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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카리스마, 양재호

한국기원 신임 사무총장 양재호, 4월 1일부터 한국기원 행정 맡아

2011-04-01 오전 10:44:25 입력 / 2011-04-01 오전 11:46:43 수정


S#1. 새로운 조타수

겨울은 참으로 길었다. 사상 최대의 폭설이 내렸고 3월까지 지겹도록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이제는 4월. 뺨에 닿는 바람의 촉감이 확실히 부드럽다.

오늘부터 한국기원의 조타수가 바뀐다.
양재호 9단이 신임 사무총장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새로 바둑계의 방향타를 잡은 그에 대한 바둑 팬들의 기대는 크다.
1963년생. 양재호 9단의 등장은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프로기사회장인 최규병 9단과 동갑으로 쌍두마차를 이루기에 40대 기수론도 거론된다.

한국기원 사무총장 자리는 결코 영광스런 옥좌가 아니다.
전임 총장들의 흔적을 보면 마냥 축하만 하기도 애매한 자리라는 이야기다.
과도한 업무에 치이고, 복잡한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바둑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이다.
나름대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경비나 명예가 수반되겠지만 그보다는 리더로서의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주어진다고 아무나 맡기 어려운 직책인 것이다.

▲양재호 사무총장

"장고 끝에 이사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맘먹었습니다. 바둑계 안팎으로 난제가 산적해있지만 나를 불사른다는 각오로 뛰다 보면 하나씩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한국기원에서 양재호 사무총장을 만났다.
꼼꼼히 스케줄이 적힌 수첩을 펼쳐놓고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하는 그의 모습에서 선비의 이미지가 풍긴다.
오래전부터 기원 언저리에서 차기 총장으로 양재호의 이름이 거론됐다고 한다.

바둑계는 노장과 청년 그룹으로 나뉘는데 1950년대생 기사들이 오랫동안 행정의 중추를 맡았고 승부 일선에서 뛰는 기사들은 1970년대생 이후 세대들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 낀 세대가 1960년대생들로 40대인데 이상하게 그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
일본과 중국 바둑계도 마찬가지지만 50대 기사들의 집권(?} 기간이 너무 길어 후배들이 길을 막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종서 작가와 양재호 사무총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는 사실 조용히 앉아 바둑을 두고 방송을 진행하며 여행을 즐기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둑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고 과분할 정도로 바둑팬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는 그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생각돼 소명에 응했습니다."

역시 겸손하다.
승부사로 벌판에 설 때도 그랬고, 바둑TV해설자로 브라운관을 누빌 때도 그랬고, 국가대표 감독으로 활동할 때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였다.

"1979년 고교 1년 때 프로기사로 입문해서 15년 동안 승부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방송해설자로 15년 일했지요. 이제 새롭게 바둑행정가로 나섭니다. 몸이 잔득 긴장되어 있습니다. 사무총장이란 위치가 잘하면 본전이고 삐끗하면 도맡아 욕을 먹는다는 걸 잘 압니다. 그 동안 많은 걸 받았으니 이제 욕을 좀 먹더라도 무거운 봇짐지고 묵묵히 걸어가 볼 생각입니다."


S#2. 울산의 바둑천재

양재호는 울산 출신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6세 때 바둑을 시작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린이 국수배에 참가해 준우승을 했다.
그 당시 우승자가 바로 최규병.
훗날 충암학교에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고 오늘에 이르러 바둑계의 리더로 나란히 섰다.

"하하 그때 최규병과의 악연이 시작된 겁니다."
양재호 총장은 최규병과의 인연을 악연이라 풀었다.
병아리 때 쪼이면 장닭이 되어도 쪼인다고 했던가?
어린이 국수전에서 아픔을 준 최규병은 학교에서나 프로무대에서 번번이 양재호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를테면 천적이었던 것.

세계대회 동양증권배를 획득하고 준우승을 다섯 번이나 기록한 양재호가 최규병에 비해 승부사로서 성취도가 높은 편이지만 이상하게 중요한 고비마다 발목을 잡혔다.
프로에서 10연패를 당한 적도 있노라 고백했다.

최규병 콤플렉스라고 표현했지만 그러므로 최규병이 누구보다 고마운 친구라고 밝힌다.
"오래전부터 그 친구가 저에게 바둑계에 봉사하라고 권유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술자리에서 네가 진정으로 자유를 원한다면 그 길을 택하라고 충고해주더군요. 그와는 언제든지 가슴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이므로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소년 양재호가 기재를 떨치자 그의 가족은 일찌감치 상경을 결심한다.
바둑명문 충암학원으로 들어와 고교 1년 때 프로 입문에 성공했다.
그러나 학생 양재호는 바둑 바깥세계에 호기심이 많았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바둑을 시작했으나 도대체 바둑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할 뿐이었다.
그래서 치열한 공부를 하지 못하고 그냥 불결 따라 바람다라 흘러왔다고 했다.

