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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청주의 바둑연구가 이승우 선생 스토리

2012-01-24 오전 10:17:35 입력 / 2012-01-24 오후 12:05:58 수정

▲바둑사학자 이승우 선생을 만나러 가는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의 풍경을 담았다. 

S#1. 청주로 가는 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기억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나가는 그대 모습
어느 찬 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그 길에 들어서면 쓸쓸한 노래 가락이 떠오른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에 들어서며….

청주 초입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다.
노랫말처럼 그 길에 애잔한 사랑의 기억이 묻어있는 건 아니지만 지나칠 때마다 그런 감성의 현(絃)이 귓전에 울린다.
바둑 인을 만나러 다니는 여행은 반가우나 늘 허허로움이 뒤따른다.
뭔가 완성되지 않은 분야.
풍족하지 않은 세계
그렇기에 그 공백을 메우려는 열정들이 아름다우면서 안타까운 것이다.
대저 바둑이 무엇이길래!
청주 모충동의 이승우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가로수를 올려다본다.
말없이 여기가 길임을 알려주는 가로수들.
선생도 19로의 가로수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이승우 선생의 연구실. 작지만 바둑열기로 훈훈했다.

S#2.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의 연구실은 바둑 서적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연구실로 들러와 종일 책을 읽고 원고를 쓴다고 했다.
어디에 연재하는 것도 아니고 제출할 의무도 없는 자유로운 집필이다.

왜 하시는가?
묻는 것은 당연히 우문(愚問)이리라.
평생 즐겨온 바둑인데 그 문화의 뿌리가 명확하지 않아 홀로 돋보기를 들고 역사를 탐색하는 것이다.
바둑계에서 이승우 선생의 명성은 [청석기담][이승우의 바둑이야기][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바둑과 문화] 등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바둑문화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바둑사의 뼈대를 세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냈다.
언제부터 어떤 동기로 바둑문화 탐색을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이승우 선생. 82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건강했다.

“허허, 행정공무원으로 평생 열심히 뛰다가 정년퇴직을 했는데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바둑 여행을 많이 다녔지. 자꾸 다니다 보니까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더라고.”

그는 1930년(현82세)청주 출신으로 명문 청주중(청주고)을 나와 행정부 보통문관 공채시험에 수석 합격해 충북도청에 들어갔다.
공무원 신분으로 영장을 받아 6.25전쟁 때 통역장교로 전선을 누볐다.
전역 이후 다시 도청에 복귀해 내무, 보건사회, 산업, 기획관리실, 공보실 등 모든 부서를 섭렵하고 단양, 보은, 음성 군수와 제천 충주 시장을 지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해 충북도에 외국인 손님들이 방문하면 늘 통역을 도맡았다고 한다.

바둑을 처음 만난 때는 열 살 때인 1940년 겨울이었다.
방학을 맞아 괴산의 집안 당숙 집에 놀러갔는데 순장바둑판과 조개 바둑돌이 있었다.
당숙은 조카들을 모아놓고 바둑을 강의했다.
소년 이승우는 그때 흑백의 돌을 이용해 영토를 차지하고 전투를 벌이는 지적 게임 바둑에 심취했다.
그런 내력의 입문 과정을 거친 터라 관료시절에 그는 바둑의 고수로 통했다. 일본의 위기잡지 명국해설을 10년 동안 오려서 스크랩하고 복기하다 보니 저절로 기력이 늘었다.

서울의 중앙부서 내무부로 파견돼 근무하던 시절에는 명동의 송원기원에 드나들며 신동문, 민병산, 천상병 등 문인들과 함께 낭만적인 시간을 보냈다.
공무원으로 일정한 수입이 있었던 이승우 선생이 물주 역할을 맡으며 술과 밥을 샀다.
이때부터 그는 바둑계의 후원자로 보이지 않게 활동했다.
제천시장으로 재직할 때는 아마추어 바둑강자를 시청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으며 크고 작은 바둑행사를 후원하곤 했다.

▲바둑사학자들의 끈끈한 모습. 왼쪽부터 이승우 선생, 故양동환 선생, 미스구치 후지오.

그가 바둑문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로 맘먹은 것은 일본인 친구 미스구치 후지오와의 인연 때문이다.
미스구치는 일본기원 편집부에서 38년을 일한 베테랑이었다.
그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이승우 선생은 충격적인 정보를 얻게 된다.
일본기원에 김옥균의 바둑판 목록이 있다는 것.
이승우 선생은 그길로 일본기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100년 전 조선의 망명객 김옥균의 이름이 적힌 비자 바둑판을 찾아내 국내로 들여왔다.
지금 그 바둑판은 우리 근대바둑을 상징하는 사료로 한국기원에 보관 중이다.


▲이승우 선생이 수집한 한국, 중국, 일본의 바둑관련 우표와 봉투들. 이승우 선생이 평생 모은 자료의 일부분인데, 이후 타이젬칼럼에서 별도로 코너를 마련해 많은 자료를 선보인다.

이승우 선생의 노력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10여 차례의 일본여행, 유럽 바둑여행 등을 통해 우리 바둑사의 파편들을 모아왔다.
일본 황실의 정창원에 있는 백제의 목화자단기국의 진실에 관해 연구했고, 일본과 중국의 바둑 우표들을 수집했다.
(사진으로 소개) 또 중국바둑의 고전 [현현기경] 서지부(序之部)를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다.
바둑학회 창립 멤버로 바둑학의 필요성을 알렸고 여든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촌음을 아껴 바둑문화의 밭을 일구고 있다.

▲집필 중인 이승우 선생. 그는 만년필로 원고를 쓴다.

S#3. 이승우의 [바둑문화 산책], 타이젬에 연재할 예정

그의 아호는 청석(淸石)이다.
그의 연구실은 청석문화연구실.
모든 서류는 켜켜이 쌓여있고 희미한 등불아래서 직접 만년필로 원고를 쓴다.
팔십 대의 노기객의 공간이니 철저한 아날로그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서류 하나 찾는데도 책장과 책상 위를 분주히 뒤져야했다.
선생의 열정과 노력을 체계적으로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승우 선생(왼쪽)과 김종서 작가.

"선생님. 타이젬에 연재주시지요. 많은 바둑 팬들이 선생님의 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케이! 내 것을 다 드릴 테니까 1년이고 2년이고 싣도록 하시오."
선생은 흔쾌히 승낙하셨다.
오케이 선생님.

뭐든 말이 나오면 망설이는 법이 없고 시원시원하게 맞장구를 쳐주신다.
저런 긍정적이고 호쾌한 스타일로 40년 공직생활을 거슬러 오셨으리라.
2월부터 타이젬에 이승우 선생의 [바둑문화 산책] 코너를 오픈할 예정이다.
선생께서 모아오신 모든 자료와 연구결과들을 차곡차곡 그 코너에 소개할까 한다.

▲앙상한 가지로 뒤덮인 가로수 길.

다시 청주를 빠져나온다.
우람한 가로수지만 겨울이라 잎이 없고 앙상한 가지로 터널을 이룬다.
저 나무들은 얼마나 이 길을 지켰을까?
아마 이승우 선생님 연세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19로의 가로수라 칭해드려도 괜찮을 법한 이승우 선생님의 스토리를 간략하나마 설 특집으로 소개해드렸다.
선생의 손길에 의해 정리된 바둑문화 스토리는 곧 연재를 통해 여러분께 선보일 것이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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