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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아름다운 그랑 플라츠

웹사이트 폐지 등 악재속에서도 열기로 다시 일어선 벨기에

2011-07-17 오전 8:08:20 입력 / 2011-08-30 오후 1:50:31 수정

▲브뤼셀

1. 런던에서 브뤼셀에 버스로 가다

나는 내 아들 오람이와 2008년 정월 초하루를 런던에서 보냈다. 나는 한국에서 오고 오람이는 호주에서 왔다. 우리는 12월 31일에 떠나 새해 아침에 영국에서 만났다. 우리는 런던 시내로 나가 점심을 먹고 비내리는 리전트, 옥스포드 거리를 돌아 다녔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다가 저녁은 1인당 5파운드짜리 부페를 먹었다. 그런데 미련하게 너무 많이 먹은 오람이가 배탈이 나서 밤새 고생을 한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벨기에로 가기 위해 오람이가 인터넷으로 예약해 놓은 유로라인 버스를 탔다. 유로스타 기차가 버스를 싣고 지하터널로 프랑스 칼레이로 간다.

▲유로라인 버스 유로스타 기차

기차가 도버해협을 터널로 30분쯤 달리는 동안에 화장실 가는 일 외에는 버스에 앉아 있어야 한다. 프랑스 칼레이에 도착한 후 다시 몇 시간을 더 달려 버스가 브뤼셀 북역에 도착한다. 밤 9시다. 밖이 몹시 춥다. 우리는 중앙역으로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얘기하다가 그만 지나쳤다. 내리고 보니 미디(Midi-남)역이다. 보니까 여기도 내가 와 본 잘 아는 곳이다. 중앙역 근처에서 자려던 생각을 바꾸어 우리는 이 근처 모텔에서 잤다.

아침에 중앙역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려는데 오람이가 “아버지, 기차표를 사야죠” 한다. 내가 “엊저녁에 산 표가 있잖아” 하니까 오람이가 “그건 썼잖아요” 한다. “아니, 중앙역에 가서 표를 내야 쓴 거지 아직 여기 표가 있지 않니?” 이어서 “여기는 기차 타는데 표 조사를 안 하니까 중앙역에 가서 이 걸 내면 된다” 하니까 “표를 안 낸 거뿐이지 그 표 값보다 더 왔잖아요. 표를 새로 사야 해요” 하더니 무조건 가서 8유로(만 3천원)나 내고 표를 다시 사 온다. 내가 공금으로 쓰라고 준 돈인데. 아이고, 8유로, 아깝다. “이놈이 도대체 정직한 거야, 미련한 거야?”

▲그랑 플라츠

중앙역에서 4 유로를 주고 큰 로커 하나를 빌려서 우리 짐을 다 넣었다. 우리는 맨 몸으로 그랑 플라츠(Grand Place)로 나갔다. 걸어서 불과 5분 거리다. 오람이는 너무 어릴 때 여길 와서 기억을 못 한다. 압도하는 중세 건물에 오람이가 감탄한다. “호주는 이런 곳이 없는데 감명이네요” 한다. 우리는 옆 골목도 여기저기 돌아 보고 ‘오줌싸개 동상’에도 다녀왔다. ‘오줌싸개’ 전설은 12세기부터 시작하여 수 십가지가 된다. 이 동상도 기록엔 1619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 전설 중 가장 최근 내가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이 시가전을 벌이고 있을 때다. 어느 집 문이 열리더니 3살쯤 된 아기가 걸어 나와 길 한 복판에서 오줌을 쌌다. 그 아기가 다시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고 한다.

▲오줌싸개 동상

<궁즉통(窮則通)>
브뤼셀 공항 자동차 대여회사 ‘National-Alamo’에서 나는 또 열을 받는다. 집 사람이 분명히 카드 사용량을 늘려 놨다고 말했는데 내 카드가 거절당한 것이다. 아주 미미한 카드 수수료를 내질 않아 카드 사용량이 줄어든 걸 몰랐다. 떠나기 직전에 내가 알고 조처를 취했는데 말이다. 내가 한국 집에 전화하여 화를 내니까 집 사람이 알아 보고 다시 나에게 전화하겠다고 한다. 조금 후 전화로 “분명히 처리를 했는데 은행 측에 무슨 실수가 있었나 봐요, 여기는 밤 10시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출근 후 해결해 주겠다는데 어떻게 하죠? 브루셀에서 하루 주무셔야 될 것 같아요” 한다. 내가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느냐”며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집 사람과 경기여중고 시절에 절친했던 김수영씨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저 수영인데요, 제가 6시에 퇴근하니까 공항에 6시 반이면 도착 할 수 있어요, 그 때 제 카드로 차를 빌려드리겠어요” 한다. ‘궁측통 – 궁하면 통한다’ 내가 계속 화를 내니까 당황한 집 사람이 브루셀에 살고 있는 자기 친구에게 전화하여 어려운 부탁을 한 것이다. 진짜 화난 것 보다 좀 과장해서 표현했는데약발이 들은 것 같다. ^^

기분이 느긋해진 나는 공항병원에 가서 오람이를 진찰시키니까 의사가 별 탈이 없다고 한다. 런던에서 너무 많이 먹어 생긴 배탈이 벌써 낳은 것 같다. 그래도 의사에게 애가 힘들어 하니까 쉴 자리나 좀 달라고 했더니 입원실 하나를 내준다. 거기에서 나와 오람이는 피곤한 김에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나왔다. 나는 한국대사관 김홍보관과 벨기에 바둑챔피언 얀 라몬에게 전화하여 내가 브뤼셀에 다시 돌아오는 날로 약속을 잡았다. 벨기에 한국대사배 바둑대회 창립건으로 이 두 사람을 만나야 한다. 시간이 좀 있길래 우리는 근처 호텔 커피숍에 가서 커피한잔을 했다.

