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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1인자에 못지않은 2인자, 그들의 슬픔
[담론] 1인자에 못지않은 2인자, 그들의 슬픔
2005-11-07 오후 4:08: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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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은 무엇이고 [칼럼]은 무엇이냐고 대기실에서 어떤 분이 물으시더라구요.
제가 생각하는 [담론]은 이러합니다.
[칼럼]이 자기의 주관적인 주장을 주로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한다면, [담론]은 논 리적인 면보다는 감성적으로 설득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좀더 청자에게 더 다가가 하는 말이죠. 그리고 상대방에게 활짝열린 의견이라, 논리적으로 싸울 필요는 전혀 없는 글 입니 다. "이것이 옳다!(주로 반말을 씀)"가 아니라,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요...(주로 존칭어 로 깍듯이^^::)" 라는 글 입니다.
명예기자란에 [칼럼] 몇 번 썻다가, 혼난적이 많아서..ㅠ.ㅠ::슬그머니 [담론]으로 바꾸고 쓰오니, 다른 의견 있으시면 적극적으로 개진해주셔요. 차 후의 종합 기사에서 고견을 꼭 반영하겠습니다.
꾸벅
[i진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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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1인자에 못지않은 2인자, 그들의 슬픔
한국 현대 바둑 60년사를 맞이하여 최근 한국 바둑사에 대한 새로운 사적인 조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얼마전 한국 현대 바둑 60년 기념식이 성대히 치루어졌습니다. 여기에 한국 현대 바둑을 대표하는 4인(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이 마치 공인된 바둑황제 대관식(?) 을 연상케하는 핸드 프린팅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하였습니다.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를 잇는 한국 현대 바둑 1인자의 핸드 프린팅 행사.
그 4인은 현대 바둑의 각 시대의 1인자로서 공식적으로 공인을 받게된 것 입니다. 그러나 1인자의 선정이나 그리고 1인자로 일컬음 받지 못하여 2인자로 규정된 기사에 대한 아쉬움은 적지않습니다. 특히 서봉수 9단이나 유창혁 9단은 동시대의 그 어떤 기사도 그의 성적이 필적하는 기사가 드믑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 바둑 60년 기념 행사에서 찬밥을 먹게한 한국 기원에 대한 불만의 소리도 적지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60년 행사에 좀더 많은 프로기사들이 동참하여 같이 핸드 프린팅을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봉수-유창혁 9단을 빠뜨린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아 쉬움이 이러할진데 당사자 마음은 오죽 하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10년 터울로 기념 행사를 치룰때 당대의 최고만 참석하기로 정했다, 라고 한다면 일단은 물러서보죠.
60년 행사아니 만큼, 한국 현대 바둑을 빛낸 6인으로 서봉수 유창혁 9단을 초빙하기에는 그 자리가 너무 좁았는지..아니면 핸드 프린팅할 돈이 부족했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조남철==>김인 ==>조훈현---->이창호]를 잇는 선은 출발은 일본 정통 바둑 의 접목과 계승과 발전에서, 한국형으로 완성의 단계였다면, [서봉수==>유창혁----> 이세 돌]을 잇는 선은 국내 토종 바둑의 계승과 발전 그리고 원조 한국형 바둑 완성으로 볼 수도 있기에 서봉수 9단과 유창혁 9단의 빈자리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당대의 최고 1인자가 있기에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도 항상 1인자의 그늘에서 2인자의 슬픔을 담고 살수 밖에 없는 그 들. 한국 기원 공식 행사에서 항상 주변인으로만 자리 잡고 멀찌감치 카메라 포커스에서 떨어져 있는 그 들.
우리는 한국 바둑의 주류!
한국 현대 바둑 60년 사의 축하연에서 조차도 주빈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두 기사의 슬픔을 한국 기원은 알아야합니다. 한국 바둑 70년 기념식이 치루어진다면 이 두 기사는 반드시 그 자리에서 같이 핸드 프린팅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할 것 입니다.
업글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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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1] 우선 한국 현대 바둑 제 1대 1인자인 조남철 선생님의 약력을 보도록하지요. 자료는 한국 기원의 공식 자료입니다.
1948년도부터 1973년도까지 우승을 하셨습니다. 엄청난 기록이지요. 조남철 선생님이 한국 현대 바둑 접목자 이기때문에 1인자로 꼽은 것이 아닙니다. 정말 대단한 눈부신 활동을 하셨습니다.
백 번 양보하여, 50년대 우승은 국내 바둑 여건이 열악하니 조남철 선생님이 쉽게 우승할 수 밖에 없다고 칩시다.
하지만 60년~70년대는 좀 다릅니다. 김인-조훈현-서봉수-서능욱 등의 신예 후배들과 맞서서 이렇게 놀라운 결과를 얻은 것은 입이 따악 벌어질 정도의 놀라움 자체죠.
조남철 선생님은 그 누구도 부인 하지 못할 당대의 1인자 맞습니다. (반론 없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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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2] 이번엔 몇몇 분이 반론하셨던 김인 선생님의 1인자론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죠. 과련 조남철과 조훈현 사이를 잇는 1인자로서 타당하느냐 하는 것 입니다.
이 분과 불가피 하게 비교해야할 분은 윤기현, 서봉수, 장수영, 서능욱 9단 입니다. 김인 9단과 비슷한 시기에 타이틀을 놓고서 가장 치열했던 분이죠. 윤기현 9단이 국수전 2회 우승한 경력이 있고, 장수영 서능욱 9단은 준우승은 많지만 우승 기록이 없습니다. 김인 9단은 65년도부터 72년도까지 조남철 9단을 압도하면서 뚜렷한 획을 그었습니다. 서봉수 9단이 조남철 김인 윤기현 조훈현등의 일본 유학파의 위력에서도 71년부터 99년까지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총 성적으로 보면 김인 9단보다 더 높습니다.
서봉수 9단은 입단하자마자 당대의 최고 1인자인 조남철 선생을 이기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했 습니다. 그 당시 바둑 선진국에서 바둑을 배워온 고수들 틈에서 악전 고투의 결전 속에서 무려 우승을 세계기전을 포함하여 26차례 우승했습니다. 김인 9단보다 월등한 성적이라는 것은 부인 못합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토종 바둑의 대표 주자인 서봉수 9단을 60주년 행사에서 핸드 페인팅 행사에 참여 시키지 못한 것은 한국 기원의 대 실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에 잊었다면 비난 받아야하고, 일부러 그랬다면 욕먹어도 쌉니다. 서봉수의 토종 한국 바둑의 맥은 유창혁이 이어받아서 발전 시키는데..유창혁 9단도 그 행사에 초대 받지 못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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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진선 한 마디] 헉...ㅠ.ㅠ:: 담론을 쓰다보니 어쩔 수 없이...통계처리를 안할 수가 없네요... ㅜ.ㅠ:: 좀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1~2 인자 논쟁에 대한 고견을 덧글로 올려주시면 귀하게 반영하겠습니다. 꾸벅
업글 중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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