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을 넘어 섬으로 들어가는 바둑여행이다.
우리나라 섬 3천여 개 중 1004개를 품고 있는 신안군.
그 중에 비금도가 겨울 바둑여행의 종착지다.
새벽 배를 타기 위해 하루 전날 목포로 내려갔더니 정겨운 바둑 벗들이 해남 땅으로 안내한다.
현미잡곡밥과 흑돼지 김치찌개, 배추 속과 된장, 매실장아찌로 차린 밥상이 푸짐하다.
허리띠 한 구멍 늘려놓고 포식한다.
신안군하면 소금과 시금치, 해저보물선이 떠오르는데 이세돌의 시대가 열리면서 바둑도 고장의 상징이 됐다.
비금도의 염전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일찍 만들어졌다.
비금도 소금은 미네랄이 풍부해 최고로 친다.
병어와 황새기 철이면 파시가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지금은 파시대신 시금치가 주된 소득원이다.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노지의 밭에서 재배한 시금치 비금초는 수확하는 대로 포장돼 서울로 수송된다.
값이 좋아 섬사람들의 밥상에 오를 겨를 없이 팔려 나간다고 한다.
서해의 바람과 땡볕을 머금은 시금치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도 영양분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섬이어서 어촌을 생각했는데 포구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와도 전형적인 남도의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가는 걸음마다 시금치와 대파 밭이다.
높은 산이 별로 없어 시내가 흐를 일 없지만 드넓은 평야의 전답을 적시기 위해 반듯하게 파놓은 수로가 인상적이다.
그 길을 걸으며 다정했던 날들의 영상을 되돌려본다.
수로와 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반가운 안내판이 보인다.
이런 간판이 꽤 많이 보인다.
심지어 이세돌의 어머니가 아직 살고 있는 고도리의 집까지도 ‘이세돌의 생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바둑! 아직 시들지 않았음을 비금도가 증명한다.
▲ 신안군 비금면 고도리 이세돌의 집. S#2. 위대한 모성애
비금면 도고리(道古里)의 이세돌 생가.
1300평에 달하는 텃밭 주위로 돌담이 쳐진 농가의 풍경이 이채로웠다.
넓은 밭에 시금치를 심었는데 작황은 신통치 않아 보였다.
그 넓은 터에 오직 한 분, 이세돌의 어머니 박양례 여사가 살고 있다.
▲ 어린 시절의 이세돌 남매(이상훈, 이세나, 이세돌)
이 집에서 3남2녀 (상희,상훈,세나,세돌,차돌)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냈다.
남편 이수오 씨는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목포에서 10년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홀연히 객지생활을 접고 비금도로 귀향했다.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웠다.
아마 5단 기력의 이수오 씨는 아이들에게 바둑 가르치는 재미로 살았다.
이상훈, 이세돌 두 형제는 프로기사가 됐고 맏딸 상희씨 아마5단, 월간바둑 기자로 뛰는 세나씨는 아마6단 막내 차돌씨도 아마5단이라니 아버지의 바둑교육이 범상치 않았던 게 틀림없다.
게다가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온 세나씨, 서울대를 다니는 차돌씨의 스펙을 생각하면 자녀들의 두뇌도 상당히 좋았던 모양이다.
바둑 최고수 이세돌이 공부를 했다면 어느 정도 성취했을지 짐작이 간다.
▲ 필자와의 대화
"오메, 혼자 김장하느라 옷도 대충 입었는디!"
박양례 여사가 활짝 웃으며 맞아준다.
얼마 전에 끝난 삼성화재 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구리와의 결승전 이야기부터 꺼낸다.
"세 판 중계를 보면서 심장이 벌렁거려 죽는 줄 알았지라우. 그 놈의 반집이 뭔지......세돌이는 또 얼마나 그 반집을 찾느라고 맘 고생했겄소. 지는 주책없이 펑펑 울었구만이라."
바둑 팬들도 심장을 움켜쥐고 지켜봤던 구리와의 3번기.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이세돌의 부친 이수오 씨가 1998년 암으로 작고한 이후 박양례 여사는 홀몸으로 자녀들을 키워야했다.
아이들을 서울로 보내고 수없이 서울과 비금도를 오갔다.
▲ 동백꽃 앞에서 활짝 웃는 박양례 여사
올해로 65세의 그녀, 아들들이 바둑으로 입신양명했어도 홀로 비금도에 남아 밭을 일구고 터를 지키고 산다.
남편과의 기억, 영특한 아이들의 기억을 부여잡고 섬에서 그렇게 산다.
홀몸으로 다섯 자녀를 키운 힘도, 노년기에 접어들어 홀로 사는 힘의 뿌리도 긍정의 기운에서 비롯된 듯싶다.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서 위대한 모성의 비밀을 포착한다.
비금도에는 바둑에 얽힌 전설이 천년을 넘게 전해져온다.
신라 말기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에 가기 전 비금도를 들렀는데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하고 우이도 바위에서 신선과 바둑을 즐겼다는 이야기다.
신선과 바둑을 두었다니 현실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섬사람들 대대로 바둑설화가 이어져 내려왔으니 뭔가 근거는 있는 셈이다.
비금도 사람들은 이세돌의 출현을 최치원의 바둑바위와 결부시킨다.
전설 속 바둑고수의 환생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 조훈현 국수와 이세돌
백제시대에 일본에 천자문을 전파한 왕인 박사의 고향 영암에서 조훈현이 배출됐고, 신라의 최치원이 바둑을 두었다는 신안에서 이세돌이 배출되었으니 바둑 고수들의 환생에 관해 남도 사람들이 소박한 믿음을 가질 만도 하지 않은가?