▲그랑플라츠 호텔 커피 숖

6시 반에 김수영씨가 나타나 차를 빌려준다. 고맙다.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자동차 대여회사 직원이 “서양인끼리는 해주기 힘든 일”이라며 감탄한다. 나에게 “좋은 친구를 두었다”며 부러워한다. 수영씨는 우리에게 자기가 저녁을 한식집에서 쏠 테니까 자기집에 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라고 한다. 브뤼셀에 올 기회가 자주 있겠느냐며 자기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세 번 째 방문인데 수영씨에겐 연락을 안 했을 뿐이었다. 차마 그 말은 못하겠다. 바둑팀을 인솔하고 다니면 아는 사람들에겐 연락을 못하게 된다.

우리는 한식집에 가서 저녁을 먹은 후 내가 먼저 식사 값을 내려고 카운터에 갔다. 쫓아나온 수영씨와 식사 값을 내겠다고 서로 밀치니까 식당주인이 웃는다. 그러느라고 그만 내 전화를 식당에 두고 나왔다.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정신을 어기에다 두고 다니니!” 하고 야단을 쳤을텐데.^^ 이후부터 우리는 전화기 없이 여행한다. 헤어지면 연락할 길이 없어졌다.

오람이에게 “우리가 여기 브뤼셀 수영이 아줌마네서 자면 네가 내일 라인강 지역을 못 본다. 우리가 곧장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엄마를 만나야 한다”고 하니까 오람이가 “독일에 가면 라인강 지역은 꼭 보라고 친구들이 권했어요. 제가 밤새 운전을 혼자 할 테니까 아버진 차에서 주무세요” 한다. 집 사람은 한국에서 강의를 끝내고 오느라고 이틀 후 독일에서 우리와 만나기로 되어 있다. 우리 가족은 유럽을 한 바퀴 돌고서 다시 브뤼셀로 돌아 온다. 지난 몇 년 동안 바둑 팀을 이끌고 온 것은 몇차례 되지만 식구들과 유럽에 온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수영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곧장 차를 몰기 시작했다. 서울~대구 거리인 3백km쯤 달려 룩셈부르크에 도착하니까 자정이 넘었다. 룩셈부르크는 인구 50만에 면적이 천 평방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다. 크리스마스 장식만 화려하게 중심가를 수 놓고 있을 뿐 호텔은 아무데도 연 곳이 없다. 텅빈 추운 거리엔 아무도 안 보인다. 갈 곳이 막막하니까 마음까지 쓸쓸해 진다. 룩셈부르크는 계곡으로 된 도시이다. 계곡 위에는 도시 중심가가 있고 계곡 아래에는 아름다운 마을들이 있다. 중간 언덕의 그림 같은 집들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아름답다. 낮에만 아름다운 줄 알았더니 야경도 좋다.

▲계곡 아래 동네

▲유스호스텔 그 근처 주택가

룩셈부르크 바둑챔피언인 하이저(Laurent Heiser)는 나와 30년 째 알고 지낸다. 그가 10대일 적엔 유럽 최강자로 세계대회 5위권에서 맴돌기도 했다. 얼마전 한국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참가한 그가 독일 챔피언 펠릭스(Felix von Arnim)와 함께 분당으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한 이틀 같이 지냈다. 내 프로기사 제자 중 영어를 잘 하는 안영길, 이하진 사범이 같이 어울렸다. 그 때 하이저는 나에게 룩셈부르크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자기 집에 잘 방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정에 없이 갑자기 왔고 지금은 밤 12시가 넘어서 연락을 할 수가 없다.

▲필자, 하이저, 안영길사범, 이하진사범, 펠릭스

<지겨운 노랑내>
계곡 아래에는 내가 2003년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갔던 유스호스텔이 있다. 거기를 찾기만 하면 되는데... 거기는 24 시간 연다고 했다. 우선 계곡바닥을 향해 가라고 오람이에게 말했다. 가는 길에 사람이라고는 택시 기사 한 명과 자기 집에 차를 세우고 들어 가려던 청년 한 명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길을 물었다. 하도 꾸부러지는 길이 많아 설명하는 사람도 혼동을 한다. 미로와 같은 길을 헤맨지 30분쯤 지나 드디어 내가 기억하는 골목을 발견했다.

이 곳 유스호스텔은 호텔 수준으로 깨끗하다. 방이 없어 나는 A동, 오람이는 B동에 배치되었다. 내 방에 들어서니까 서양인 특유의 노랑내가 확 끼친다. 서양에 20년 이상 살면서 어쩌다 한번씩 경험하는 일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서양의 부분이다. 서양 청년 3명이 자고 있는데 방이 더워서 웃통을 벗고들 자고 있다. “아, 땀을 흘려서 더 냄새가 심하구나” 하고 실내 온도 조절기를 찾았으나 안 보인다. 중앙난방(Central heating system)이다.

다른 방도가 없어 억지로 잠을 청했다. 시계는 1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 어떻게 잠이 들었다. 새벽에 냄새가 코를 찔러 잠이 깼다. 6시다. 나는 짐을 싸 들고 아래층 리셉션에 내려와 소파에서 눈을 붙여 보려고 했으나 사방이 터진 곳이라 잠이 잘 안 온다. 짐을 차에 넣고 오람이 방에 들어가 자는 애를 흔들어 깨웠다. 오람이가 시계를 보더니 “6시 반인데요” 하고 속삭인다. 내가 무조건 “샤워하고 밑으로 내려와라” 속삭였다. 속삭이는 소리에도 백인 청년 한 명이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 놈 눈에도 나와 오람이가 부자지간으로 보였던지 웃으며 다시 눕는다.

