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삼성화재배 우승컵에 입맞추고 있는 이세돌 9단
2012 한 해를 마무리짓는 12월의 주연은 단연 이세돌이었다. 춘란배에서 혈혈단신으로 한국바둑의 체면을 살린 데 이어 구리와의 삼성화재배 결승에서는 우승,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연말 국내외 주요 기전들을 정리해본다.
[삼성화재배] 숙적 구리에 '반집승 매직' 연출… 명실공히 세계최강에
◇…2012년말을 화려하게 장식할 세기의 빅게임으로 팬들의 기대를 모은 삼성화재배 결승은 결국 이세돌의 극적인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수년전부터 한․중 양국의 리더로서 맞대결 때마다 숱한 화제를 양산해온 이세돌과 구리(古力)는 이번 결승에서도 어김없이 치열한 명승부를 연출한 끝에 바둑사에 남을 만한 갖가기 진기록을 남겼다.
3전2선승제 결승에서 이세돌은 1국을 반집승으로 따낸 데 이어 3국에서도 또다시 역전 반집승함으로써 '도합 1집'으로 3억원 짜리 세계 타이틀을 따내는 진기록을 세웠다. 두 번의 반집승 모두 초반부터 크게 밀리며 질질 끌려다닌 끝에 따낸 막판 역전승이라서 더욱 드라마틱했다. 두 기사는 앞서 더블 일리미네이션으로 치러진 32강전에서도 한 조에 속해 맞붙은 바 있는데, 당시 사상 초유의 '4패빅 무승부'와 그에 따라 하루에 두 판 두는 '더블 헤더' 재대국을 벌이는 해프닝을 남긴 바 있다.
▲1국 승리 후 이세돌결승1·3국 절망적인 열세 딛고 뒤집어… '2억짜리 반집' 진기록도
이세돌의 무리한 공격바둑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완패한 결극 2국을 제외하면 결승 1국와 3국 모두 유사한 승부 패턴으로 펼쳐졌다. 초반 운영에 고질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이세돌이 구리의 화려한 운석에 밀려 중반 한때 정말적인 비세에 봉착하기도 했으나, 낙관 무드에 빠진 구리의 완착을 틈타 불꽃같은 추격전을 펼치며 1집, 1집씩 벌어들인 끝에 기어이 반집승을 거둔 것이다. 삼성화재배 우승 상금(3웍원)과 준우승 상금(1억원)을 비교해볼 때 결승 3국의 반집승은 무려 '2억원짜리 반집'이었으니, 이 또한 바둑사에 남을 진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초 비씨카드배 결승에서도 혈전 끝에 구리에게 3대2로 승리해 우승한 바 있는 이세돌은 이번 승리로 향후 두고두고 계속될 구리와의 결전에서도 심리적 우위를 점하게 됐다. 두 기사는 그동안 세계대회 결승에서 두 차례 만났는데, 2009년 LG배에서는 구리가 2대0으로, 2011년 비씨카드배 결승에서는 이세돌이 3대2로 각각 승리한 바 있어 이번 결승이 우열을 가릴 계기이기도 했다. 이세돌은 이번 우승으로 이창호(통산 3회 우승)를 제치고 삼성화재배 최다 우승(4회)의 위업을 달성하는 덤을 얻기도 했다.
▲복기 중인 구리. 표정이 어둡다.
이세돌, 무서운 스퍼트로 막판 싹쓸이… 삼성화재배 최다 우승 위업도
반면, 초중반의 탁월한 전투감각에 비해 정교하지 못한 마무리가 약점으로 꼽혀온 구리는 이번에도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노출하며 분패함으로써 당분간 ‘큰 승부 역전패 징크스’에 시달릴 조짐이다. 특히 그동안 통산 상대전적(이번 결승 직전까지 13승1무8패로 구리 우세)에서 앞서 있음에도, 정작 타이틀이 걸린 큰 승부에서 번번이 이세돌에게 역전패함으로 자칫 ‘이세돌 콤플렉스’에 빠질 우려마저 자아내고 있다.
올 시즌 초의 부진을 깨끗이 떨어내고 가을 이후 무서운 막판 스퍼트를 보여온 이세돌은 이번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No.1 자리에 다시 우뚝 서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 한때 이세돌에 필적할 상대로 꼽혔던 구리와 쿵제(孔杰)가 중국내에서 후배 그룹에 밀려 상위랭커에서 추락한 사실, '포스트 이세돌'의 선두주자로 꼽히던 박정환이 최근 주춤한 점을 감안할 때 이세돌의 통일천하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춘란배 준결승전 모습. 이세돌(오른쪽)이 쿵제를 따돌리고 결승에 올랐다.
[춘란배] 한국 체면 살린 이세돌, 中 랭킹1위 천야오예와 결승 격돌 ◇…삼성화재배 결승에 앞서 열린 춘란배 8강전과 4강전도 이세돌의 존재를 새삼 돋보이게 한 무대였다. 4대4 한․중 맞대결로 펼쳐진 8강전에서 기대했던 박정환(현 한국랭킹 2위)과 깁지석(4위)), 원성진(5위)이 중국기사들에게 줄줄이 패해 탈락할 때만 해도 한국선수단에 위기감이 감돌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일당백' 이세돌이 있었다. 8강전에서 조선족 출신 기사 파오원야오(박문요)의 대마를 잡으며 통쾌한 역전승을 거둔 데 이어 준결승에서도 녹록치 않은 난적 쿵제를 완파하며 비교적 가볍게 결승에 뛰어올랐다. 이세돌이 그동안 침착하고 종반에 강한 쿵제나 파오원야오 같은 기풍의 소유자에게 상당히 고전해왔던 사실을 감안할 때 요즘 이세돌의 날이 얼마나 바짝 서있는가를 입증하는 승전보였다.
