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사
"내 인생 최고의 국제회의, 바둑!"
- 한상대 세계바둑사 폴란드 1편
2012-10-20 오전 10:05:29 입력
▲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Krakow). 제 2의 도시다.
■ 폴란드(Poland)
동양은 서양에게 항상 잘 보이고 싶어한다. 앞선 그들의 기술을 전수받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하는 일에 끼어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반대종목도 있다. 바로 바둑이다. 바둑은 서양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약 20만을 헤아리는 유럽, 미국의 지식인들이 이 게임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제 48회 유럽바둑대회(EGC)가 2004년 7월 24일부터 8월 7일 보름간 폴란드의 휴양 마을 투홀라(Tuchola)에서 개최되었다.
유럽 바둑꾼들은 손꼽아 기다리던 이 축제를 위해 휴가를 얻어 투홀라로 몰려들었다. 투홀라는 호수가 많은 휴양지로 수도 바르샤바에서 독일 쪽으로 300km 쯤 떨어진 곳이다. 이번 유럽바둑대회 대회장을 맡은 말리노프스키(Wodzimierz Malinovski)가 사는 곳이다. 대회장 건물에 들어서니까 복도와 계단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대회참가를 등록하는 바둑인들이다. 나도 줄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등록을 지휘하던 대회장 말리노프스키가 나를 보자 깜짝 놀라면서 반긴다. 나와 그는 친분을 쌓을 기회가 4년전에 있었다.
▲ 등록장(Registration) 입구
1. 제 1회 국제바둑학술대회
어느 날이다. 정수현교수가 나에게 "바둑학과에 예산이 6,500만원이 있는데 이 걸로 한,중,일 바둑학술대회를 열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한다. 내가 "세계학술대회를 엽시다" 했다. 정교수가 "회의전문가들이 서양까지 포함한 20개국쯤이 하는 국제회의는 3억 정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길래 내가 "바둑쟁이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는 이 예산으로 충분해요. 나에게 총지휘를 맡기면 내가 해낼께요" 하여 내가 조직위원장이 되어 학술대회를 진행시켰다.
나는 서양바둑인들 체질을 잘 알고 있고 이런 비슷한 모임을 여러번 주도했었다. 또 믿는 구석도 있었다. 저렴한 예산으로도 그들을 최대로 충족시킬 수읽기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가 선정된 나라 중 우리가 먼저 논문제목과 요약된 내용을 보고 참가국을 선정했다. 우선 항공비 예산이 너무 많이 책정된 걸 줄였다. 서양국가는 천불, 동양은 500불을 일괄적으로 보내면서 그 돈으로 각자 왕복항공표를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항공료가 비싸서 못 오겠다는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나라나 싸게 오는 방법은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만 직항이 없어서 미국으로 먼저 갔다가 오기 때문에 제일 싼 표가 1,300불이라고 해서 3백불을 더 주었다. 항공비에서 3분의 1은 줄였다. 회의장소는 명지대 회의실, 숙소는 용인에 있는 콘도를 빌렸다. 여기서 일류 호텔에서 하는 값의 4분의 1 이상을 줄였다. 그리고 바둑학과 학생들로 'Meet & Greet Team'을 구성했다.
이 학생들에게 회의기간 필요한 영어를 내가 회의 몇달전부터 방과후 자주 가르쳤다. Meet & Greet Team이 공항영접, 회의기간 동안 모든 노동력을 충당했다. 김진환교수에게 학생들 지휘를 맡겼다. 학술대회를 하기 전에 수백통의 이메일을 참가자, 각국 바둑협회, 미국 다큐멘터리 팀까지 우리 부부 두명이서 다 처리했다. 대부분 그 즉시 답을 하거나 기술적인 문제는 확인되는데로 즉각즉각 답을했다.
