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부따
칼럼-진한 승부의 열정 을조리그
항저우 을조리그 참관기
2014-05-03 오후 2:34:40 입력 / 2014-05-05 오전 9:05:26 수정
▲ 항저우 을조리그의 현장. 여자을조 남자병조리그도 함께 열렸다.
4월 28일 중국 항저우(杭州) 샤오산국제공항은 국제선 운항 편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한적하다. 올해만 세 번째 항저우행이다. 이번엔 중국 을조리그와 리민배 신예세계대회를 참관하기 위해서다. 겨울이었던 2월 한중교류전, 봄을 만끽했던 3월의 초상부동산배에 이어 한달 간격으로 계절의 변화를 맞보고 있다. 4월말의 항저우는 이미 여름이다.
저장성을 대표하는 항저우에는 두 개의 기원이 있다. 서호를 중심으로 한 항저우기원, 샤오산을 중심으로 한 명사(明仕)기원이다. 이번 을조리그 대회후원은 샤오산 측이 했고 명칭도 명사배로 정했다. 공항이 속한 구(區)에서 치러지는 만큼 가까운 거리인 줄 알았는데, 2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목적지까지 50분이나 걸렸다. 과연 중국은 넓다.
갑조와 달리 을조는 16개 팀이 이틀간 휴식 일을 포함하여 9일간 일곱 판을 한꺼번에 치른다. 병조 22개 팀과 여자을조도 같은 장소에 치르다 보니 선수들만 무려 196명에 달했다. 각 팀 단장과 코칭스텝까지 합치면 거의 300명에 육박하는 규모. 점심 휴식시간을 없애려고 대국은 12시 30분에 시작한다.
시합장인 샤오산 바오싱(宝盛)호텔의 8층 메인 홀에 들어서면 출입문 앞쪽에서부터 여자 을조 그룹이 대국한다. 익숙한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세계대회에서 만나는 중국여자기사는 갑조 선수다. 갑조로 진출하려는 네 팀이 한국 용병을 불렀다. 박지은, 이민진, 김채영, 오유진. 갈현 녹차배 대회 일정이 겹치지 않았다면 최정, 김혜민, 오정아도 진출했을 것이다.
▲ 이민진(왼쪽) 리허(왼쪽에서 두번째)는 한 팀이었다.
박지은과 오유진과 '자매 대결'을 하고 있다. 여류국수전 패배를 겪으면서 심경의 변화가 왔을까. 박지은은 단발 커트에서 파마로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10번기 9국이 열릴 예정인 우후 지역 팀에서 여자 최고대우를 약속했다. 중국 국가대표 리허와 함께 뤄양팀이 된 이민진이 1승당 1만 위안(약 170만원)으로 최고 대우를 경신하자, 박지은도 계약을 바꿔 1만2000위안(약200만원)으로 체면을 살려 줬다고 한다. 박지은의 이름값이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여자리그는 갑조나 을조 모두 아마추어의 참가를 허용한다. 을조에는 44명 중 18명이 아마추어일 정도로 프로 아마 혼합 팀이 즐비하다. 가장 눈에 띠는 미모의 여자기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 사람이다. 상하이외국어대학 2장으로 출전했는데 3학년 유학생이라고 했다. 여자 연구생 1조 출신인 이수엽 아마6단. 한국 여자 용병은 4명이 아닌 5명이었다.
낯익은 얼굴들이 차츰 들어온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의 미녀기사로 유명했던 마오자쥔도 띄었는데, 지금은 마오위헝으로 개명했다. 한 아이 엄마가 되어 항저우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여자리그가 생기자 다시 승부사로 돌아왔단다. 또 한명은 판웨이징(베이징대 졸업). 2000년대 후반 중국여자 국가대표를 역임했는데, 왕상윈과 더불어 대학진학을 하며 바둑계와 멀어졌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자 기사들의 환경은 열악하다. 지난해 여자리그를 시작한다고 하자 그 소식을 들은 중국의 30대 아줌마 기사들은 많이 울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전성기엔 이런 대회가 없었다는 뜻일 테다.
▲ 중국의 미녀기사 마오위헝.
▲ 중국에서 유학중인 연구생1조 출신 한국의 이수엽.
여자리그 반대편은 남자 병조리그 시합이 한창이다. 10년 전 필자가 을조 선수로 참가할 때엔 병조는 없었다. 중국의 프로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10년 전에도 을조에서 활약했던 내 또래의 30대 '노땅'들도 보이고, 이제 갓 입단한 기사들과 각 팀 아마추어를 한명씩 보유할 수도 있어서인지 후위칭 아마7단의 모습도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관심이 가는 두 팀이 있다. 대만과 일본팀이다. 세 팀이 을조로 승격하는 시스템에서 병조는 올해만큼은 무관심 경기가 아니다. 대만대표팀이 역대 최강팀으로 나왔고, 일본대표팀도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신예 4명이 참가했기 때문.
