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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2월 ‘한국바둑 수난시대’

이창호 우승 실패 이어 남녀 단체전도 연이어 패퇴

2012-03-01 오전 10:06:04 입력 / 2012-03-01 오후 11:39:37 수정

2월은 한국바둑계에게 정녕 '잔인한 달'. 2월초 황룡사배에서 한국 여류기사들이 줄줄이 탈락한 데 이어 믿었던 이창호가 LG배 우승에 실패하고 농심배에서도 중국에 역전우승을 내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 '한국바둑 수난시대'가 된 임진년 2월을 정리해본다.


▲농심배 우승을 차지한 중국

[농심배] 막판 3연승으로 중국 역전우승 견인한 씨에허의 괴력

◇…그동안 한국바둑의 보루 역할을 해왔던 '농심배 수호신' 이창호마저 씨에허(謝赫)의 돌풍에 무너지면서 13회 농심신라면배는 끝내 중국에게 넘어갔다.

그동안 농심배에서 이창호의 괴력에 막혀 번번이 우승에 실패했던 중국바둑계로선 창하오(常昊)의 분전에 힘입어 대회 첫 우승을 달성했던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온통 축제분위기에 빠져들었다. 2008년 당시 이창호와 박영훈을 연파하며 염원하던 중국의 첫 우승을 견인했던 창하오가 '대륙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그 해 연말 중국 스포츠 전체 MVP로 선정됐던 사실을 상기할 때 이번에 막판 3연승으로 우승을 이끈 씨에허도 그에 못지 않은 영웅 대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사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는 씨에허

'한국 킬러' 씨에허, 이세돌·최철한 등 전투형 기사에 특히 강미

◇…사실 씨에허는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할 만큼 기적같은 활약을 보였다. 씨에허가 이번에 막판 역전 우승을 달성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평가다. 현재 중국랭킹 1위라는 현실적 지표 외에도 '이세돌 천적' '한국 킬러'로 불릴 정도로 그동안 한국 기사들에게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여왔기 때문. <☞ 표 참조>


특히 이창호, 조한승, 박영훈 등 실리형 기사들에게는 비교적 약했던 반면, 이세돌, 최철한, 원성진 등 전투형 기사들에게 매우 강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침착하고 후반에 강한 기풍 정도로 알고 있던 씨에허가 실은 힘과 싸움 면에서도 세계최정상급이라는 방증이라고 할까.

실제로 이번에도 그는 역전(力戰)형의 김지석, 원성진을 꺾은 데 이어 최종국에서도 이창호에게 포석에서 밀린 핸디캡을 딛고 곳곳의 접전에서 계속 포인트를 올린 끝에 완승, 전투력과 수읽기면에서 이미 세계 톱클래스임을 입증했다. 좀처럼 먼저 싸움을 걸지는 않지만, '세계제일의 카운터펀치'를 지닌 씨에허의 전력과 스타일은 향후 한국 기사들에게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3회 농심배에서 최다연승(탄샤오와 공동 수상) 4연승을 기록한 김지석.

구리 꺾고 4연승 올린 김지석, 씨에허에 다 잡은 판 놓쳐 아쉬움

◇…이번 3라운드가 뚜껑을 열자마자 중국이 특급소방수로 전격 내세웠던 에이스 구리(古力)가 김지석에게 물러날 때만 해도 중국팀의 분위기는 거의 초상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앵커맨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구리를 앞당겨 출격시킨 것은 바로 3연승을 올리고 있던 김지석을 잡기 위한 필승카드, 그러나 그동안 김지석에게 4전전승을 기록하고 있던 구리가 착각으로 어이없게 무너지자 도리어 가장 믿는 에이스를 일찌감치 잃는 우를 범하는 격이 된 것 아닌가. 구리가 탈락하자 한국 우승은 '따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다.