▲루벵대회. 얀 라몬(오른 쪽)

2. 벨기에 바둑역사(1편에서 계속)

<1996~2003>

1996년 5월 벨기에 처음으로 ‘주말바둑대회’가 열린다. 네덜란드 접경지역 국립공원에서 개최되었는데 30명이 참가해 성황리에 마쳤다. 또 이 해엔 겐트(Ghent)시와 일본의 가나자와(Kanazawa)시의 자매결연행사로 혼다 구니시와(Honda Kunishwa) 9단이 왔다. 다음해 97년엔 브뤼셀 대학을 갓 졸업한 20명의 젊은이들이 동시에 바둑회에 가입하여 벨기에 바둑인 수가 100명을 돌파한다!

98년부터 각 클럽은 협회로부터 재정적 독립을 한다. 이제부터 협회는 전국행사만 주관한다. 이 해에도 일본에서 야수다(Yasuda) 9단, 유키 시게노 여류 2단이 방문하여 브루헤에 있는 두 학교에서 어린이를 위한 특별 강의를 하였다. 한편 미야카와 고로(Miyakawa Goro) 9단과 고바야시 치수(Kobayashi Chizu) 여류 5단, 이노우에 하쑤에(Inoue Hatsue)초단은 브뤼셀에 와서 바둑 보급활동을 했다.

2000년엔 역사가 얼마 안 된 브뤼셀과 르팡텡(Le Pantin) 클럽 회원 수가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럽에서는 정기 바둑강의를 시작한다. 보게어, 웨타치 외에 급수 높은 아마추어들이 강사로 참가했다. 가끔 네덜란드에 사는 궈주안(Guo Juan) 여류 7단이 와서 특강을 했다. 이 강의들이 주효하여 회원은 다시 늘기 시작했다. 2001~2년에는 작은 도시 아스(Ath), 하셀(Hasselt), 샬르로이(Chareroi) 클럽이 차례로 탄생한다. 2002년 말에는 회원수 115명을 기록한다.

벨기에 바둑협회는 바둑을 장려하기 위해 ‘국가 코치’제도를 두기로 한다. 첫 코치엔 국내 강자 얀 보게어가 맡는다. 그는 가능성 있는 어린이 4명을 가르치며 ‘벨고(Belgo)’라는 바둑 뉴스레터에 글을 썼다. 그는 웹사이트를 업데이트 하고 세계 바둑뉴스를 실었다. 협회는 마침내 ‘이와모토 컵’ 대회를 열고 이 때부터 각 종 대회와 클럽의 성적을 기반으로 랭킹제를 확립한다.

▲벨기에 바둑대회 2008

이 무렵 네덜란드에 다니러 온 일본 아마추어 와타나베(Koji Watanabe) 6단이 벨기에를 방문해 몇 달 간 정기적으로 강의를 해 주곤 했다. 한편 리에지(Liège) 클럽이 라인 마스리그(Rhein-Maas liga 독일, 네덜란드 클럽이 참가)에서 우승한다. 2003년엔 바둑회가 획기적으로 발전한다. 일본만화 ‘고스트 바둑왕(Hikaru no Go)’ 덕분이다. 회원이 140명을 돌파하고 일본 인터넷 바둑 ‘KGS’가 생긴다. 우리는 KGS에 ‘벨기에 방’을 만들었다. 브루헤와 나무르(Bruges & Namur) 두 군데 바둑클럽이 새로 문을 연다.

<2004~2010>

협회는 벨기에 속기대회와 인터넷(KGS) 대회를 만들고 웹사이트를 구축한다. 그러나 인터넷 바둑이 성행하자 클럽 출석률은 줄어든다. 심지어는 1년에 한번 있는 여류 프로 궈주안의 강의에 회원이 몇명 밖에 안 나타난다. 2004년은 역사적 해로 남는다. 바둑회원 수가 200명을 돌파한 것이다. 한편 궈주안이 직접 와서 강의 하는 일 외에도 인터넷 강의도 시작했다. 2004년은 바둑 사절단이 기록적으로 많이 방문한다. 2월엔 오카다 8단이 아마추어 12명과 방문하여 교류전을 갖는다.

8월에는 4명의 한국 아마강자들이 한상대 교수(6단)의 인솔로 찾아와 교류전을 갖는다. 11월에는 한국 여류프로 윤영선 4단(현재 독일 거주)과 강승희 2단, 김선기 아마 6단과 조남철 ‘스카이 바둑TV’ 본부장이 방문한다. 당시 나는 이 일행의 인솔자로 유럽에 갔다가 독일에서 부친의 부음을 듣고 귀국하여 벨기에엔 못 왔다. 내 대신 지금 윤영선 사범의 남편이 된 라스무스가 유럽안내를 맡아 도와준다. (당시 바둑협회에 기록된 내용)

· In Augustus, a group of 4 high level Korean amateurs led by Prof. Hahn Sang-Dae, 6-d paid a visit to Belgium. in November, another Korean delegation, composed by 2 female professionals: Yoon Young-Seon 4p (presently living in Germany) and Kang Seung-Hee 2p, and by some 6-d amateur players They were acommpagnied by a journalist and a cameraman of "Sky Baduk TV" (also strong players)

이 해에 10 개 클럽대항전에 110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룬다. 그러나 모든 게 무지개 빛만은 아니었다. 일부 클럽의 불참으로 ‘이와모토’ 컵과 인터넷 대회가 무산된다. 그런데도 2천년대 초는 ‘바둑의 황금기’로 기록될 만하다. 2005년에는 두 개의 대회가 탄생한다. 페어대회와 중국–벨기에 연승전이다. 양국에서 비슷한 기력 소유자가 8명씩 출전했는데 중국이 9대 7로 승리했다. 그러나 불행이도 이 대회는 1회로 끝난다.

