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걸음
'마성의 매력남' 안성준 "다음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
8기 물가정보배 우승자 안성준 인터뷰
2012-09-01 오전 9:59:11 입력 / 2012-09-03 오후 4:37:33 수정
살짝 검은 피부, 약간의 볼 살, 생글생글한 미소…. 묘한 마성의 매력을 지닌 그는 동료기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항상 미소를 품고 있기 때문인지 밝은 에너지가 마구 발산되던 그는 동료 프로기사들, 특히 누나기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기풍은 정확한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전투형. 그의 핵펀치는 아쉽게도 반상 위에서 잘 통하지 않았다. 2008년 입단한 그는 입단 후 바둑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음에도 행마가 잘 풀리지 않았던 것. 세계대회 예선결승에서 그가 흘린 눈물만 수차례.
그런 그가 8회 한국 물가정보배에서 김환수, 박민규, 홍기표, 나현을 꺾고 본선에 올랐고, 본선에서 박영훈, 허영호, 윤준상, 이영구 등 쟁쟁한 강자들을 넘어 결승에 올라 바둑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결승에서는 그를 맞이한 이는 핵주먹을 소유한 랭킹 3위 김지석. 아무리 그의 기세가 좋다고 해도 랭킹(무려 23위의 차이), 물가정보배와의 인연, 그 동안 프로기전에서의 활약상 등 김지석에게 한참 밀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바둑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김지석을 따돌리며 생애 첫 본격기전 우승을 맛 본다. 그것도 2-0 완봉승으로 말이다.살인 미소에 가려왔던 준비된 핵펀치가 드디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8기 한국물가정보배 프로기전 결승 제2국. 안성준(왼쪽)이 승리하며 생애 첫 타이틀 획득의 감격을 맛본다.
이쯤 되면 '그'의 정체를 아셨을 것이다. 바로 지난 8월 29일 제8기 한국물가정보배 우승자 안성준 3단이다. 안성준 3단은 저단, 랭킹 20위권(26위)의 기사가 강자들을 연달아 물리치고 당당히 본격기전 우승을 터뜨렸다. (이하 기사 내 단위 생략)
한국물가정보배는 홍성지(2008년-4기), 김지석(2009-5기), 이영구(2011-7기) 등 안성준 이전에도 신예기사들이 생애 첫 본격기전 우승을 맛 봤던 기전. 허나 홍성지, 김지석, 이영구는 물가정보배 우승 이전부터 어느 정도 사고를 냈던 기사들.
이에 반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안성준은 세계대회 본선에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정말 잠잠했던 기사다. 그렇기에 이번 안성준의 우승은 무언가 더욱 특별하다. 임진년 물가를 휘어잡은 '안물가'를 타이젬이 만나봤다.
▲안성준이 제일 마음에 들어한 사진. 인터뷰는 안성준이 평소 즐겨 찾는 홍대 카페 애틱에서 진행됐다.
part.1 "우승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우승한지 2일이 지났는데(인터뷰 8월 31일 진행)이제야 실감이 좀 나시는지요?
우승이 결정된 후 정말 얼떨떨했어요. '이게 진짜 일어난 일인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제 조금씩 실감이 나요. 좋아요. 진짜 좋아요.
- 생애 첫 우승이니만큼 많은 축하를 받았을 것 같네요.
인터뷰 후 휴대폰을 열었는데, 진동이 끊이질 않더군요. 문자메시지만 40~50개 와 있었어요.^^
- 부모님과 도장 사범님들은 뭐라고 하셨나요?
부모님이 “수고했고, 축하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양천대일 김희용 원장님과 옥득진 사범님 등 도장 사범님들도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2국 목기 도중 안성준의 모습."설마 내가 이겼나?" 라고 말하는 듯 하다.
- 정말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나요? (물가정보배) 예선기록을 보니 김환수, 박민규, 홍기표, 나현 등 만만치 않은 신예기사도 많았고, 본선에서는 박영훈, 허영호, 윤준상, 이영구, 김지석 등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은 강타자들을 모두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결선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갔을 때만 해도 첫 8강이어서 기분이 좋았지요. 8강전 승리 후 이영구 9단을 만났는데 워낙 강자잖아요.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아쉬움이 남지 않는 판이었으면" 이라고 다짐하며 임했는데 정말 운 좋게 역전승했어요.