이제 중국에는 씨에허 딱 한 명만 남은 반면, 한국에는 김지석를 비롯해 3명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 특히 그동안 농심배에서 전회 출전해 총 19승2패의 가공할 전적에 8회나 막판 우승을 결정지은 이창호의 압도적 존재감에 지난 연말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자신감 충만한 원성진, 구리마저 꺾으며 이번 대회 4연승을 질주하고 있던 김지석의 기세를 감안할 때 더더욱 그랬다.

▲김지석(오른쪽)과 씨에허의 대국 모습.

이튿날 김지석이 씨에허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그로기 상태로 몰자 한국의 우승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심지어 김지석이 압도적 형세를 구축하고 있던 22일 대국 중반 당시 한국기자단 사이에서는 원래 최종국 다음 날(25일)로 예약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이틀 앞당겨 변경하느라 분주했을 정도. 그러나 이때부터 씨에허의 무서운 저력과 김지석의 착각이 어우러지면서 믿기 힘든 역전극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한국팀에게는 이 역전패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 되고 말았다. 저승 문턱에서 살아난 씨에허는 중국랭킹 1위가 허명이 아님을 입증하듯 다음 날 원성진에게 완승을 거둔 데 이어 최종국에서 이창호마저 제치고 기어이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그동안 이번 대회에서 이창호의 막판 연승에 힘입어 수차례 역전 우승에 성공했던 한국이 이번에는 '역전의 부메랑'을 맞았다고 할까.

▲농심배 전설로 많은 활약을 보여준 이창호.

비록 한국이 뻐아픈 역전패를 당했지만, 그리 크게 실망하거나 호들갑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이기고 지고 하는 게 승부인 법. 한국이 그동안 농심배에서 이창호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해왔지만, 수년 전부터 각종 국제대회의 성적이 말해주듯 사실 객관적 전력상 중국과는 난형난제 아닌가. 이창호를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동안 '농심배의 전설'로 절대적 존재감을 과시해온 이창호에게 후배 기사들은 고마워하는 한편, 앞으로 좀 더 분발하여 스러진 이창호의 존재감을 메워야 하지 않을까.


▲파죽의 6연승을 거둔 중국의 왕천싱

[황룡사배] 중국 신예 왕천싱 시작부터 거센 돌풍…파죽의 6연승 질주

◇…폐지된 정관장배의 바통을 이어 연승방식의 한중일 단체대항전으로 탈바꿈한 제3회 황룡사쌍등배 세계여자바둑단체전는 초반부터 20세 신예 '왕천싱(王震星) 태풍'에 온통 휩싸였다. 2국에서 일본의 선봉 요시다 미카를 꺾은 것을 시작으로 파죽의 6연승을 올리는 사이 어느새 1라운드가 끝나버린 것이다.

거침없는 그녀의 연승가도에 한국과 일본의 여류강호 3명씩이 속절없이 나가 떨어졌다. 특히 한국은 선봉 최정이 앞서 1국에서 탈락한 터여서 모두 4명이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주장 박지은만 홀로 남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중국의 왕천싱이 앞으로 일본 2명과 한국의 보루 박지은마저 꺾는다면 과거 서봉수가 97년 진로배에서 달성했던 9연승 우승신화를 재현하게 되는데, 일본기사들의 전력과 왕천싱의 파죽지세를 감안한다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기둥 역할을 해온 박지은의 활약여부가 절대적인 형국이 됐다.


▲황룡사쌍등배에서 첫 주자로 나선 최정.

한국 기대주 최정 아쉽게 첫판 탈락…박지은 단 1명만 남아 전멸위기

◇…우승을 자신하며 대회에 임했던 한국팀이 이처럼 일찍이 전멸의 위기에 몰리게 된 데는 선두타자로 나간 최정이 1승도 거두지 못한 게 치명적이었다. 최근 생애 첫 타이틀(여류명인전)을 획득하며 절정의 기세를 구가하던 최정이기에 적어도 3연승 이상은 해줄 것이라고 모두들 기대했던 게 사실.

