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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쯔배, 첫 총각 우승
후지쯔배, 첫 총각 우승
2011-08-10 오전 10:55:10 입력
후지쯔배, 첫 총각 우승

"으흐흐흐 나 일지매 총각^^::"
1993년 8월 7일 일본 동경의 일본 기원에서 열린 「제6회 후지쓰배 세계바둑 선수권대회」결승전에서 조훈현 9단을 맞아 黑 잡고 310수만에 6집반승을 거두어 세계기전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처녀우승이 아니라 총각 우승. 그런데 18년전의 이 미남 총각의 세계기전 우승이 그 후의 수 많은 우승보다 왜 더 큰 의미가 있는가.

당시에 조훈현과 이창호 서봉수의 세계기전 정복은 이미 성취했고, 제6회 후지쯔배 우승으로 세계기전 그랜드스램달성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즉 1993년은 한국 바둑이 세계 바둑계의 장악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해. 2월에는 단체전 진로배, 5월에는 서봉수9단이 응씨배를 그리고 6월에는 이창호 6단이 동양증권배를 마지막으로 8월에는 유창혁 6단이 후지쯔배 정복으로 산뜻하게 마무리하여 바둑팬들의 입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더우기 5회까지는 일본기원이 후지쯔배를 독점하던 상황. 한국이 첫 우승을 차지한 의의도 크니, 유창혁 본인에게는 난생 처음 세계기전 총각 우승이요, 한국 바둑계로서는 바둑史상 첫 그랜드 슬램이요, 후지쯔배로서는 일본이 우승하지 못한 첫 대회니 이래저래 찾아볼 의미가 깊다. 이미 83년도 상반기만해도 유창혁은 승률이 무려 80.9%로서, 이창호와 함께 조훈현-서봉수 체재의 한국 바둑계를 서서히 파괴하는 중, 세계 최강의 대열에 올라선 것도 우연 아니다.

일지매 혹은 어린왕자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미남 총각 유창혁은 바둑 습득의 과정이 남달랐다. 한국 바둑계에서 가장 신수를 많이 구사한 신수 발명가로 꼽히던 유창혁, 마침 부친 유희범씨는 대전 지방에서 소문난 발명가. 초등학교 교사였던 모친 추길자 여사는 거의 모든 일간지의 기보를 모아 항상 스크랩하여 보여주고 읽히면서 바둑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도록 했다고. 위기 상황에서 번뜩이는 재치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독창적으로 수순을 밟아가는 능력은 부모님의 가정 교육의 영향이 크지않았을까?

초등학교 6학년때 당대의 최고 아마 기전이던 제 6회 학초배 전국 아마대회에서 날고 기는 전국 아마 최강자들을 무찌르고 역대 최연소 우승을 했다. 이 시기 이 후로 아쉬웠던 것은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 한동안 바둑계를 떠나있었던 것. 약 3여년 간의 기다림 끝에 고1의 소년 유창혁은 다시 제 17회 전국 아마대회에 홀연히 나타나서 생각지 못하던 신수로 아마 강자들을 연파하고, 당대 최강자 임동균 아마 6단을 꺽고 한국 아마 바둑계를 평정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일지매라는 별명은 그의 아마 시절의 활동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세계기전 활약이 기대되는데요^^ 언제?" "훔..그거 알려주면 일지매가 아니죠 ㅋㅋㅋ"
최근에도 유창혁 9단은 다양한 활동으로 동분서주. 거기에 자녀 사랑이 지극하여 교육에도 힘쓰느라고 '아빠 유창혁' 은 '총각 유창혁'때 보다 몇 배 더 힘들다. 그래도 바둑 팬들의 사랑과 성원으로 다시 일어나서 반드시 세계기전의 우승을 할 수 있는 여력 정도는 아직 갖고 있다. 신출귀몰했던 총각 유창혁,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일지매다.
[i진선 한 마디]
한국 선수단과 한국기원 관계자, 물론 타이젬의 후지쯔배 특파원 김지은 기자가 오사카 현지에서 제 24회 후지쯔배대회를 위하여 열심히 준비중입니다. 시작되면 바로 연타석으로 1주일동안 대회를 치치룹니다. 상당히 준비할 것이 많아서 매우 바쁠 겁니다. 후지쯔배 상황이 어찌되나 궁금해하시는 바둑팬들이 많지요. 곧 관련 기사가 쏟아질 겁니다^^:: 원래 주말에 올리려고 준비한 기사인데...지원하느라고 오늘 올립니다^^ 후지쯔배 관련기사도 몇 개 준비중입니다. 대회 진행상황 봐서 곁눈질 하다가 올리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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