S#3. 제2의 이세돌을 꿈꾸는 섬 소년들
이세돌기념관은 아담했다.
인구수가 줄어 문을 닫은 초등학교를 새 단장한 건물이다.
부안군이나 영암군에서 바둑의 전당이나 기념관을 너무 큰 스케일로 설계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실정을 생각하면 신안군의 선택은 기민하고 합리적이다.
필자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신안군 교육지원청의 요청 때문이었다.
▲ 이세돌 기념관.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에서 어린이들은 서로 단절이 되어있다.
바로 옆 섬 친구들과 소통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지원청에서 <이웃섬 나들이>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 김미경 장학사
"같은 고장에서 자라는 어린이들끼리 소통하는 문제가 절실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문화와 스포츠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바둑이 안성맞춤이었지요. 세계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이세돌9단의 고향 신안이므로 제2의 이세돌을 꿈꾸는 어린이 바둑캠프를 차려 아이들끼리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봤습니다."
첫 번째 캠프에는 비금도, 도초도를 비롯해 아홉 개 섬의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바둑을 아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많아 바둑캠프 스탭들은 알기 쉽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세돌 9단을 배출한 신안군 어린이들의 자긍심은 상당했다.
▲ 필자의 강의 모습
필자의 임무는 '알수록 재미있는 바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였다.
이야기에 빨려드는 아이들의 눈빛이 영롱했다.
이 중에도 분명히 제2의 이세돌이 숨어 있겠지.
"너희들끼리 자주 만나서 바둑을 두면 좋겠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어렵겠지. 그래서 인터넷으로 바둑을 둘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마."
타이젬 대국실을 설치하는 방법, 아이디와 비번을 적고 대국실로 들어가 바둑을 두는 방법 등을 설명해주었다.
"너희들 모두에게 타이젬 정회원 권을 선물할 테니까 언제든지 바둑을 즐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너희들끼리는 동호회를 만들어 주마. 인터넷 바둑 접속이 어려우면 세한대 바둑학과 형들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렴."
그랬더니 아이들이 와아~ 환호성을 올린다.
그 자리에서 <천사섬>동호회가 만들어졌다.
천사섬 글자 뒤에 회원 이름 두 글자를 붙이면 자신의 아이디가 된다.
캠프에 참가한 모든 이들, 세한대 교수님, 학생들, 장학사, 교육지원청 직원들까지 전원 타이젬 천사섬 동호회원으로 신청해왔다.
일이 자꾸 커져간다.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
선 집행 후 조치!
타이젬 정인수 대표님께 전화로 보고하니 전폭적 지원을 선언하신다.
한국기원 보급 팀에도 알리니 조만간 교재와 바둑용품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바둑전문출판사 현현각양지에서도 바둑동화와 교재 후원을 받아냈다.
현지의 김미경 장학사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대꾸한다.
"가능하다면 신안군의 모든 초등학교에 바둑을 방과후수업으로 적극 추천해볼게요. 강사들이 교통 때문에 불편하겠지만 뭔가 좋은 방법이 있겠지요."
강의가 끝난 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인터넷 바둑에 관해 물어온다.
관심 폭발이다.
가만! 이런 식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보급한다면 효과가 만만치 않을까 싶은데.
바둑 배울 환경이 편치 않은 오지의 어린이들에게 타이젬스페셜을 통해 사랑의 힌트를 전하고자 한다.
동호회를 만들고 대학생 바둑사부를 통해 인터넷 바둑을 즐기고 싶다면 언제든지 연락하길 바란다.
▲ 숙소에서 바둑 두는 학생과 필자
그날 밤.
2층 숙소에서 밤을 새워 세한대 바둑학과 여대생 이웅과 바둑을 두었다.
아이들에게 바둑에 관해 강의까지 한 사나이가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여대생에게 무참하게 짓밟혔다.
아, 바둑은 왜 우리 같은 하수들에게 시원하게 성장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단 말인가?
▲ 손을 흔드는 아이들. 1박2일 동안 바둑 캠프 스탭과 아이들은 무척 친해졌다.
신안군 교육지원청의 따뜻한 배려로 식사도 매끼 맛있게 먹었다.
바둑 캠프 스탭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을 챙겼다.
특히 세한대 바둑학과 이병두 교수와 학생들의 열정이 감동적이었다.
학생들은 1박2일의 일정을 넘어 앞으로 1년 동안 타이젬 천사섬동호회를 통해 섬 소년들의 바둑 멘토를 자청했다.
어린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이 동호회 활동이 잘 된다면 여름쯤에 타이젬 기우들을 모아 비금도 여행을 해보고 싶다.
섬 소년들과 바둑 부자(父子) 결연을 맺고, 사나흘 정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캠프를 마치고 교실을 나오는데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아이들이다.
▲ 망각의 길S#4. 에필로그
이세돌 기념관 뒤쪽으로 흥미로운 산책로가 나 있다.
누가 '망각의 길'이라 명명했을까?
분명히 바둑과 관련이 있을 텐데 왜 망각하라고 권유하는 걸까?
그 길을 500미터 걸으면 바다가 나온다.
▲ 명사십리 해수욕장
모래입자가 고운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걸으며 망각을 떠올린다.
망각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인식할수록 번뇌의 가지는 끝없이 뻗어나간다.
그러다가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기억하며 발길을 돌린다.
바둑의 보물섬 신안 비금도를 2012년 마지막 날 송년 선물로 소개해드린다.
2013년 새해에는 더도 말고 바둑 딱 한 급수만 올리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