그런데 손쉽게 이길 것으로 여겼던 일본의 40대 노장 요시다 미카에게 첫 판에 져 탈락한 것이 최정 개인은 물론, 한국팀에게도 재앙이 된 것이다. 특히 국제경험 미숙과 지나친 부담감 탓인지 무수히 이길 찬스가 많았음에도 잇단 실수와 생소한 중국룰에 따른 불운이 겹친 끝에 역전 반집패한 사실은 큰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한국의 수문장 박지은이 '월드 퀸'이란 별명답게 절체절명의 한국팀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인지, 초대 황룡사배 우승의 향배는 오는 4월 6일 속개될 2라운드에서 결정난다.

▲LG배 결승 2국 종국 후 모습.

[LG배] 이창호, 끝내 세계정상 귀환 실패…당분간 무관탈출도 힘들 듯

◇…5년 만의 세계정상 귀환에 큰 기대를 모았던 이창호가 이번에도 실패했다. 통산 세계대회 최다 우승(21회)에 빛나지만, 2007년 중환배를 끝으로 세계정상에서 멀어졌던 이창호는 결승 3번기에서 중국의 '떠오르는 샛별' 장웨이지에(江維杰)에 뜻밖에 0대2로 완봉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상대가 이세돌도, 구리도, 콩지에(孔杰)도 아닌 갓 스무살의 중국 신예이기에 충격에 가까운 완패였다.

돌이켜보면 결승 1국이 이창호에겐 두고두고 아쉬운 역전패였다. 중반까지 완벽한 반면운영으로 모두들 이창호의 완승을 예견할 무렵 돌연 불가사의에 가까운 난조를 거듭한 끝에 멀쩡하던 대마를 죽이며 허망한 역전패를 당한 것. 이 패배가 결국 결승 3번기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틀 후 속개된 결승 2국에서 이창호는 기세가 오른 장웨이지에의 교묘한 선실리 후타개 작전에 끌려다닌 끝에 석패했다. 지난 연말 이세돌과의 올레배 결승 패배에 이어 또다시 정상 복귀에 실패함으로써 이창호는 한동안 '무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열린 KBS바둑왕전, 십단전, GS칼텍스배, 맥심배 등에서 잇달아 초반 탈락하는 바람에 올 시즌 중반기까지는 기회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열린 BC카드배 통합예선에서 올 시즌 첫 승점을 따내는 등 3연승을 올리며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이 일말의 위안이라고 할까. LG배와 농심배의 연이은 좌절을 딛고 이창호가 언제 다시 재기할지 뭇 바둑팬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LG배 우승자 장웨이지에

中 ‘떠오르는 샛별’ 장웨이지에, 대회 최연소 우승에 10전승 기염

◇…예상을 깨고 이창호라는 거목을 쓰러뜨리며 생애 첫 세계제패를 달성한 장웨이지에는 대회 최연소 우승(20세 4개월), 통합 예선부터 10연승 전승 우승, 중국의 이 대회 4년 연속 우승 등 갖가지 진기록을 양산하며 일약 세계 정상의 반열에 화려하게 등극했다.

2010년 중국 명인전 우승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장웨이지에는 지난 해 명인전 2연패, 후지쯔배 4강 진출 등 괄목할 성적으로 최근 중국 랭킹4위까지 뛰어오른 신흥강호지만, 생애 첫 세계대회 결승에서 이창호에게 2대0으로 완승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조한승, 목진석, 원성진, 김지석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강호들을 모조리 꺾는 등 이번 우승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충분히 입증했다. 뚜렷한 특징은 없지만, 균형감각이 좋고 끈끈한 ‘전천후 기풍’이라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최대 장점이라는 평이다. 콩지에, 씨에허에 이어 또 한 명의 '新한국킬러' 등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한국 기사들에겐 앞으로 그가 요주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해졌다.