▲ 의장(필자) 개회사 학술대회. 남치형교수 발표
2001년 5월 11일 18개국에서 25명의 참가자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누구나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가 주최하는 첫 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인사말을 한다. 참가국은 Australia, Belgium, China, Czech, France, Germany, Hungary, Italy, Japan, Korea, Netherlands, Poland, Rumania, Russia, Taiwan, USA, England and Yugoslavia 등 이다.
의장을 내가 맡고 한편 지휘도 계속했다. 서울 관광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선택하도록 했다. 제 1 그룹은 경복궁, 인사동, 청계천, 교보문고 쪽으로 하고 제 2 그룹은 롯데백화점, 명동, 남대문 시장을 돌았고, 세째 그룹은 이태원, 전쟁기념관, 용산전자시장을 가도록 했다. 이탈리아 대표 프란체스카티(27세)는 미모의 여성이라 남학생들 입에 오르내린다. 내가 "왜 자기 남자친구와 온 여자를 놓고 그러니?" 하니까 "그래도 예쁘잖아요" 한다.
▲ 덕수궁(가운데가 프란체스카티) 서울 시내 탐방
각 그룹의 참가자와 비슷한 숫자의 학생들을 배치했다. 점심 값은 누구에게나 1만원씩, 저녁 6시까지 대학로에 있는 놀부집으로 집합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다 바둑고수들이라 참가자들은 황송해 했고 학생들은 외국지식인 바둑인들과 어울리는 일로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저녁에 놀부집에 온 일행들은 서로 하루동안 있었던 기막혔던 일로 웃음꽃을 피웠다.
Meet and Greet Team은 이후 국제적으로 유명해 진다. 우리 국악연주 속에 많은 반찬이 나오자 참가자들은 탄성을 지른다. "이런 것이 진정한 문화체험이다"라며 고마워 한다. 그 중 몇명은 공연자들에게 가서 머리숙여 그들의 공연을 감사해 한다. 놀부집이 당시 1인당 1만원씩이었다 원래 예산은 일인당 한끼 식사 값을 5만원으로 책정했었다. 식사비에서 예산을 많이 줄였다.
▲ 놀부집 반찬 국악연주
▲ 놀부집 식사 인사동 졍인 전통 카페
참가자들은 학생들과 거리를 가다가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먹는 걸 낭만으로 생각하고 만족해 했다. 저녁이면 숙소에서 각 방마다 배치된 학생들과 참가자들 사이에 바둑이 두어지고 친교가 이루어졌다. 어느 방에서나 웃음이 넘친다. 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서 학생들 실력을 빤히 안다. 각 방에 성적이 좋은 학생을 골고루 배정했다.
참가자들은 허장회도장에서 연구생들과 대국하여 22대 0으로 완패를 하고 바둑학과 학생들과 대국에서는 20대 2로 두판을 건졌다. 강남에 제일 큰 기원에 가서는 10대10으로 백중세를 보였다. 평소에 명지대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이기자 참가자들은 'Meet & Greet Team'을 'Meet & Beat Team'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세미나를 하면서 바둑을 학문으로 접근하는 작업에 누구나 보람을 느낀다.
독일대표 야시크(Robert Jasiek)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있는 한국어 바둑책은 다 샀다. 60권이 넘어 짐 값을 몇백불은 더 내야 했다. 그리고도 계속 새로운 책을 찾고 있었다. 이렇게 1주일을 보낸 참가자들은 자기네가 참가했던 일생 어느 국제회의 보다 훌륭했다고 입을 모은다. 1주일 후 회의가 끝나고 헤어질 때 참가자들도 아쉬워 하고 우는 여학생도 보인다.
