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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日, 한국 바둑의 어버이

克日, 한국 바둑의 어버이

2010-05-08 오후 1:02:13 입력

克日, 한국 현대 바둑의 어버이, 조남철 9단

한국 바둑의 대부 조남철 9단이 올해로 입단 반세기를 맞았다. 19세때 일본기원 초단에 입단한 이 후 반세기동안 프로기사의 외길을 걸어온 그의 인생행로는 곧바로 우리 바둑의 역사다. 우리나라에 현대바둑의 씨를 뿌려 세계를 제패하고 6백만의 팬을 갖게 된 한국 바둑의 오늘. 조남철 9단이 삶의 모두를 쏟아부은 바둑 보급 운동의 결실임은 누구나 다 아는 일. 지난 83년 회갑을 앞두고 입신의 경지에 오른 조9단은 오랫동안 앓아온 폐기종이 그의 육체를 야금야금 갉아먹어가고 있어 그렇지않아도 여윈 편인 몸집이 요사이는 아주 깡말라 있다. 골초라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대단한 애연가인 조 9단은 담배가 폐기종에 가장 나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요즘도 매일 한 갑이상 담배를 핀다.

http://www.khan.co.kr/

지난 9일 한국기원 총재실에서 인터뷰를 가진 불과 30분 동안에도 조 9단은 담배 두 개피. 의사들은 조 9단에게 담배를 끊어야만 폐기종이 더 이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충고해주지만 그에겐 담배를 끊을 생각이 전혀 없다. 또 지병을 치료하기 위한 별다른 투병 생활도 하지 않는다. 다만 젊었을 때 부터 계속해온 좌선을 하루 1시간 반 가량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시키고 있을 정도. "사람의 생사엔 묘수가 없어요. 마음 편히 살다가 죽으면 최고지요. 그리고 살 만큼 많이 살았다고 생각해요." 바둑 인생을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왔으니 죽음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는 마음자세에서 가히 입신의 경지에 이른 선인의 풍모를 엿본다. 조 9단은 바둑으로 지샌 외길 인생을 스스로도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프로기사가 되겠느냐는 질문엔 "글쎄" 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그리곤 불쑥 다른 말을 꺼냈다.

(경향신문 1990년 5월 18일字/ 이방원 특집부장)

"프로기사치고 도박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나는 바둑외에는 화투장짝도 만질 줄 모릅니다. 승부사로서는 체질이 안맞아요." 승부의 세계에서 일생을 보내고도 승부사로 어울리지않는 다는 고백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나는 바둑이 좋아서 프로기사가 된 것은 아니에요." 바둑과 인연을 맺게된 지난 날을 회상하는 조 9단의 눈엔 이미 고인이 된 선친의 그리움을 가득 담고 있다. 

"내가 어렷을 때만 해도 바둑은 아이들은 안된다고 해서 바둑판 근처에서 서성거리거나 기웃거리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나는 선친으로부터 바둑을 배웠어요. 그 당시 식산 은행에 다니시던 선친의 바둑 실력은 아마 3단 정도 되셨는데, 요즘처럼 기원이 없어 바둑둘 상대가 마땅치 않으니까 나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시고 퇴근 후에 대국을 하시곤 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바둑 실력이 급격히 늘자, 바둑으로 일본 놈들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선친은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괄시 받는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11살때 일본의 맹장 기타니 5단과 오청원 5단이 서울에 왔을 때 7점을 깔고 지도 대국을 두었으나 졌지요. 그것이 인연이 돼서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5살때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선생 댁에 거처를 정하고, 내제자로 가사도 거들면서 바둑을 배웠어요." 조 9단은 스스로도 바둑 인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웠다고 믿고 있으면서 바둑의 무궁무진하고 심오한 경지를 깨치기는 까마득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회한이 서린 표정으로 젊은 후배들이 귀담아 들을 자신의 실패담을 털어 놓는다. "15살 소년의 생각으로는 줄잡아 1년에 한 점씩만 늘어도 7년후면 일곱점은 늘고 그렇게 되면 전  천하 무적이 되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16살 때 부터 이상한 공상에 사로 잡히기 시작했지요. 내가 천하의 강자가 된들 무엇하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공상들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으니 바둑 수업이 지지부진 했어요. 이렇게 허송세월을 하던 중 어느날 갑자기 꿈속같은 모든 공상에서 깨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바둑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미쳤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차기 기사 자료인데요...한국 현대 바둑 초기에 조 9단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조 9단이 "당신은 몇 단이야" 하면 그 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대단했지요. 

