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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으로 통하는 父子

바둑IN바둑人-점자바둑의 일인자 송중택 새내기 프로 송상훈 부자

2014-01-23 오전 12:30:56 입력 / 2014-01-23 오전 9:02:35 수정

▲ 송상훈(오른쪽)은 입단이 확정된 후 아버지 송중택 씨와 포즈.


예나 지금이나 고시패스보다 힘들다는 입단. 어렵사리 관문을 통과한 자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손수건 두어 장은 필히 적셔야 하는 소설이 나온다. 지난 17일 새내기 입단자 7명이 배출되었다. 그 많고 많은 사연들 가운데 송상훈(18)의 얘기를 소개한다.

송상훈은 타고난 영재도 아니며 그렇다고 늦은 나이에 빛을 본 입지적인 케이스도 아니다. 세간에 이름 깨나 알려진 연구생도 아니었던 송상훈이 작년부터 막판 스퍼트에 돌입하더니 급기야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어느 입단자에게나 들을 수 있는 스토리.

한줄기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맹인의 아들이 입단했단다. 송상훈의 부친이 그 유명한 점자바둑의 세계최고수 송중택 씨(55). 어찌 그들의 바둑얘기를 아니 들을 수 있을까.

"아, 이젠 도장 학비가 안 들잖습니까? 효자지요. 하하." 송중택 씨는 첫 만남부터 상대를 편하게 하는 기술이 있었다.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첫 만남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기자에게 먼저 묘한 어색함을 풀어헤친다. 그는 이미 많은 매체에 인터뷰 경험이 있고 행사에도 자주 불려다닌다. 최근엔 국회에서 시각장애인 바둑선수를 이끌고 이인제 김기선 의원 등과 친선바둑을 두어서 타이젬에 소개된 바 있다.

▲ 양천대일도장에서 인터뷰 중 사진 한 컷. 좌로부터 김희용 원장. 송중택 송상훈. 김원장의 부인.


송중택 씨는 전남 고흥에서 소년시절 우연히 바둑을 접한다. 그리고 겁도 없이 프로가 되고 싶다고 느낄 만큼 바둑에 푹 빠졌다. 그러나 녹내장 증세가 있었던 그는 고도약시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17세 때 한쪽 눈을 실명한다. 절반의 실명은 참을 만했다. 서울 누님 댁에 기거하면서 계속 바둑에 빠져들 즈음, 그는 21세 되던 해 양쪽 시력을 모두 잃고 만다.

끔찍이 바둑을 좋아하던 그였지만 더 이상 둘 수 없었다. 어찌 바둑이 대수겠는가. 그때부터 삶 자체는 시련이었다. 32세 때 시각장애인학교에서 같은 처지의 아내를 만났고, 우연히 일본에 점자바둑판이 있다는 얘길 들게 된다. 어렵사리 구해온 점자바둑판을 대한 순간, 10년 전 바둑을 두며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그로부터 아내와 함께 바둑은 송중택 씨의 평생반려가 된다.

슬하엔 단비와 상훈 1남 1녀를 두었다. 둘에게 모두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부터 바둑을 시켰다. 왜 하필 바둑을 시켰을까?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잖아요. 분신인 자식들과 나를 평생 이어줄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몇 해 전에 딸 단비가 명지대 바둑학과에 들어가더니, 이제 아들 상훈은 프로가 되었으니 자신의 큰 소원은 이룬 셈이다. 이번 입단대회에서 솔직히 입단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연구생 성적이 작년 5위였는데 이번엔 13위로 떨어져서 당연히 기대는 할 수 없었다고. "상훈이는 지금까지 네 번 정도 입단대회에 참가했는데 다른 선배들에 비하면 고생은 덜했죠."

상당히 밝고 명랑하고 화통한 송씨는 이내 또 자식자랑을 이어간다. "중3때 연구생 10조에 들락날락거렸지만 고1 올라갈 때 연구생 4조였어요. 그때부터 부쩍 성장한 것 같아요. 입단대회에서 찬스가 한번 오는데, 그걸 잡았죠."

이 대목에서 상훈을 키운 김희용 원장이 말을 받는다. "작년 본선에서 3승4패를 했는데, 올핸 8승을 거두며 통과했어요. 탄력을 받으면 무섭게 발동이 걸리는 편이예요. 우리도장에서는 페이스가 가장 좋았죠. 한 달간 트레이닝으로 컨디션 점검을 하는데 모두 다 상훈이의 페이스가 좋다고 했어요. 저는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탄력을 잘 받는다는 스승의 칭찬에 머쓱해진 상훈은 "제가 그런 기질은 있는 것 같아요."하고 웃는다. 하긴 상훈은 2011년 세계청소년바둑대회 한국대표 선발전에서도 40명이 넘는 연구생 틈에서 홀로 살아남은 적이 있다. 이번 입단대회에서도 최단코스로 입단하는 걸 보면 확실히 결정력은 있는 듯.

시각장애인이니까 키우면서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 같은데 송중택 씨는 어릴 적부터 바둑을 가르친 효과라며, 별 어려움은 없었단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삼촌과 외숙모가 아이들을 봐줬다고 한다. "함께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바둑을 시켰어요. 초등 3학년 때부터 폴란드 체코 일본 태국 등 바둑여행을 곧잘 다녔죠. 아이들이 부모를 장애인이라 의식하지 않도록 키웠어요."