2006년에 청소년 바둑인구가 늘어난다. 그래서 협회는 18세미만 청소년 대회와 30세 미만 학생대회를 새로 창설한다. 우승자는 유럽청소년과 학생대회에 각각 벨기에 대표로 출전한다. 바둑지 ‘벨고’가 편집진 부족으로 문을 닫고 인터넷 ‘벨고 넷’이 탄생한다. 주말대회도 조석빈사범이 와서 지도하면서 ‘3일대회’로 성장한다. 이 해 말에는 11개 클럽에 회원이 164명이 된다. 각 클럽의 회원 수는 다음과 같이 집계되었다.

Pantin-Brussels (42), Chaff – Brussels (19), Gent (17), Louvain-la-Neuve (17), Leuven (17), Antwerpen (17), Namur (12), Liège (10), ULB-Brussels (7). Ath (4), Brugge (2)

▲청소년 대회 1 & 2

2007년은 벨기에 바둑사상 최악의 해였다. 먼저 웹사이트가 이유도 모르게 사라졌다. 4월 18일이었다. 모든 데이타베이스도 함께 없어졌다. 주소도 몰라 연락이 힘들어지고 바둑행사를 할 수가 없어졌다. 다시 복원하는데 여러 달이 걸린다. ‘web 2.0’이 연말에서야 다시 탄생한다. 우리의 ‘go-WE’는 40명이 참가한다. 노구찌(Motoki Nokuchi) 7단이 사범이었다. 불행히도 브뤼셀 클럽 중 하나와 브루헤 클럽이 문을 닫아 벨기에에 9개 클럽만 남는다. 회원은 3분의 1이 줄어 126명이 된다.

한편 그래도 좋은 일은 한국에서 한상대교수가 안영길, 이강욱, 강경낭 사범을 인솔하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Nevertheless, there were some other positive events such as the visit by 4 strong Korean players: Prof. Sang-Dae Hahn (6-d, leader of the group), Young-Gil An 6p, Kang-Wook Lee 3p (2004 world amateur champion) and Kyung-Nang Kang (7-d, insei girl, 17 years old).

2008년은 ‘최악의 해 2007년’을 극복한 해였다. 새 클럽이 생기고, 회원이 늘어나고 더 많은 바둑행사가 추진됐다. 젊은 바둑인구도 늘기 시작한다. 이 해 아마도 가장 큰 일은 한상대 교수가 찾아와서 협회와 자기 제자 중 연구생 출신 김중협군을 보내기로 합의한 일이다.

▲브뤼셀대회 2008

한국에서 온 다른 선물은 ‘국무총리 배’를 만들어 새로운 세계대회를 창설한 것이다. 한교수가 찾아와서 한국대사배를 통해 선발전을 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한국 대사관의 협조문제로 대사배는 미뤄지고 ‘국무총리배
선발전’이란 새 대회가 탄생한다. 16명의 벨기에 최강자들이 ‘더불 리그’로 선발된다. 고마운 일은 한국 여류프로 강승희 2단이 와서 강의와 다면기를 두어준 일이다.

▲벨기에에 와서 강의하는 강승희사범

다른 큰 일은 베이징에서 거행된 제 1회 세계 마인드 스포츠대회에 벨기에 팀 5명이 참가한 것이다. (Thomas Connor, 3-d; Benjamin Gigot, 1-d; Kristof Bossee, 1-d; Renaud Braye, 1-k and Michael Meeschaert, 1-k). 한편 프랑스에 거주하며 유럽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 중국 프로 판후이(Fan Hui)사범이 ‘goWE’의 정규 사범이 된다. 김중협 사범까지 와서 벨기에는 최강의 사범을 둘이나 갖게 되는 행운을 누린다.

바둑협회(BGA)는 ‘KGS’ 강의를 든는 회원에게는 50% 할인 혜택을 준다.
10 명이 이 혜택을 누린다. 루벤이 바둑활동을 활발히 하고 겐트도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대회를 연다. 앤트워프도 첫 대회를 연다. 루벤대회 56명, 앤트워프 32명, 겐트 38명이 참가한다. 리에지가 다시 클럽 문을 열고 뢰슬레어가 클럽을 창설한다. 슬픈 일은 이 클럽 창설자 이반(Ivan Cloostermans)이 몇 달 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이 무렵 벨기에의 희망인 20세 전후의 젊은 그룹이 유단자가 된다(Thomas Connor, Lucas Neyrinck, François Gonze, Simon Fain, Alexis Gottcheiner, Kristof Bossée,….). 회원 수도 140명이 된다.