대만은 6라운드에서 승리하며 7라운드와 관계없이 을조 승급을 확정지었다. 천스위엔, 샤오정하오, 왕위엔쥔, 린쥔옌(97년생)으로 사실상 대만 국가대표 에이스들이다. 저우쥔쉰만 넣으면 대만 드림팀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국가대표가 고작 병조에서 경기했다. 갑조 을조에 뛰는 한국 용병들과 달리 이들은 출전수당도 없다. 다만 중국프로들과의 스파링에 자기 돈 내고 출전하는 것이다.
일본대표팀은 1장과 2장으로 이다아쯔시(4승3패)와 위정치(2승5패)가 나왔다. 4명 중 3명이 대만 출신으로 일본기원 소속이다. 이다 아쯔시는 현재 본인방전 도전자. 예전의 일본이었다면 자존심을 내세워 불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젊은 기사들도 바둑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정장차림으로 시합한 이다아쯔시는 성적을 떠나 기백이 있었다. 그는 위정치와 함께 리민배 예선까지 참가하고 돌아간다. 일본 팀도 출전수당이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하러 온 것이다. 최종결과는 5위. 올해도 병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항저우기원은 을조에 두 팀이나 참가했다. 지난해 갑조에서 11위를 하며 을조로 강등했다. 에이스 렌샤오(중국 2관왕)와 류싱, 나현, 리친청의 라인업으로 강등을 당했기에 충격은 매우 컸다. 올해는 을조 두 팀(항저우시, 홍다그룹) 모두 강동윤, 변상일 두 용병을 쓰면서 ‘일타 쌍피 작전’을 들고 나왔다.
6라운드 항저우 1팀의 속기화신 리친청은 대국 2시간 만에 승리하고 사라졌고 곧이어 궈원차오도 승리했다. 렌샤오와 강동윤 두 명 중 한명만 이기면 마지막 라운드와 관계없이 갑조 승급이 확정된다. 결국 강동윤이 승리하며 승점 10점을 획득. 지난해 을조로 떨어진 아픔을 씻어냈다.
밤 10시, 호텔 근처 슈퍼에 생수를 살 겸 나왔을 때 포장마차 스타일의 좌판에서 항저우 팀 선수들이 둘러 앉아 간단한 맥주와 꼬치로 축하를 하고 있었다. 필자는 항저우 팀에서 2005년 선수로 2006년엔 감독으로도 1년을 보냈기에 애정이 남아있다. 사진 한 컷 찍어주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했다.
▲ 일본(오른쪽)의 경기 모습. 주장 이다아쯔시와 위정치의 모습.
▲ 대만(오른쪽)의 경기 모습. 천스위엔과 샤오정하오의 모습.
▲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맥주 한잔으로 간단한 회식을 하는 항저우 팀.
4월 29일 항저우에 이틀째. 마지막 라운드 결과에 따라 2015년 그림이 완전히 달라지는 팀이 생긴다. 12시 점심을 먹기 위해 2층 식당에 갔을 때는 한국선수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10일간의 일정은 선수들을 지치게 한다. 밥 먹는 모습만 봐도 성적이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을 알 수 있다. 여자 기사들이 상대적으로 밝았고 남자기사들은 별로다.
12시 30분. 마지막 7라운드가 시작되었다. 15분간 사진촬영과 함께 선수들을 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회장 문을 잠그고 일체 팀 관계자도 들어 갈 수 없게 한다. 가장 민감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남자 을조는 갑조진출을 노리는 팀들이 6팀 정도 있다. 항저우 1,2팀(강동윤, 변상일)과 안후이 1,2팀(안성준, 이지현) 핑메이(김정현), 광저우(박영훈)다. 그중 항저우와 광저우는 지난해 갑조에서 강등 당한 팀이니 이번에 꼭 올라가야 한다고 믿는 팀 들이다.
올 초 강동윤 계약금(1판 승리시 10만 위안 약1700만원)이 언론에 밝혀지자 우리 기사들 사이에서도 사실 여부를 확인 하는 일이 벌어졌다. 갑조 최고대우를 받는 이세돌이 최소 8판 계약에 10만 위안을 받는다. 박정환은 성적이 65%를 넘을 경우 8만 위안인 것과 비교할 때 상식을 뛰어넘는 액수다. 가뜩이나 용병 몸값 인플레 때문에 내년 갑조리그 방식을 바꾼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강동윤 10만 위안'은 기름을 부은 꼴이다.
