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조기 탈락, 전혀 이변 아니다"
◇…3라운드 총 48판이 치러진 32강전 시리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은 이제 과거 이창호와 같은 "절대강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창호도, 이세돌도 2라운드에서 신예에게 한 칼을 맞은 후 패자부활전에서 간신히 살아났으며, 불과 며칠 전 후지쯔배 우승으로 의기양양했던 박정환과 국내랭킹 2위 최철한은 아예 2연패를 당해 일찌감치 짐을 싸는 수모를 당했다.
특히 박정환이 속한 B조는 퍄오원야오(朴文堯)와 리저, 천야오예 등 내로라 하는 중국 상위 랭커들이 몰려 처음부터 '죽음의 조'로 일컬어졌는데, 과연 올 후지쯔배 우승자 박정환과 지난 해 LG배 우승자인 퍄오원야오가 떨어지는 이변 아닌 이변이 속출해 단연 주목을 끌었다. 박정환의 조기 탈락을 두고 일부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후지쯔배 우승으로 너무 들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억측이 일기도 했지만, 실제 네임 밸류가 실력 면으로 볼 때 박정환의 탈락은 전혀 이변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2강전 3회전에서 대결한 박정환(왼쪽)과 천야오예
박정환은 1라운드에서 현 중국 랭킹 3위인 리저에게 패한 데 이어 2라운드에서는 현 중국 천원 천야오예에게 졌는데, 그들 모두 박정환보다 훨씬 먼저 두각을 나타낸 강호들이라는 점에서 딱히 억울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것. 결국 이미 세계바둑계가 절대강자 없이 어느덧 백가쟁명 시대로 접어든 현재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의 대진운과 당일의 컨디션 여부가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라고 할까. 최근 부진했던 구리와 콩지에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진운에 편승하여 비교적 수월하게 16강에 오른 사실은 박정환, 퍄오원야오와 사뭇 대조적이다.
▲더블일리미네이션으로 치러진 삼성화재배 32강전.'시드+더블일리미네이션' - 강자 프리미엄 심하다?
◇…삼성화재배가 32강전에서 채택하고 있는 더블 일리미네이션제는 지난 2006년과 2009년 한국 야구가 세계 정상급에 올라 각광받았던 세계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차용한 제도로 토너먼트와 리그전을 혼합한 방식이다. 4인이 한 조가 되어 2승을 올린 사람은 올라가는 반면, 2패자는 탈락하는 방식으로 강자가 단번에 조기 탈락하는 녹다운 토너먼트제의 의외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데,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제도가 분명하다.
게다가 삼성화재배는 여느 세계대회와 같이 시드제도 동반 채택하고 있는데, 시드제와 더블일리미네이션제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것은 상위 랭커에게 지나친 프리미엄을 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에서 일고 있다. 때론 강자가 초반에 탈락하거나, 우승후보끼리 초반에 맞닥뜨리는 등 이변과 파란이 대회의 흥미를 배가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승부의 의외성을 너무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것은 오히려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 정관장배를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회에서 이 더블일리미네이션제를 도입하려는 추세인데, 차제에 유행이랍시고 천편일률적으로 따라 갈 것이 아니라, 과연 어떤 방식이 대회의 흥미와 개성을 제고시킬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
▲16강 격돌. 이창호vs구리.
이창호-구리, 이세돌-콩지에 16강서 ‘미리보는 결승전’
◇…삼성화재배 16강전은 10월 초 속개되는데, 대진 추첨 결과 ‘이창호 : 구리’ ‘이세돌 : 콩지에’라는 빅카드가 이루어져 벌써부터 바둑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일부러 짝지으려 해도 쉽지 않은 ‘미리 보는 결승전’ 두 쌍. 최근 다소 부침 현상을 보이고 있는 이창호와 이세돌이 극심한 슬럼프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구리와 콩지에를 각각 만나 과연 어떤 명승부를 펼칠지 세계의 시선이 유성을 향하고 있다.
