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부따
칼럼- LG배는 묘수의 보물창고
역대 LG배 결승에서 나타난 묘수 살펴보기
2015-02-19 오전 10:46:34 입력 / 2015-02-19 오후 5:41:01 수정
▲ 작년 LG배 16강전 전경.
LG배 역대 명장면
세계무대에서 일본 바둑을 넘어선 한국기사들의 대활약 속에 드디어 1996년 LG배와 삼성화재가 동시에 출범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두 기전 모두 한국 기사들의 우승 퍼레이드가 이어지며 '우리만의 잔치'로 변질되어 자칫 흥행실패로 이어질까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회가 거듭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황사바람 속에 중국기사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최근 수년간은 한국기사의 우승을 고사하고 결승대결을 중국기사들만으로 벌이는 일까지 심심찮게 벌어졌다.
LG배의 특징 중 하나는 유독 결승전에서 멋진 묘수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보통 결승전의 경우 승부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좋은 수보다는 실수에 의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서로 조심하다 보니 실험적인 수나 모험을 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림픽마라톤에서 금메달이 더 중요하지 기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매한가지 이치.
올 4월에 예선을 통해 다시 LG배가 시작되면 20회째가 된다. 박정환-김지석의 결승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그 동안 LG배 역대 명장면을 정리해 본다.
▲ 유창혁 이창호는 20년전 양창(兩昌)시대를 열었다.
1. 이창호는 왜 끝내기의 신이었던가
양창(兩昌)시대라고 불리웠던 1997년 3월 초대 LG배 우승컵을 두고 창과 방패가 부딪쳤다. 지금은 서로 기풍이 변했지만 당시만해도 공격과 수비의 대명사로 꼽혔던 두 기사다.
국내대회 전관왕에 도전하던 이창호는 유독 세계대회에서는 번번히 쓴 고배들을 많이 마셨다. 반면 유창혁은 큰 기전에 강하다는 수식어 대로 세계대회 우승이 국내대회 우승 숫자와 엇 비슷할 정도였다. 지금의 박정환과 김지석만큼이나 당시 두 기사의 포지션은 아주 많이 비슷했다. 단, 결정적 차이는 당시 한국 바둑은 전성기로 접어들어 굳이 이창호가 우승을 못해도 중국과 일본의 우승이 아닌 조훈현, 유창혁의 우승으로 이어져 원망의 눈초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제1회 LG배 결승2국 백-이창호 흑-유창혁
좌변 접전에서 성공한 유창혁의 우세 속에 바둑은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바둑의 흐름을 바꾸려면 상대가 예측 못한 한 수가 필요하다.
바로 백1이 그랬다. 절대 타이밍이라고 할 수도 있는 한 수였다. 흑이 A로 두면 백은 B에 두어 C로 넘는 수와 D로 젖히는 끝내기를 맞보게 된다. 미세한 바둑에서 2집 손해를 보기는 정말 싫다. 유창혁은 허를 찔린 이 한 수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흑2는 잘못된 선택. 백3으로 가만히 밀어 둔 지극히 평범한 한 수가 끝내기의 묘수였다. 백5,7로 젖혀 있는 수가 선수. 흑은 8로 지켜야 한다. 백이 귀에서 수를 낼 여지가 다시 생겼기 때문이다. 이 곳을 선수로 처리하자 형세는 급반전 하고 이후 자책감에 빠진 유창혁의 연이은 실수가 초대 우승컵을 내주는 결과가 되고 만다.
1997년 이 승부를 기점으로 이창호의 일인 독주시대가 열린다. 그 동안 세계대회에서 유독 꽉 막혔던 이창호의 질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원히 이어질 줄로만 알았던 독주시대는 다시 2000년대로 넘어서며 兩李시대로 변한다. 그 계기가 되었던 한 판이 바로 7회 대회였다.
▲ 이창호 이세돌이 LG배 개막식에 참석했다.
2. 킬러 이세돌 등장
2000년 이세돌은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역대 불패소년의 계보는 김인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에게만 붙었던 수식어. 특징이라면 당대 최고의 기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세돌은 제5회 LG배 결승에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오른다. 고향향우회에서는 서울까지 대규모 응원단이 상경하는 일까지 생겼다.
초반 2연승 후 3연패. 그 옛날 조치훈이 사카다의 노련함에 역전패 당한 것만큼이나 이세돌 역시 우승을 눈앞에 두고는 평정심을 잃었다. 하지만 기회는 늦게 찾아오지 않았다. 2년 간의 내공 수련 덕인지 전성기에 진입한 이세돌과 아직은 절정기였던 이창호의 7회대회 결승전은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또 한번의 명승부였다.
제7회 LG배 결승1국 백-이창호 흑-이세돌
바둑은 단순해졌다. 중앙 백의 타개가 어떻게 되느냐. 바둑에서 핵펀치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필자는 항상 이세돌이 보여 준 흑1 한방을 보여준다. 변화도가 필요 없는 한 수다.
9회 대회를 기점으로 12회 이세돌의 우승을 제외하고는 18회까지 모두 외국 기사들이 우승을 한다. 무려 10년 LG배 한국바둑은 굴욕의 역사다. 그 중 결승전을 외국기사끼리만 펼치는 경우도 많아 최고의 세계대회는 무관심 대회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15회 조선족 파오원야오(한자명 박문요)가 쿵제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보여 준 역대 세계대회 최고의 결승전 묘수는 세상에 빛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묻히기도 했다.
▲ 파오원야오-쿵제 2011년 LG배 결승 장면.
3. 조선족 파오원야오 LG배를 품다 어린 시절 재주를 인정받아 베이징으로 유학 길에 올랐지만 가난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조훈현 국수와 삼성화재를 기획했던 전 타이젬 박덕수 상무가 오랜 기간 후원을 해주었던 일을 유명하다. 단, 재미있는 사실은 삼성화재배가 아닌 LG배 우승을 통해 이 빚을 갚았다는 것.
15회 결승에 올랐을 때는 이세돌 휴직기의 틈새시장을 공략했던 최단기간 세계1위 쿵제의 시대. 1위의 기간이 너무 짧은 그런 시대도 있었나 반문 할 수도 있지만 쿵제는 한해 세계대회 4관왕에 올랐던 놀라운 기록의 보유자이다. 우리에겐 누가 이기나 전혀 관심 없는 무관심 경기로 펼쳐졌고 두 기사는 보란 듯이 명승부를 펼쳤다. 특히 우승을 결정짓는 결승2국 수상전의 묘수는 파오원야오 일생의 한 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제15회 LG배 결승2국 백-파오원야오 흑-쿵제
하변 백은 '가'로 두어 흑을 잡으려 가고 싶지만 흑이 A로 두는 순간 수 부족이 된다. B로 두어도 C로 붙이면 한 수 부족. 쿵제도 놀라고 이 바둑을 본 중국 기사들은 모두 놀랐던 한 수 바로 백1의 붙임. 수상전의 묘수였다.
얼마전 박정환의 우승으로 끝이 난 제19회 LG배는 10년의 부진을 한번에 털어낸 한국 바둑이 살아난 모습을 보여줬다. 4강전 전원이 한국기사였고 결승전은 랭킹 1,2위가 오르며 흥행에서도 대 성공을 거두었다.
이창호 이세돌의 7회 대회 결승전 이후 처음으로 1,2위가 맞붙었던 강릉 LG배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음편 계속)
TYGEM / 김성룡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