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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강물에 뗏목을 띄우리

나남출판사 조상호 대표

2011-02-05 오전 11:17:01 입력 / 2011-02-05 오전 11:58:44 수정

타이젬은 바둑지도를 그리기 위해 후원자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설 연휴를 맞이해 바둑을 아껴 다양한 형태로 바둑계에 기여하고 참여하는 인물들을 매일 소개하고자 한다.

2월 2일(수) -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
2월 3일(목) - (주)알룩스 백정훈 회장
2월 4일(금) -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



S#1. 월간 바둑 편집위원장

월간 바둑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수 잡지다.
언제부턴가 잡지의 위기가 거론되고 실제로 월간 바둑의 출판부수도 급감했지만 아직 우리들의 바둑 잡지는 당당히 살아남아 서점에 진열되고 있다.
신묘년 새해를 맞아 월간 바둑의 판형이 바뀌었다.
외부로 넘겼던 판권을 다시 회수해 한국기원이 의욕적으로 새 출발을 선언했다.
어지간한 바둑 광이라도 눈 여겨 보지 않으면 바둑 지 발행의 총책임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편집위원장 조상호.
출판 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 석 자에 눈이 번쩍 뜨이리라.
그가 바로 나남출판사 대표이사이기 때문이다.
박경리의 <토지>로 유명한 나남출판사는 30여 년간 사회과학 서적만 고집스럽게 출간해 온 곳이다.
그 중에서 특히 언론학 분야는 질량에 있어 독보적이다.
나남의 모든 책들은 일시적으로 많이 팔린다기보다 꾸준히 오래 팔린다.
원고 선정이 까다롭기 짝이 없고 교정과 교열까지 조상호 대표가 직접 참여하므로 책 한 권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나남의 책들은 무게감이 있고 아울러 독자들의 신뢰도 깊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정도(正道)를 지향하면서도 국제금융위기와 출판계 부도사태를 가뿐하게 넘긴 우량출판사 나남의 조상호 대표가 월간 바둑 지의 방향타를 잡았다니 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사회과학 전문출판사이면서도 나남은 바둑서적을 꽤 많이 출간했다.


▲ 나남출판사에서 출간한 바둑책.

교재가 아닌 바둑서적은 판매가 쉽지 않다.
막말로 돈 되는 기획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남은 공들여 바둑 책을 찍어왔다.
조상호 대표의 선택이었다.
바둑문화의 기록도 필요하고 누가 당장 알아주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바둑 책들도 빛 볼 날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었다.
출판과 언론학 강의, 그리고 각종 모임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그가 월간 바둑 지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대형출판사의 CEO가 그 자리를 맡았다는 건 출판의 모든 분야(기획, 편집, 인쇄)에서 핵우산을 쓴 셈이다.
새로 바뀐 월간 바둑은 그래서 기대와 함께 믿음이 간다.


S#2. 바둑은 청춘의 흔적

그는 전남 장흥 출신이다.
작가 이청준, 한승원과 동향이다.
광주고를 나와 고려대를 다녔는데 군사독재 시절 학생운동에 앞장서다 모진 고생을 했다.
군사정권이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주민들을 경기도 광주로 강제이주 시켰는데 이주민들의 상황이 최악이었다.
대학생 조상호가 그 현장을 글로 고발했는데 북한 노동신문에서 그 글을 인용해 남한의 참혹한 실상을 비난하는 바람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상호는 ‘지하신문’ 발행인으로 낙인 찍혀 정권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원주로 피신해 넝마주이 생활도 하고 친구 하숙집을 전전하며 피해 다녀야 했다.
졸업하고 수출입은행에 취직했으나 언론사의 기자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기자 모집시험에 응시했으나 면접에서 학생운동의 전력이 걸림돌이 되어 꿈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출판사를 차렸다.
그리고 언론학 전문서적들을 집중적으로 펴냈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나남의 언론학 서적을 읽고 기자가 되었으니 조상호 대표는 간접적으로 꿈을 이룬 셈이었다.
아무튼 어렵던 시절, 그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신촌의 기원에서 내기바둑을 두곤 했다.
짠3급 기력으로 짜장면을 먹기 위해 혼신을 다해 두다 보니 바둑이 저절로 늘었다.


난세에 바둑을 호구지책으로 삼았는데 세월 지나고 보니 바둑에 알 수 없는 부채의식을 품게 되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바둑 친구를 위해 피나무로 바둑판을 직접 만들어 등에 짊어지고 휴가를 나온 적도 있었다.
학교신문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과도 바둑을 통해 더 가까워졌다.
고려대 기우회 OB멤버로 활동하면서 일본 와세다 기우회와 정기전을 갖기도 했다.
한국기원 상임이사로 바둑계에 힘을 보태고 있는 조상호 대표의 현재 기력은 아마 5단.
기풍 역시 성격처럼 호방하고 난전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 비씨카드배 프로암대회에서 중국 창하오와 4점 접바둑을 두고 있는 조상호 사장.

“바둑이 사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판 전체를 볼 줄 아는 눈, 그 시야가 사업에도 적용되거든요. 부분적인 이득에 집착하다 보면 전체적인 균형을 잃어버릴 때가 많잖아요? 저는 중요한 사업적 판단을 할 때 바둑판을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난해할 때 사소취대의 격언대로 적은 것을 과감하게 버립니다.”

나남출판사의 뚝심이 바둑을 보는 눈과 통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느 출판사라면 엄두조차 내기 힘든 사회과학 서적을 나남신서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2천 권 이상 펴냈으니 이쯤 되면 나남이 ‘사상의 저수지’로 그 바닥에서 소문난 이유를 실감할 것이다.


S#3. 나무를 심다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자유로와 심학산 자락 사이에 자리 잡은 출판단지는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멋진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 한가운데 위치한 나남출판사는 큼직한 소나무의 조경이 돋보인다.
조상호 대표의 각별한 나무 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 단면.



그는 포천 신북면에 16만 평의 조림지를 조성하고 다양한 나무를 심어왔다.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엄청난 종이를 소비해왔기에 왠지 자연에 빚을 진 기`분이어서 그렇게라도 갚고 싶었다.
식목과 조림사업을 위해 전국의 이름난 수목원을 찾아다니며 벤치마킹했다.
출판으로 획득한 이윤을 자연의 리사이클링에 재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런 출판사의 경영자가 월간 바둑 지의 조타수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그래서 든든하다는 이야기다.
반상의 19로는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바둑의 강물은 대하처럼 도도하고 폭이 넓다.
그 물줄기에 무수한 인간들의 사색(思索)이 녹아 흐른다.
사색의 결정체를 건져 올리기 위해 뗏목을 띄운다.
뗏목에서 던지는 그물에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바둑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길 빌고 싶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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