▲겐트(Ghent)

<벨기에의 유단자 명단>
Jan Ramon 5-d
Jan Bogaerts 4-d
Alain Wettach 4-d
Say Boon Ng(Singapore) 4-d
Lucas Neyrinck 3-d
Thomas Connor 3-d
François Gonze 3-d
Yong-Sen Huang(China) 3-d
Olivier Drouot(France) 3-d
Chen Qi(China) 3-d
Olivier Dodinval 3-d
Michel Wettach 3-d
Yue Wang 3-d
Zihang Ruan (China) 2-d
Pieter Beyens 2-d
Nelis Vets 2-d
Ci-Yiu Wong 2-d
Dieter Verhofstadt 2-d
Benjamin Gigot(홍승희 신랑) 2-d
Y-Cheng Li 2-d
Pierre Sevenants 2-d
Eric Paré (F) 2-d
Claude Burvenich 2-d
Vincent Croisier 2-d
Kiem Lam 2-d
Marc Ginoux 2-d
Vincent Lemaître 1-d
Alexis Gottcheiner 1-d
Simon Fain 1-d
Tom Croonenborghs 1-d
Kristof Bossée 1-d

3. 벨기에 문화도시 브루헤

우리는 유럽을 일주하고 네덜란드에서 돌아가는 길에 벨기에가 자랑하는 문화도시 브루헤에 들리기로 했다. 작년에 안영길, 이강욱, 강경낭 사범들과 와 본 곳인데 인상이 깊어서 식구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집사람이 “벨기에 사는 수영이가 브루헤에 꼭 한번 가 보라고 벌써부터 권했어요” 한다. 우리는 오스텐드 가는 길로 가다가 브루헤로 꺾었다. 83년에 영국 도버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오스텐드에 간 일이 있었다. 그 때는 브루헤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그 도시의 중요성을 몰랐다.

▲브루헤

▲운하

▲거리

브루헤(Brugge)를 불어로는 ‘브루쥐’ 라고 한다. 브루헤에 가려면 암스텔담에서 브뤼셀 쪽 직선 방향에서 서쪽으로 40~50km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브루헤에 도착했다. 성곽으로 둘러 쌓인 이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집사람이 “너무 아름다워요” 벌써 감탄이다.

성곽 안으로 들어 와서 주차할 자리가 있길래 얼른 세우고 마을 중심가까지 한 20분쯤 걸었다. 성곽은 BC 1세기에 시저(Caesar)의 로마 군에게 정복당한 다음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약 천년 전에 개축을 했다고 한다. 마을이 아름다워서 걷는 시간이 긴 게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됐다. 마을 중심부에 광장과 그 옆의 소 광장의 건물들은 수 백 년씩 되었는데 멋지게 잘 보존되었다.

▲브뤼헤 시청

우선 마을 전체가 아주 깨끗하다. 강이 흐르고 유람선이 다닌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런지 관광객이 없어서 더욱 좋았다. 덕분에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중세의 마을을 걷는다고 상상하면서 다닐 수 있었다. 브루헤는 우리에게 ‘플란더스의 개’란 작품으로 알려진 플란더스(Flanders) 지방의 수도였다. 당시 유럽의 ‘양털제품’ 무역이 성행했는데 이곳 플랑드르 지방이 중심지였다. 도시 구석구석에 고도의 자취가 남아 있다.

▲운하/ 주택가

▲맥도널드

시청 앞 광장에 맥도널드가 있어서 우리는 점심을 햄버거로 때웠다. 맥도널드 2층 창 밖으로 보이는 광장은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는 떠나기 아쉬운 브루헤를 뒤로하고 서둘러 브뤼셀로 향했다. 오늘 안으로 얀 라몬 교수, 세드릭 벨기에 바둑 협회장, 한국대사관의 김금평 홍보관을 만나 의논할 일이 꽤 많다. 브뤼셀에 거의 다 왔을 때 얀 라몬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루벤 시청과 거리

얀이 나에게 자기는 루벤(Leuven) 대학에 있으니까 브뤼셀로 가지 말고 그리로 오라고 한다. 얀이 고속도로부터 자기집 찾아 오는 방법을 전화로 알려준다. 그대로 가니까 그의 집에 금방 도착했다. 설명이 정확하면 이렇게 쉬운데… 어제 암스텔담에서 한국 민박집 아주머니 설명을 듣고 헤매던 생각이 난다. 루벤 대학은 유럽의 MIT로 불리는 명문이다. 특히 이 곳 암호연구소는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다. 여기 바둑클럽에는 작년에도 왔었는데 회원이 한 20명쯤 된다.

얀이 국무총리배 수원세계바둑대회에서 5연승을 거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일본선수도 4승 1패고 한국, 중국선수만 5승인데 거기에 얀이 끼었다. 물론 그 후 동양 강자들을 만나서 3패를 하긴 했지만 참가자 전원으로 하여금 얀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자신감의 발로일까? 나에게 자기가 선(흑)으로 한번 두고 싶다고 한다. 김금평 홍보관과 약속은 저녁 6시니까 한 판 둘 시간이 있다고 한다. 시간을 보니까 2시다. ‘어쭈, 이 친구 봐라. 전에는 나에게 3점을 깔았었는데...’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집사람과 오람이에게는 그 동안 루벤 시내에 가서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사 오라고 보냈다. 나도 명예가 걸린 판이라 열심히 두었다. 그리고 이겼다. 유럽 친구들은 자기가 이기면 소문을 전 유럽에 퍼뜨린다. 서양인들은 양보 없이 꺾어 주어야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얀이 세어지기는 했다. 바둑이 위축되지 않고 거침없이 싸움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 바둑이 ‘Korean style’이 되었다며 웃는다.

1425년에 세워진 루벤 대학은 벨기에 최고, 최대 대학이다. 이 대학촌의 인구는 10만 명이라고 한다. 루벤 뒷골목을 걸었는데 대학촌답게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찼다. 크고 작은 카페, 술집에는 웃음소리, 소음으로 가득했다. 이날 우리 식구끼리만 시내로 나갔다. 방학이고 겨울이었으나 우리는 중심가를 걸어 다니며 즐겼다. 루벤 시청광장은 ‘작은 그랑 프라츠’로 불린다고 얀이 말해 준다. 아름답게 가꾸어진 작은 시골마을에서 루벤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작년에 나와 같이 온 제자 중 강경낭은 유럽에서 제일 살고 싶은 곳으로 루벤을 꼽는다.