▲황재연과 최정.[명인전] 예선무대 휩쓴 신예·저단진·아마 태풍, 본선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파란과 이변으로 점철된 제39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의 예선 결승이 모두 끝나 16강 토너먼트 진출자가 가려졌다. 전기 시드자 4인(박영훈, 원성진, 이창호, 강동윤)를 제외한 12인의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낯선 얼굴들이다. 이세돌이 일찌감치 아마추어 황재연(최근 프로 입단)에게 발목을 잡힌 가운데 쟁쟁한 상위 랭커와 고단진들이 줄줄이 탈락했기 때문. 조인선이 뭇 프로들을 연파하고 아마추어로선 처음으로 본선에 오른 게 이변의 신호탄이었다면, '소녀장사' 최정이 거함 조한승을 격침시킨 것이 파란의 절정.
그리고 이미 이세돌을 잡아 뉴스메이커가 됐던 황재연 끝내 본선에 합류한 것이 그 완결편이었다고 할까. 이처럼 신예․ 저단진․아마추어의 태풍이 연이어 휩쓸고 간 자리에 박정환과 백홍석만이 상위 랭커의 체면을 지켰다. 예선 내내 계속되어온 신예․저단진․아마추어의 초강세가 과연 빅4가 버티고 있는 본선 무대에서도 쭉 이어질지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본선은 곧 바로 다음 주부터 속개된다.
◇…명인전 예선 결승에서 최정에게 패해 최대 이변의 희생양이 된 조한승은 알려지다시피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수혜로 군에서 조기 전역한 바 있다. 담백한 성품의 조9단은 그 답례로 여자 국가대표 상비군의 코치를 자청해 맡으며 여류기사들의 기력 향상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는데, 바로 그러한 사연 때문에 여류 상비군 소속 최정에게, 그것도 기사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본선 진출국에서 발목을 잡힌 사실이 얄궂은 인연으로 회자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조한승이 여자 상비군 선수들과 치른 스파링대국의 전적(비공식 전적 39승1패)을 알고 나면 더욱 기가 막히게 된다. 1/40이면 수학적 확률로 2.5%. 최정이 그처럼 ‘희박한 확률+공포감’을 극복하고 스승을 이겼으니,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조한승으로선 ‘청출어람’이란 격언으로 위안삼아야 할 듯.
[마인드스포츠 선발전] 국가대표‘4+1’확정 … 박정환․이영구 선발
◇…오는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2011 스포츠어코드 세계마인드게임즈 대회 한국대표 5인(남자 4, 여자 1)이 확정됐다. 랭킹 1․2위 이세돌과 최철한이 자동 선발된 가운데 나머지 두 자리를 놓고 상위 랭커 8명이 토너먼트로 벌인 대표선발전에서 박정환과 이영구가 각각 2연승하며 영예의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창호는 불참). 4명이 겨룬 홍일점 대표로는 박지은을 꺾는 기염을 토한 김혜민이 뽑혔다. 선발전 과정에서 천적관계인 박정환과 김지석이 한 장의 티켓을 놓고 결승에서 조우해 관심을 모았는데, 이번에도 박정환이 이기며 상대전적 9연승을 이어가게 됐다.
재작년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 올림피아드 때와 지난해 아시안게임 때도 여실히 드러난 바처럼, 국가대표 선발전은 상금이나 대국료가 없음에도 모든 기사가 일반 기전 대국보다 훨씬 더 열심히 임한다. 태극마크를 단다는 뿌듯함에 값진 해외 여행이라는 보너스가 따르기 때문일까. “국가대표 해봐야 실속없고 피곤만 하다”며 짐짓 태극마크를 거부하곤 하는 일부 프로스포츠 종목과 비교할 때 바둑계는 아직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청정구역’임이 분명하다고 할까.
2011 스포츠어코드 세계마인드게임즈 대회는 국가별 5인 단체전(남4+여1)과 혼성 페어전 2종목으로 치러지는데, 이세돌-최철한-박정환-이영구-김혜민으로 구축된 한국 대표팀이 과연 이번에도 단체전 불패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동안 국가 단체전에서 다소 약한 면모를 보여온 이세돌의 활약 여부가 관건이 될 것 같다.
