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걸음
대만바둑계를 조용히 묶어주는 그 무언가
대만기원 옹밍시안 이사장 인터뷰
2012-06-06 오후 2:44:38 입력 / 2012-06-06 오후 4:14:11 수정
지난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잉씨배 취재 차 대만 타이페이에 있었던 기자. 대만으로 향하기 전 잉씨배 취재 외에도 대만바둑과 관련된 곳을 둘러보고 싶었던 기자는 대만 바둑계에서 활동했던,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프로기사들에게 '대만바둑을 대표하는 곳 추천'을 부탁했다.
그 결과 '대만통'들의 공통적으로 추천한 두 곳이 있었는데 바로 입단지망생인 대만연구생을 양성하며, 프로기사들을 관리하는, 또 프로기전까지 후원하는 대만기원과 대만프로기사들의 기력향상을 위해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 하이펑 기원이 있었다. 이번 총총걸음에서는 대만기원 설립배경 등 대만기원과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 속 건물 내 3~4층에 위치한 대만 기원.
총총걸음으로 대만기원 앞에 선 기자. 한국기원, 중국기원, 일본기원… 이 여러 아시아 바둑강국을 대표하는 기관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대만기원 역시 약간은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까 염려하며 대만기원 문을 열었다.

▲대만기원 본원에서 공부 중인 연구생들.
▲프로기사에게 지도받는 대만연구생.
▲대국기보를 적은 연구생.
문을 열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닌 대만 아이들 48명이 기자가 문을 연 것도 모른 체 대국에 몰입 중이었다. 대만기원 관계자에게 물으니 프로를 꿈꾸는 대만 연구생들이었다.
대만 타이페이시 내 본원을 포함해 총 3개의 지부로 나뉘어 운영되는 대만기원. 기자가 찾은 본원에는 48명의 아이들이 12명씩 4개의 조로 나뉘어 자신과의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일찌감치 대국이 끝난 아이들은 부지런히 자신이 둔 대국을 적고 있었고, 프로기사에게 복기를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국 중인 대만 연구생.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질자 잠시 대국을 멈추고 기자를 바라봤다.
여러 아이들 중 한 아이가 귀여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이 아이는 잠시 대국임을 망각하고 깜찍한 포즈를 취해 기자를 웃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참 해맑다. 그렇게 잠시 아이들을 보고, 그들의 대국을 관전하던 중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보여 그리로 향했다.
▲프로기전 대국실.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대만 천원전 결승 대국 모습. 대만랭킹 1위 천스위엔(오른쪽)이 샤오정하오와 대결하는 모습.
바로 프로기사들의 대국실이었다. 4개 중 3개의 방에서 예선, 본선, 특별대국 등 프로기사들의 대국이 진행돼는데 넓지 않아도 대만기원에 소속된 66명의 기사가 대국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특별대국실 옆에는 이사장실이 있다. 5평 남짓 되어 보이는 그리 특별해보이지 않는 평범한 책상, 그리고 바둑판과 알이 있다. 정말 깔끔하고 검소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옹밍시엔 대만기원 이사장이 있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인상의 옹밍시엔 대만기원 이사장에게 대만기원이 생긴 배경에 대해 들어봤는데 조금은 놀라웠다. 바로 대만기원은 인터뷰를 요청한 옹밍시엔(翁明顯) 이사장의 바둑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
▲옹밍시안 대만기원 이사장.
1965년 일본 명인전에서 대만 국적의 린하이펑이 '면도날' '타개의 사카다'로 불리우며 일본 바둑을 대표하는 대기사 사카다 에이오를 상대로 명인타이틀을 쟁취해 세계바둑계에 큰 화제가 됐다. 그 대사건으로 대만에는 큰 바둑열풍이 불었다. 옹밍시엔 이사장 역시 같은 국적의 린하이펑의 그와 같은 활약상에 큰 감명을 받고 바둑을 접하기 시작한다. 바둑은 침착하고 신중한 옹이사장과 잘 맞았고, 이 때문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된다.
옹이사장의 바둑에 대한 애정은 단순히 바둑을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만바둑계에 대한 후원으로 이어진다. 중환 그룹을 이끌고 있는 옹이사장은 그 때부터 대만-중국 교류전을 후원을 시작하며 대만바둑계를 후원하게 된다.