이런 점들이 서양바둑인의 공통변수다. 5성 호텔, 고급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자르는 것 보다 현지 바둑인과 어울리고 새로운 나라에 가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바란다. 실력 있는 고수들과 어울리고 한 수 배우는 일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 같은 서양바둑인의 'Dream land'에서 그런 기회가 온다는 일은 더 없는 영광이다. 그들의 체질을 잘 아는 내가 그 점을 노렸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 말리노프스키 vs 최유진
참가자 마지막 팀이 강남 삼성역에서 학생들과 공항으로 떠난 뒤 우리는 용인 명지대로 돌아와 큰일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보람을 느끼며 커피 한잔 하고 있는데 공항에서 말리노프스키가 전화를 했다. 자기와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대표 3명이 같은 비행기를 놓졌다고 한다. 그 팀이 삼성역에서 조금 늦게 떠날 때 왠지 불안했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동구권에 가는 그 다음 비행기가 3일 후에야 있다고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그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삼성역으로 와서 기다려라" 하고 정수현교수와 상의를 했다. 마음씨 좋은 정교수가 "우리가 경비를 대죠. 어차피 돈이 조금 남았는데요" 한다. 나는 용인 명지대 캠퍼스 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다시 삼성역으로 가서 그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을 르네상스 호텔 뒤에 있는 어느 모텔에 투숙시켰다. 그들과 걸어서 강남역까지 가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들이 서울이란 도시에 흥분하고 감명을 받는다.
그 후 르네상스호텔에서 역삼역을 거쳐 강남 4거리까지 걸어서 왕복하는 일이 일과가 되어 버렸다. 큰 길과 골목길을 번갈아 다녔다. 사흘 동안 이들 3명과 우리 부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같이 보냈다. 걸으면서 양국 문화에 대한 얘기, 바둑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3일을 지냈다. 이들은 싸이(Psy)의 '강남 스타일'을 들으며 강남에 대한 추억에 젖어 주위에 강남 얘기를 한참 하고 있는 중일 거다. 말리노프스키는 디자이너로 바둑인 중에는 특이한 직업을 가졌다. 그는 다른 바둑쟁이들과 달리 멋쟁이 였다.
▲ 말리노프스키 말라노프스키 VS 라자레프(러시아) 계시: 이승현
그에게는 약간 게이 같은 면도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마티즈'가 자기가 본 경차 중에 가장 예쁘다며 꼭 한대를 사겠다고 한다. 이 중 유고슬라비아의 조란(Zoran)이 많이 웃겼다. 그는 50세 총각인데 조그마한 기념품이라도 세개씩 산다. 내가 "왜 세개씩이냐?"고 묻자 귀속말로 자기에게 여친이 세명이 있는데 각자가 자기 혼자만 여친인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는 게 파는 집 앞에 있는 어항에 들어 있는 게를 지나갈 때마다 한 없이 쳐다 보고 또 본다. 그래서 우리 일행을 자꾸 놓친다. 그에게 안 물어 봤는데 왜 그랬을까?
조란은 서유럽과 미국인들은 악인(惡人)이고 인간미는 동구권 사람들이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영국의 찰스 메튜와 독일의 로베르트 야시크를 지목하며 우리에게 "그들이 악인이라고 생각 안하느냐?"고 묻는다. 내가 보기엔 그 두명은 이상한 사람이고 기인(weirdo)이지 악인들은 아니다. 며칠전 모두 헤어지기 전에 조란이 세르비아에 대한 안내 팜플렛을 돌리는데 야시크가 "나는 책이 60여권이라 더 이상 다른 걸 실을 수 없다"고 거절하여 옆에 있던 내가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팜플렛은 한장짜리였다.
이들 세명은 떠나면서 "우리가 그 비행기를 탔으면 큰일 날뻔 했다"며 "비행기를 놓치는 덕에 너무 값진 경험을 했다"고 감사해 한다. 자기네 나라를 방문하면 꼭 보답하겠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4년 후에 말리노프스키를 여기서 만났다. 그는 그동안 머리가 더 벗겨져 대머리에 가깝게 되었다. 4년 전에는 그래도 머리카락이 조금 있었는데…
2. 유럽바둑대회
등록이 끝난 뒤 말리노프스키에게 물어 보니까 참가자는 700여명. 대부분 유럽인들이고 한, 중, 일 바둑강국에서 온 동양인 100명과 약간의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프로기사 천풍조, 오규철, 윤영선, 하호정, 김민희, 강승희 사범이 참가했고 일본에서는 프로기사 5명, 중국에서는 3명이 왔다. 나는 2003년 러시아에 이어 다시 약 20여명의 한국팀 단장으로 여기에 참여하였다. 아마추어는 일본이 50명, 중국도 20여명이 왔다.
