋选手。愿意加入我们协会的人员通过电子邮件或电话的方式联系我们邮 件地址:info@cyprus-go.org). 미국 바둑저널에 소개된 소식(American Go E-Journal Volume 10, #30: June 29, 2009)

바둑이 일본문화의 산물로 소개되는 현장에 나도 있어 봤다. 1986년인가 당시 호주바둑협회장이었던 네블 스마이스 교수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미타공(Mittagong)에서 바둑축제가 있는데 호주회장과 챔피언을 초청했으니까 같이 가자”는 내용이다. 미타공은 시드니에서 약 1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8 천명의 마을이다. 시드니에서 멜본을 역마차로 다닐적에 첫날 묵는 곳이다. 호주에서 제일 오래된 호텔도 있고 베리마란 지역은 200년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게들은 당시의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마을이 일본의 작은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 후부터 미타공은 해마다 일본문화의 한 분야를 주제로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 해의 주제가 바둑이었다.

기념식장에는 이 마을 시장과 유지들이 다 모였고 일본측에서는 자매결연 시에서 사람이 많이 왔다. 시드니 일본총영사와 호주에 사는 많은 일본인도 참석했다. 미타공 시장이 환영사에서“일본문화가 만들어 낸 바둑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게임이다. 그 바둑을 주제로 우리 마을이 축제를 열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했다. 일본총영사는 “바둑을 통해서 호주인들이 일본문화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나중에 호주챔피언으로 내가 소개되었다.

▲1차대전 이 마을 출신 전사자 위령탑 조사관(Surveyor General Inn)호텔 1834년 세움

▲바둑축제가 열린 미타공 RSL Club

나는 단상에 올라가 “나는 한국계 이민자다. 나는 한국에서 바둑을 배우고 이 곳에 와서 챔피언이 되었다. 바둑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었으며 한국·중국·일본 3 국에서 많이 두어지고 있다. 일본은 제일먼저 프로제도를 만들어 바둑발전에 공이 많은 나라다”라고 했다. 내 말에 일본인들은 침묵만 지킨다.

바둑이 일본이 만든줄 알고 있던 호주 사람들이 내 말에 혼동이 되었다. 미타공 시장이 총영사에게 내 말을 확인하는 질문에 일본 총영사가 어색한 변명을 하는게 들린다. 일본이 왜 바둑을 자기네가 만들었다고 오도를 할까? 당시는 일본이 세계최강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자기네가 먼저 보급을 시작해서? 1967년 내가 젊어서 미국에 갔을 때 그 곳 바둑인들이 나에게“한국인이 어떻게 일본 게임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수도 니코시아(Nicosia). 과거 베를린처럼 분단 되었다

클럽과 보급
현재 5개의 클럽이 있다(Nicosia Go Club, Dasoupolis Lyceum Go Club, Polykentro Neolaias Go Club, Magem Go Club, C3A Go Club) 주로 토요일마다 모이며 새로온 회원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매주 청소년 센터에서 디미트리스 회장이 6~13세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리체움 학교와 니코시아 영어학교가 바둑클럽을 만들고 매주 모여서 바둑을 둔다.

▲어린이 교실(6~13세) 매주 토요일 청소년 센터에서 디미트리스가 가르친다

토너먼트
2003년 이 후 두 개의 토너먼트가 열리고 있다. 지방은행의 후원으로 4월에 친선바둑대회가 열리고 키프로스 챔피언대회는 연말에 열린다.

키프로스의 4 강
레기노스(Dimitris Regginos) 1단(www.regginos.com ‘regginos’ on KGS)
로아니데스 1급(Sotiris Ioannides) 금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함
키라니데스 1급(Marios Kyranides)
아이란크 2급(Nurman Aylanc) (‘fukurokuji’ on KGS)

▲세계 유일한 분단수도는 니코시아, 유일한 분단국가는 한국/분단 벽

▲니코시아 시내. 이 거리 옥타나(Oktana café) 카페에서 바둑클럽이 모인다.
 
▲분단 외벽이 오른쪽에 보인다.


▲항구도시 리마솔은 관광지이다

▲북쪽 터키계와 남쪽 그리스계 영토


▲부주키(Bouzouki)

생활문화
키프로스 사람들이 모이면 그리스의 소주 격인 오우조(ouzo)를 마시며 치즈를 곁들여 먹는다. 키프로스 치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 때 누가 전통악기 부주키를 들고 나와 켜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람들이 일어나서 춤을 춘다, 여러 사람이 둥글게 서서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발을 내밀며 추는 춤이다. 이 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2천 여년 전 학자들이 벌써 자기네 저서에서 언급 걸로 보아 오래된 전통이다. 흥이 나면 노래도 같이 부른다.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에게 생활화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리스 춤

그리스와 터키가 다 커피로 유명하다. 저녁식사는 가족이 둘러 앉아 그리스식 샐러드, 양고기, 감자, 치즈를 먹고 한 사람은 와인 병을 딴다. 키프로스인들의 밤은 이렇게 저물어 간다. 그럼 현재 우리나라의 일상화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은 무얼까? 생각해 보자. 삼겹살에 소주를 마신 후 노래방으로 가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소리지르기가 제일 많지 않을까? 내가 보기엔 그렇다.^^

▲오우조(Ouzo) /키프로스 치즈

▲양고기와 감자 /샐러드

▲성 라자루스 교회

▲키프로스 출신 세계적 테니스 선수 바그다티스(Marcos Baghdatis)

▲산이 많아서 이런 산 속 마을이 많다


▲국기와 국장

이번에 내가 안 가본 나라를 처음 다루어 봤는데 내 경험이 아닌 얘기는 쓰기가 힘들다는 걸 알았다. 이번 키프로스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북 키프로스 터키 측 얘기는 그 쪽 바둑활동에 대한 정보도 없고 해서 생략했다. 가능하면 후에 터키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키프로스가 바둑으로 그리스와 터키계 주민들이 서로 이해하게 만드는 역할을 언젠가 해 줄 것을 바라면서 키프로스 편을 마친다.

한상대(전 시드니대 교수 sdhahn@gmail.com)
TYGEM / 한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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