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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바둑계의 현실
대만 바둑계의 현실
2010-09-24 오전 9:59:24 입력
대만 바둑계의 현실

"아 나...기분 좋아^^준우승도 괜찮다해^^::"
얼마전 16세의 소녀기사 黑嘉嘉가 중국에서 새로 창설한 궁륭산병성배 라는 여류세계기전에서 준우승하여 대만 바둑계가 떠들썩하다. 각호 신문은 물론 방송 뉴스에도 빠지지 않고 열광했다.
겨우(?) 여류 세계기전 준우승인데 그렇게 떠들썩하다고? 알고보면 대만 출신 프로기사들이 일본 바둑계를 휘어잡고 있는데도? 대만 출신 일본 프로기사는 한 둘이 아니다. 비록 세계기전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만 출신 프로기사들이 일본 바둑계를 점령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張栩(장쉬) 9단과 謝依旻(씨에이민) 7단. 장쉬 9단은 일본 7대기전을 모두 경험해본 두번째 기사다.(첫번째는 조치훈 9단). 씨에이민 7단(이하 단위생략)은 연초에 여류기성전을 접수하여, 여류 본인방-여류 명인전과 더불어 일본 여류 3大기전을 보유중이다. 대만 출신 프로기사들의 일본 바둑계에서의 활약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중허리로 한국 바둑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林海峰을 출발점으로 林子淵-林漢傑 (三林?)에 이어지더니, 王서방으로 이어진다. 바로 왕립성(王立誠)과 왕밍완(王銘琬). 그러더니 장씨 정씨 황씨 양씨 성을 가진 대만 출신 기사들이 일본 바둑계로 다투어 몰려와서 일본 바둑계를 아예 장악을 해버렸다. 비록 한국으로 바둑 유학와서 뚜렸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서 바둑 대중화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천스위엔-장정핀 대만 프로기사 커플도 대만 출신이다. 지금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만 출신 프로기사는 22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 바둑계에서 훌륭한 프로기사들을 많이 생산한 대만 바둑이 정작 대만 바둑계로 들어가면 현실이 고달프다.
黑嘉嘉의 여류 세계기전 준우승에 열광하는 이유는 일본 바둑계에서 아무리 대만 출신 프로기사들이 활약을 해도 정작 대만 대중 바둑 발전에는 큰 도움을 주지를 못했기 때문. 아무리 일본의 7大기전과 여류 3大기전을 휩쓸어도, 막상 일본 바둑이 세계기전에만 나가면 한중선수들에게 박살이 나는 ,일본 바둑이 더 이상 리딩 코스가 되지 못했다. 가고 싶지않은 길. 삼성화재배에 연이어 열린 궁륭산병성배의 일본기원 소속 기사들의 성적을 보면 항상 그렇듯이 썩 좋지않다. 일본 여류 3대기전을 휩쓸고 있는 씨에이민은 중국 신예 탕이와 8강 대결에서 탈락. 일본 전통의 기전 본인방 보유자 하네 나오키는 32강전에서 탈락했다. 더구나 일본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한국 민상연에게 무릅꿇다니.(관련 기사는 차후에) 이래저래 대만 바둑 발전을 위해서는 대만 출신 일본 소속 프로기사보다는 대만 소속 16세 소녀기사 黑嘉嘉가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 그동안 왜 대만 바둑계에 왜 프로기사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해외로 떠나야만 했을까. 반드시 대만 국내 기전이 취약해서만 일까. 대만 바둑사를 약간 조명해보면 해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중국 바둑史 자료를 보면(hmjbj님 제공) 대만 바둑은 1937년 상하이에서 설립된 中國圍棋社가 첫걸음이다. 대륙의 소용돌이를 피해서 대만으로 이전하였다. 공식적으로는 1952년 응창기(應昌期)씨가 재건. 명칭은 中國圍棋會. 대만 현대바둑 초창기에 소년 임해봉을 발굴하여 일본으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대만 바둑은 꽤 발전했었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바둑을 "자본가의 놀이"라하여 바둑 고수들을 돼지 농장으로 보내던 시절. 대만은 바둑 교육에 대한 나름의 기초가 있었다. 출발 여건은 한국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데 왜 대중화에 실패하고 말았을까?

(대만 기원 건물 사진 찾는 중인데..이쁜이 사진이라도..^^ )
이미 대만안에는 대륙에서 진입해온 상하이파 이전에도 토착 바둑계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중국 각지에서 몰려온 바둑인들이 각자의 바둑 단체를 조직했다. 현대 바둑을 일찍 시작하고도 일본으로 수 많은 바둑 영재를 보내면서도 막상 대만 프로기사제도는 만들지를 못했다. 1979년 4월에 가서야 저우센헝 등을 비롯한 프로기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 후 대만 명인전등 각종 대회를 창설하기는 했으나, 운영 주체를 놓고서 싸우기 시작한다. 응창기를 대표하는 상하이파와 그에 맞서는 대만파의 갈등은 심각한 지경. 응창기파가 초강수를 둔다. 1983년 8월 19일에 응창기씨는 평생 모은 재산의 일부를 떼어내어 응창기바둑기금회를 설립하고 응씨배 세계기전을 창설한다. 물론 대만 바둑계와는 다른 별도의 단체를 새로 만들어 나간다. 응창기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대만 바둑계를 장악하는가 싶었는데, 1988년 11월 27일에 기존 대만의 '중국바둑회'의 일부 세력들이 빠져나와서, '중화민국바둑협회'라는 새로운 바둑 단체를 만드는데, '중화민국'이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대륙파, 특히 상하이파 응창기씨와는 첨예한 대립 단체이다. 주도자는 양태웅. 이것이 끝이 아니다.

