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신묘년 한 해가 가고 임진년 새해가 힘차게 밝았다. 올림픽이 열리는 올해는 '바둑 올림픽' 잉씨배가 열리는 것을 비롯, 국내외로 여러 가지 비중있는 기전이 러시를 이룰 예정이라 벌써부터 바둑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2012년 바둑계를 세계와 국내로 나누어 전망해본다.
우승자 명단에 구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채로웠다. 하지만, 구리는 시즌 내내 각 기전에서 기복없는 활약으로 준우승 2회(BC카드배, 삼성화재배)에 세계대회 다승 1위(15승)라는 호성적을 올려 유일하게 이세돌에 필적하는 라이벌임을 입증했다.
반면, 2009년 시즌 세계대회 3관왕에 빛나는 중국의 쌍두마차 콩지에(孔杰)의 부진은 의외였다. 한중일 속기전인 TV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하여 체면치레는 했지만, 시즌 내내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 (왼쪽부터) 박정환, 장웨이지에, 이야마유타.
박정환_장웨이지에_이야마 등 신예들 약진으로 혼전 양상
신예들의 약진도 큰 특징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포스트 이세돌'의 선두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박정환은 후지쯔배에서 생애 첫 우승을 달성하며 드디어 세계정상급의 반열에 우뚝 섰다.
중국의 장웨이지에(江維杰)와 탄샤오(檀嘯)를 앞세운 중국 신예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2010년 중국 명인전 우승으로 혜성처럼 떠오른 장웨이지에는 후지쯔배 4강 진출에 이어 LG배에서는 결승에 오르는 등 월드스타로 급부상했다. 특히 올 2월 예정인 LG배 결승에서는 이창호와 우승을 다투게 되어 한국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중국이 어릴 적부터 공들여 키웠다는 '신병기' 탄샤오는 처녀 출전한 농심배에서 4연승하며 일약 한국 바둑계의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다.
근래 들어 한국_중국의 위세에 눌려 맥을 쓰지 못해 온 일본바둑계의 샛별 이야마 유타(井山裕太)의 활약도 돋보였다. 6월 열린 한중일 고수초청전에서 이세돌과 구리를 연파하며 깜짝 우승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야마는 후지쯔배에서도 ‘우승성 3위’에 입상하는 기염을 토하며 일본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 이창호.
절대강자없는 '춘추전국' 심화 전망…이창호 부활 여부가 변수 ◇…2012년 세계바둑계는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춘추전국 시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이창호처럼 특정인 한 두 사람이 세계기전을 독식하는 시대는 사라졌다. 과거와는 달리 모든 바둑 정보가 공개 연구되고 각국의 유망주들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체제가 자리 잡힌 지금은 기사들의 상향평준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혹독한 단련을 받아서일까, 정상급 기사와 마주치는 순간 그 이름값에 일단 주눅부터 들곤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갓 입단한 신예들도 이세돌_구리 같은 톱기사들을 만나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량 뿐 아니라 멘탈적인 부분에서도 꿀릴 게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정상급 선배 기사가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으니, 이른바 '우승후보'들이 세계대회 본선 토너먼트에서 초반에 탈락하는 이변이 속출하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2012년 시즌엔 신예들의 돌풍이 더욱 거세게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점에서 지난해 월드스타로 떠오른 박정환(한국), 장웨이지에, 탄샤오(이상 중국), 이야마 유타(일본)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이미 세계정상급과 견주어 손색없는 실력을 보여준 이들이 점차 커리어를 쌓아가며 이세돌, 구리로 상징되는 선배들의 아성을 얼마나 위협할 지가 '2012 세계대전'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 2009년 잉씨배 시상식에서 트로피로 건배를 하고 있는 이창호(왼쪽)와 최철한. '바둑올림픽' 잉씨배 개최 이어 중국 주최 초대형 세계대회 신설
2012년 세계바둑계의 판도와 관련하여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기사가 이창호다. 이세돌, 구리, 콩지에 등 후배들에게 밀려 근래 2~3년간 세계 정상권에서 물러나 있었던 이창호는 지난해 완연한 부활세를 보이며 LG배 결승에 올라 일단 건재를 입증했다. 이세돌-구리 투톱이 이끌고 신예들이 추격하는 판도에 어느덧 '원로급'(?)으로 치부되던 이창호가 얼마나 힘을 쓰느냐가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2012년에는 이창호가 적어도 한 두 개의 세계 타이틀을 따낼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런 점에서 신_구 세력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창호-장웨이지에의 LG배 결승(2월 예정)은 향후 세계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세계바둑계는 여러 가지로 풍성한 뉴스거리가 많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개최되어 '바둑 올림픽'으로 일컬어지는 세계최대규모 응씨배가 열리는데 이어 중국에서 최대 규모의 세계대회를 창설할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기에 격년제로 열리는 춘란배도 열려 이래저래 정상급 기사들은 바빠질 것 같다.
