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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정상에 다시 서리라!

국가대표상비군 전지훈련 3박4일

2014-06-13 오후 2:07:14 입력 / 2014-06-20 오후 12:35:18 수정

▲ 국가대표와 상비군이 강릉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희망의 아치를 배경으로 찰칵.

4월초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가대표상비군의 새로운 사령탑이 된 유창혁 선배였다. 필자에게 입단동기 최명훈과 함께 국가대표 일을 맡을 의향이 없느냐는 얘기였다. 그리하여 예정에 없던 전력분석관이 되었다.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선수구성과 선발전을 통해 29명과 육성군 4명을 포함해 총 33명이 2014 국가대표팀이 되어 5월 7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공식훈련을 시작했다.

처음 코칭스텝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과연 자유롭게 살던 프로선수들이 새장 안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여부였는데, 이창호 이세돌이 국가대표 훈련실을 찾으며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더군다나 랭킹1위 박정환과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지닌 강동윤이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하자 후배들이 힘들다는 표현을 하기 창피한 상황이 되었다. 김지석 조한승 목진석은 육성군과 여자기사들의 복기를 도와주며 확실한 서포터를 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건 지난해 한국바둑이 세계대회 무관이 된 영향이 크다. 지금까지도 한국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는 기사는 많지 않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분명 있을 것이고 과연 지하 몇 층까지 있을지 모르기 때문. 이런 위기감이 피부로 느껴지자 그 동안 상상하지 못한 집단 훈련 방식이라는 극약처방이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훈련을 한 달 간 하면서 좀 더 끈끈한 팀워크를 다지는 방법으로 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 간 전지훈련을 하게 되었다. 장소는 LG배가 열리는 강릉.


▲ 국가대표와 상비군선수가 경포바다에서 또 한 컷.

▲ '뭐가 그리 즐거울까? 꺄르르 또 꺄르르…' 좌로부터 김윤영 김혜민 박태희 최정 오정아 김채영 오유진.

단합과 체력을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등산이다. 강릉으로 가기 전에 버스가 향한 곳은 오대산 국립공원에 속한 계방산(1577m). 들머리인 운두령 (해발1087m)은 영동고속도로 속사IC에서 빠져나와 20분 정도를 홍천방향으로 가면 된다. 산에 가기 싫은 눈치들이 많았지만 막상 오르기 시작하니 아직 어려서인지 몸들이 가볍다. 이럴 때 보면 체력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싶을 때가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9.2km에 6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는데 3시간 40분 만에 내려왔다. 더군다나 중간휴식 30분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기록.

32강전이 열리던 9일 대진이 빡빡하게 짜여졌다. 한중전만 성사됐기 때문에 더 빽빽한 대진으로 보였다. 32강에 오른 10명의 우리 기사 중 반타작만 해도 다행으로 보였다. (타이젬 뉴스동영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대 중국전 6승4패를 거두며 6명이 16강에 올랐다. 비록 숫자는 지난해와 같은 6명이지만 랭킹상위자가 대부분이고 변상일도 다크호스여서 기대감만큼은 지난해와 완전히 달랐다.

가장 아쉬운 바둑은 역시 이세돌의 패배였다. 판팅위를 상대로 초반부터 안 좋았던 바둑이 끝까지 이어졌다. 대국이 끝나고 검토실에 나타나 혼자서 자신의 패인을 끝까지 찾아냈다. 옆에서 자신의 의견을 경청해 주는 것이 고마운지 별의별 수순까지 다 보여준다. 이럴 때 보면 한판의 집중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같은 프로 입장에서 새삼 부러워진다. 이제 자신이 왜 졌는지를 알아냈던지 훌훌 털고 일어나 서울로 향한다. 또 바둑리그 경기가 있다.