이기기 정말 힘든 바둑을 승리하고 나니 운이 좀 따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운이 따라주네.” 정도였지 설마 우승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결승 상대 김지석 8단이 워낙 강하니까요.
결승 1국. 안성준은 김지석의 노련한 반면 운영에 중반까지 고전을 면치 못한다. 물가정보배 김영삼 해설자를 비롯해 프로기사들도 김지석의 승리를 확정적으로 말할 정도. 큰 변화가 일어날 자리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김지석 선승!’ 타이틀로 기사 작성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 때 안성준은 김지석의 약점을 추궁하기 시작했고, 이에 당황한 김지석이 실수를 범하면서 국면이 기어코 역전된다. 역전에 성공한 안성준은 그대로 국면을 마무리했다.
대역전승을 거뒀음인지, 종국 후 안성준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표정만 보면 영락없이 패자였다.

- 개인적으로 결승 1국 종국 후 안 3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전승이어서인지 표정이 너무 굳어었고, 이 때문에 마치 진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인터뷰 때도 딱 한 차례만 웃었고요. 평소 웃는 모습을 자주 봐서인지 더욱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왜 그랬습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속으로는 상당히 기뻤는데, 숨겼던 것 같아요. 1-0으로 앞섰다고는 하나 남은 두 판 중 한 판을 이겨야 타이틀을 쟁취하니까요.
안성준의 결승 1국 승자 인터뷰가 진행되던 바둑TV 스튜디오에 기자들 외에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안성준의 형 안형준. 결승 1국을 근처 쉐르빌 연구실에서 실시간 검토했던 안형준이 동생이 대국을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동생 안성준에게 다가간 안형준은 “바둑 내용이 너무 안 좋았잖아.”라며 꾸짖듯이 말한다. 그리고 초반부터 동료프로기사들과 연구한 내용을 전해준다.
기사 마감을 잠시 접어두고 형제를 지켜봤다. 의견 교류라기보다는 형 안형준은 대국 내용이 좋지 않은 동생을 질책하고 있었다. 안성준은 실전 당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고.
평소 안형준-안성준 형제의 사이는 꽤나 좋다. 활발하고 리더십 있는 형 안형준은 동생을 살뜰히 챙겼고, 동생 안성준은 형을 잘 따랐다. 굳이 유심히 보지 않아도 형재애가 마구 느껴지는 형제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그것도 동생이 승리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약 15분간의 형제들의 대담이 마무리됐고, 그 순간까지도 안형준은 "수고했다." "쉬어."이런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지 않았다.
"그래도 승리한 동생에게 왜 그리 매몰차게 하느냐?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줄 수도 있지 않았냐"라고 기자가 묻자 안형준은 "성준이가 (1국을) 이겼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막판이라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된다."라며 말한다. 그러면 그렇지. 1국을 승리한 동생이 행여나 마음이 풀어질까 따뜻한 말 보다는 매섭게 말한 것이다.
▲조명이 꺼진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복기를 나누는 형제. 표정이 어둡다.
- 1국 종국 후 형 안형준과의 복기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 “정말 너무 친하다”라고 느끼고 있던 안형준, 안성준 형제가 그날은 조금 과장하자면 서로 잡아먹을 것 같더군요. 원래 복기 때는 의사소통을 그렇게 하시나요?
저는 복기하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예요. 그러나 형은 예외죠. (웃음)형은 절 자주 혼내 거든요. 형은 제가 조금 더 좋은 바둑을 두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는 건데 너무 그러니까 저는 좀 피하게 되요.
- 1국 복기 후 안형준이 "성준이가 (1국을) 이겼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막판이라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된다."라고 말한 걸로 봐서는 또 다른 응원 방식이었던 거 같은데요?
(살짝 놀라는 표정) 형이 그랬나요? 저한테는 특별히 그런 말을 전하지는 않았어요.
안형준이 저 말을 전하지는 않았지만 형제끼리 마음은 통했나보다. 안성준은 “저는 2국에서 지면 우승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3국을 이길 자신은 없었거든요.”라고 밝혔으니까.