"바둑에 미친지 6개월만에 입단까지 하게되었지만, 일약 선생님 이라는 칭호로 대우 받게되자 어린 마음에 그만 우쭐해져 바둑 수업을 중단 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일본 전문 기사들의 소망은 첫째 입단, 둘째 고단자가 되는 것, 셋째 명인이 되는 것. 첫째 소망을 이루고서 그만 교만해져 피나는 수련을 중단한 것을 조 9단은 기사로서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을 범했다고 후회. 제 2차 대전 종전 직전 일시 귀국했다가 사정이 있어서 일본 행을 그만 둔 조 9단은 노국수의 순장 바둑이 여전했고, 기사들을 내기꾼 쯤으로 통하던 풍토 속에서 한성기원을 열어 현대 바둑 보급에 앞장서면서 아마와 프로를 분리한 기사 제도를 확립시켰다. 오늘날의 전문기사제도, 입단제도, 승단대회규정, 신문기전 마련 등 그의 정성과 손길로 이루어 졌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조 9단의 추억속에 가장 가슴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6.25사변. "갖은 고생끝에 국내기계도 이 정도면 제대로 뻗어나갈 수 있겠다고 자신 할 정도로 일구어 놓았는데 그 모든 성과가 전쟁으로 깡그리 없어져 버렸을 때 맛봐야 했던 좌절감이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어요." 전쟁이 터지자 조 9단도 곧 입대했다. 그가 상이용사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외형상으로는 정상이지만 어깨와 다리에 관통상.수복 후 폐허가 다 된 명동의 동사무실 2층을 빌려 대한기원 간판을 다시 내걸었다. 다섯차례나 이사한 끝에 지금의 관철동 한국기원 자리로 옮기면서 그런대로 기원 업무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조남철 9단이 한국 바둑 리그를 본 다면 무척 기뻐 하실 듯 

54년 한국기원이 출범한 이래 기사로서만 아니라 바둑 행정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바둑이 건전한 오락으로 발전하고 전문 기사들의 생활 안정을 이룩 할 수 있도록 애써온 조 9단은 이제는 프로기사들이 성적만 내면 잘 살 수 있도록 국내 여건이 성숙된 것을 무척 흐믓해 하고 있다. 바둑과 인생, 바둑을 둘 줄 아는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하지만 조남철 9단은 "바둑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표현한다."바둑판에 놓여있는 바둑알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속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잔재주만 부리려고 하고, 장사하는 사람은 자기집만 지키려고 하지요. 바둑알을 놓는 손길에서 남을 해치고자 하는지,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지 속마음을 어김없이 털어 놓고 있거든요." 조 9단은 아마나 프로나 할 것 없이 바둑의 승패보다 그 과정에 더 마음을 쏟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싸움에 이기면 원수가 생기고 지게되면 스스로가 괴롭지만 이기고 지는 마음에서 떠나면 속이 편합니다. 또 그 경지에 가야만 좋은 내용의 바둑을 둘 수가 있습니다."

일생을 수련하고도 마음을 비우는 경지에 까마득하다고 자책하는 조 9단은 얼마남지 않은 생을 한국 바둑 역사를 정리하느네 주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한국 바둑사에는 삼국시대부터의 우리나라 바둑 발달사와 바둑 발달에 공을 남긴 기사들의 이야기가 포함 될 듯.(경향신문 이방원 부장)

(再 편집 타이젬 i진선)

 

[i진선 한마디]

타자치기 고통스럽네요...ㅡ.ㅡ:: 오늘 어버이날입니다. 그래서 한국 현대 바둑의 어버이이신 조남철 9단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전문을 올렸습니다. 굉장히 훌륭한 인터뷰죠? 큰 성공한 분 만나면 자칫하면 대담자에 대한 과장과 자화타찬(?)하기 쉬운데..참 좋은 기사 입니다. 저도 차 후에 인터뷰를 한 다면 저렇게 해야하는데요...ㅠ.ㅜ:: 원문은 세로 쓰기죠. 가로쓰기로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띄어쓰기와 종결 어미, 어법, 어투를 최근式으로 손질하고 요약 再편집했습니다.뭐..20년전의 기사지만..오늘 나온 기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네요. 어버이날 기념하여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대문표지가 재미있어서 넣었습니다. 

http://www.khan.co.kr/

이렇게 좋은 기사를 주신 경향신문사와 당시 이방원 특집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연초에..경향신문의 60년대 초반 기사인가를 저작권이 어찌되는지 경향신문사에 문의했었습니다. "60년도 기사요?...훔...알아서 하셔요^^::" 라고 하셨는데..90년도 기사는 어찌되는 지 모르겠네요....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 아시겠지만..제 기사든 자료 기사든간에 철저히 확인한 후에 기사화합니다. 오래전 부터 기사 제목도 자극적인 것은 삼가하고, 기사내용도 항상 검증적으로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쓴 소리 한 마디..4월 20일에는 장애인의 날..5월 5일에는 어린이날..5월 8일 어버이날 등등 의미있는 날들이 많은데, 한국 바둑계는 좀 무심하지않나요? 과거 자료를 보니..그렇지 않던데요...관련 기사좀 내보려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별 일이 없었나봅니다..결국 20년 전의 조남철 선생님의 인터뷰. 한국 바둑이 대중의 벗이 되려면 사회로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 당시에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각 분야에서 克日이 불가능해 보이던 시절이 이었는데. 克日을 꿈꾸고 노력한 선구자들 덕분에 지금은 여러분야에서 克日하고 있습니다. 조남철 선생님은 진정 바둑계의 백마타고 온 초인이십니다^^

앞으로는 바둑계로만 볼 때는 한중일이 서로 克하기도하고 힘을 合하기도 하면서 노력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TYGEM / i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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