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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의 구단으로 말하자면, 이번
일이 그가 중국에서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을급 바둑
시합. 상하이에서 거행되었을 때 4월 8일의 밤, 조훈현9단은 을조의 강주구9단, 루이9단과
같이 식사 중에 소년 기사 퍄오원야오(박문요)를 불러달라고 통역에게 요청하였다. 조9단은 박문요가 나이가 어려서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남의 집에서 일하며, 힘들게 산다는 것을
알고, 매우 안타깝게 여겼었다고 한다. 더구나 북경에서 바둑 공부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 조훈현은 식사 후에 박문요를 조용히 불러서 금일봉을
주었다.
"이 돈은 어머니께 갖다드려라"

조9단은 박문요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는데, 그가 준
금일봉은 적지않은 돈이었다. 박문요는 이 전엔
일면식도 없었던, 바둑계의 대 선배 조훈현9단에게 이런 따뜻한 배려을
받게된 것에 대하여, 북경으로 돌아간 후에 말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너무 감동하셔서 펑펑 우셧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조훈현 선생님의 은혜에 꼭 보답하라고
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않게 자란 이창호도, 스승인 조훈현
선생을 닮아서인지 그 어진 마음이 충만.
한국 언론에 따르면, 1998 연말에도,
그는 모 복지원에 상당 금액을 기부하고, 바둑대회 소득의 추가의
상품-- 승용차를 한국기원에 기부하였다. 이름을 밝혀 기부하기도하고. 동료들과
함께 재난에 대한 모금에서도 익명으로 적지않은 돈을 기부하곤 했다고한다.

몇 년의 전에 이창호는 바로 그의 부친과 상의하여, 매년 서너차례 모 복지 기구로 후원금을 기부한다고 한다.
이창호나 그의 가족들은 이 일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다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어렸을 때 이창호의 스승이었던 전영선 6단이 1996년경에는 간경화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많은 프로 바둑인이 모금에 앞장섰는데,
그 중 가장 큰 금액을 낸 사람이 그였다.
이창호는 “연말 최우수 기사상"의 추가의 상품-- 자동차를 팔아서, 그 돈으로
좋은 일로 쓰고 한국 기원에서 수고하는 분들께 보답도 했다고 한다.
“나는 후배 바둑기사를 위해서 바둑을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는 바둑 도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유창혁도 역시 그런한 말을 했으며, 그들은 모두 그런 꿈을 위해서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