▲성격은 다르지만 우애가 깊었던 형제. 만약 바둑을 위해 뭉치지 않았다면 이 모습은 없었을지도. 사진은 2012년 8월 30일 한국바둑리그 정관장팀 검토실에서 안형준(오른쪽)-안성준 형제의 모습.
part.2 형제를 그 이상으로 똘똘 뭉치게 만들어 준 바둑.
- 저는 프로기사들의 어릴 적 바둑 에피소드를 듣는 것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어떻게 바둑을 배우게 됐나요?
형이 어릴 때 워낙 활발하고, 산만해서 부모님께서 바둑을 권유하셨죠. 그런데 형이 너무 바둑을 좋아하게 된 거예요. 형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배우게 됐죠. 그 때가 6살이었어요.잘 기억은 안 나는데 형과 제가 또래 중에서는 강했는지 바둑교실에 적수가 없어져 김기헌 사범님 도장, 화랑기우회에서 2학년 때까지 배우다가 형은 5학년, 제는 3학년 때 양천대일 바둑도장으로 옮겨서 프로가 될 때까지 쭉 있었죠.
초등학교 5학년인 안형준과 3학년인 안성준 형제가 당시 살았던 곳은 경기도 평택. 서울 목동에 위치한 양천대일바둑도장은 왕복 3시간에 가까운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형제의 부모는 바둑을 좋아하는 형제의 꿈을 항상 존중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바둑을 보는 눈만큼 세상을 보는 시야도 부족함이 없었으면 했다. 그래서 형제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도장으로 향했고, 그런 생활은 형제가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이어졌다.
경쟁자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적었던 데다가, 원거리 통학으로 지쳐가던 형제는 '바둑'과 '입단'이라는 공통된 꿈을 위해 똘똘 뭉쳐 반란(?)을 일으킨다. 바로 부모에게 "바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것.
형제의 꿈을 존중한 부모는 이를 허락했고, 2006년부터 형제는 바둑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2008년 상반기 형 안형준이, 같은 해 하반기 안성준이 입단에 성공한다.
- 형제가 입단하기 2년 전까지 학교공부를 병행했다고 들었는데 의기투합해서 부모님을 설득 바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어린 나이(당시 안성준 15살)에도 바둑이 그렇게 간절했나요?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도장에 도착하면 빨라야 오후 2시였어요. 동문들은 밤 10시까지 공부했지만, 형과 저는 기차시간을 맞추려면 9시까지 공부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학업보다 바둑이 훨씬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지는 게 싫었어요. 원래 출발점이 비슷했던 동문들에게 점점 밀리고 있었거든요. 당시 저는 연구생 7조였는데, 저와 비슷했던 경쟁자들은 3~4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견디기 힘들었어요.
-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부모님은 저희 형제가 후회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세요. 그래서 억지로 막지 않으시죠. 꿈이 있는데 억지로 못하게 막는 것과 본인이 선택해서 포기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잖아요.
나중에 저희 형제가 입단했을 때 "너희가 선택한 삶에 후회가 없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셨죠.

▲2008년 안형준(오른쪽)-안성준 형제의 모습.
- 양천대일 김희용 원장이 형제의 수읽기는 평택과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서 완성됐다고 하던데요? 사활도 함께 풀고 그랬나요?
집에서 도장까지 이동시간이 긴데 그 시간에 독서나 사활문제를 자주 풀었죠. 도장에서 매일 내주는 사활 숙제가 있었거든요.
숙제니까 함께 풀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문제는 각자 알아서 풀고, 나중에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눴죠.
- 형에게 라이벌 의식은 없었나요? 입단도 같은 해 했고, 형이 입단하고 난 직후 1조 1위도 했었잖아요.
항상 형이 저보다 강했어요. 그러다가 형이 입단하기 몇 달 전(2007년 하반기)부터 제가 1조에 버티기 시작하면서 격차가 좁혀지긴 했죠. 하지만 형이 저보다 아래였던 적은 없어요.
