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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와 바둑
佛敎와 바둑
2010-05-20 오전 1:16:39 입력
5월21일은 석가탄신일 입니다. 저는 불교신도는 아니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며 자비와 평화의 정신이 한국과 한국 바둑계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기념차 한국 현대 바둑사에서 불교와 바둑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자료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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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와 바둑
1.부처님, 바둑을 말하다!
80년 이후 계속 되고 있는 부여 능사리 절터 발굴 조사에서 나온 백제 목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宿生結業 同生一處.
지난 생에 맺은 인연으로 오늘 이곳에서 만났다는 정도의 글로 7세기 백제인의 문장 구사력과 함께 불교의 윤희론이 잘 녹아 있음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백제의 불교는 웅진시대에 이미 사택지적비를 통해 그 수준과 실심함을 보여 준바 있다. 사택이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전재산을 들여 옥으로 만든 탑과 절을 지어 바친다는 비석의 내용은 능사리 목간과 함께 백제의 불교를 충분히 알려준다 할 것이다.
'주서'는 백제에 다탑다사(多塔多寺)라 하고 있다. 주서는 백제에 도사(道士)가 없다고 했다. 도사는 도교의 샤먼으로 수당시대 중국에 유행 하던 종교다. 주서는 백제에 바둑이 크게 유행 한다고 했다. 불교와 바둑이 25사중의 25사라 평을 받는 주서에 포착된 것은 불교와 바둑이라는 이질적(?)인 문화 인식에 일격을 가하는 기록이다.

해인사에는 8만대장경이 있다. 8만대장경은 당나라 시대부터 수집되고 송대에 정리된 중경목록(衆經目錄)을 모두 포함 하는 경전의 집대성이다. 이 경전속에 바둑을 논하는 기록은 모두 12종이나 된다.(장여인, 중국위기사에는 8종이 기록 되어 있다) 이 경전들 중 8편은 유마힐경, 불석장아함경, 중굴리라마경, 정법염처경, 별석장아함경 등으로 한결같이 불가에서 바둑을(박혁) 금하는 기록이다.박혁 또는 바둑 등이 음주, 가무, 도박 등과 함께 불법을 해치는 원악이니 철저하게 금지하고 주의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바둑이라기 보다는 주로 박혁을 말하고 바둑은 겨우 정법염처경이나 불본집행경(佛本集行經)에 와서야 나타난다.
- 요즘에는 혼례를 올리는 것도 시장판같다. 떠들고 춤추고 노래 하고 서로 희롱하며 만담으로 웃고 난리다. 염색한 옷을 입고 온갓 보석으로 치장하며 그림 화초 향을 모으는데 몰두하고 박혁, 저포, 위기, 쌍륙, 투호 등 별의별 놀이에 빠져 있다.

근래에 바둑사의 연구에서 고대의 박혁이 바둑이 아니라는 중요한 연구(김달수)가 나온 바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위의 8종의 불경속에 나오는 바둑의 기록들은 고려 대상이다. 박혁 저포 등의 폐해를 기록 하며 위기를 마지못해 끼워 넣은듯한 불본집행경을 주목하며 부처님의 원음을 살펴 보자. 부처님은 룸비니에서 태어나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신 79년을 인도를 주유 천하하셨다. 부처님 당시에는 문자가 없어 부처님 사후 5백년에 가서야 겨우 만들어진 경전이 중아함경이고 이마저 중국 한국등으로 전해지며 심각하게 교란된다. 그러나 부처님의 원음에 가장 충실한 경전이란 것에는 이론이 없는 경전이다. 이 중아함경은 놀랍게도 바둑, 장기를 한줄 언급하고 있다.
-바둑 장기는 승들이 불도를 닦는데 좋은 방편이다.
중아함경의 이 말은 '대보적경'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대보적경은 부처님 설법 49년중 가장 중요하다는 방등부에 해당 하는 경전이다. 초기 불교의 분위기가 바둑에 대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기록인 것이다. 그러나 후기에 와 만들어진 정법염처경은 전혀 동떨어진 논지를 전개한다.

