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스페셜
아! 태초(太初)에 태초가 있었으니
xoch랭킹의 슬픈 비밀
2011-06-25 오후 12:41:42 입력 / 2011-06-25 오후 1:21:40 수정
S#1. 태초님을 찾습니다
언젠가 게시판에 떠오른 제목입니다.
타이젬의 랭킹 길라집이 태초님의 글이 오르지 않자 누군가 애타게 그를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 전 태초님의 칼럼 업데이트가 오래 지연되어 자택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날벼락같은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 왔습니다.
5월 17일 태초님이 지병인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황급히 랭킹 코너와 19로 공감의 태초님 글 목록을 확인해봤습니다.
▲2003년부터 타이젬에서 랭킹 칼럼을 올린 태초의 랭킹 관련 글들은 유저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
300편에 달하는 주옥같은 랭킹 칼럼.
업데이트 닐자를 유심히 살펴보니 도중에 드문드문 공백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공백기에는 병상에 누워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뒤늦게 부랴부랴 태초님의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송파구 마천동. 경기도 하남시와 맞닿은 곳에 아파트가 있었지요.
사모님은 미리 문을 열어두셨습니다.
문밖에서 인사를 올리니 그녀, 눈물을 훔치며 나옵니다.
태초님이 떠난지 한달이 지난 시점. 이제 당신의 기억을 간신히 지워내고 홀로 서려 하는데 갑작스런 방문객의 출현으로 인해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도졌던가 봅니다. 죄스럽고 죄스러워 차마 무엇부터 여쭤야할지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태초님이 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작가님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주 재미있는 분이라고. 그래서 이름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 화제가 또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습니다.
태초님과 저는 타이젬이 생길 때부터 정말 뜨겁게 바둑 글을 많이 써왔던 양산박의 동지입니다.
그런데도 단 한 차례, 얼굴을 마주한 적 없고 대국실 쪽지로도 소통한 적 없습니다. 태초님이 워낙 은둔자에 가까워 연락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모님의 증언이 이어집니다.
"이창호 국수가 참한 색시를 만나 결혼하고 기자들을 집들이에 초대했다더군요. 태초님은 무척 이창호 국수를 좋아하셨습니다. 당신이 공식적으로 바둑계로 나가 활동을 했으면 혹시 초청을 받지 않았을까? 그런 가정을 하면서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지요."
참 소박한 고백입니다.
국수를 만나고 싶은 소망, 바둑계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태초님은 끝내 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xoch라는 익명의 아이디로 부단히 랭킹 칼럼을 쓰다가 떠나갔습니다.
S#2. 바둑 의병장, 태초
바둑놀이터 타이젬의 문화는 누가 앞에서 지휘하거나 견인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독특한 커뮤니티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칼럼과 음방과 대국실을 살펴보면 역시 자생적입니다.
초창기에 많은 문사와 논객들이 논단이라는 게시판을 통해 활약했고 그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해 각자의 영역을 개척해나갔습니다.
저는 <승부사>라는 소설을 일일연재했고, gmrvyqja(이청)은 바둑사를 팠고, i진선은 다양한 바둑소식을, 잘자내꿈꿔는 베팅분석을, 수정과는 깔깔관전기를, 수담장터와 jinjin 등 열정적인 유저들이 콘텐츠를 생산해내며 타이젬만의 문화를 구축해 온 것입니다.
그 때 xoch는 치밀한 분석과 정연한 논리, 깔끔한 도표로 랭킹칼럼을 발표했습니다. 어찌 보면 바둑계에 최초로 과학적인 랭킹제도를 도량화한 주인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작성한 도표를 보면 정말 바둑계의 순위가 명료하게 들어왔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그는 논단이나 19로 공감을 통해 태초 랭킹을 발표해왔습니다. 한국기원이 레이팅 제도에 입각한 배태일 랭킹을 공식적으로 채택할 때 타이젬은 태초 랭킹을 과감하게 사이트 공식랭킹으로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뉴스 코너에 <태초의 세계 랭킹>이란 고정 코너를 만들었지요.
바둑계 랭킹은 어디를 가더라도 통일되어야 하는 게 상식이지만 배태일 랭킹도 허점이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견제를 통한 균형을 위해 태초 랭킹을 밀었던 겁니다.