▲홍보관, 필자, 얀. 브뤼셀 서울식당에서 식당 근처 거리

우리는 얀과 함께 30km 떨어진 브뤼셀로 가서 서울식당을 찾아 갔다. 얀이 지도를 읽느라고 쓰는 돋보기는 글자가 수 십 배 크기로 보이는 특수제품이다. 식당에 가니까 대사관에서 나온 김금평 홍보관이 기다리고 있다. 인상이 좋다. 열심히 자기 본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이 식당 불고기가 약간 짰지만 맛이 괜찮았다. 저쪽 방에서는 집사람이 자기 친구 김수영씨와 식사하고 있다. 나는 한국대사배를 치르려면 나, 대사관, 벨기에 바둑협회가 할 일을 나누어 설명했다. 얘기가 순조롭게 진행 되자 이번에는 바둑사범 문제를 꺼냈다.

▲루벤 중심가

내가 추천하는 사범은 명지대 바둑학과 1학년 김중협이다. 연구생 출신에 바둑은 타이젬 9단이다. 영어도 최근에 부쩍 늘었다. 다만 걱정은 19세(만 17세)의 나이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다. 중협이가 이 곳에 어학연수생으로 유학와서 자비로 공부할 테니까 학생이 1주일에 20시간 아르바이트 할 수 있는 시간을 바둑을 가르치며 돈을 벌 수 있게 협조를 부탁했다. 얀이 자기는 물론 협조하겠지만 나에게 세드릭 벨기에 바둑협회장을 만나서 대사배와 사범파견문제를 상의해달라고 한다. 자기는 챔피언이지 회장이 아니니까 그래야 오해가 없겠다고 한다.

나는 벨기에 바둑협회장 세드릭에게 전화하여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가 나에게 어디서 만나고 싶으냐고 해서 그랑플라츠 시청 앞이 내가 찾아 가기가 쉽다고 했다. 그가 내일 거기에 도착하면 전화해 달라고 한다. 자기 아파트가 거기에서 5분 거리에 있다고 한다. 오늘 밤 우리는 수영씨네 집으로 자러 간다. 집사람은 수영씨 차로 가고 나는 오람이와 우리 차로 갔다.

수영씨는 브뤼셀 남쪽 워털루에 산다. 나폴레옹이 웰링톤 장군에게 패전한 바로 그 워털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너무 자신만만해서였을까? 한번 길을 놓친 후 뒤로 돌아가질 않고 다른 루트로 가다가 길을 헤매게 된다. 수영씨가 적어준 길 번호를 찾다가 몽스까지 와 버렸다. 지도를 보니까 워털루는 브뤼셀과 몽스 중간에 있다. 목적지에서 30km쯤 더 남쪽으로 내려 온 것이다.

이 무렵 오람이에게 졸음이 왔다. 나도 졸렵다. 내가 운전 할까 하다가 “오람아, 저기 주차장에 차를 세워라. 우리 한잠 자고 가자” 했다. 우리는 차 발동을 걸어 논 채 히터와 음악을 틀어 놓고 차에서 한잠 잤다. 한 시간 이상 헤맨 것이 우리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들었다. 약 20분쯤 잤을까?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우리는 수영씨네 집에 밤 1시쯤 도착했다. 차를 한잔하며 얘기하고 인터넷도 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뒤 새벽 3시경쯤 잠자리에 들었다. 아파트가 시설이 좋다. 실 평수가 40평이 넘는다는데 침실도 크고 천정이 높아 시원하다. 수영씨가 자기가 내일은 오후 출근이니까 충분히 늦잠을 자라고 한다.

오늘은 저녁 7시까지 차를 돌려주는 날이다.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그 동안 집사람이 한번도 못 가본 룩셈부르크에 다녀올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이젠 시간이 안 된다. 우리는 차를 오후 4시까지 돌려주면 값이 더 싸다는 말에 일찍 집을 나섰다. 먼저 브뤼셀 북역으로 갔다. 이 곳에 영국으로 떠나는 버스터미널이 있다. 이 곳 역사(驛舍) 록커에 우리 짐을 다 구겨 넣고 나와서 이번엔 공항으로 차를 갖고 갔다. 차를 반납하려는데 그 동안 정이 들어 섭섭하다. 우리는 오람이가 운전으로 유럽대륙에서 6천km를 돌파한 걸 축하해 주었다. 오람이도 기쁜지 싱글벙글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모터-바이크와 부딪힌 일 외에는 별 사고 없이 큰 원을 긋고 제 자리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우리 식구를 태우고 유럽을 6,100km 달린 차(Benz A150)

차를 반납한 뒤 우리는 기차로 시내에 돌아와 홀가분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저녁 6시가 되자 그랑 플라츠에 있는 시청사 앞에 세드릭 부부가 나타났다. 그는 30살쯤밖에 안돼 보였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어떻게 전국바둑회장이 됐는지 궁금하다. 무슨 능력이 있길래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드릭(Declerfayt Cédric)과 나는 작년에 루벤 클럽에서 만나서 구면이다. 나와 친했던 에넌베어 전 회장은 40대 중반인데 지금은 바둑협회의 총무로 일하고 있다. 얀 라몬은 협회 사범과 재무를 겸하고 있다.

