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1 오후 2:11:38 입력 / 2012-05-01 오후 3:07:57 수정
S#1. 하늘로 돌아가련다
후줄근한 양복. 팔에는 서류가방 하나. 그리고 경보처럼 빠른 걸음. 그는 언제나 저런 뒷모습을 남기고 새벽 연산동 언덕길로 사라졌다. 헤어질 때마다 배경의 하늘은 어둠이거나 새벽노을이었다. 저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어찌 나뿐일까? 365일 중 361일을 19로의 벗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걸어왔던 그가 대수롭지 않은 사석처럼 홀연히 반상을 떠나갔다.
▲ 故 백승이 전무 영정.
나 떠나련다. 부산항을 감싸는 따뜻한 바람에 실려 터덜터덜 걸어가련다. 이 몸 뼈도 주고 살도 주고 혼백마저 탈탈 털어주고 새벽노을이 되어 하늘 끝까지 걸어가련다.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의 길. 부질없었던 그 날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계가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벗들이여. 먼저 떠나 미안하네. 그리워하지도 말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그저 바둑 돌 사석 하나 덜어냈다 생각들 하시게. 그래도 가끔 내 얼굴 떠오르거든 소주잔을 기울일 때 나지막이 불러줘도 괜찮겠네.
▲ 부산 동의의료원을 찾은 바둑인들.
S#2. 바둑과 술이 전부였던 사람
4월 29일 일요일 오후. 바둑동네 사람들 통신망이 분주해졌습니다. ‘부산의 백승이 전무 별세’ 믿을 수 없는 소식, 패닉에 빠진 친구들 많았습니다.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동의대의료원 장례식장. 벌써 많은 바둑 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 바둑계의 화환들.
영안실 복도에 화환이 가득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저 풍경이 말해줍니다. 그 자리에 눈물이나 통곡은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때 백승이 전무와 그랬던 것처럼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떠나간 이를 추억했습니다.
▲ 백승이 전무를 추억하는 사람들.
지방 바둑협회 전무라는 직함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사실은 명예직입니다. 협회의 재정에 따라 보수를 받는 곳도 있지만 직업으로 분류하기에는 좀 애매합니다. 그러나 부산바둑협회 백승이 전무는 그 직함에 대해 무한한 긍지를 가졌고 아주 오랫동안 부산바둑을 지켜왔던 분입니다. 협회의 마당쇠를 자처하며 많은 일을 해왔지만 부산을 찾는 바둑 손님을 접대하는 일 하나만큼은 똑 소리가 났습니다. 바둑이 좋아 그랬거나 술이 좋아 그랬거나 앞뒤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만 아마 사람이 좋아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알콜 중독, 바둑 중독, 사람 중독 삼위일체일 겁니다.
▲ 부산의 수담사랑방.
4월 28일 토요일 부산의 수담사랑방에서 바둑동호인들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밤늦게까지 바둑을 두고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1차, 2차, 3차, 4차 노래방을 잠깐 들렀는데 백전무는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휘저었다고 합니다. 벗들이 다시 수담사랑방으로 올라갔는데 백 전무로부터 문자가 날아옵니다.
안주를 사들고 올라갈 테니까 기다리라는 전갈입니다. 이 문자가 고인의 마지막 유언인 셈입니다. 문자 속의 옥백 경감은 경찰관 기우 두 사람을 뜻합니다. 벗들에게 안주를 주고 싶고 일요일의 휴식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술자리가 이어지고 아침 7시 반에 끝났습니다. 그 시간에 귀가한 백 전무는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일어나 집밖으로 나서다가 쓰러졌습니다. 지켜보던 행인이 119에 연락해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그때는 이미 맥박이 멈춰있었습니다.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 그런데 얼마 전부터 백 전무는 이상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 백전무로부터 온 문자.
며칠 전 필자가 받은 문자입니다. 여름에 20주년이 되는 부경 바둑교류전을 기획하라는 연락이었습니다. 또 다른 바둑관계자들이 최근에 백 전무의 문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갑자기 며칠 전에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오늘 장례식장으로 나를 부르네.” 부산의 김철중 사범이 그렇게 혀를 찹니다. 수담사랑방에서 술자리를 끝난 순간 만취한 상태에서도 백 전무는 봉걸레를 들고 바둑을 깨끗이 닦았다고 합니다.
▲ 백 전무를 회상하는 수담사랑 친구들
그의 유품은 돋보기안경, 바둑수첩, 지갑뿐이었습니다.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던 사람이지만 떠난 자리에 많은 바둑 벗들이 찾아왔습니다.
▲ 백 전무와 가장 친한 벗이었던 프로기사 김철중, 가수 함중아
S#3. 인간 백승이
백승이 전무는 1954년 생으로 회갑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1988년 부산에 어린이 바둑교실을 냈고 한국기원으로부터 제1호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3년 동안 바둑교실이 호황을 누리면서 부산을 찾은 바둑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정을 나눠주기 시작합니다. 그때 반짝 두둑했던 지갑의 기억이 습관으로 몸에 배면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 바둑교실에서 만난 이붕 김영성 선생과 인연이 되어 부산바둑협회를 함께 했고 현 이철승 회장과도 호흡을 맞춰 일 해왔습니다. 원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바둑과 관계된 사람이 부산을 찾으면 당연히 자신이 길라잡이가 되어 한 끼 식사와 잠자리라도 챙겨주려고 애 썼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는 뼛속까지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이었습니다.
▲ 故 백승이 전무(오른쪽).
없어도 나누려 했고 외로워도 누군가를 위로하려 했던 사람 좋은 백승이 전무. 바둑계에 잔잔한 파장을 남기며 떠나갔습니다. 사석이 된 당신의 빈자리가 커 보입니다. “천국에 소주가 있을지 모르겠네?” 언젠가 당신이 던진 농담이 문득 떠오릅니다. 아마 소주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술 마시게 만드는 불화(不和)나 외로움 따위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인생의 전부를 술과 바둑에 깔끔하게 던진 당신의 이름을 많은 친구들이 오래 기억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