▲ 저녁을 먹으면서 부자의 바둑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인터뷰가 이렇게 흘러가면 재미없다는 기자의 엄살에 송중택 씨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한번은 상훈이가 일하는 아주머니와 짜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 만화책을 빌려왔어요. 그런데 만화책을 깜박하고 반납을 안 한 것이에요. 그때 집으로 독촉 전화가 와서 들켰죠. 또 간혹 이불 속에서 노트북을 하기도 하고…. 사실 저는 다 느끼고 있는데 눈감아 준 적도 많죠. 어쩌다가 한번 따끔하게 혼내기만 했지요. 매번 잡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시각장애인인 자신의 '원죄' 때문에 상훈을 엄하게 키우지는 못했나보다. 그래서 바둑이 점차 늘면서 도장 원장님이 엄격하다는 소문을 듣고 맡겼는데 그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단다.

부모의 시각과 다른 것이 스승의 시각. 상훈는 어떤 아이였을까. 김희용 원장에게 물었다. "중3때 연구생에 떨어지는 등 하도 정신을 못 차려서, 이번에 또 떨어지면 삭발하자면서 맘을 잡았어요. 그런데 또 떨어진 것입니다. 약속대로 삭발을 했는데, 다른 애보다 상훈이가 너무 서럽게 잠들기 전까지 울었어요. 그래서 '아픔을 잊지 말고 열심히 하거라' 민머리를 매만져 주었어요. 그 이후 비약적으로 늘기 시작했어요."

김원장에게 또 한마디를 더 걸었다. 상훈이 바둑이 어떻습니까? 싸움바둑이라고 하던데요. "수읽기가 세고 전투력이 강합니다. 생떼 같은 말을 잡으러 가는 특이한 바둑이예요. 도장 연구생 2군이었을 때도 1,2조 형들의 대마를 잡곤 했죠. 팬들은 되게 좋아할 바둑이죠."'정말 그래?' 기자가 상훈을 힐끗 쳐다보니 눈치를 채고 대답한다. "요즘 구리와 조한승 사범님 기보를 많이 봅니다. 아무래도 정돈이 잘 된 바둑이니까요."

"조한승 바둑이 매끄럽지!" 역시 시각장애인 세계챔피언인 아버지 송중택은 전문가 수준이다. 좀 늦었지만 그의 기력을 물어보았다. 빛조차 감지하지 못한다는 소위 전맹(全盲). "한국기원 아마5단, 일본기원 아마7단인데, 타이젬에서는 5~6단 왔다 갔다 합니다. 타이젬이 젤 어려워요. 하하."

타이젬? 타이젬 얘기 좀 해주세요. ID공개할 수 있습니까? "앞도 안 보이는데 공개하면 어떻습니까. 하하. 자나 깨나 바둑 둔다고 ID도 '자나깨나'입니다. 지금은 5단인데 대국하기가 좀 어려워요. (아니, 타이젬에서 대국하기 어렵다는 얘기는 첨인데?) 저는 누군가가 바둑판 좌표를 옆에서 불러주거나 점자바둑판에 놓아주는 등 도움을 받아야 둘 수 있어요. 그런데 20분 이상은 길다고 느끼는 지 잘 안받아줘요. 어떨 땐 단수를 못 봐서 수십 집이 날아가는데도 이(홍복) 사범이 안 가르쳐 줘요. 상훈이도 가끔은 대국을 도와줍니다."(이날 상훈도 당장 프로가 된 기념으로 (P)자를 달았다. 혹시 유저여러분께서 낮선 (P)를 보게 되면 격려 바란다.)

여기서 또 소개할 사람이 있다. 이홍복 사범은 전국아마대회인 서울시장배 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준우승 경력이 더 많았던 아마 강자. 송중택 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7년째란다. 그러고 보면 아마대회에 모습을 감춘 지 오래인데, 송씨의 바둑사범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단다. 송씨 말로는 "우리 가족보다 우리 가족을 더 잘 아는 분"이란다. 그 또한 프로 상훈을 있게 만든 공신이다.

▲ 과거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송중택 부자. 맨 오른쪽은 17년간 송씨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는 아마강자 이홍복.

송중택 씨에게 바둑은 무엇?
"희망. 그것만 두고 있으면 다 잊으니까."

앞으로 남은 포부는?
"국내에 없는 시각장애인바둑대회 개최하는 것. 시각장애인 바둑동아리도 만드는 것."

인터뷰가 끝나는 분위기가 되자 아들 상훈은 아까 유보했던 기자의 질문에 초읽기에 몰린 듯 답변을 주르르 내놓는다.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끄덕끄덕) 중3에서 고1때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동안 힘들게 키워줬는데 한마디 해야지?
부모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가 손을 꼭 잡는다.)

아빠 기풍이 좀 어때?
대성할 바둑인 것 같아요. (에끼, 이놈아!)

치명적인 장애도 가족사랑의 힘으로 승화시켰고, 이제 아들이 그 운전대를 잡으려 한다. 세상에 이 보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드라이브가 있을 수 있을까.
TYGEM / 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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