▲ 이세돌. [국내바둑계] '이세돌 1인 아성' 붕괴되고 '군웅할거' 체제로
◇…2011년 시즌 한국바둑계는 수년간 지속돼온 '이세돌 1인 천하'가 흔들리면서 '군웅할거'로 접어들기 시작한 한 해였다. 이세돌의 뒤를 꾸준히 추격해온 이른바 '황소 3총사'(최철한 원성진 박영훈)에 박정환이라는 걸출한 후배가 급부상하면서 이세돌 아성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이세돌의 선배 격이며 그동안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려온 조한승이 늦깍이로 국수에 오르며 국내 기전의 판도를 더욱 혼돈스럽게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8개 본격 기전의 우승자 면면이 모두 다른 2011년 시즌 국내 기전의 우승 현황만 보아도 국내 바둑계의 군웅할거 양상을 실감할 수 있다. <표 참조> 그 가운데 유일하게 이세돌이 홀로 2관왕(올레배, 십단전)에 오른 사실도 앞서 세계바둑계의 타이틀 판도와 유사하다.
▲ 2011 olleh배 결승, 이세돌(왼쪽)vs이창호.
이세돌, 유일한 2관왕으로 No.1 지켜…이창호 무관탈출 실패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인 기사는 그래도 역시 1인자 이세돌이다. 후배들의 거센 추격과 후반기 부진으로 독보적인 1인자 아성이 한때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국내 최대 규모인 올레배와 십단전을 석권하면서 시즌 내내 랭킹 1위 자리를 고수해 No.1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 특히 연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창호와의 '이-이 빅매치'(올레배 결승)에서 승리하여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이창호 콤플렉스'를 극복한 것도 큰 성과였다.
반면, 2010년 최악의 시즌을 보냈던 이창호에게 지난해는 '절반의 성공'의 그친 시즌이었다. 연초 국수를 상실하며 22년만에 무관으로 전락한 그는 이후 심기일전, 꾸준한 성적을 올린 끝에 하반기 양대 기전(올레배, 명인전) 4강에 올라 '연내 무관탈출'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지만, 끝내 우승에 실패하며 빈손으로 새해를 맞게 됐다. 특히 연말 이세돌과의 올레배 결승 5번기에서 첫 판을 따내고도 역전패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 박정환. "세계대회에서 계속 우승하고 싶다."
박정환, '황소 3총사' 제치고 No.2로 부상…조한승 전천후 활약
어느새 '황소 3총사'를 추월하여 '포스트 이세돌'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박정환의 활약도 돋보였다. 지난 봄 한때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던 박정환은 여름 들어 급격히 비상, 생애 첫 세계제패(후지쯔배 우승)에 성공한 여세를 몰아 GS칼텍스배에서 박영훈을 셧아웃시키며 우승하는 등 맹위를 떨치며 일약 한국 랭킹 2위로 올라섰다. 다만, 봄과 가을 두 차례 슬럼프 기미를 보이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 점이 아쉬웠다.
박정환의 급부상에 가려졌지만, 황소 3총사 그룹이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연초 이창호에게 국수를 쟁취하고 '농심배 종결자'로 한국 우승을 견인하며 힘차게 출발했던 최철한은 조한승에게 국수를 내주었지만, 대신 천원전에서 우승하면서 랭킹 2~3위권을 지키며 중량감을 보였다. 그동안 국제기전 '물징크스'를 보이던 원성진은 국내 기전에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보인 끝에 연말 마침내 생애 첫 세계제패(삼성화재배 우승)의 개가를 올렸다.
올 시즌 부진한 듯 했던 박영훈도 명인전과 맥심배를 우승하며 실속을 챙겼다. 지난해 다승_승률 2관왕에 오르며 전천후 활약을 펼친 조한승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전통의 국수전에서 우승하며 그동안 따라다녔던 "2% 부족"의 꼬리표를 떼어내 올 시즌에서도 활약이 기대된다.
