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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양상국, “첫딸 시집보내는 맘이죠.”
23일 1203회로 24년간 이어온 EBS바둑교실 종방
2014-02-11 오전 11:25:31 입력 / 2014-04-19 오전 11:25:53 수정
▲ 녹화시간 2시간 전에 꼭 혼자만의 리허설을 준비하는 양상국.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도 꿈이련만 여름날의 하루해는 그리도 길더구나. 인생은 바쁠 게 없나니 유유자적하게 살자구나.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仙)이라, 하루라도 조용하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 동안은 신선과 같느니라.' 명심보감 省心篇(성심편)
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꾸준히 쌓게 되면 우리는 그를 레전드라고 부른다. EBS 바둑교실에서 24년간 단 한 번의 결방도 없이 꾸준히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준 양상국(65)는 바둑방송의 레전드로 손색이 없다.
1989년 12월 EBS 개국과 함께 매주 한차례씩 방영된 EBS바둑교실이 오는 23일 총 1203회로 종영한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프로그램의 처음과 끝에 늘 사용하는 클로징경구(警句)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로 정했다.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이고, 떠나면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뜻.
역시 언젠가 끝나게 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끝을 보게 되니 몹시 아쉬울 것이다. 만지면 구겨질라 떨어지면 깨질세라, 24년을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을 시집보내듯 그의 맘 한쪽은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이미 마지막 회까지 녹화를 해 두었으니 이제 양상국은 야인이다. 몹시 옆구리가 시릴 것 같은 지난 주말 저녁. 그와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곡차를 나누었다.
▲ 24년 베테랑 양상국도 카메라 앞에서는 늘 긴장된다.
바둑과 방송. 어떤 것이 어려울까? 44년간 바둑을 두었고 24년간 방송을 해온 양상국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방송이 훨씬 어렵다'고 한다. 바둑은 혼자서 이기든 지든 감내하면 되지만, 방송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인력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EBS바둑교실의 경우 1시간짜리 녹화를 뜨는데, 20명 정도가 투입된다. 따라서 개인적인 일로 펑크를 낸다든지 지각을 한다듣지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긴 방송은 모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방송에서 1패는 대국에서의 20패와 같다고 한다.
양상국은 21세 때 고교생이던 서봉수와 함께 1970년에 입단했다. 입단 후 곧 영장을 받고 34개월간 군 복무를 하고 나니 4단이 되었다. 서봉수가 2단 때 명인도 따고 했으니 자신도 트로피를 하나 따야겠다는 맘이 들어 춘천 보타사에 입산한다. 2년쯤 있었다. 그때 여성기우회장도 역임한 바 있는 지금의 아내가 친구와 함께 보타사에 놀러왔고 그때부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주지 지월선사가 '감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며 양상국에게 결혼을 권했다. 스님이 장장 5차례의 장문의 편지를 써서 이뤄진 결혼이다. 그런데 결혼을 막상 하니까 곧장 현실이었다. 그래서 한국기원 강동지원을 열었다. 처음엔 공부방을 할 요량이었으나, 그곳에서 만 30년이 흘렀고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보급의 최일선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꼭 작고한 조남철 선생처럼 호리호리한 몸매지만 뚝심이 대단한 외유내강(外柔內剛) 양상국. 그는 1980년부터 시작한 강동지원을 수년전까지 보급의 전진기지로 만들었고, 1997년부터 성균관대에서 시작한 봄 가을 16주 코스의 바둑학 강의도 어느덧 17년째 지속되고 있다.
올드팬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1982년 당시 최고의 아마대회인 세실배를 만들어 16년간 이어왔고, 또 바둑TV 개국에 맞춰서 지송배 아마대회를 8년간 이어왔고, 90년대에는 우암배, 김성준배 등 어린이대회를 각 5년씩 주최하기도 했다. 또 잊지 못하는 것은 그 조그만 공간에서 많은 꿈나무들이 자라났다는 사실이다. 김만수 김태향 홍장식 홍성지 등 어언 2~30명은 거쳐갔다. 이창호도 초등2학년 때 전주에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올라와서 한판을 배우고 갔다.
▲ 녹화 전 담당PD와 회의 장면.
"24년 전에 한 PD가 어떻게 알았는지 날 찾아왔어요. 그 전에 1982년 KBS바둑대축제라고 10시간 이상 생방송을 한 아주 큰 행사가 있었는데, 노영하 사범과 가끔 진행을 같이 보는 것을 봤나 봐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12만원밖에 못주는데 방송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어요. 당시엔 적은 돈도 아니고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수락하면서 유수와 같이 24년이 흘렀죠."
90년대는 방송바둑의 황금기였다. 당시엔 공중파 4사가 모두 바둑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KBS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바둑왕전(노영하), MBC는 제왕전(윤기현), sbs연승최강전(유건재) 그리고 EBS바둑교실에서 양상국이 가세했다.
