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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입과 손발된 건 큰 행운”

10번기 승리의 숨은 주역 이영호 씨

2014-10-02 오후 9:30:19 입력 / 2015-05-03 오후 3:32:25 수정

▲ 이세돌의 10번기 승리의 숨은 주역 이영호 씨.

70년만의 10번기는 이세돌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1월부터 매달 벌어진 여덟 판 대국 중 일곱 판을 적지인 중국에서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중국인조차 낮선 고산지대, 오지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 거둔 승인은 이세돌의 탁월한 정신력, 집중력, 그리고 큰 승부에서 더욱 자신의 특질을 살려내는 승부욕이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입과 손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 한 사람을 잊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바로 10번기 내내 이세돌의 넉넉한 그림자가 되어주었던 이영호(38)씨가 그 주인공.

이창호와 한 살 터울의 동생 이영호 씨는 이세돌을 지근거리에서 최적의 컨디션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통역, 보디가드, 스케줄러, 대변인은 물론이고, 술친구 짜증받이 역할까지 도맡은 공이 크다. 구리에겐 말동무 스파링파트너 안마사까지 붙여주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번 10번기 또 다른 승인이 이영호 씨임은 자명하다. 이에 타이젬은 10번기 8국이 중국 충칭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던 도중 이씨를 만나 10번기 얘기를 들어보았다.

2002부터 7년간 타이젬 중국지사장을 맡은 이영호 씨는 1999년부터 동생이 쓴 형 이창호의 이야기를 타이젬에 인기리에 연재했고, 그 이야기를 한 데 모아서 '나의 형, 이창호(해냄)' 를 집필한 적도 있다. 최근엔 베이징에서 '이세돌바둑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통이다.

▲ 이세돌의 그림자 역을 수행한 이영호 씨(왼쪽).


늘 '이창호의 동생'으로 불리는 것이 어떤가?
숙명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얘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대학을 들어갈 때쯤 되니까 잠시 싫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중국을 자주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의 아니게 형(이창호)의 도우미 역할을 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창호의 동생'으로 불리고 있다.

바둑과 관계없는 길을 간 것으로 아는데 중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
대학에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당시 컴퓨터공학부는 미래학과였고 인기학과였다. 그런데 1년을 다니면서 적성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구적인 스타일이나 자연과학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면이 발달한 나로서는 고민이 심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일단 졸업은 하고 다음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셔서, 대학 2학년 때부터 방학만 되면 중국으로 떠났고 지금까지 중국과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사업가로 알려져 있는데 주로 어떤 사업을 했나?
나이에 비해 많은 사업을 해봤다. 핸드폰부품 사업은 실제로 투자도 해봤고, 유학관련 사업도 했고, 요식업까지…. 지금 내 사업의 대부분은 '이세돌바둑학교'가 되었지만.

바둑교실인가 바둑학교인가? 사업은 잘 되는가?
'이세돌바둑학교'가 정식 명칭인데, 대개 5세~7세 정도까지 아이들을 가르친다. 프로를 양산하는 도장은 아니며, 지금 현재 50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있다. 아직 1년이 채 못 되었다. 거의 10번기와 동시에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쉬운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의 경험으로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만 하면 안 되는 일은 없다. 그래도 바둑이 제가 조금 더 아는 분야니까 잘 되리라 믿고 있다.

이세돌바둑학교에 이세돌은 자주 들리는가?
너무 자주 와서 걱정이다. 10번기, 중국리그 등 한 달에 1~2회씩 꼬박 오니까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주 온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다든지 할 때는 꼭 전화가 온다. 사적으로는 형 동생사이니까….

이창호의 동생이면 바둑도 잘 둘 것 같은데, 바둑실력은?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형과 같이 바둑교실을 잠시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형의 어릴 적 스승이셨던 고(故) 이정옥 사범님이 당시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을 했는데, 그때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있다. 모르긴 해도 그 당시에도 형의 어깨너머로 바둑을 조금은 아는 상태였을 것이다. 대학졸업 후에 바둑을 알아야 하기에 다시 두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타이젬 5단이다.

▲ 이세돌-구리 충칭대국 복기 장면. 이영호 씨는 언제나 이세돌의 손과 발이 되어준다.