▲ 필자가 유창혁 감독이 16강 대진추첨 결과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국가대표와 바둑리그 SK엔크린 선수단이 가세한 검토실은 그동안의 썰렁한 프로대회와는 분위기가 엄청 달랐다. 응원단 있다고 선수들이 힘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기운 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16강 대진 추첨 때 유창혁 감독과 속으로 환상의 대진을 외쳤다. '중국 랭킹1~2위를 다투는 스웨와 천야오예가 만나라! 플리즈~'

정말 그렇게 됐다.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중국의 우승후보 한 명을 쓰러트렸다. 추첨 여덟 번 중에 다섯 번을 맞추자 우리의 완벽한 오더가 나왔다. 계속된 패배가 기대치를 낮게 만든 이유로 쉽지 않겠다는 전만도 있었으나, 프로에겐 느낌이 있다. 바람이 우리 쪽에 불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다분히 느끼고 있었다.

10일 선수들이 하루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는 날. 국가대표팀은 오히려 지옥훈련을 했다. 일명 '속기 팀 연승전.' 최명훈 코치가 고안해 낸 방식인데, 선수들 훈련 방식을 고민하다 만들었다고 했다. 결과는 기술위원 목진석이 무려 13승을 했고 안성준도 9승.

▲ 속기 팀 연승전 모습.

▲ 이창호와의 대화 시간.

밤까지 이어진 훈련을 끝내고 다시 선배와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국가대표 팀 비장의 카드 이창호와의 대회시간이었다. 어린 후배들은 몹시 기다렸을 코너였는데, 다들 귀를 쫑긋하고 경청했다. 주로 경험에 관한 질문이 많다.

'바둑을 지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 하시나요?' 시선이 모아지자 이창호는 바둑 두는 것만큼이나 느릿하고 신중한 말투로 '그냥 걷는데?' 라고 말을 시작해 좌중에 웃음을 선사한 후 느릿하게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대화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모두 끝났다. 바둑 기술 하나 더 배우는 것보다 가끔은 말 한마디를 제대로 듣는 게 나을 때가 있다. 더욱이 이창호의 노하우가 담긴 경험담은 금과옥조에 다름 아니다.

11일 16강전이 벌어진 날 12시쯤이 되자 전체적인 초반 윤곽이 드러났다. 초반을 실패한 변상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세. 8강 5명 진출도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멘트들이 검토하던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나온다.

▲ 검토실을 가득 메운 채 검토에 열중하는 상비군.

가장 먼저 김지석이 리저를 KO시키고 검토실로 들어온다. 6월 잔여 시합 결과에 따라 프로가 된 이후 처음으로 랭킹1위에 오를 수 있는 그. 향후 바둑계는 이세돌 시대에 이어 박정환 시대를 예견하고 있지만 중간에 김지석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세계대회 4강이 본인의 최고 성적이지만 조만간 기록을 뛰어 넘을 것 같다. 역시 처음에 말한 프로의 느낌이다. 자기 관리 역시 역대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만큼 4살 어린 박정환과도 함께 공동의 시대가 열 확률이 매우 높다.

박정환은 '한국킬러' 탕웨이싱에게 승리했다. 강동윤이 판팅위에게 패한 것이 무척 아쉽지만 8강에 우리 탑 랭커 4명이 오른 만큼 우승의 기대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보다 성적이 나아진 것이 이제 시작한지 한 달 된 국가대표의 힘이 많이 좌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지훈련 장소로 강릉을 선택하며 혹시 우리 선수들 성적이 나쁘면 어떻게 하나 고민도 참 많았다. 그런 부담을 벗어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온갖 수모를 겪으며 결국 선진국 일본을 이겼다. 우리 후배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해 한국을 제치려는 중국을 이겨줬으면 한다. 항상 응원하고 싶다. 팀 코리아 파이팅!

▲ 오대산국립공원 계방산(1577m)정상에 오른 국가대표상비군. '그대들도 언젠가 정상에 오를 것이니…'
TYGEM / 김성룡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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