[기전 프리뷰] 국수전․물가정보배 등 결승 시리즈 개막
◇…수확의 계절을 맞아 9월초부터 굵직굵직한 국내 기전의 도전기와 결승전이 잇달아 열린다. 9월 6일 국수전 도전자결정전 3번기(조한승:원성진)이 시작되는 것을 필두로 7일에는 물가정보배 결승 3번기 (이영구:윤준상)가 일주일 간격으로 벌어진다.
또한 박영훈과 박정환이 벌이는 GS칼텍스배 결승 5번기도 곧 시작될 전망이다. 세 기전의 특징은 하나같이 이창호와 이세돌이 이름이 빠져있다는 것. 또한 중복되는 얼굴이 하나도 없다. 그만큼 국내 바둑계가 절대강자의 독주 없이 상향평준화됐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한데, 그렇기에 승부 예상 또한 쉽지 않다.
▲물가정보배 결승 진출 후 인터뷰 중인 이영구.'조한승-원성진'국수전 접전 예상 … 이영구 첫 우승 기대
먼저 국수전 도전자결정전의 경우 올 들어 80% 고감도 승률로 승승장구하던 조한승이 명인전 패배의 충격을 얼마나 극복했는지가 관건이다. 요즘 다소 뜸한 것 같은 원성진이지만, 그래도 현 국내 랭킹 5위에 랭크될 정도로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해왔기에 최종국까지 가는 호각의 접전이 될 것이다. 5대5 승부. (조한승 2대1 승리에 한 표).
물가정보배 결승 또한 예측불허다. 특히 이영구에게는 ‘만년 준우승, 4강 멤버’의 딱지를 떼고 드디어 생애 첫 우승을 달성할 천재일우의 기회. 삼성화재배에서 첫 관문을 통과한 데 이어 마인드스포츠 국가대표가 되며, 기세도 충천하다. 반면 상반기 파죽지세를 보이던 윤준상은 최근 3연패를 당하는 등 요즘 다소 주춤하는 기색. 첫 우승의 의욕에 불타는 이영구가 동기와 기세 면에서 근소한 우세.
GS칼텍스배 결승은 ‘포스트 이창호-이세돌’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수 있다. 이세돌의 바로 뒤를 잇는 송아지 삼총사(85년생)의 일원인 박영훈은 근래 들어 주춤하는 사이 어느새 후배그룹에게 추월당하고 있는 느낌이 농후하다. 최근 한중일 명인전과 삼성화재배에서 잇단 승전보를 올리며 자신감을 충전한 박영훈이 후지쯔배 우승과 삼성화재배 탈락, 그리고 마인드스포츠 대표 선발로 부침을 겪은 박정환의 기세를 잠재울 수 있을까. 5대5 승부. 누가 이겨도 3대2가 될 듯 하다.
◇ 기사 기상도 ◇
이세돌 (구름 약간)
삼성화재배 첫 관문은 통화했지만, 여전히 다소 페이스가 불안하다. 신예에게 덜미 잡히고 패자조에서 간신히 통과한 모습이 1인자 같지 않기에….
최철한 (먹구름)
후지쯔배에 이어 삼성화재배에서도 ‘단칼 멤버’로 전락한 게 2인자 답지 않다. 혹시 슬럼프 조짐이 아닐까. 뭔가 변화의 돌파구가 필요한 듯.
박정환 (소나기 후) 첫 세계제패의 여운이 가시시도 전에 삼성화재배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인 듯. 곧바로 국가대표 티켓을 따냈다.
박영훈 (맑음) 한중일 명인전 우승에 이어 삼성화재배서도 가뿐하게 통과. 가을 이후가 기대된다.
이영구 (맑음)
삼성화재배와 태극마크로 자신감 충전. 생애 첫 우승의 의욕이 불타 오른다. 추수감사절이 곧 다가오니-
조훈현 (맑음)
녹록치 않은 신흥 여류강호들을 연파하며 벌써 7연승. 내용 면에서도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다. 누가 그의 목에 방울을 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