▲ 2011년 삼성화재배 우승을 결정지은 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원성진.
이세돌 vs '포스트 이세돌' 그룹 맞대결 흐름…이창호 활약이 변수
◇… 새해 국내 바둑계도 역시 '군웅할거'의 양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수시로 '전관 제패'를 이룰 정도로 거의 모든 기전에서 두루 활약을 보이던 전성기 때의 조훈현_이창호와는 달리 현 1인자 이세돌은 세계 대회나 비중 큰 기전에만 전력투구하는 스타일인 데다 기사들의 전반적인 상향평준화 때문에 과거처럼 1인자가 대부분의 타이틀을 독식하는 현상은 앞으로 좀처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젊은 기사들의 상향평준화에 세대교체 양상까지 더해져 절대 강자가 없이 최철한, 원성진 등의 ‘황소 3총사’ 그룹과 박정환, 강동윤 등이 이끄는 후배 그룹이 1인자 이세돌을 포위한 채 혼돈의 각축을 벌일 것으로 전망되는데, 여기서 중대 변수는 역시 이창호다. 2010년 최악의 부진을 딛고 지난해 다시 부활한 그가 얼마나 실지회복(失地回復)을 하느냐에 따라 국내 기전의 판도가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 중국으로 돌아가는 루이나이웨이.
芮乃偉 빠진 여류바둑 지각변동…세대교체 맞물려 '집단지도체제' 루이나이웨이(芮乃偉)가 빠진 국내 여류바둑계는 전반적인 실력 향상과 세대교체 흐름이 맞물려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여류바둑을 이끌어온 박지은-조혜연 투톱체제에 이미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박지연, 김미리, 최정 등 5~6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양상을 보일 공산이 높다.
○날씨로 보는 기사 기상도●
이세돌 (○ 맑음)
연말 '이-이 대결'에서 승리한 효과가 당분간 지속될 듯. 1인자 위상을 지킨 데다 ‘이창호 컴플레스’ 극복의 덤까지 얻어 자신감 100% 충전! 3월 BC카드배가 올 시즌의 첫 시험대.
이창호 (◉ 비온 후 갬)
연말 이세돌과의 진검승부에서 패한 내상이 제법 커서 일단 불안한 스타트가 예상된다. 2월 LG배 결승전이 올 시즌의 중대 분수령. 그래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지 않을까.
박정환 (◑ 구름 약간)
첫 세계제패의 영예에다 '랭킹 2위'의 뿌듯함을 안고 2011 시즌을 마쳤으나, 마무리는 별로였다. 2012년에도 가장 주목받는 블루칩이지만, 심한 기복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관건.
최철한 (◑ 구름 약간)
꾸준한 활약으로 국내 No.2~No.3를 오갔으나, 국수 상실과 한국리그 패배 등으로 마무리가 좀 미흡했다. 계가바둑으로 가면 승률이 크게 떨어지는 스타일의 변화가 있어야 할 듯.
원성진 (○ 맑음)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감격에 겨웠던 연말이 지났다. 구리를 넘어 세계를 제패한 자신감이 커서 희망찬 새해가 될 듯.
강동윤 (◑ 구름 약간)
한국리그 통합우승에 MVP까지 거머쥐어 '돈방석'에 앉았던 연말. 그러나 한국리그를 빼면 솔직히 별로 남는 게 없는 해였다. 새해엔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조한승 (○ 맑음)
다승왕_승률왕에 국수 획득까지-, 2011년은 정말 지칠 줄 모르게 달려온 한 해였다. 부족했던 2%를 채운 데다 기복없는 스타일인 만큼 일단 새해 초 전망은 밝다.
구리 (○ 맑음)
삼성화재배 실패의 충격을 딛고 스포츠어코드에서 전승하며 금메달을 이끌어 역시 '중국의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새해에도 변함없는 이세돌의 최대 라이벌.
콩지에 (◐ 흐림)
불가사의할 정도로 슬럼프에 허덕인 악몽의 2011이여! 아듀~. 새해엔 Again 2009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야마 유타 (◑ 구름 약간)
이세돌, 구리를 연파하고 후지쯔배 우승 직전까지 가며 맹위를 떨쳤던 지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후엔 좀 주춤했다. BC카드배와 춘란배가 개막되는 3월이 진정한 그의 시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