▲ 방영부, 송중택, 하호정, 필자, 김민희, 조창삼, 강승희, 윤영선, 이기봉, 홍준식
유럽 프로기사 중 이태리로 귀화한 일본 여류기사 출신 유키 2단은 대회에 참가만 하고 출전은 안 했지만 루마니아인으로 일본에서 프로가 된 타라누 카탈린 5단(Taranu Catalin 루마니아),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에서 프로가 된 사샤 디너스타인(Alexander Dinerchtein) 초단과 스베타 쉭쉬나(Svetlana Shikshina) 초단은 아마추어 7단 자격으로 출전했다.
이 중 사샤는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스베타는 명지대 바둑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미모의 프로여류기사 4인방, 바둑학과 자매 이승현(24세) 아마 6단과 이정애(22세) 아마 5단도 서양 바둑인들에게 인기의 대상이었다. 외국인 미녀는 스베타, 디아나, 독일챔피언 차오페이, 독일 여대생 한명이 눈길을 끌었다.
▲ 스베타 쉭쉬나 초단, 디아나 초단, 미모의 독일챔피언 차오페이
▲ 한국 여류프로들의 지도다면기
한국 아마추어 중에는 흰돌 검은돌회를 주관하는 방영부 아마 6단(60세 영륭산업회장)를 비롯하여 특히 세계 맹인 챔피언 송중택(명지대 바둑학과 재학) 아마 5단이 자기 아들 상훈(8세, 아마 2단), 딸 단비(12세, 아마 2단)를 대동하고 세 식구가 같이 출전하여 관심을 끌었다. 송씨를 한 몸처럼 돌보며 사범까지 겸한 이홍복 7단은 주말대회 우승과 본 대회 입상을 했다. 특히 이사범은 첫 주에는 우승 후보자들을 연파하며 전승을 거두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왼쪽부터 유키 2단, 송단비 아마 2단, 송중택 아마 5단
▲ 내가 스위스 챔피언을 석점 접고 맥주내기를 하고 있다(비닐 판에 플라스틱 돌)
▲ 맹인이 아마 5단이라니… 송중택 아마 5단이 특수판으로 바둑 두는 곳엔 관전자가 많다.
송씨에게는 폐막식 때 특별상이 주어졌다. 송씨가 출전한 후 유럽에서 맹인들의 바둑 붐에 자극을 주고 맹인용 바둑판 주문이 쇄도하기도 했다. 서양인들의 바둑대회는 경기보다는 축제 성격이 강하다. 가족이 같이 온 사람, 제자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 애인이나 부부가 같이 온 사람, 이들은 대회 성적 보다는 바둑잔치에 동참하는데 의미를 더 둔다.
그래서 대회기간 중 탁구대회, 축구대회, 음악회, 강연회, 캠프송대회, Frisbee 날리기 등이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오로미디어 조창삼사장과 최준원기자가 바둑서적 판매와 취재를 겸해왔고 홍준식씨가 그 팀으로 같이 왔다. 그들 외에 대회기념품, 일본바둑서적을 판매하는 사람, 레닌 뱃지를 비롯한 일반 러시아 물건을 팔고 있는 러시아인도 있었다.
▲ 최강부(Super group)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6단 이상 수퍼그룹(챔피언조) 32명 중에 우리나라에선 알려진 아마 강자, 연구생 외에 나와 방 6단이 속했다. 나는 시작하자마자 3일 연속 반집씩 3연패를 당했다. 그 시초가 내 제자 이승현이다. 나는 내가 조금 남는 줄 알고 있었는데 끝내기가 시작될 때 승현이가 나를 보고 웃으며 "교수님 제가 반집을 남기는 거 같은데요"한다. "너 벌써 계가한거니?" 하니까 "네" 한다.