▲그랑플라츠 낮

▲Grand Place by night. 그랑 플라츠 밤 (시청사 앞)

우리가 저녁을 먹자고 하니까 세드릭이 키쉬를 잘 하는 집이 있다며 안내한다. 현지인이 있으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이 아닌 진짜 요리를 잘하는 집으로 데려간다. 세드릭이 우리를 데려간 집은 역시 맛있고 값은 싸다. 부부가 미남미녀인데 영어가 유창하질 않아 좀 답답했다. 못 알아 들은 말이 있으면 부부가 서로 불어로 얘기하며 확인 작업하는 모습이 귀엽다. 내가 한국대사배와 사범파견 얘기를 하는 동안 세드릭 부부는 내용을 확인해 가며 열심히 받아 적는다.

▲브뤼셀대학 주택가

둘은 저녁을 먹었다며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커피만 한잔씩 마셨다. 식사 값을 우리가 냈더니 공금으로 우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그랬다며 그 근처 상점에 뛰어가 그 돈으로 초콜릿을 한 Box 들고 와서 선물로 준다. 벨기에 초콜릿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사무적 얘기가 다 끝난 후에 자기네가 관광안내나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한다.

집사람이 자기 가방이 터졌는데 가방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물어 봤다. 그들은 우리를 쇼핑 거리로 데려간다. 나는 브뤼셀에 여러 번 오면서도 이런 데가 있는지 몰랐다. 거리가 활기차고 가게들이 많아 훌륭한 구경거리다. 가방 가게 한군데가 막 철문을 내렸는데 창을 통해 20유로짜리 가방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물건이 좋아 보인다. 철문 구멍으로 세드릭이 주인에게 얘기하니까 철문을 다시 열어준다. 우린 그 가방을 샀다.

세드릭 부부에게 이제는 집에 가도 좋다니까 우리만 괜찮으면 자기네가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한다. 우리야 현지인이 도와주면 물론 좋지….^^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세드릭이 가는 중간에 유명한 장소마다 설명을 해 준다. 가는 길에 세드릭 부부는 우리식구를 성 미카엘 성당으로 안내했다. 내가 전에 왔을 때는 에넌베어 전 회장의 안내를 받았는데 그는 나를 자기네 왕이 사는 궁전엘 데려갔다. 걷다가 벨기에의 명물중의 하나라는 와플을 먹었는데 내 입맛엔 호주 거와 별 차이가 없었다.

▲Saint Michael and Gudula's 성당 와플 김중협사범

세드릭과 얀에게 한국대사 배 개최와 바둑사범으로 중협이를 부탁한 다음 날 이 곳 협회 회보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렸다.

Korean student & Ambassador's cup A Korean student (who is a strong Baduk player) is interested in studying in Belgium for one year. We are looking for accommodation. Any suggestions for free or cheap accommodation in a university city would be much appreciated. This would be a nice opportunity to have a strong ‘Go’ teacher. This year the BGF and the Korean embassy in Belgium will jointly organize a tournament called "Korean Ambassador's Cup" to directly select the Belgian representative at the Korean Prime Minister Cup, to be held in October in Korea. More details will follow.

김중협사범은 3개월간 체류하면서 많은 지도기와 강의를 했다. 그러나 그는 비자문제로 더 이상 묵지를 못 한다.

한참 걸었는데 세드릭이 다시 거기서부터 북역까지 20분이면 걸어 갈 수 있겠다고 한다. 우리가 길에 나온 지 벌써 몇 시간이 됐다. 우리부부가 좀 피곤하다고 했더니 그럼 지하철로 가자고 한다. 어느새 세드릭이 뛰어가서 표 넉 장을 사 가지고 온다. 북역에 도착한 후 우리 로커가 있는 곳에 갔는데 “어, 이게 웬 일인가?” 로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짐은 하나도 없다. 아찔하다. 세드릭이 로커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불어로 뭐라고 써 있다.

세드릭을 따라 어디로 갔더니 조금 후에 직원 한 명이 나와서 가방이 몇 개냐고 묻는다. 우리가 개수와 색깔을 말하니까 들어와 보라고 한다. 사무실 안에 우리 짐이 고스란히 다 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오늘 세드릭이 도움을 많이 준다. 세드릭의 통역으로 알아낸 것은 로커에서 계속 사이렌 소리가 나서 자기네가 그리로 옮겨 놨다는 내용이다. 내가 큰 짐을 다섯 개나 넣고 로커를 닫을 때 간신히 밀어서 닫은 게 어디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몇 유로 아끼려다 망신이다.

브뤼셀 북역에서 밤 10시 45분 유로라인(Euroline) 야간버스로 우리는 영국으로 떠난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세드릭 부부가 작별인사를 한다. 집사람이 자기의 뜯어진 헌 가방을 버리자 자기네가 꿰매서 쓰겠다며 끌고 간다. 우리가 유럽인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다. 영국에서 나올 때 도버해협을 기차로 건넜으니까 이번에는 페리(Ferry)로 건너면 멋질 거라고 내가 생각했다. 그래서 오람이를 시켜서 인터넷 예약을 해두었다. 또 비싼 영국의 숙박료를 하루 절약한다는 전략도 있었다. 그런데 이 결정이 별로 안 좋았다.