태초 랭킹의 존재는 바둑 의병활동의 일환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는 그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바둑계의 정확한 바로미터를 만들기 위해 8년 넘게 랭킹 시스템을 끌어안고 무수히 많은 밤을 지샜습니다.
그의 칼럼을 보면 배태일 랭킹에 관한 생각이 드러납니다. 배태일 박사에 대한 나쁜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기원이 채택한 랭킹이니만큼 제발 오류가 없기를 바라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그 우려가 고스란히 집필일정을 통해 나타납니다.
태초 랭킹은 매달 말일에 발표하는 일정인데 작년 11월, 12월과 올해 1월에 다양한 각도의 칼럼이 거의 날마다 올라옵니다. 또 <랭킹 길 밟아오기>라는 제목으로 결산이 발표됩니다.
▲타이젬 19로 공감에 올린 태초의 최근 랭킹목록들.
이 집필일정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태초님이 삶의 초읽기에 몰려 계가를 서둘렀던 게 아닐까요?
여러분께서도 19로 공감에 들어가 아래 기사 찾기 항목에서 작성자 xoch를 치고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일목요연하게 xoch님의 집필일정과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 칼럼을 읽다 보면 너무나 바둑을 사랑한 한 사내의 순정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지 온도를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태초의 노트북.
휴우- 그래서 저는 태초 8년의 작업을 바둑 의병활동이라 감히 표현해봅니다.
그가 어떤 가치를 위해 언더그라운드에서 묵묵히 랭킹 수치와 씨름했을까요? 태초님의 맑은 열정이 뒤늦었지만 바둑계에 알려지고 모두가 경의와 조의를 표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모든 프로기사들 이름은 태초님의 자판에 지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생전의 태초. 직업은 목사였다.
S#3. 그 사람은 떠나갔지만
익명의 xoch는 성경의 첫 단어 '태초(太初)를 의미합니다.
그의 직업은 뜻밖에도 목사였습니다.
마천동에서 개척교회를 일구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었지만 교회의 부(富)를 추구하지 않고 박애의 미덕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제가 찾아간 아파트 역시 아주 좁은 평수의 서민아파트였습니다. 앨범을 들추니 선한 표정의 태초님이 보입니다.
살아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당신을 사진으로 만나니 더욱 가슴이 쓰립니다.
앨범의 페이지를 넘기는 미망인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바닥까지 적셨습니다.
더 이상 슬픈 추억의 분출을 지켜보기 어려워 조심스럽게 앨범을 덮습니다. 태초님의 짐은 아파트에서 거의 치워져 있었습니다.
아들의 책장에 꽂혀있는 태초님의 서적들 가운데 눈에 띄는 한 권.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책 기도.
<기도>라는 제목입니다. 목사의 서재이므로 당연히 신앙의 기도겠지만 제 눈에는 바둑의 길인 기도(棋道)로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태초님의 삶을 압축한 단 한 개의 단어.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기도>라고 읽힙니다.
▲태초의 노모.
태초님의 흔적을 영상으로 담는데 거실로 노모가 나오셨습니다. 올해 94세. 귀가 어둡고 치매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사를 올리고 카메라를 드니 옷고름을 매만지며 쑥스러워 하십니다.
"이런 거 안 해봐서 쑥스러운데."
노모는 아들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머나먼 기도원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 태초에 관해 여쭤보니 역시 '좋은 목사님'이라 평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로부터 '참 선량한 종교인'으로 기억되는 가장 태초.
▲태초의 랭킹 노트.그의 바둑에 대한 열정이 녹아있다.
"바둑을 너무 좋아하셨고 바둑 칼럼 집필로 삶의 활력을 얻으셨던 거 같아요. 3년 전에 위암 판정을 받았는데 글을 쓰기 위해 초인적인 투병생활을 했지요.
밤샘작업으로 건강을 망쳤을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그 분은 바둑에 대한 책무 때문에 더 오래 버티셨는지도 모르겠어요."
미망인의 마지막 증언에 또 할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비오는 주말, 오늘은 태초님이 생애를 던져 기록한 모든 칼럼을 차례차례 클릭해 읽어보고 싶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태초님, 당신의 랭킹 칼럼이 타이젬의 게시판 모퉁이에서 미약하게 출발했으나 당신의 의지와 열정과 안목이 훗날 세계바둑사에 아름다운 자극을 전한 것으로 기억되길 빌며 이 글을 바칩니다.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TYGEM / 김종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