TV바둑은 초속기전이어서 해설도 짧고 명징해야하고, 복잡한 수를 읽고 재빨리 읽고 팬들이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KBS 노영하는 차분한 목소리에 동양증권배 바둑대축제 등 대형기전의 경험이 많아 노련한 진행자였다. 또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의 구수한 목소리의 주인공 MBC 윤기현도 인기가 드높았다. 또한 sbs연승최강전 팔방미인 유건재의 해설은 전문적이고 확실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에 반해 EBS바둑교실의 양상국은 바둑해설자라기보다는 강좌로 특색을 살렸다. "처음엔 전례가 없다보니 콘텐츠를 채우는 일부터 고심이었어요. 이건 강좌니까 사실 1시간을 때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죠. 그래서 나름대로 공부하고 책도 많이 보고 했죠. 뭐, 할 말이 있어야 일단 시간을 채울 것 아닙니까. 그때부터 한문 경구를 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6시30분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0.2%의 시청률을 기록해서 확실한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EBS바둑교실은 소위 충성도가 굉장했다. 아마 그때 방송계에서도 바둑은 마니아 층이 두터워, 확실한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한다.
"바둑만큼 충성도가 높은 종목은 없을 것입니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오래가는 스테디셀러 같은 종목이니까요. 어떤 팬은 방송 5년 치, 10년 치를 녹화해서 계속 우려서 보기도 하더라구요. 가끔 택시를 타게 되면 운전기사 3명중 1명은 알아봐요. 제 목소리가 까랑까랑하다고 합디다. 알아보는 분이 생겨나면서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고 또 매일매일 공부하게 하게 되었지요."
▲ 분장실의 양상국.
▲ 부조정실에 비친 양상국의 강좌 녹화장면.
24년간 방송하다보니 에피소드가 한둘이 아니다. 녹화 날은 픽스가 되어있고 20명의 스텝과의 공동의 약속이다 보니 웬만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단다. 그러나 보니 24년의 세월동안 피치 못한 일도 다반사였다. 그 중 기억나는 것은 장인이 별세했을 때 녹화가 겹쳐서 발인에 참석하지 못한 일. 녹차를 끓이다가 다리에 큰 화상을 입고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녹화에 참여한 일. 심지어 녹화 중간에 여자진행자가 졸도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압권은 강도를 만난 일이다. 그는 녹화를 마치면 항상 고생한 스텝과 식사 술을 함께 하곤 한다. "아마 술이 많이 취했다면 큰일을 당할 수 있었어요. 강동구에 살 때인데, 택시가 미사리 팔당대교 부근으로 빠지는 겁니다. 밤 11시쯤 되었는데, 그곳은 강가니까 한적하잖아요. 그때 택시기사가 강도로 돌변하는 거예요. 마침 방송국에서 월급을 탔는데 100만원쯤 현찰이 남아있었지요. 이성이 살아있어서 지갑을 통째로 싹싹하게 준 다음 조용히 내려달라고 해서 위기를 넘긴 적이 있어요."
이렇듯 양상국은 애주가다. 그러나 철칙이 있다. 시합 전날은 술을 마시지만 녹화 전날은 하늘이 무너져도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말이 에피소드지 낭패를 당할 뻔한 일도 있고 하니까, 부인께서 걱정이 많겠다고 넌지시 물었다. "바둑계가 어렵잖아요. 아내는 그나마 이렇게 일이 주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바둑을 그나마 이해하는 사람이니까 항상 고맙다고 생각하죠."
소주가 몇 순배 돌아가자, 그는 맘에 있는 말을 꺼낸다. "EBS바둑교실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 동안 몇 번 중단되려든 것이 운 좋게 이어졌어요. 4년 전 1000회 때는 스텝들이 회식까지 끝냈는데도 이어졌어요. 5회만 더 하면 1000회가 되니까 제가 몇 회만 더 가자고 부탁했죠. EBS바둑교실을 또 제가 또 한다는 것은 욕심이고…. EBS는 교육방송 아닙니까. 교육차원에서 바둑이 1시간 정도 있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시 살릴 기회가 있으면 젊은 사람 중에서 더 멋있게 했으면 하죠. 완전히 끝이 아니길 바랍니다."
양상국 바둑특강
EBS바둑교실에서 구수한 입담으로 바둑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양상국이 35번째 바둑특강 수강생을 모집한다.
일시: 2014년 3월 4일~ (16주 매주 화요일)
장소: 서울 서초구 양재동 1-7 양재종합시장빌딩 303호 (3호선 양재역 5번 출구 도보 5분)
수강료: 50만원
문의전화: 011-9933-8899

▲ EBS바둑교실에서 24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팬과 함께 한 양상국. 그의 보급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TYGEM / 진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