3연패 후 나는 A조로 밀려 내려 갔다. 말리노프스키가 나에게 오더니 "유럽대회 역사상 3판을 내리 반집으로 진 것은 기록"이라고 한다. A조에도 나와 친한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여기서 3연승을 하여 다시 수퍼그룹으로 돌아왔다. 이 중 한판은 나와 친한 네덜란드의 안드레아스 5단에게 거의 진판인데 내 꼼수에 이 친구가 걸려 들었다. 그가 돌을 던지면서 우리 둘은 크게 웃었으나 내가 치사하게 이겼다. 첫 주는 나에게 드라마가 많았다. 수퍼그룹에 돌아와서 다시 2승 2패. 결국 5승 5패로 대회를 마쳤다. 내 승율을 보니까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 이승현과 대국 안드레아스와 대국
▲ 스베타와 디아나의 대국은 언제나 인기만점
▲ 탁구대회 음악회
나는 탁구대회에 출전하여 60여명 중 준우승하고 음악회도 이탈리아에서 온 스테판이 음대 피아노과를 다닌다고 해서 그의 반주로 오페라 아리아 하나를 불렀다. Frisbee대회도 출전했으나 나보다 상수가 몇명 있었다. 한국바둑에 대한 강의도 준비했는데 컴퓨터가 없어 자료를 제대로 준비 못해 다음으로 미뤘다. 이승현도 자기의 피아노 솜씨를 보였다. 일본인들은 노인들로 구성된 챔버음악을 선 보였다. 의외로 각 부문에 수준급 상수들이 꽤 있다. 나는 여기저기 참여하면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
내가 탁구대회에서 성적을 낸 걸 모르는 윤영선이 나에게 오더니 "교수님, 열 개 접어주시면 탁구로 맥주내기 도전하겠어요"한다. 내가 "아니, 열 개면 안 하고 열 다섯 개를 접어달라고 하면 내길 하지" 했더니 너무 반기며 "정말 열 다섯 개요?" 한다. 15대 15에서 만나자 영선이가 가서 맥주를 사온다. 그 다음 말이 "여기는 맥주가 너무 싸서 부담이 하나도 안 되요" 하며 웃는다. "얼마니?" 하니까 "우리 돈으로 8백원쯤이요" 한다. 1,000cc 값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각종 게임을 하며 축제를 즐기고 있다. 마당에 설치된 수십 개의 바둑 판은 항상 대국자들로 차있고 주위엔 사람들이 붐빈다. 거의가 가벼운 차림에 맨발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회적 지위나 지적수준은 교수, 컴퓨터 전문가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 일반 서양인 보다는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 연습 대국.
유럽대회는 1957년에 시작되었다. 매년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 주에 2주간 열린다. 그 동안 본 대회 외에도 주말대회, 속기대회, 강의, 관광 등 다른 활동을 한다. 대회 사용시간은 한 사람이 두 시간 반이고 1일 1회전으로 진행된다. 아마추어대회를 이렇게 치르기 때문에 하루에 몇 판씩 둘 수 있는 한국사람들은 답답해 한다. 18급도 하루에 한판을 둔다.
스위스제도를 사용하여 누구나 2 동안에 10회전을 둘 수 있게 했다. 1년 휴가를 이용하여 가족, 친지가 같이 와서 바둑 두고, 여행하고, 여러 나라 사람들을 사귄다. 투홀라 시내 광장에 나가면 바둑인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나 음료수,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럽대회는 주로 기숙사를 갖고 있는 대학교나 사립고등학교에서 방학기간에 빌려서 열린다. 숙식이 해결되고 값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기숙사와 구내식당을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용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간 방영부 아마 5단, 송중택 아마 5단 가족, 최준원 기자 등과 대회장에서 3km쯤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했다. 기숙사 보다 환경이 좋았다. 말리노프스키의 배려였다.