▲춘란배 결승에서 격돌하는 천야오예와 이세돌(오른쪽) 현 한·中 랭킹1위 결승 맞대결 … 관록 한수 위 이세돌 우세 전망
그리하여 춘란배 결승은 공교롭게도 현 한국랭킹 1위 vs 중국랭킹 1위의 맞대결로 성사됐다. 반대조에서 박정환과 장웨이제(江維杰)을 연파하며 오랜만에 세계대회 결승에 오른 천야오예(陳耀燁)는 최근 국내외 무대에서 질 줄 모르는 파죽지세를 보이며 중국 랭킹1위로 뛰어오른 신흥강호. 현재 절정의 기세를 보이고 있는 이세돌과 천야오예의 랭킹과 컨디션을 볼 때 내년 2월 펼쳐질 춘란배 결승 3번기는 이세돌-구리전 못지 않은, 또 다른 빅카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록과 상대전적(3승1패로 이세돌 우세)에서 모두 앞서 있는 이세돌의 우세(2-1 정도)가 예상되는 가운데 연말연시 두 기사가 어떻게 켠디션 조절을 하느냐가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천야오예는 지난 2006년 LG배와 2007년 TV아시아선수권에서 거푸 준우승하며 각광받은 바 있으나, 이후 세계무대에서 부진했으며 우승 기록은 아직 없다.
▲국수전 2연패에 성공한 조한승[국수전] 싱겁게 끝난 결승 … 조한승, 3대0 완승으로 국수 2연패
◇…지난 해 이맘 때 뜨거운 용쟁호투의 명승부를 연출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1년 만에 조한승(국수)과 최철한(도전자)이 입장을 바꿔 리턴매치를 벌였던 국수전 도전 5번기는 생각보다 싱겁게 막을 내렸다. 예상을 뒤엎고 조한승이 최철한을 3대0으로 셧 아웃시켜 버린 것. 지난 해말 국수 획득 이후 올 시즌 내내 잠잠했던 조한승은 특유의 유연한 기풍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도전 1, 2, 3국을 모두 완승하며 유일한 타이틀 국수 방어에 성공했다.
반면, 지난 6월 결혼 이후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국내외 기전을 두루 섭렵했던 최철한은 11월 이후 벌어진 주요 대국에서 모조리 패퇴한 끝에 이번 국수전마저 무념의 완패를 당함으로써 누구보다 우울한 연말을 맞게 됐다. 최철한은 11월에 접어들면서 LG배와 삼성화재배 준결승, 올래배 결승 등에서 잇달아 지며 불가사의할 정도로 급전직하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수전 도전 3국에서 패한 직후 최철한의 모습.최철한, 불가사의한 급전직하 … 11월 이후 주요 대국서 연전연패 슬럼프 당초 조한승-최철한의 국수전 도전기가 성사될 때만 해도 최철한의 우세가 점쳐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최철한이 '최악의 11월'을 보내는 와중에 벌어진 도전 1국을 조한승이 따내면서 사뭇 분위기가 일변했다. 기선을 제압한 조한승이 12월 들어 속개된 2, 3국을 거푸 따내며 생각보다 훨씬 쉽게 국수 2연패에 성공한 것이다.
우승권에 있던 세계대회(LG배, 삼성화재배)와 국내기전(명인전, 올레배, 국수전)에서 줄줄이 실패한 최철한에게 이제 남은 것은 한국대표로 참가한 스포츠어코드 개인전과 천원전 결승 뿐. 자칫 빈 손으로 연말을 맞을 공산이 높아졌는데, 과거 응씨배 우승 실패 직후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던 사례에 비추어 최철한에겐 상승세와 하락세의 극명한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향후 가장 큰 과제로 남았다고 할까.
○날씨로 보는 기사 기상도●
이세돌 (○ 맑음)
춘란배 결승 진출 이어 급기야 삼성화재배마저 제패했다~♬♫. 당분간 그의 앞길을 막아설 자가 보이지 않는데…, 일단 명인전 결승에서 천적 백홍석을 어떻게 당해낼까가 당면과제!
최철한 (/// 장마)
11월 이후 연전연패, 급격히 추락하더니 기어이 국수전 마저 셧 아웃당해 손에 검불만 쥐게 됐다.ㅜㅜ 우울한 연말이 될 듯.
백홍석 (○ 맑음)
이제 절정 쎈돌의 목에 방울을 걸 사람은 오로지 불도저 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보였던 ‘쎈돌 킬러’의 모습, 명인전 결승에서도 보여주려나~
조한승 (○ 맑음)
최철한 슬럼프의 행운이 따르긴 했지만, 독사를 3대0으로 완봉한 괴력이 놀랍다. 그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유연한 기풍에 착한 심성까지, 명실공히 ‘국수’의 자격이 충분!
구리 (// 비)
시종 앞서나갔지만, 골인 지점 10m 앞에서 연거푸 넘어지다니, 지난해 비씨카드배 결승의 잔인한 데자뷰였다. 앞으로 역전패 징크스, 쎈돌 징크스를 어떻게 극복하려나~ㅜㅜ
천야오예 (○ 맑음)
올 하반기 가장 주목받는 중국 랭킹 1위. 춘란배 결승에서 이세돌을 만나 드디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