프로에 들어서니 위로 조훈현과 서봉수가 천하를 양분하고 있었고, 도전5강으로 불리는 선배들이 그 아래 진을 치고 있었다.
유창혁,조대현, 양재호가 신예3강으로 통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정상은 요원했고 갈길은 까마득히 멀었다.

어느날 양재호는 바둑 책 몇 권을 싸들고 경남의 사찰로 들어갔다.
승부사가 된 이상 미치도록 바둑에 몰두하고 싶었다.
절집에 들어가 바둑판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니 조금씩 미로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의무감으로 들어온 바둑에서 자아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그때 그 절에서 고시공부를 함께 했던 청년들이 지금 법조계의 중추적인 인물들로 활약하며 양재호 9단의 인맥 한 블럭을 형성하고 있다니 흥미로운 인연이다.
그때부터 그에게 공부벌레라는 별명이 붙었다.

바둑 중원에 조훈현이라는 벽과 이창호라는 신흥강호가 출현해 전성기다운 전성기를 누려보지 못했지만 그는 1500국의 대국과 63%의 승률에 만족한다고 했다.

"저는 방송생활을 참 즐겁게 했습니다. 해설자로 활동하면서 어느 순간 대국료나 상금보다 방송수입의 그래프가 더 높아졌었죠. 시청자들과 호흡하며 바둑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좋았습니다."
부드럽고 논리적인 해설로 방송해설자 양재호는 바둑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시안게임 바둑종목 3개 부문에서 모두 금메달을 딴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과 코칭스탭,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바둑종목이 들어가면서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아 개성 강한 후배기사들을 '애국심'이란 코드로 한데 묶어 조련했다.
중국의 강세를 넘어선 전종목 금메달 싹쓸이!
바둑이 아직 살아있음을 일반 국민들에게 알린 쾌거였다.
그 국가대표 감독 양재호가 한국기원의 조타수로 입성한 것이다.

S#3. 할일이 너무 많다

그를 만나보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처럼 느껴진다.
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
친화력이 그의 무기이다.

바둑 밥을 먹으면서 각계각층에 두터운 팬층을 쌓아 인맥도 화려한 편이다.
프로기사 선배들의 신임도 두텁고 후배들과도 허물없이 소통한다.
전국의 각 지방협회와도 가깝고 어디를 가든 안티가 거의 없다.
때론 냉정해야 하는 자리라서 그 친화력 때문에 가슴앓이를 심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각오는 단단하다.

 "가장 중요한 게 바둑팬들의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바둑이 지속적으로 팬들의 사랑을 먹으며 발전할 수 있는가? 이게 화두겠죠? 그 다음이 바둑인들의 복지일 겁니다."

바둑계가 풀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대바협과의 통합, 바둑토토, 바둑회관 건립, 인천 아시안게임 진입, 바둑지도자 양성 등등. "타이젬 등 바둑매체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언제든지 귀를 열고 들을 테니 연락주십시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소리가 돌아온다.
여지껏 한국기원 사무총장의 입에서 바둑사이트의 도움에 관한 말을 들어본 기억이 드물다.
"저는 바둑사이트의 콘텐츠를 거의 전부 읽습니다. 타이젬의 모든 기사를 읽었지요. 네티즌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윤곽은 알고 있습니다."

그 한 마디에 부쩍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쪽을 아는 저쪽은 우리가 아닌가?

모 바둑사이트 기자가 신임 사무총장과의 인터뷰에서 볼멘소리를 했다.
"왜 한국기원은 신문에 비해 바둑사이트를 홀대하는가? 세계대회 취재 때 신문기자 티오는 배정하면서 바둑사이트 기자들은 제외하는가?"
아주 현실적인 비판이자 건의 아닌가?
"아,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검토해보겠습니다."
그가 수첩에 적는다.

신문과 바둑사이트의 효용을 따지기에 앞서 신임 사무총장이 그 문제를 메모했다는 점에서 어떤 변화가 이뤄질지 궁금해진다.
세계대회, 프로대회, 아마추어대회를 망라해서 바둑대회 현장을 지키는 이들은 바둑사이트 기자들이다.

그런데 세계대회 취재에 초청받는 기자 티오는 신문기자들 우선이라고 한다.
신문기전이 바둑계를 지탱할 때나 통했던 관행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부분이 한국기원 행정의 관절염 아닐까?

필자는 프리랜서이므로 해외취재 티켓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입장이라 오해없으시길 바란다. 오랜 관행을 벗어던지고 능률과 실질을 앞세워 한국기원 호를 새로운 조타수가 잘 이끌어주길 기대한다.
리더 한 사람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 바둑계의 지도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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