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국기원 1층에 세워진 소원성취 바둑대축제 표지판.한가로운 주말 17일 오후 기자는 한국바둑리그 플레이오프 (하이트진로:영남일보) 취재 차 한국기원으로 향했습니다. 버스에 내려 한국기원으로 옮기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질 정도로 참 춥더군요. (이날 영하 10도였죠.)
총총걸음으로 드디어 한국기원에 도착! 그런데 여느 주말보다 한국기원이 조금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왜인지 주위를 둘러보니 '소원성취 바둑대축제'라고 적힌 표지판에 눈에 띕니다.
▲행사에 앞서 행사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어떤 행사인지 궁금해 축제가 열리는 2층에 올라갔습니다. 행사가 열리려면 30분 가까이 남았는데도 행사진행원 외 연구생을 하기에는 조금은 어린 아이들과 이들의 부모로 보이는 분들까지 꽤 많은 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바라보는데 조금 다른 피부색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요. 바로 이번 소원성취 바둑대축제는 전국 다문화 바둑교실 부모 및 자녀를 대상으로 한 행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문화 가정은 우리와 다른 민족,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을 뜻하는데, 매년 결혼하는 30만쌍 중 10% 이상이 다문화 가정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매년 다문화 2세 탄생도 꾸준히 증가하는데 지난해 탄생한 신생아 47만2000명(통계청-2010년 출생 통계) 중 엄마 또는 아빠가 외국인이거나 귀화한 부모가 낳은 자녀는 모두 1만6428명(행정안전부-외국인 주민 현황 자료)에 이릅니다. 2011년 현재 10만 명이 넘는 다문화 자녀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고, 배우자와 가족까지 감안한다면 60만 명에 가까운 다문화가정이 한국에 있다고 하네요.
국제결혼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 앞으로 다문화가정 역시 더욱 늘어나겠죠. 따라서 문화가 다르고, 아직 한국이 낯설 수도 있는 이들을 위한 ‘다문화정책’의 중요성이 점점 떠오르고 있고, 정부 역시 올해 887억원을 다문화가정 예산으로 책정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급 교재. 영어, 일본어 등 6개 언어로 번역됐다.바둑계에서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업을 기획해 실행 중인데요. (재)한국기원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10월부터 서울, 부산, 인천, 울산, 수원, 제천, 부안, 순천 등 8개 다문화 바둑교실을 운영해 지역마다 주1~2회에 걸쳐 다문화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바둑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들을 위해 교재(바둑에 빠지다/이다혜·백지희 공저)를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러시아어, 필리핀어 등 6개 언어로 번역하기도 했지요.
그 중 제일 먼저 포문을 연 충북 제천에서는 10월 첫째주부터 매주 토요일 다문화 바둑교실을 운영 중인데 총 31명이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제천 임창순 전무이사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바둑을 배우는데 한국말을 할 줄 아는 7~8세 아이들이 많아 바둑을 가르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수강생의 95%가 바둑을 좋아하죠."라고 밝혔습니다.
▲바둑알에 자신의 꿈을 적는 아이들.
▲자신의 꿈을 쓴 바둑알을 바둑판에 붙이는 아이들. 이날 열린 대축제는 그 동안 한국기원이 지도교사를 파견한 각 지역 다문화바둑교실 참가자들을 초청해 마련한 이벤트입니다. 참가자들에게 그 동안 바둑을 배우면서 느낀 점과 바라는 점, 한국생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터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서 이들을 위한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고 보면 되겠네요.
본격적인 행사 전이지만 미리 온 아이들은 핸드페인팅을 하고, 바둑알에 소원을 적는 등 분주한 모습이네요. 부모들 역시 아이들을 챙기며, 부모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네요.
▲이번 행사에 참여한 여자기사들.의미 있는 이 행사를 위해 달려온 이다혜, 박지연, 문도원, 김미리, 오정아, 이영주, 김혜림 등 예쁜 7명의 여자프로기사들도 눈에 띕니다. 이 중 이다혜 4단은 서울 구로에 위치한 이주여성연합회에 출강하고 있는데, 이날 아이들에게 인기투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행사시작 시간인 2시가 가까워지자 행사장에는 서울을 비롯해 부산, 인천, 울산 등 8개 시도에서 올라온 70여명의 참가자들로 북적입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부안에서는 지도교사들을 비롯해 아이들까지 15명이 아침 9시에 출발했다고 하네요.
▲김종서 작가의 진행
▲진지한 표정의 아이들.드디어 2시. 타이젬 김종서 작가의 진행으로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여자기사와 함께하는 레크리에이션, 바둑OX퀴즈, 루이나이웨이와 함께하는 한국생활과 바둑, 소원성취 대형바둑판 만들기 등 참가자들에게 간단한 행사진행 순서를 알리고, 여자프로기사들을 소개한 후 바로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긴장을 풀기위한 깜짝 퀴즈 시간. "한국기원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미소로 자신감 넘치게 "바둑고수들이 있는 곳이요!" "바둑 두는 곳이요!"라고 대답합니다.
각 지역에서 온 탓인지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은 이내 여자기사들, 친구들과 함께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면서 금세 친해졌지요.
▲행사에 참가한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눈 루이나이웨이 9단.
아이들이 행사에 빠져있을 때, 부모들은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한국생활과 바둑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내성적인데, 바둑을 배우면 더 내성적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가 실력이 많이 늘고,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도장을 보내야 되겠죠? 교육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자신보다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에 학부모들은 대부분 한국생활보다는 자녀들의 기력향상 등 바둑교육과 관련된 질문을 루이 9단에게 많이 했죠. 또 아이들과 함께 바둑을 배우면서 느낀 점들을 말하며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한 학부모가 "산만했던 아들이 바둑을 배우면서 이 전보다 차분해졌다."고 말했는데요. 이 외에도 다문화가족들이 바둑을 배우면서 얻는 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에 임창순 전무이사는 “사회참여의 기회로 삼는 것이죠. 바둑을 배우고, 바둑교실에 함께 나오는 이웃과 소통하면서 친분도 쌓고 있는 것이죠.”라고 말했고, 부안의 한 지도사는 "아이들이 서로의 돌을 잡고, 잡히면서 자연스럽게 상대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힘을 기르더라고요. 바둑을 배울수록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힘찬 첫 발을 내딛은 다문화가족을 위한 바둑보급은 내년에도 쭈욱 이어집니다. 임창순 전무이사는 "현재는 다문화 관련 센터나, 이가 여의치 않을 시에는 바둑교실에서 바둑보급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는데, 나중에는 한글지도사에게 바둑을 가르쳐서 방문교육을 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 같아요. 또 현 다문화가족들을 위한 입문 바둑교재에 이들이 한국생활에 필요한 생활예절, 일반 상식 등을 보완해 통일된 커리큘럼으로 다문화가족들에게 지도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라고 지도사입장에서 보완 부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
"행사가 너무 재미있어요. 바둑도 재미있고요."
"초보자 1권을 다 배웠는데, 전 상대 돌 잡는 재미에 바둑두는 것이 즐거워요."
"아이들이 큰 바둑알 인형보고 처음에는 놀랐는데, 어느 새 함께 어울리네요.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좋네요."
피부색은 조금 다르지만, 바둑을 사랑하고,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같습니다. 17일. 영하 10도의 한파가 대한민국을 강타했지만 한국기원은 따뜻했습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로, 이들을 지켜보는 학부모들과 지도교사들의 따뜻한 눈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