"다 내 얼굴만 쳐다보네 ㅋ"
1998년에는 하이펑(海峰)기원(임해봉 이름을 딴 듯)이 또 설립된다. 설립자는 林文伯으로 중화민국 바둑협회를 창설한 양태웅이랑 친분이 깊다. 하이펑배등 기전을 창설했다. 2000년에는 대만 바둑계의 대통합을 내세우면서 대만 최고 재벌 중환그룹의 웡밍셴(翁明顯) 회장이 대만기원문화기금회를 조직한다. 중환배 창립. 기타등등 이렇듯 이리저리 바둑 단체를 만들고 나니 대만 바둑 단체 명칭으로만 검색되는 것이 무려 100여개가 넘는다. 이리 모였다가 저리 모였다가. 이렇듯 갈등을 보이다가 가장 최근 2008년에는 대만기원에서 소속 프로기사들에게 '순종서약서(?)' 파동이 일어난다.(즉 대만기원이 대만 바둑계의 유일한 단체로서..대만 기원의 명을 받들어 어쩌구저쩌구...순종하겠습니다. 도장 꽝) 대만 프로기사 십여명이 순종서약서 서명을 거부한다. 대만 기원은 이들 기사에게 국가대표권을 박탈등 모든 기전에 5년간 출전 정지시키는 처벌을 한다. 이에 저우쥔쉰을 비롯한 순종서약서 서명을 거부한 기사들을 중심으로 '중화프로바둑협회(中華職業圍棋協會; 타이베이)' 설립하여 나가지만 2009년 9월에 수정동의안 서명의 타협이 이루어져 대만 기원으로 복귀한다.이 처럼 복잡한 대만 바둑 단체史 덕분에 프로기사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대만을 떠나 일본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대만 바둑계의 현실. 수 많은 바둑 단체의 난립속에서 재능있는 소년은 프로기사가 될 수가 없고, 프로기사가 되어도 밥 먹고 살 수가 없어서 대만을 등지는 악순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최근 대만정부의 적극적인 바둑 지원과 대만 바둑계의 단합 분위기, 黑嘉嘉를 비롯한 새로운 스타 탄생등으로 기지게를 펴고 있다.
黑嘉嘉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가 일본에 있었다.
| ....처음에 대만 바둑계도 거부했었다..... 黑嘉嘉는 일본에서 바둑 활동을 하고 싶어했다. 일본 프로기사 입단 시험을 치려고 했으나 일본 기원은 국적을 문제삼아서 거부했다. 호주바둑회장이 일본기원장 오다케에게 특례를 인정시켜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지만, 결국 무산. 黑嘉嘉는 결국 중국으로 가서 입단에 성공한다. 역시 국적 문제로 중국내 기전 활동이 금지된다....다시 모친의 국적국인 대만으로 들어간다. 대만에서 입단 시험을 치룬다. 6연승(?)을 거두어 입단 성공. 일본 여류기사 전멸에 여류 3大기전 보유자 씨에이민마저 8강 탈락, 일본 기원 입단 거부된 黑嘉嘉는 세계기전 준우승. 일본 바둑의 현실이 이러하다...(일본 바둑코너 바둑팬) |
대만 바둑계가 黑嘉嘉라는 미모의 프로기사의 출현에 환호하지만, 궁륭산병성배에는 호주대표로 참가하여 준우승했다. 아시안게임에 공식적으로 대만대표로 나섬이 진짜다. 저우쥔쉰과 더불어 장쉬와 씨에이민등 일본 활동 대만 기사들이 총 출동하여 아시안 게임을 준비중이다. 한국-중국의 경쟁 틈새에서 일본-대만의 의외 선전할 수도 있다. 黑嘉嘉 준우승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듯이.(업글편집중입니다.)
(타이젬 i진선)
[i진선 한 마디]
대만 기원은 건물이 없나? 기사에 올리려고 찾아봐도..우째...대만 바둑의 과거의 사진 자료도 찾을 수가 없어요ㅡ.ㅡ:: 최근의 黑嘉嘉만 사진만 왕창..대만 바둑계는 한국의 한국기원, 일본의 일본기원 등 처럼 뚜렷한 지도자나 큰 줄기의 바둑단체 역사는 없고, 온갖 잔가지만 무성해서 헷깔리네요ㅡ.ㅡ:: 아무리 훌륭한 인재가 나와도 단합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교훈을 받았습니다.
업글중
목진석 3행시 우수작품 입니다^^::

우수장 시상은 추석연휴가 끝나야 전달될 듯 싶습니다. '석'자를 글 잇기가 힘들었는데..대단하시네요^^ 기다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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