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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발상지는 한국
문자학으로 본 바둑의 연원
2015-04-15 오후 7:37:51 입력 / 2015-04-15 오후 7:44:15 수정
▲ 陳泰夏(진태하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사)전국한자교육
추진총연합회 이사장)
1. 序言
바둑이 지금은 世界的으로 傳播되어 西歐에서도 바둑을 전문으로 硏究하고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아직도 바둑은 韓中日 삼국이 위주로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하나의 道로서, 또는 고도의 정신적 스포츠로서 널리 두어지고 있다.
과거 한 때는 日本이 바둑의 宗主國처럼 바둑을 道로서 승화시켜 硏究하고 棋士의 실력도 우세하여, 韓國이나 中國에서 棋道를 연마하기 위하여 日本으로 留學을 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55년 사단법인 韓國棋院이 설립되면서 한국의 바둑계는 점점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고, 1965년 11월 16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1회 東洋三國바둑大會에서 韓國이 優 勝하면서부터 현재 日本과 中國을 制覇하고 있다. 또한 바둑 역사상 大學에 바둑 專攻學科를 開設하고, 바둑 專門TV 채널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韓國이 유일할 것이다.
이처럼 韓國이 바둑의 硏究와 實力面에서 명실공히 中心國으로 浮上하게 된 것은 근래에 들어와서 적극적으로 硏究 努力한 결과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所見이다.아직도 國內外的으로 바둑의 發祥地는 中國으로서 뒤에 韓國과 日本으로 傳播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筆者는 文字學을 통하여 바둑의 淵源을 연구하면서 바둑의 發祥地가 中國이 아니라, 우리 韓國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나라가 근래에 와서 바둑의 中心國이 된 것은 數千年前 바둑의 發祥地로서 內面에 면면히 흐르는 傳統과 歷史의 再現이요, 復興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근래 北韓의 《노동신문》(2003.2.23)에서도 평양바둑원 원장 리세충의 '바둑의 발생지 조선'이란 題目으로 "(前略) 바둑의 발생문제와 관련해서는 고대 우리나라의 첫 노예소유자국가였던 고조선에서 발생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中略) 바둑의 발생지가 우리나라이고 바둑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민속놀이였다는 것은 바둑이란 말 자 체가 고유한 조선말로서 한자로는 표기할 수 없다는 한 가지 사실만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충분한 考證도 없이 '바둑'이 고유어란 것만으로 古朝鮮에서 발생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객관적인 信憑性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中國의 古文獻에 雙音節語 표기로서 전하는 바둑의 명칭을 중심으로 文字學的인 면에서, 또한 우리의 고유어인 '바둑'의 語源的인 면에서 구체적으로 比較 考察해 보고자 한다.
2. 종래 바둑의 起源說과 名稱
바둑의 起源에 대하여 혹자는 印度에서 발생되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中國 古文獻의 기록을 인용하여 中國에서 발생했다고 여겨 왔다.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은 『博物誌』 1)에 실린 "堯造圍棋, 丹朱善之." 곧 堯임금이 바둑을 만들었고, 丹朱가 바둑을 잘 두었다는 기록으로 기원전 2300년경에 堯임금이 그 아들 丹朱를 위하여 바둑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또한 晉나라 『中興書』에서도 "堯舜以敎愚子"2) 곧 요와 순임금이 어리석은 자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바둑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예로부터 우 리나라 사람들도 中國에서 만들어진 바둑이 韓國, 日本으로 傳播되었을 것이라고 여겨 왔으며, 지금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博物誌」나 「中興書」는 堯舜으로부터 훨씬 後代의 記錄이기 때문에 그대로 믿기 어렵다. 舜임금에 대하여 臺灣의 文字學者 李敬齋는 "夫東夷果何等人耶, 乃愷悌慈 祥, 薄武力而崇藝術之人也. 其代表人物如舜(孟子曰舜, 東夷之人也.).……其次如契, 舜使爲司徒, 司徒卽今之敎育部長,…… 可見我國文字東夷人亦多所創造."(整理文化中途自述) 와 같이 東夷族의 대표적인 인물이 舜(孟子도 舜이 東夷人이라고 말하였다)이라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漢字도 실은 모두 東夷族이 創造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니, 舜이 바둑을 만들었다고 하여도 곧 우리의 祖上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바둑에 대한 記錄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三國史記』 百濟本紀 蓋鹵王條에 “於是道琳佯逃罪, 奔入百濟. 時百濟王近蓋婁好博 道琳詣王門告曰: 臣少而學碁, 頗入 妙, 願有聞於左右. 王召入對碁, 果國手也.”(卷二十五) 곧 이에 고구려에서 바둑으로 이름난 중 도림이 거짓 백제로 망명하여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함을 알고, 도림이 궁궐로 찾아가 신은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왕을 모시며 대국해 보고 싶다고 청하였다. 개로왕은 허하여 대국해보니 과연 국수였다고 찬탄하였다. 마침내 도림은 고의로 왕릉 성곽 등을 개축케하여 국고를 탕진시킨 틈을 타서 고구려는 백제를 쳐서 멸망케 하였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新)唐書』 高(句)麗傳에 “喜奕投壺鞠”3), 新羅傳에 "國人善棋", 『(後)周書』 百濟傳에 “有投壺樗蒲等雜戱然尤尙”4)라 하여 三國時代에 王을 비롯하여 백성들이 바둑놀이를 좋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문헌의 기록만으로 보면, 바둑놀이를 한 年代가 中國보다 훨씬 늦음을 알 수 있다. 바둑이 처음으로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起源을 살피기 전에 먼저 文獻에 전하는 名稱을 살펴보면, ‘圍棋5), 棋, 手談6), 忘憂, 烏鷺, 坐隱7), 橘中樂(귤중락)8), 木野狐, 爛柯9), 博, 博, (박기), , 具, (기삭), (박새), 博棋 등 많은 명칭이 있다.
이상의 명칭은 대부분 中國文獻에 전하는 漢字語들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말의 고유어로서 바둑에 대한 方言으로는 '바닥, 바독, 바돌, 바득, 빠닥, 바고누, 고니, 꼰, 꼬누, 꼰뚜기,'10) 등이 있다. 日本에서는 바둑을 "고(ご)"라고 하지만, 일본의 固有語가 아니라, 한자 ‘’의 音이 變音된 것이다.
이렇게 名稱으로 볼 때, 韓國과 中國은 이른 시대부터 매우 異質的인 名稱이 따로이 傳해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바둑의 名稱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바둑이 中國에서 韓國으로 傳來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단정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考究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계속)
위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8호(2015년 4월호)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TYGEM / 인제대학교 진태하 석좌교수