▲ 리투아니아팀의 민속공연
3. 폴란드 역사
폴란드 만큼 불우한 역사를 가진 나라도 드물 것이다. 966년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피아스트 왕조가 성립되었다. 1385년 폴란드는 리투아니아를 합병하여 더 커진다. 1410년 독일과 전쟁에서 이기고 발트해로 나가는 길이 열린다. 유럽은 바다로 나가기 위한 전쟁이 언제나 많았다. 16세기에는 폴란드가 유럽의 곡창지대로 최대 전성기를 맞는다. 이 때 수도가 크라쿠프였다.
지동설로 근대 자연과학의 전환점을 이룬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도 이 시기에 배출된다. 그러나 1596년 수도를 바르샤바로 옮긴 이후 귀족세력의 강화와 터키, 스웨덴과 전쟁에서 지면서 국력이 급격히 쇠퇴한다. 결국 1795년 폴란드를 주변 강대국인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 나라가 분활, 지배하였다. 중간에 나폴레옹이 8년을 지배하고 다시 3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세계지도에서 폴란드는 120년 이상 사라진다.
1차대전에 자기네 나라를 3등분 했던 독일은 패전국가로 전락하고, 러시아제국과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은 망했다.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1차대전이 끝난 1918년에 독립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서쪽, 러시아는 동쪽을 다시 분활통치를 하였다. 독립후에도 사용하는 언어나 제도가 서로 달라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폴란드인들은 민족주의가 강하다. 98%가 서슬라브족 폴란드인으로 단일민족국가다.
나는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농촌 처녀들은 서울로 가버리고 농촌 총각들의 40%가 동남아 여자들과 결혼하여 혼혈이 많아졌다. 즉 다문화가족들이다. 이 중 향락산업에 빠진 여자들은 노무현정권이 성매매금지법을 통과하자 외국으로 삐져나가 호주에도 한국창녀가 득실득실하다. 미국, 일본은 훨씬 더 많다. 우리나라가 출산율 최저국가가 된 사실과 함께 창녀수츨국이 된 일은 내가 전혀 예상 못했던 사건들이다. 북한은 단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영연방 국가에서는 바보 시리즈를 'Irish Joke'라고 한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외팔이 아이랜드 사람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떨어트릴 수 있나?"에 답은 "Hi," 하고 그에게 손을 흔들면 된다. 바보 같은 아이랜드 사람이 답례(Wave back)로 같이 손을 흔들테니까. 이런 조크가 수 백가지다. 이런 조크 때문에 호주 어린이들은 정말 아이랜드 사람들이 아이큐가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똑 같은 농담을 'Polish Joke'라고 부른다. 폴란드계 이민자가 천만명이나 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원한관계에 있거나 미워하는 타민족에게 이런 농담을 붙인다. 우리는 바보 시리즈에 일본사람을 붙인 예를 나는 못 들어 봤다. 이런 농담은 들어 봤다. 스컹크 굴에 한,중,일 세 사람을 집어 넣었다. 스컹크가 방귀를 뀌자 일본 사람이 즉시 뛰어 나왔다. 그리고 한 5분 후쯤 한국 사람이 "냄새 지독하네" 하며 나왔다. 그리고 다시 10분 후 쯤 스컹크가 중국 사람 냄새에 못 견디고 밖으로 밀려 나왔다. 이런 건 각 국민성의 비교지 바보 취급하는 농담은 아니다.