해인사에 수 많은 해외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 오늘날의 중생들을 보면 매일 활쏘기, 저포, 바둑, 박혁 등에 몰두한다. 이런 일을 일삼아 생업을 게을리하고 생각도 마음도 없이 쓸모없는 일만 찾아 헤멘다. 이런(오락)것들은 몸과 마음을 망치는 것이다.
이 기록은 김달수가 말한 바둑과 박혁은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연구를 뒷받침 하는 것이며 동시에 불교안에서 바둑이 극과 극의 인식을 갖게 되는 분수령이다. 그러나 초기 불교의 시대에는 바둑이 승려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방편이라는 중요한 인식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공을 한 종교다. 불교는 한반도 일본에도 들어와 공전의 성공을 한다. 백제에는 일찌기 불교가 들어와 있었다. 초기 불교의 바둑의 긍정론의 증거는 중국 일본보다 한반도에 있다. 익산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수십점의 바둑알과 신라 분황사지에서 발굴된 15줄판 바둑판이 그것이다.
사찰터에서 바둑의 유물이 그것도 두곳에서나 발굴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려시대 일연 대사는 삼국유사속에 신충의 잣나무라는 바둑의 에피소드를 채록하고 있다. 불교에서 바둑을 금한다는 인식이 전재 되지 않고는 기록하기 힘든 일이다.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중세까지는 불교가 바둑을 배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방문한 불제자들. 매년 해인사를 찾는다.
바둑이 불교안에서 배척(?)을 당한것은 송대(고려말) 이후라고 본다. 김달수는 바둑, 저포, 박혁 등 반상게임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를 수당시대라고 한다. 송대에는 박혁이 모든 반상 게임을 총칭 하는 학술 용어로 인식할 정도였다고 한다.중국에서 불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수당시대다. 불교의 발전은 교리의 발전과 축을 함계 한다. 교리는 불경으로 나타난다. 불교가 발전하고 교리의 반영인 불경이 세련 될 수록 불경속에서 바둑이 배척을 당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경전에서 긍정의 모습이 부정으로 바뀌는 이유다. 뒤집어 말하면 북인도에서 남인도를 종단하신 '고타마시다르타' 즉 부처님은 '바둑은 승려들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 인식을 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바둑을 그렇게 말씀하셨다.(2007년 바둑시평)
http://www.youchanghyuk.com/news/viewpage.asp?pagec=30&seq=8367&gubun=all
(제가 눈여겨 놓았던 글인데..2007년도 바둑시평이고 글쓴분을 추측컨데 이청선생님의 작품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사이버 오로의 이 자료를 보면 거의 확실해보이는데요.(http://www.cyberoro.com/column/view.htm?column_no=4191&div=67&group=38) 어찌 글 개제를 허함을 받을지 몰라 고민하다가 염치불구하고 먼저 개제하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승락을 받고자 합니다^^:: 참고 사진은 제가 재편집한 것으로 원문이 그리 쉬운 글도 아니고 양도 적지아니하기에 눈쉬어가시라고 원문에는 없는 사진 자료를 첨부했음을 알립니다.석탄일을 맞이하여 의미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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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과 불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한국기원 총재인 이후락 불교 신도회장의 인솔하에 당시 한국 바둑계의 분열을 극복해보자는 뜻의 법회인 걸로 추정되는 행사였습니다.
2.부처 앞에서 한국 바둑 화합을 하다.
바둑의 정진을 위한 이색참선법회

28일 오전 한국기원 소속 고단자급 전문기사 20여명은 우리나라 바둑계의 보다 알찬 정진을 다짐하기 위해 불교회관 5층 법당에서 참선법회를 열어 이채를 띠었다. 이 날 참선법회에는 이서옹 조계종종정이 직접 나와서 한국기원 총재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 신도회 회장인 이후락 거사와 함께 참선을 인도했으며 기사들 가운데서는 조남철 8단 김인 7단 윤기현 7단 김재구 5단 정동식 4단등이 꼿꼿이 정좌 지그시 눈을 감고 참선을 했다.이 날 참선 법회는 한국기원 총재인 이후락씨가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가 지난번 통합을 이룩한 한국기원을 나갔던 기사들이 바둑에 전념하여 앞으로 있을 많은 기전에서 좋은 바둑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기위해 정신자세를 일신시키려고 특별히 마련된 것. 흰 석고불상앞에 촛불을 밝히고 이종정과 니총재를 마주보고 앉은 기사들은 한시간동안 참선을 했는데 참선이 진행되는 동안 법당안은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참선에 들어가기전 이서옹 종정은 법어를 통해 '승부를 다투는 바둑을 지혜만으로 두어서는 좋은 바둑을 둘 수 없고 바른 자세와 바른 마음으로 바둑에 정열을 기울여야 좋은 성과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후락 한국기원 총재는 참선 강의에서 참선을 하는 요령들을 직접 기사들에게 설명하고 이 참선은 이날 한 때에 그치지 말고 앞으로도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도 참선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줄 것을 당부. 참선이 끝 난 후 이총재와 전문기사들은 불교회관에서 준비한 점심 공양을 함께 들기도 했다. (1976년 12월30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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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둑으로 淸淨心을 찾다.
바둑과 국민성