10번기에서 이세돌의 매니저를 맞게 된 계기는?
10번기는 수년전부터 몇 번 시도되다가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중국프로인 왕위후이는 원래 10번기 말고도 자잘한 기전의 서브스폰서를 했었다. 그가 말하길, 10번기 메인 후원사인 몽백합회장 니장건이 구리가 2012년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반집을 두 번 진 것에 대해 매우 애석해했고, 그것이 10번기 성사의 이유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세돌의 의견이 중요하니까 일단 나를 찾아와서 자문을 구했다. 공식적으로는 이세돌의 한국어 통역으로 일한다.

이창호의 매니저 역할도 하지 않았나?
1997년 한중천원전부터 형을 돕기 시작했다. 이벤트대회나 중국리그로 형이 중국을 방문할 때 주로 도우미 역할을 했다. 알다시피 형은 물징크스도 있었고 음식도 잘 못 먹고 그랬다.

이번 10번기에서 이세돌이 힘들어 한 적이 있나?
샹그릴라(5국)나 티베트 라싸(7국)와 루안(6국)같은 곳은 팬의 입장에서는 가보고 싶은 좋은 곳일지 모르나 대국자들에겐 고역이었다. 특히 구리는 샹그릴라에서는 전날 밤 거의 한잠도 못자고 눈이 뻘건 상황에서 바둑을 두었다. 이세돌은 승패를 떠나 최적 최선의 조건이 아니라는데 불만이 있었다. 이세돌은 바둑 두는 데 지장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판단하더라. 어려워도 내가 조절할 수 있으면 되지만 조절하기 힘든 환경은 옥에 티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일행보다 며칠 먼저 입성하다보면 호텔에서 구리일행과 서로 만날 수도 있는데, 만나면 무슨 얘기를 주로 나누었나?
자주 만난다. 그러나 구리와 이세돌은 서로 친소관계를 떠나서 시합 기간 중에는 서로 눈인사 정도만 하지 절대 사사로운 얘기는 하지 않더라. 평소에 절친한 사이지만 10번기가 두 사람에겐 무척 부담스러운 경기임을 알게 되었다.

10번기를 통해 이창호와 이세돌을 비교한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이세돌이 10번기를 갖는 것은 행운이다. 필생의 라이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리는 나이 전적 성과 등에서 엇비슷한 인물이다. 또한 서로를 존중해주고 있다. 다 형의 경우는 조금 독보적이었다고 할까. 인격적으로 훌륭한 창하오가 있긴 했지만 성적 면에서는 조금 언밸런스하지 않았나.

▲ 이세돌이 이영호 씨를 쳐다보면서 복기하는 모습. 중국에서는 이영호 씨에게 '세돌엄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애초에 10번기가 시작될 때 누가 승리할 것으로 보았나?
처음엔 4.5-5.5로 이세돌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이세돌은 냉철한 승부사지만 구리는 상대적으로 호방한 사람이라 결정력에서는 구리가 조금 밀리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 10번기 8국의 열기가 많이 시들었는데?
충칭이 구리의 고향이지만, 아무래도 티베트 대국(7국)에서 구리가 지면서 5-2로 일단 이세돌이 무승부는 확보해둔 것이 컸다. 중국팬들이 많이 허탈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세돌은 5국이 승부의 분수령이라 했다. 언제 10번기를 승리를 예견했나?
루안의 톈탕자이(天堂寨)에서 벌어진 6국이었다. 끝나고 나서 대국내용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했고, 나와 얘길 나누면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표정에서 6승을 올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대국 중에 점심은 대국장 내부에서 해결하는데 주로 어떤 음식을 찾던가?
과거 형이 중국음식을 꺼려해서 한식만을 고집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세돌은 먹성 하나는 정말 타고난 사람이라 그 점은 편했다. 낯선 중국음식이나, 햄버거 중국컵라면 도시락 등 그때그때 기분 따라 찾는다.

끝으로 중국통으로서 지금 한중바둑의 상황을 본다면?
중국바둑이 잘 될 수밖에 없다. 체계적으로 키우는 양성시스템도 그렇고, 일반인이 느끼는 바둑의 위상도 그렇고, 전반적인 시스템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과거에는 조훈현 선생님과 형과 이세돌 등 몇 명의 잘하는 선수가 있었기에 한국이 자주 이긴 것 같다. 한중 천재끼리 승부를 해서 어느 한쪽이 이길 확률은 당연히 50퍼센트지만, 천재가 나올 확률은 한국이 월등히 떨어진다.

▲ 이세돌이 베이징 이세돌바둑학교에서 사인회를 하고 있다.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이영호 씨.
TYGEM / 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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