4. 바르샤바 관광
나는 첫 주말에 바르샤바로 관광을 나갔다. 서울-대구 거리다. 말리노프스키 소개로 자기 딸이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여자 의사가 영어를 하기 때문에 그녀가 안내원으로 동행했다. 방영부 아마 6단, 송중택 아마 5단 가족, 이홍복 사범, 오로미디어 팀에서 조사장, 홍준식씨, 최준원 기자가 같이 갔다. 최기자는 내 주례로 결혼했고 딸을 낳자 내가 이름(서랑)도 지어 주어 나와는 특별한 관계다. 그는 키도 크고 미남에다가 바둑도 아마 6단이고 골프도 잘 치고 영어도 수준급인 엘리트다. 참가했으면 수퍼그룹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을텐데 오로미디어 일이 바빠 이번 대회에는 출전 못했다.
▲ 필자와 최준원기자. 투홀라 광장에서 아이스 바를 먹고 있다
바르샤바는 폭격에 거의 파괴되어 다시 재건된 도시다. 그래서 구 시가지 부분은 아직도 재건 중이다. 옛 건물도 역사에 비해 많지 않았다. 언덕위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는 과거 폴란드의 영광을 보여 주고 있다. 왕궁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은 각 방에 전시된 그림으로 폴란드의 역사를 훓어 보는데 도움을 준다. 50대로 보이는 폴란드 남자 안내원이 너무 강한 액센트로 빨리 말하기 때문에 통역하는 내가 가끔 고전했다.
궁 옆에 기념품을 경영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다. 반가워서 대화를 하면서 여러가지 정보도 얻었다. 한국식당이 있는 걸 알아내고 거기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인은 세계 176개국에 750만 명이나 퍼져 살며 현지어와 문화를 체득한 애국심이 강한 집단이다. 이들은 남북통일 작업시 제 3자 입장에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조국을 바라보며 역사의 심판자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어두어진 다음에도 시내를 돌아다니고 저녁은 야시장 근처에서 샌드위치로 해결했다.
▲ 왕궁 박물관 입구. 홍준식, 이홍복, 송단비, 송중택, 필자, 송상훈, 조창삼, 방영부, 운전기사
▲ 왕궁박물관 한국인 기념품점
1981년 바르샤바 역사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바르샤바는 바르샤바 대학을 시작으로 폴란드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이 집중해 있으며, 오페라 극장과 국립필하모니 악단이 있는 문화, 교육 도시다. 제조업, 철강업, 자동차산업 등 공업 도시이기도 한다. 문화과학궁전(Palace Kultury i Nauki)은 1955년 건립된 바르샤바의 주요 명소 중 하나이다. 37층에 탑높이는 234m이다. 이 건물은 소련이 선물로 지어주었는데 내부는 영화관, 박물관과 연구소, 그리고 스포츠센터와 같은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궁전앞 광장에서는 군대 퍼레이드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모스크바에 가면 이와 똑같은 건물이 7개가 있다.
▲ 오른편 큰 건물이 문화, 체육 궁전
▲ 문화, 체육궁전 앞. 필자와 조창삼 오로미디어 사장
▲ 왕궁이 있던 구시가지
▲ 신시가지
▲ 현대식 쇼핑센터
▲ 최준원기자 참수형 어두어 졌다(여의사가 설명 중)
▲ 야(夜) 시장
바르샤바는 '오래된 파리, 두번째 파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과거엔 화려한유럽 중심도시 중 하나였다. 현재 인구는 170만명. 그러나 서양 도시는 행정구역이 달라서 우리가 이해하는 인구와는 다를 수 있다. 바르샤바동맹기구는 1955년 3월 14일 바르샤바에 모인 동구권 국가 8개국이 후루시쵸프의 제안에 따라 결성한 군사동맹 조약기구로 서방진영의 NATO에 대응하여 생긴 기구다, 정식 명칭은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이나 실제로는 군사동맹 조약이다. 걷다보면 가끔 관광 나온 바둑대회 참가자들을 만난다.
▲ 샌드위치 어른 다섯, 어린이 둘 주세요. 저녁은 이렇게 때웠다.
▲ 바르샤바의 밤거리
▲ 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
( 2편에 계속…… )
TYGEM / 한상대(전 시드니대 교수 sdhah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