형은 저에게 목표이기도 했어요. 형에게 이기고 싶어서 열심히 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형이 더 강했기 때문에 제가 지면 엄하게 했어요. 그게 승부욕을 자극했죠.
- 점점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형제라기보다는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런가요? 하긴 어렸을 때부터 너무 붙어 다녀서 지겹기도 해요. (웃음) 같은 학원, 같은 학교, 같은 도장에서 매일 하루 종일 붙어있었거든요. 입단하고 나서도 2년 정도는 함께 했죠. 지금은 저는 홍연(홍대 연구실-박지은 9단 주축)에서 공부하고 형은 쉐르빌연구실(목진석 9단 주축)에서 공부하는 등 각자 행마가 많이 달라졌어요. 아마 제가 20살이 되고부터 일거예요.

▲2008년 9월 입단에 성공한 당시 안성준의 모습.
part. 3 이제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죠.
- 2008년 입단했죠. 사실 이번 물가정보배 우승 전까지 확 띄는 성적을 내지는 못 했죠. 음. 그렇다면 4년의 준비가 안성준을 한 번에 우승까지 끌어올린 건가요? 입단 후 4년간의 생활을 듣고 싶군요.
입단 지망생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입단 후 2년은 공부를 충실히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이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런데 성적이 생각만큼 잘 나지 않았어요. 사실 입단했을 때에는 자신감도 있었고, 후에도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안 좋으니까 성격이 조급해지더라고요.
승리에 욕심이 생기고, 승부를 어렵게 받아 들여야 되는지 부담도 많이 됐어요. 바둑 한판을 지면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바둑이 전부만은 아니라는 생각과 방황을 했어요. 운동, 대학진로도 생각했고,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게 오히려 저에게는 약이 된 것 같아요. 바둑 둘 때 한 판 한판 구애를 안 받게 되고..잘하려면 오히려 안 되잖아요?
- 최근 근황은요? 앞서 박지은 9단 연구실에서 공부한다고 했는데요.
홍대연구실에 주 2회 나가는데 박영훈, 김승재, 박지은, 송태곤, 주형욱, 최기훈, 김미리, 김진훈, 유재호, 김동호 등 동료기사들과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구와 대국을 해요. 소소회 리그에도 참가하고요. 운동도 꾸준히 합니다. 단전호흡을 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네요.
- 취미가 독서라고 들었는데요. 바둑인들의 놀이터로 꼽히는 카페 ATTIC에도 종종 모습이 보이더군요.
책을 읽고 토론 하는 것을 좋아해요. (독서 말고는요?)사람 만나서 것도, 영화관람도 좋아하죠. 게임은 좋아하지만 많이는 안하고요.(웃음) 저는 안 좋아하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해요.
- 참. 타이틀을 획득한 다음 날 한국바둑리그에서 승리했죠? 보통 타이틀을 딴 다음 대국은 진다고 하던데, 안 물가는 좀 독하네요.
팀(정관장)에 중요한 판이였죠. 사실 우승해서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판은 이겨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까지 열심히 준비하자!"라면서 대국에 임했죠.
- 타이틀을 따서 더 수가 잘 보였나요? 보통 큰 성취(입단, 프로기전 우승 등)를 이루고 나면 바둑을 보는 시야가 넓어져서 바둑이 는다고 하던데요?
마음이 좀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좀 조급한 점이 덜 들어간다고나 할까요? 그 외에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 이번 물가정보배 우승을 이변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세계바둑계에서 나타나는 신예들의 활약과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 양상을 보면 제2의 안성준이 계속 등장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최상위랭커와 국내 20~30위권의 실력차이는 얼마나 된다고 봅니까?
차이는 분명히 존재해요. 하지만 기세에 따라 정상권 기사들이 질 수도 있어요. 그만큼 실력차이는 크지 않아요.
정상권 기사는 '결국엔 이긴다.'라는 경험에서 나온 여유가 있고, 그 부분은 확실히 앞선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멀었어요.
- 국내기전을 접수했죠. 기사 안성준과, 인간 안성준의 목표를 말해주세요.
토너먼트 기사로서의 목표는 당연히 세계대회 우승이죠. 인간 안성준의 목표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 주세요.

TYGEM / 김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