▲10단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홍기표

[국내기전] 십단전 4강 결정…홍기표, 이세돌 꺾고 4강 진출 기염 

◇…제7기 원익배 십단전이 4강 멤버를 확정했다. 올 시즌 초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홍기표가 최강 이세돌을 격침시키며 맨 먼저 4강 고지에 오른 가운데 강동윤과 강유택에 이어 최철한이 '소년 10단'으로 유명한 박정환을 제치고 막차로 합류했다.

특히 최근 치열한 'No.2' 각축을 벌이고 있는 박정환(국내랭킹 2위)과 최철한(3위)은 닷새 간격으로 십단전 8강전과 맥심배 결승에서 잇달아 만나 주목을 끌었는데, 십단전에서는 최철한이 전기 8강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며 역전승했다.

준결승 대진은 강동윤 vs 홍기표와 최철한 vs 강유택. 명성이나 랭킹 면에서는 강동윤과 최철한이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이세돌이 홍기표에게 한 칼 맞고 탈락한 것처럼 유난히 신예돌풍이 심했던 이번 대회이기에 예측불허의 접전이 예상된다. 준결승 2판은 오는 3월 19, 20일 속개된다.


▲입신최강전 결승 1국 모습. 박정환(오른쪽)이 승리했다.

'막내 입신' 박정환, 최철한 꺾고 '최연소 우승' 8부능선 점령

◇…올 시즌 처음으로 입신(入神)의 제전에 합류한 '막내 입신' 박정환이 첫 줄전에 우승까지 바라보게 됐다. 2월 26일 열린 제13기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결승 3번기 1국에서 박정환은 디펜딩 챔피언 최철한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 고지의 8부 능선을 점령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에 못지 않게 주목받은 기사는 80년대 도전5강의 일원이었던 노장 백성호의 분전. 조훈현을 제치고 올라온 이상훈을 꺾고 4강에 오른 것이다. 여타 본격기전과 마찬가지로 맥심배도 수년 전부터 젊은 상위 랭커들이 중견과 노장들을 밀어내고 4강을 싹쓸이해온 추세를 감안할  때 박수를 받을 만한 '노장 투혼'이었다. 특히 이세돌이 8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백성호의 4강 진출은 더욱 빛났다. 맥심배 결승2국은 오는 3월 5일 제주도에서 속개된다.

                  ○날씨로 보는 기사 기상도●

이세돌 (∴ 안개)
올 시즌 3승3패. 그런데 1인자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대국 일정이 뜸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고 있을 듯. 그래서 예측도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1인자는 1인자니까 낙관적 전망.

박정환 (○ 맑음)
역시 '포스트 이세돌'의 선두주자. 연초라 대국이 뜸한 여느 기사와 달리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벌써 7승1패에 맥심배 우승도 눈앞이니. "내가 요즘 제일 잘나가~♬"

최철한 (○ 맑음)
박정환과 십단전과 맥심배에서 승패를 주고받는 등 분전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쯤 박정환과 No.2 자리와 다승왕을 다투지 않을까.

이창호 (/// 장마)
LG배에 이어 농심배에서도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올 2월은 그에게 잊고 싶은 시련의 계절이리라. BC카드배 본선 진출을 계기로 다시 일어서려나…

김지석 (◑ 구름 약간)
올 시즌 벌써 5승1패. 농심배에서 구리를 꺾은 여세를 살리지 못한 채 씨에허에게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 진한 아쉬움을 빨리 잊을 수 있으려나.

씨에허 (○ 맑음)
'중국 랭킹1위'의 위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농심배 수호신' 이창호까지 꺾으며 3연승으로 역전우승을 일궈낸 그는 지금 말 그대로 ‘대륙의 영웅’이리라.

장웨이지에 (○ 맑음)
아무리 대륙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해도 이창호를 셧아웃시킬 정도로 센 줄은 몰랐다. 한국기사들엔 씨에허에 이어 또 하나의 경계경보 발령!

조치훈 (○ 맑음)
'불멸의 노장 투혼'이 무엇인지 정말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본의 간판 장쉬와 이야마를 연파하고 두 기전의 결승에 잇달아 오르는 괴력을 보였다.
TYGEM / 志石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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