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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最古의 기보 발견
한국 最古의 기보 발견
2011-08-06 오후 4:30:12 입력
한국 最古의 棋譜

얼마전부터 한국기원 홈페이지 바둑의 역사란 소개란이 바뀌었다. 그동안 최남선의 조선광문회판 기보가 한국 최고의 기보였던 것이 민백흥기보로 교정 되었다. 최남선기보보다 무려 15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발굴이자 발견이다.
http://www.baduk.or.kr/baduk/history.asp
한국 바둑史적으로 의미있는 이 자료의 발굴자는 바로 바둑 사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청 선생.
[기론]은 1765년 영조41년 여름, 필사자 민백흥(閔百興, 1715-?)이 썼다는 서명날인과 기론, 상수도, 기보 등이 편철된 책으로 그동안 1900년 초반에 머물러 있던 한국 기보의 최초 연도를 무려 150년이나 끌어올렸다. 이외에도 2010년 6월 바둑사학자 이청이 소개한 장서각 기보 두 종도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로 추정할 뿐 제작 연도를 알 수 없었는데 이 기보의 등장은 이런 아쉬움을 일거에 씻어준다.
불과 수년전에도 한국바둑의 최고 기보는 '현현기경' 수종과 채극문의 '신정기보'가 있고 실전 기보로는 김옥균과 수영의 6점 기보와 백남규와 일본 프로가 둔 순장식 기보로 알려졌으나, 민백흥의 '기보'는 구한말에 머물던 조선의 바둑을 조선의 중심부로 진입시켰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인 발견이다.

금산 청풍사는 야은 길재 선생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 민백흥이 금산 군수 재임시절에 완공했다.
기보 작성자는 민백흥. 기지(起之)라는 자(字)를 쓰던 그는 '한국역사인물사전'에 간단한 이력만 전하는 인물이다. 민백흥은 여흥민씨로 문과 급제 후 금산군수, 충청도관찰사, 이조참판을 역임한 명필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민백흥의 자료를 찾아보면 조선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수백 건이 올라 있을 정도로 결코 간단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직 남아있는 민백흥이 쓴 고궁박물관의 '저경궁추기(儲慶宮追記)'라는 현판이 그의 필체를 전한다.
[기론]은 '논설' '상수도' '기보' 3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바둑을 초연수(焦延壽, 한말의 역학자), 사마광(司馬光, 1016-1086) 등의 역사상(易思想)으로 파악하려한 것이 특징이다. 민백흥은 바둑을 역(易)과 역(歷)의 어떤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민백흥은 하늘과 땅과 사람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우주는 그 기능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 땅 사람이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조선의 유학자면서도 정통에서 한발짝 벗어나 있는 초씨나 경방류의 상수를 주목한다. 우주는 인간의 마음이다. 우주를 사는 인간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치다. (그러나) 심하게 변하는 것이 우주고 사람의 마음이다. 하여 인간은 무궁한 변화의 수에도 능통해야 한다. -기론

금산은 9월에 열릴 세계인삼엑스포 준비로 바쁘다.
작년에 이어 제2회 금산인삼배 아마바둑대회도 성대하게 개최할 예정이다.

민백흥이 말하는 변(變)은 주역의 그것이다. 주역은 세상의 현상을 수(數)로 파악하고 파악한 수를 괘(卦)를 통해 상(象)으로 변환시켜 이해한다. 이 과정에 '의리'와 '상수'론이 등장하는데 민백흥이 말하는 역은 초연수의 역림(易林)과 사마광의 잠허(潛虛 )다.
초연수는 상수역의 비조로 그의 역학 아래서 일원(一元 : 우주가 129.600년을 한주기로 생성한다는)을 주장하는 학파들이 생겨났다. 사마광의 잠허도 이런 생각의 반영이다. 민백흥은 바둑을 주역의 상수의 반영으로 보고 있다. 바둑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인간이 사업을 머리가 하얗토록 힘써도 이루기 힘들 듯 바둑의 수도 애쓰고 힘을 써도 능히 고수를 구하기 힘들다. -기론
민백흥은 바둑 속에 상수사상이 묻어 있다고 말하며 [기론]의 다음 페이지에 '상수도(象數圖)'를 배치해 놓았다. 바둑을 '하도낙서'로 이해하려한 시도는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육구연이 바둑판 속에서 하도낙서의 비밀을 깨우쳤다는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에피소드를 조선 사람 민백흥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민백흥은 바둑 속의 천변만화의 '상수'의 모습을 느끼고 주역의 철학이 녹아 있다고 보고 바둑 앞에 겸손하라 말한다. 그 말은 주역을 잘 아는 자는 주역에 묻지 않는다(善易者不問易)는 고전적인 주역관의 반영이다. '기보'는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하다. 프로기사가 포함된 진일보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베일에 쌓여 있는 조선바둑의 실체를 일정 부분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기보집 [기론]은 작자와 제작 연도가 정확한 국내 최고본 '기보'다. 제작자 민백흥은 바둑을 일개 오락으로 보지 않고 주역의 한 방편으로 이해하려 했다. 이 점은 동아시아 삼국의 바둑관에 바둑을 단순 오락으로 치부하지 않던 풍조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고려시대 유학자 길재-조선시대의 정신문화 유학-사람을 살리는 인삼의 산지 금산-유학자 바둑인 민백흥」이렇게 일련의 연결고리가 성립되는 모습이 흥미롭다. 민백홍은 바둑을 통해 후세인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연구 결과가 주목된다.
[i진선 한 마디]
바둑사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이청님은 이 기보 말고도 15종의 기보를 더 발굴했었습니다. 그 중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순장식 보다도 더 오래된 사배자(중국)식 완전한 기보도 찾아냈죠. 바둑사학자이면서 바둑자료 발굴가 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한국 바둑 기록 문화는 아직은 우물안의 개구리 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바둑으로 박사학위를 딴 분들이 여섯분이 넘고 각종 우수한 논문이 수십건 발표되었지만, 아직 바둑계의 관심은 별로 크지를 않습니다. 앞으로 부안 바둑공원에 전시될 귀중한 바둑 문화 자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최근 눈수술을 하고 기사 쓰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자 이청선생님께서 아주 의미있는 귀한 소스를 제공해주셨습니다^^ 솔직히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고민스럽기는 하지만..하여간 민백흥님은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고..유학자이면서..야은 길재 선생님의 사당도 짓고 많은 작품도 남기셨는데, 바둑에도 조예가 깊은 바둑인 이셨다...는 내용이 가장 핵심이겠지요^^ 변이니 주역이니 상이니 하는 것과 바둑속에 상수사상이 있다는 바둑 철학을 발견하신 부분은 굉장히 대단합니다. 바둑의 원리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밝혀내는데 일조하신 민백흥선생님께 끝없는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그리고 묻힐 수도 있는 사료를 발굴하신 이청님께도 마찬가지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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