석가탄신일은 1975년 부터 어린이날과 함께 국정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바둑 실력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두고난 한 판의 바둑을 쉽게 복기할 수 있다. 이백여 수에 달하는 한 판의 바둑을 착오없이 복기할 수 있음은 그 기사가 남달리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고 두어진 바둑 자체속에 담겨진 논리의 줄거리를 따라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수학도가 수학의 문제를 한 번 풀어보고 거의 일관된 논리를 이해했다면 그 논리의 순서에 따라 언제나 다시 풀 수 있는 바와 같다. 그러므로 바둑은 수학교육과 비등한 논리적 사고 훈련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 훈련의 가치에 못지않은 또 다른 가치를 바둑은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둑이 줄 수 있는 유현한 동양적 정취다. 바둑기사가 고요히 반면을 응시하며 정신을 집중할 때는 그의 마음은 모든 잡념이나 욕망이 없는 무념의 상태에 가까와진다. 완전한 무념의 경지는 동양문화의 만은 분야에서 추구했던 심상으로서 불교의 空, 유교의 誠, 또는 노자의 虛 등은 이러한 상태를 뜻하리라.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소극적인 빈 마음이 아니라,무한한 가능성에 충만해 있는 자유로운 淸淨心 또는 精心 이다.이 精心의 상태에서 홀연히 깨달음이 오면 바둑기사는 자기 실력 이상의 수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깨달음의 창조적인 기쁨 때문에 기사들은 바둑을 사랑한다. 이러한 정신의 창조 활동은 기보에 의하여 기록 될 수 있어서 기보 독자가 이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음도 또한 바둑이 가진 德性의 하나.

바둑은 옛날부터 동양의 지식층 사이에서 애용되어 왔으며 바둑에서 哲人들은 天理를 보고, 道人들은 인생을 보고, 武人들은 병법을 보았다고 할 만큼 상징적인 면이 깊으며,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 사절과의 친선을 위한 실용적인 면도 있었다. 바둑은 동양에서는 일본, 서양에서는 독일이 가장 널리 발달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들의 조직적인 국민성의 기호에 맞기 때문일 듯. 독일과 일본이 이제 모든 선발국들을 제치고 경제적 강대국으로 부상하게됨은 그 국민성에 기인한다고 보면 그들이 바둑을 좋아함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 아니다. 쇠는 쓰지않으면 녹슬고. 물은 흐리지 않으면 썩는다. 우리의 心身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들이 아침에는 육체적인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정신적인 운동 즉 바둑 한 두판 두어서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하면 얼마나 좋을까.(1980년 12월 23일 경향신문/ 한국기원 이사장 이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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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규장각속에 바둑이 있다.
규장각의 바둑

(불교와 바둑에 대한 기사를 위해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서버를 검색했더니 저 외에도 여러가지의 다양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그 중 흥미로운 내용의 기사를 쓰기는 썼는데..양도 많고, 좀더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 있었고, 지금 윗 기사의 양도 많아 아무래도 차후에 별도로 기사화함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차 후에 뵙겠습니다.^^ )

(타이젬 i진선)
(나머지 회차는 화면을 클릭하시면 우측에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i진선 한 마디]
어떤 자료는 30~40년 전 글이라서 최근 어법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세로쓰기를 가로 쓰기로 바꾸면서 최근 식으로 교정, 요약하였음을 밝힙니다. 일부 사진자료와 영상자료는 제가 글의 취지에 맞게 첨부했습니다. 타이젬 가족분들 모두 대자대비의 석가탄신일과 주말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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