▲유로라인 버스 페리

<다시 영국으로>

우선 밤새 여행한다는 일이 생각보다 피곤하다. 버스자리가 자기에 불편하다. 또 버스승객 대부분이 흑인인데 시끄럽고 질이 낮았다. 백인 두어 명에 한국인이 우리식구 말고 웨일즈에 어학연수 왔다는 한국 여학생 두 명이 더 있다. 우리가 한국인인걸 알고 반갑게 인사한다. 중간에 몇 번 여권과 짐 검사가 있는데 아주 철저하다. 내가 “승객 대부분이 껌둥이라 그럴 거야” 했더니 오람이가 나에게 “왜 껌둥이라고 부르세요? 아버진 인종차별주의자세요?” 한다. 이놈 봐라, 이젠 대갈통이 컸다고 제법이네. ^^

버스가 Ferry 속으로 들어가서 주차하더니 우리 보고 배로 올라가 있다가 도버에 도착하면 다시 버스로 돌아오라고 한다. 배가 5층쯤 된다. 영국 가는 배 속에는 자리가 많아 우리가 길게 뻗고 잘 수가 있다. 버스에서 편히 못 자고 시달린 집사람과 오람이가 눕자마자 골아 떨어진다. 나까지 잠들면 물건을 잃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안 자고 컴퓨터로 기행문을 쓰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 심심하길래 내가 오람이를 흔들어 깨우면서 “오람아, 여기 갑판으로 올라가면 경치가 멋질 텐데 같이 안 갈래?” 하니까 이 놈이 눈을 뜨더니 “조금만 더 자고요” 하곤 그냥 돌아 눕는다. 결국은 영국에 도착 할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도버에 도착할 무렵 오람이와 집사람이 일어난다. 오람이가 “저길 보세요” 해서 보니까 “흰 절벽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Welcome to the White Cliff Country” 하는 문구가 보인다. 오람이가 “정말 절벽이 하얗네요” 한다.

▲유명한 도버의 백색 절벽 도버 항구

우리는 다시 버스로 옮겨 타고 런던의 빅토리아 역으로 향했다. 새벽 6시에 빅토리아 역에 도착했는데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다. 우리한테 유로 동전 20센트 밖에 없다. 영국은 유로를 안 쓰고 파운드를 쓴다. 내가 유로 동전 20센트만 내니까 입구에 앉아있던 50대 남자가 나에게 돈도 모자라고 파운드로 내라고 한다. 내가 “이 것 밖에 없다”고 하고 걸어 들어갔다. 내 무표정이 무서웠는지 나를 쫓아와서 잡지는 못한다. 급해 죽겠는데 언제 여기서 두 블럭 가야 있다는 ATM에 가서 돈을 찾아와서 이 새벽에 동전으로 바꾸어 여길 들어 가란 말인가? 때로는 무리수를 두어야 판을 풀어 나갈 수 있는 법…

▲버스역 기차역

아침6시 반인데 런던은 아직 어둡다. 또 오후 4시만 되면 어두워진다. 위도가 높고 겨울이라 그렇다. 우리는 돈도 찾을 겸 걸어서 3분쯤 걸리는 바로 옆 기차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7시가 넘자 민박집에 전화를 했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어서 와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지난번 왔을 때 예약을 해 놔서 우리가 오늘 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지난번에 다녀본 길이라 먼저 워털루 역으로 갔다. 거기에서 453번 버스를 타고 Old Kent Rd.에 있는 ‘Tesco’ 앞에서 내렸다. 이제 걸어서 2분만 가면 그 집이다. 차가 없으니까 짐을 끌고 다녀야 한다. 힘좋은 오람이는 등에 하나를 메고 가방 하나는 끌고 하나는 들고 다닌다. 나와 집사람은 가방 하나씩만 끌고 다녔다. ‘가자 민박집’ 주인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버스에서 내다보는 런던

밤새 여행을 해서 몸이 좀 나른하다. 우리는 식사 후 샤워를 하고 우선 한 잠 잤다. 그 동안 깨어있는 사람은 틈틈이 인터넷도 했다. 우리는 오후가 되어서야 시내로 나갔다. 우리는 이미 오늘 새벽에 버스로만 하루 종일 다닐 수 있는 ‘Day tripper’를 3.5 파운드를 주고 샀다. 약 7천원인 셈이다. 이 거면 오늘 하루는 버스로 어디에나 다닐 수 있다. 우리는 주로 밖을 내다보기가 좋은 2 층 버스(Double decker) 제일 앞 좌석에 탔다. 앞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으면 뒤 쪽에서 기다리다가 그 사람이 내리면 재빨리 가서 앉는 작전을 썼다. 그리고 가능한 그 자리를 안 떠나고 계속 앉아 있었다. 비가 올 땐 특히 더 그랬다.

▲런던 2층 버스(Double Decker)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영국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다른 때와 성격이 좀 달랐다. 보통 내 여행은 공식일정이 있어 구경은 사이사이에 틈틈이 했다. 그런데 기족과 다니니까 나는 즐기기만 하면 됐다. 이 번에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은 이유는 유럽에 처음 오는 오람이를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오람이가 하루에 천km를 달려도 끄떡없이 운전을 하니까 가능했다. 건강이 허락하면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유익하다.

나와 벨기에를 같이 여행한 안영길 사범은 호주에, 이강욱사범은 베트남에, 강경낭사범은 영국에서 사범으로 바둑보급에 힘쓰고 있다. 그래서 한국 컴퓨터에 있는 자기네 사진들을 내가 시간 내 못 받아서 사범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못 실었다. 사실은 그 걸 기다리다가 타이젬에 ‘벨기에 2편’을 올리는 것이 좀 늦어졌다.

▲국기/ 국장

‘단결은 곧 국력이다’ 벨기에 국가 표어

여기서 벨기에 2편을 마친다.

한상대(전 시드니대 교수 sdhahn@gmail.com)
TYGEM / 한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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