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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둑史 1인자 계보. 趙-金-曺-李
[한국] 바둑史 1인자 계보. 趙-金-曺-李
2006-07-19 오후 11:51: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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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로 1인자 계보 이어져 | ||||
| [주간조선 2006-07-19 15:56] | ||||
[조남철과 바둑] 한국 바둑의 인물들
우리나라 최초의 기전(바둑대회)은 1956년 동아 일보가 창설한 국수전(國手戰)이다. ‘국수(國手)’ 는 한 나라를 대표할 만한 바둑을 칭송하는 호칭 으로 권위와 명예를 담보하기에 모든 기사들이 선망했다. 한국 바둑의 일인자 계보를 짚자면
본격 프로기전의 효시라 할 이 국수전부터 따져야 한다. 건너가 18세에 일본기원 입단대회를 거뜬히 통과하고 큰물에서 놀다 귀국한 젊은 조남철을 평생 순장바둑만 두던 노국수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 무렵 조남철은 무적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로 넘어가면서 조카인 조상연을 필두로 김인, 윤기현 같은 천재 소년들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일인 독주의 판도에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절감하고 과감히 일본 유학길을 택했다. 조남철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으려면 선진바둑을 배우 고 몸소 겪지 않으면 힘들 것으로 판단했고 그 선택은 빛을 보았다. 김인의 일본 유학 기간은 2년에 불과했지만 1966년, 23세의 도전자 김인 5단은 43세의 조남철 8단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열었다. 10기 연패를 노리던 조남철 국수를 3 대 1로 꺾고 두 번째 국수에 오른 것이다. 다 길지 않았다. 1972년,
(業)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한국 바둑 일인자 계보’에서 본류가 아닌 지류(支流) 로 구분함이 옳다. 이는 조훈현시대에 만년 2인자에 머물렀던 서봉수 9단이나 이창호시대의
2인자였던 유창혁 9단 또한 마찬가지다.
타이틀 행보를 시작한 조훈현은 2년 뒤 하찬석 6단에게 국수를 넘겨받으면서 명실상부한 일 인자로 올라섰고 이후 1990년대 초반 이창호에게 무너질 때까지 무려 15년여 동안 모든 타이 틀을 싹쓸이하는 이른바 ‘전관왕’ 기록을 세 차례(1980년 9관왕, 1982년 10관왕, 1986년 11관 왕)나 세운다. 이 기간 국수전만 해도 10연패, 패왕전에서는 놀랍게도 16연패라는 공전절후의 신기록을 선보였다. 1989년 초대 응씨(應氏)배를 거머쥐며 ‘바둑황제’에 등극할 때는 조훈현
시대의 정점이었다. 순국산 된장바둑으로, 또한 중요한 길목마다 조훈현을
들에게 대항마로 각광 받았으나 끝내 2인자의 한 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훈현이 키운 제
자 이창호의
돌풍에 스러지는 비운을 맞았다. 그의 내제자 이창호였다. 바둑계가 ‘조훈현이 호 랑이 새끼를 들였다’고 했던 농담이 현실로 다가올 줄이야. 속기(速棋) 타이틀이기는 하나 19 89년 14세에 KBS바둑왕에서 우승해 세계를 놀라게 한 소년 이창호는 1990년 최고위를 시작 으로 스승의 타이틀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최고위전은 스승이 자신의 왕국
을 세울 때 첫 거점으로 삼은 영지였다. 동양증권배에서 린하이펑(林海峰) 9단을 꺾고 세계최연소(17세) 챔피언에 오르면서 만천하
에 그의 시대를 선언했다. 전이 각광받으면서 국가의 구분과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창호를 잡는 기사가 세계 일
인자로 대접받는 시기에 이른
것이다. 2004년 최철한 9단이 국수, 기성전을 연거푸 빼앗으며 세대교체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고조 시켰으나 이창호의 일각을 허물었을 뿐 이창호시대를 종식시켰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아직도 바둑의 세계는 이창호의 시계에 맞추어 굴러가고 있다. |
[i진선 한 마디]
한 시대를 대표하는 1인자의 자리는 오르기도 힘들거니와 유지하기도 힘이듭니다.
수 많은 프로기사들이 있었으나, 1인자라고 공인 받은 사람은 불과 서너명...
윗 기사는 누가 쓴 것인지 필자가 없지만, 조선일보 바둑 전문 기자이신 이홍렬 기자님의
글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기사의 내용을 일목 요연하게 잘 보여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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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전 역대 우승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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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전은 한국 바둑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위의 자료를 보면 왜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가 왜 1인자이고, 왜 2인자로 불리우는 프로기사는 왜 그렇게 불리워 져야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자료를 잘 보시면, 유창혁 9단의 모습도 보이지를 않고, 이세돌, 박영훈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서봉수 9단이 얼마나 대단한 프로기사였는가를 보여줍니다. 2인자중의 1인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죠.
누구는 1인자이고 누구는 2인자이냐, 구분 짓는 기준이 있느냐고 의문을 갖는는 분들도 있을 것
입니다.
자료를 보시면 압니다. 제가 따로 사족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조금만 시간 들여서 자료 분석
해 보시면 왜 조-김-조-이 가 한국 바둑의 1인자 계보를 잇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아직 이창호 9단의 뒤를 확고하게 잇는 또 다른 1인자는 아직 한국 프로기사중에는 없습니다.
분발해야지요. 이창호 9단은 불과 15세도 안되는 나이에 국수전 우승 했습니다. 조훈현 9단은
마흔살이 넘어서도 국수전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요즘 프로기사들은 늦게 개화해서 일찍 시드는가 봅니다. 국수전의 타이틀 전 자료가 10년후에
는 어떤 프로기사들이 자리를 채울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비가 엄청 왔는데 피해는 없으셨나요?

이런 비 와중에도 홍수를 즐기는 분들이 계셨으니...
이른 바 홍수 낚시꾼들....

홍수에도 불철주야 낚시를 위해서 노력하시는 분들...진정한 낚시인은 아니실듯....ㅡ.ㅡ::
홍수만 나면 낚시대 부터 챙긴다는 분도 있더군요. 뭐 매년 일어나는 일 이지만...

월척 낚았나 봅니다. 커억..수문 근처는 위험한디...

한둘이 아니군요...대략난감....
사람도 물고기도 모두 홍수 속에서 살기 위해서 발 버둥 치는데, 낚시질 하는 강태공들
보면 화가 버럭 납니다. 홍수나면 물고기들도 거의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물이 흐리기도 하지만 쓸려가지 않으려고 기진 맥진 한다더군요.
그런 물고기들 잡아서 기쁠까요? 물고기들 건강하고 힘쎌 때 정정당당히 겨루워 보는
낚道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런지...
요즘 비는 위험합니다. 가능하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죠.
인터넷 바둑을 즐겨보심이 어떨런지요...이왕이면 타이젬^-^::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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