이렇게 몸값이 뛴 데는 이유가 있다. 항저우 팀은 지난해 초 용병 영입에 실패했다. 흔히 말하는 주장급을 놓쳤다. 다른 팀들이 을조리그가 끝나자마자 계약을 하고 갑조 팀은 에이스들을 계속해서 금액을 올려 잡아 두는 통에 새로운 용병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원성진, 백홍석, 허영호, 윤준상 등 한국의 A급 선수들이 군 입대하며 확실한 용병이 없는 팀 입장에서는 답답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항저우는 지난해 을조리그가 끝나자마자 강동윤과 구두 계약을 했다. 항상 을조만 참가했던 강동윤에게 세게 배팅 한 것이다. 강동윤급 선수는 보통 1판 승리 시 5만 위안 정도를 받는데 금액을 약간 올려 주기로 했다. 그렇게 2014년 갑조를 잘 준비하는 과정에서 팀이 어이없게 을조로 떨어졌다. 강동윤에게 미안한 상황이 되었다. 을조 7판만 두어 달라고 한다면 다른 팀에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던 선수를 붙잡아 둔 것 밖에는 안 된다. 또한 다시 갑조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강동윤 같은 에이스가 필요하다.
갑조 14판을 두는 것과 같은 효과의 10만 위안 더블 업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롄샤오가 중국 2관왕에 오르면서 에이스로 부상함에 따라 주장도 아닌 '10만 위안 2장'으로 출전한 강동윤은 6연승을 통해 팀을 갑조로 올렸다. 항저우에서는 대공신(大功臣)으로 불리게 되었고 나아가 내년 좋은 대우를 예약했으며 7일동안 1억원의 상금을 벌었다. 지난해 용병으로 최고의 히트를 쳤던 최철한(갑조리그 2억원)이후 또 하나의 잭팟은 이렇게 터졌다.
▲ 렌샤오(왼쪽)와 강동윤은 항저우팀의 원투펀치였다.
오후 5시. 항저우 2팀(홍다그룹)의 주장 류싱이 김정현에게 패했다. 만약 남은 3판 중 2승을 하지 못하면 안후이 팀이 갑조로 진출하게 된다. 결국 1승2패의 상황에서 프렌차이즈 선수인 4장 샤천쿤이 승리하며 항저우는 1,2팀 모두 갑조에 진출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항저우 기원은 에이스로 오래 활약 했던 류싱에게 옵션을 주었다고 한다. 1팀 3장으로 뛰던지 2팀 주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못 올라가더라도 2팀을 맡기로 했는데 옌환, 변상일, 샤천쿤과 함께 당당히 갑조 진출을 이뤄냈다. 변상일은 3장으로 출전해 5승2패를 하면서 내년 갑조리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창호는 이날 승리하며 최종 성적 3승4패. 은근히 갑조 진출을 노렸던 팀이 어이없게 병조로 강등 당했다. 이런 경우가 되면 아무리 용병이어도 돈을 받는 것이 너무 미안한 상황이 된다. 내년엔 중국리그에서 그를 부를 지 미지수.
신민준은 상하이외국어대 팀이다. 이 대학은 학생이나 졸업생을 대상으로 만든 팀이라 병조로 안 떨어지는 것이 목표인 팀이다. 최정이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갈현녹차배와 일정이 겹쳐 신민준으로 바뀌었다. 자체 예산도 워낙 적다 보니 용병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없다. 신민준은 1승당 1만 위안 계약을 했고 공부한다는 자세로 주장을 뛰는 조건으로 했다. 7라운드에서 양 대고목을 전문으로 쓰는 간쓰양에게 반집 졌다. 최종 성적은 1승 6패. 중국리그 진출 첫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팀도 최하위가 되며 병조로 강등됐다.
▲ 한국팀의 점심식사 자리.
우리 여자기사들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박지은 7전 전승, 이민진도 6승1패, 오유진 5승2패를 하며 3팀 모두 2015년엔 여자 갑조 리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년 여자 갑조에서 용병을 허용하면 이들이 계속 같은 팀에서 활약하지 않을까 싶다.
여자팀 중엔 왕젠홍 바둑도장 팀이 있다. 왕젠홍은 80-90년대 활동하던 중국 프로기사로 지금은 중국의 5대도장 원장 중 한명이다. 김채영을 주장, 딸인 15세 왕메이청(아마5단)을 2장으로 삼아 팀을 꾸렸다. 김채영은 5승2패를 해 제몫을 다했지만 왕메이청은 1승6패를 했다. 결국 팀은 중하위권의 성적으로 마무리 됐다.
모든 시합이 끝난 마지막 밤은 팀 선수들 끼리 마지막 회식을 한다. 승급하거나 잔류 한 팀은 기분 좋게 한잔을 할 수 있지만 강등 당한 팀은 초상집 분위기다. 남자 을조와 여자 을조에서 모두 참패한 상하이외국어대 팀 감독 쑨위안과 필자는 맥주 한잔으로 마지막 밤을 함께했다.
선수들도 이런 뜨거운 분위기에서의 시합을 더 원한다. 우리 바둑리그도 보다 확실한 경쟁구도를 통해 자기 지역과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TYGEM / 김성룡 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