바둑을 좋아해 후원까지 하게 된 옹이사장은 대만프로기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장쉬 9단이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 옹이사장은 장쉬를 비롯해 천스위엔, 황이주, 린한지에 등 유망한 대만의 아이들이 원대한 바둑 꿈을 위해 일본, 한국 등으로 바둑유학을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당시 대만 에 바둑열풍이 불었다고는 하나 프로기사 제도가 없었고,(잉창지 바둑교육기금회에서 대만프로기사 제도를 만들고, 운영했지만 중단됐다.) 제대로 된 국내대회가 전무하다 싶이한 실정이어서 기재가 뛰어난 아이들은 타국으로 바둑유학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
이를 지켜보던 옹이사장은 '저 아이들이 떠나지 않게 프로기전 창설 등 대만 내 좋은 바둑환경을 만들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설립부터 향후 운영자금까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지인들의 반대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 당시 옹이사장은 그래도 해야 된다.'라는 생각뿐이었고, 2000년 드디어 대만기원이 설립된다. 대만기원은 공익단체로 등록이 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국가에서 별도의 지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옹이사장은 대만기사들의 실력향상을 위해서 2004년 세계대회인 대만 중환배(중단)를 창설했고, 현재도 11개의 대만 국내 기전 중 9개를 후원 중이다.
▲인터뷰 중인 옹이사장.
대만기원이 설립된 지 10년이 조금 넘은 상황, 옹이사장에게 '그 동안 대만바둑계가 얼마나 성장한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옹이사장은 "처음 대만기원이 설립됐을 당시 10 만명으로 추산된 바둑인구가 지금은 100만명정도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이 여자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내년, 전국 대만운동회에 바둑도 한 종목으로 개최가 예정되어있다."라고 밝히면서 "바둑열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다시 뜨거운 열기가 불기 위해 제일 좋은방법은 대만기사가 세계대회 우승을 하는 것이다. 조금 더 대만기사들의 층이 두터워지면 중단된 중환배를 다시 열 계획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옹이사장이 중환그룹 공무를 마치는 시간은 오후 3~4시.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퇴근 후 대만기원으로 향한다고 했다. 그는 "바둑을 배우면서 더 차분하고 신중해졌다. 다 바둑 덕분이다. 대만 내 모든 사람들이 바둑을 배웠으면 한다. 바둑을 배우면 폭 넓은 사고방식과 집중력, 끈기, 체력, 인내 등 5가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바로 옆방으로 향하며 다시 수담을 나눴다. 인터뷰를 통역 해준 장정평 초단은 "후원도 그렇지만, 대만기사들의 성적이 나쁠 때도 격려로 대만 프로기사들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분이다. 정말 바둑 자체를 좋아하는 분으로 순수하게 후원을 해주셔서 나 역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와 도의 관점에서 바둑을 접근하는 일본은 차분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엄숙한 분위기, 그리고 현대바둑을 끌어 온 자부심이 느껴진다. 정부와 공기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바둑이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중국은 신예 기사들과 많은 어린 꿈나무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대만 국부대사관
그렇다면 대만은? 대만으로 향하기 전 각종 바둑매체에서 접한 대만바둑계에 대한 느낌은 참 묘했다. 한국, 중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 바둑강국으로 꼽히면서도 그 층(프로기사)이 얇은 나라. 린하이펑, 왕리청, 왕밍완, 장쉬, 천스위엔. 저우쥔신, 씨에이민 등 자국의 스타기사들이 스타기사들이 탄생했지만 이들 대부분이 유학파 출신이고, 그들이 유학을 간 나라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나라.

현존하는 세계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와 최다우승상금을 자랑하는 잉씨배를 창설하고, 대를 이어 후원하는 대단한 나라. 해외에서 활동하면서도 아시안게임, 중환배 등 자국을 위해서 언제든지 뭉치는 나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 일본, 필리핀과 접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타이완 섬에 자리 잡은 대만. 인구 2,300만의 대만 인구 중 바둑을 즐기는 인구는 100만명.
대만바둑계의 과거, 현재, 미래. 대만바둑계를, 대만바둑인을, 계속 묶어주는 그 무언가는 과연 무엇일까.
TYGEM /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